오빠 위에 호모, 호모 위에 오빠

생각하다아이돌팬덤

오빠 위에 호모, 호모 위에 오빠

김다정

아이돌 팬덤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점 중 하나는 이 세계에 생각보다 ‘해야 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전곡 스트리밍은 필수이며, 팬덤 내에서 금지된 사진을 올려서는 안 되고 민감한 이슈를 언급할 때는 '검색 방지'를 해야 하는 등, 그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게다가 이 중 하나라도 어길 경우 ‘진짜 팬’이 아니라는 비난을 받을 확률이 높다. 

이러한 수많은 규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오빠 위에 OO없다’다. 팬 활동을 할 때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가장 우선으로 배려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해당 표현에서 파생된 수많은 문장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오빠 위에 호모 없다’는 선언이다.

오빠 위에 호모 없다

'호모' '호모덤' 에 대하여 : 본 기사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 및 목적의 적확한 전달을 위해 해당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또한 아래에 등장하는 '호모덤'과 관련된 개념은 확립된 정의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만, 최대한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보았습니다.

 ‘오빠 위에 호모 없다’는 말은 다양한 층위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이 문장이 가장 많이 쓰이는 경우는 이른바 ‘알페스’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정 없이' 특정 멤버를 가져다 쓰지 말라고 비난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알페스’가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알페스는 RPS, Real Person Slash의 약자로, 실존하는 인물 간에 로맨틱한 관계를 설정한 2차 창작 콘텐츠를 말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RPS는 동성 연애 관계를 그린다.

RPS는 ‘오픈(양지)’과 ‘클로즈드(음지)’로 나뉜다. 그런데 ‘오픈 알페스’의 정의는 그 기준이 모호하다. 2차 창작의 대상이 된 인물이 자신이 등장하였음을 알도록 하는 것부터 ‘오픈’이라고 하는지, 아니면 소셜 미디어 계정에서 자신이 ‘알페스’를 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오픈’이라고 하는지 상당히 애매하기 때문이다.  오픈/클로즈드 RPS 창작자, 그리고 이를 소비하는 팬들은 ‘호모덤’으로 불린다.

전반적으로 음지에서 향유되는 특성상, 트위터 등의 소셜 미디어로 '알페스'가 공유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샤이니 팬덤 내에서의 '사이버 불링' 논란이 아이돌 성희롱, 그리고 곧바로 '알페스'로 튄 것은 그래서 낯설지 않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샤이니 종현의 개인 콘서트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및 특정 문화를 유희화하는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피드백을 요구하는 팬에게 샤이니 팬덤은 심각한 사이버 불링을 가했다. 이를 두고 #팬덤_내_사이버불링_아웃 이라는 해쉬태그까지 등장하며 사건이 발전했다. 그런데 의외의 방향으로 '불똥'이 튀었다. 사이버 불링을 반대하는 팬이 평소 자신의 계정으로 아이돌 멤버에 대해 성적 발언을 한 것 등이 문제가 되며 '아이돌 성희롱' 논란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픈 알페스’, 그리고 ‘알페스’에 대한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이는 알페스, 그리고 이를 포함한 아이돌 ‘호모덤’이 가지는 성격을 되돌아보게 한다.

아이돌에게 있어
‘호모덤’이란 무엇인가?

'동성 커플링'을 파는 호모덤을 빼고는 아이돌 팬덤을 논할 수 없다. 같은 그룹 내 멤버를 연인 사이로 팬들이 꾸준히 엮어 소비하는 것은 1세대 아이돌인 H.O.T 시절부터 2016년 현재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온 일종의 팬 활동이기도 하다.

SNL은 H.O.T. 의 톤혁 팬픽을 재현하기도 했다. tvN <SNL> 방송화면 캡쳐.

그런데, 한 그룹 내에 단순히 같은 성별이 모여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RPS가 꾸준히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아이돌 팬덤 내에 호모덤이 생산되는 것은 분명 이를 할만한 ‘건덕지’가 자꾸만 주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돌 기획사는 팬들이 아이돌에게 가상연애감정을 가지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이것만이 아이돌 덕질의 전부는 아니지만, 다양한 아이돌 소비의 갈래 중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지점에 ‘가상 연애’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화이트 데이가 다가올때마다 팬들이 1인칭 시점으로 볼 수 있는 멤버별 고백 영상이 올라오는 것은 물론이요, 틈만 나면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팬들에게 ‘사랑해’를 외치는 것은 이제 의무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사진제공 = 5DUCKS 영상 캡쳐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은 아이돌이 팬들과의 가상 ‘이성’ 연애 감정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동시에 실제 이성과는 거리를 둬야 하는 의무를 진다는 점이다. 남/여 아이돌이 서로에게 ‘철벽’을 치는 모습은 팬덤 내에서 언제나 칭송을 받는다. 아이돌 그룹이 팬에게 제공하는 모습에 실제 이성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사진제공 = VIixx N Kpop

따라서 기획사나 콘텐츠 제작자가 제공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의 모습은 대부분 같은 멤버끼리의 관계를 활용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그리고 이때, 팬 활동을 더 깊고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호모덤’이 팬덤 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소속사가 적극적으로 ‘오묘한 브로맨스 기류’ 따위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멤버들끼리의 ‘입으로 종이 옮기기’나 막대과자 먹기 게임, 아이돌 대상 필수 질문인 ‘(여자/남자가 되면) 사귀고 싶은 멤버는?’을 비롯해, 우정을 빙자한 잦은 스킨십, 오묘한 느낌의 화보, 서로 껴안는 안무 집어넣기 등. 이렇듯 기획사에서 마음껏 멤버들 간의 진한 우정을 즐기라며 화젯거리를 제공해주는데 팬들이 가만히 있을 이유가 없다. 팬들은 아이돌 멤버들간의 관계를 다양하게 정의하고, 동성 연애 관계로 엮는다. 결국 이 관계를 기반으로 한 2차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호모덤’이 생겨날 수밖에.

그런데 이러한 눈요깃거리를 즐기는 호모덤이 팬덤 내에서 엄격한 규제를 받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오빠 위에 호모없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특정 팬이 SNS에서 드러내놓고 알페스를 창작하거나, 몇몇 멤버를 가리켜 ‘게이 같다’ 혹은 ‘사귀는 것 같다’고 발언하는 경우에는 비난을 받을 확률이 높다. 또한 트위터의 많은 아이돌 팬 계정은 ‘오픈 알페스는 블락’이라는 문구를 걸어놓기도 한다.

왜 그들은 아이돌이 제공하는 호모소셜한 ‘떡밥'을 즐기면서도 호모덤을 거부하고 심지어 타인의 알페스 창작을 규제하려고 할까? 

‘멀쩡한 애들을 게이로 만들지 마세요’

‘멀쩡한’ 멤버들을 게이로 만드는 것이 기분 나쁘다거나, 혹은 ‘본인들이 자신을 동성애자로 묘사한 발언을 보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냐’ 등의 발언의 기저에는 짙은 호모포비아가 있다. 동성애를 모욕적인 표현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애초에 ‘게이/레즈 아닐까?’하는 시선에 예민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 나아가 이런 식의 태도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역시 당연히 호모포빅할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니겠나.

이러한 식으로 호모덤을 비난하는 팬들은 ‘타인의 성지향성을 마음대로 재단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돌 멤버가 당연히 이성애자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역시 타인의 성지향성을 지레짐작해버리는 행태다.

지드래곤 인스타그램 캡쳐

올란도 게이클럽 총기난사 추모 포스팅을 올린 지드래곤의 인스타그램에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렸던 적이 있다. 이때 지드래곤을 보호하겠다며 나선 팬의 ‘쉴드’ 중 하나가 ‘지드래곤은 게이가 아니에요.’였다. 세븐틴 멤버가 ‘게이 같다’고 언급한 한 트위터리안 역시 팬들의 엄청난 분노를 견뎌야 했는데, 사실 세븐틴 역시 멤버 간의 잦은 스킨쉽등으로 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그룹이다.

사진 제공 = PLEDIS

게다가 특정 멤버가 ‘동성애자로 오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알페스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성소수자의 비가시화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하다. 걸크러쉬라는 단어가 동성애적 성향을 인정할 가능성을 원천차단해 버리듯이, 아이돌 그룹 멤버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한 생각은 팬들이 호모덤을 비난하고 규제하면서 가능성조차 남을 수 없게 된다. 

즉, 호모덤을 부정하는 팬덤은 소속사가 제공하는 멤버 간의 동성애 이미지를 철저히 이용하고 즐기면서도 성소수자의 비가시화에 가담하는 전형적인 호모포비아 양상을 보인다. 

‘솔직히 이거 성희롱 아닌가요?’

알페스 작품 중 상당수는 소위 말하는 ‘19금 콘텐츠’에 해당한다. 팬픽이나 팬아트에는 성관계 묘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팬들은 멤버간 합성사진을 제작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성희롱하는 것 아닌가, 더럽다’고 평가하는 것이 팬들이 호모덤을 비난하는 나머지 하나의 갈래다. 이번 '성희롱' 논란에서도 바로 이 지점이 공격당했다. 하지만 아이돌 팬덤활동 요소 중 상당 부분은 그들의 섹슈얼리티에 기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는 호모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이 남성을 성적으로 소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특히 여성팬덤이 동성 커플링을 즐기는 방식은 여성 아이돌이 소비되는 방식보다는 훨씬 조심스럽고, 음성화되어 있다. 섹시 컨셉으로 유명한 아이돌 그룹 스텔라의 ‘마리오네트’ 뮤직비디오는 포르노그라피의 미쟝센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여성 아이돌 그룹의 팬이 여성 아이돌의 특정 부위를 집중해서, 혹은 유사포르노의 구도로 촬영한 '직캠'을 찾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스텔라 - 마리오네트 MV 캡쳐

또한 알페스는 여성이 물리적으로 안전하게 성적 욕망을 발현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자신이 만들어내는 성적 판타지이므로, 여성에게 폭력적이지 않은 콘텐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팬을 향해 ‘카메라 모서리로 정수리를 찍어버리겠다’고 말하고 ‘서른 넘은 여자는 요물’이라고 표현한 남자 아이돌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호모덤 비난이 가리는 것

알페스나 호모덤이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알페스 작품에서 묘사되는 동성애는 상당수가 왜곡되어 있으며, 여전히 성적 고정관념을 고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폭력이나 강간 등 온갖 종류의 성범죄가 높은 확률로 낭만화되기도 하는 곳이 알페스와 호모덤의 세계다. '동방신기 5대 팬픽'등으로 자주 거론되는 유명 알페스의 상당수는 자신을 강간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과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또한 ‘LGBT의 가시화’를 말하기에는 호모덤에 등장하는 성소수자의 모습과 그들이 성애장면이 현실 세계의 성소수자와는 대부분 동떨어져 있다는 것 역시 문제다. 애초에 알페스에 ‘오픈’과 ‘클로즈드’가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은 실존 인물을 가지고 이러한 (성소수자를 다루고, 특히 이를 통해 섹슈얼리티를 강조하는) 방식의 2차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상당히 애매하고 위험한 영역임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다.

고민해야 할 지점이 다층적으로 섞여있는 만큼, 덮어놓고 알페스와 호모덤 자체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방법으로는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

다시 한번,
아이돌에게 ‘호모덤’이란 무엇인가.

특정 알페스 작품이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는 대부분 성희롱에 가까운 발언 혹은 성범죄에 해당하는 묘사 때문이다. 그 외에도 특정 멤버에 대한 애정을 의심 받을 때에 호모덤 논란이 가열되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로 동성 커플링 작품을 만들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또 다른 멤버를 '커플놀이'에 '사용'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중 어떤 경우든 논란 끝에 또 다시 등장하는 선언은 '오빠 위에 호모 없다'다.

이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결국 오빠 위에 없어야 하는 것이 ‘호모’라니. 아이돌 팬덤에서 쓰이는 ‘호모’는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리는 단어가 되었다.

호모덤을 단체로 비난한다고 해서 그 바깥에 위치한 아이돌 팬덤이 관련 문제에서 안전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획사가 주도적으로 ‘브로맨스’를 팬덤 형성 전략으로 제공하고, 대부분의 팬덤이 이를 ‘멤버 간의 우정’으로 포장해 소비하는 와중에 그 관계를 동성애로 해석해 즐기는 것이 호모덤의 본질이다. 이들 중 누구도 이 코드가 아이돌 세계에서 철저히 전략으로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이를 전혀 알지 못한다면 멍청한 것이고,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면 비겁한 것이다. 오빠 위에 호모가 있든, 호모 위에 오빠가 있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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