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 (Feminist) Scientists 3. 여성과 남성은 같을까, 다를까?

알다과학의학

Mad (Feminist) Scientists 3. 여성과 남성은 같을까, 다를까?

하미나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평등을 위해 우리는 여성이 남성과 같다고 주장해야 할까, 아니면 다르다고 주장해야 할까? 월경을 예로 들어보자. 생리 결석 혹은 휴가는 양가적인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여성은 남성의 몸은 경험하지 않는 월경을 강조함으로써 월경이 있는 날 휴식을 취하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평등이라 주장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월경을 특별히 대처해야 할 상태라고 규정하면 규정할수록 이것이 여성을 신체적, 사회적 활동에서 배제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

같음과 다름 사이의 시소 타기. 이는 비단 여성뿐 아니라 인종, 성소수자, 청소년 등 모든 소수자 문제에서 부딪히는 일종의 딜레마다.

지난 글에서는 남성 중심의 의학에서 여성이 소외되는 현상을 심장병을 사례로 들어 이야기해보았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쩌다 임상시험에서 배제되었을까? 이번 글에서는 이를 둘러싼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 살피면서, 의학에서 여성의 평등을 이야기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몇 가지 아이러니를 소개하고자 한다.

‘보호’하기 위해 여성을 제외하다

일러스트 이민

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와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잔혹한 인체실험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연구대상자를 보호하는 몇 가지 윤리 원칙이 세워졌다. 1947년 수립된 ‘뉘른베르크 강령’과 1964년 ‘헬싱키 선언’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1962년 탈리도마이드 쇼크가 터진다. 입덧 완화제로 사용된 탈리도마이드는 1957년부터 약 50개국에서 판매되었는데, 이를 복용한 전 세계 산모에게서 1만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난 것이다.

당시 의사 대다수는 여성의 자궁이 태아에게 아주 안전한 보호막이어서 약물과 방사선 등의 위험 물질이 태반을 통과할 수 없다고 믿었다. 탈리도마이드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독성 물질이 태반을 통과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고, 의학 연구에서 임산부와 태아의 취약성이 대단히 강조되었다.

이외에도 1970년대 초 경구피임약 등 여성호르몬계열 약품의 치명적인 부작용이 속속 드러나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 Food and Drug Administration)은 약물을 규제하는 권한을 확대하고 임산부, 혹은 가임여성을 임상시험에서 배제하는 규정을 만들어 이를 제도화했다.

이전에는 여성이 연구 대상으로서 관심조차 받지 못해 배제되었다면 20세기 초중반을 거치면서는 여성이 (실은 태아의) ‘보호’를 위해 연구에서 배제되기 시작한 것이다. 월경 경험 역시 여성을 과학 연구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주요한 빌미 중 하나였다.

남녀의 차이를 밝히는 성인지의학의 탄생

의학 연구에서 배제되던 여성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당시 페미니즘 제2물결과 함께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소비자 보호 운동이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이러한 흐름 아래에서 70kg 백인 남성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여성과 소수 인종, 어린이와 노인에게 억지로 끼워 맞추는 소위 “one-size-fits-all” 행태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었다.

이에 미국 국립보건원(NIH,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과 FDA는 각각 1990년, 1994년에 여성건강연구실을 설치하여 임상 연구에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를 반드시 참여하도록 강제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여성 건강에 대한 자료가 축적되면서 우울증, 치매, 골다공증 등 다양한 질병에서 여성과 남성 간에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밝히는 연구가 쏟아졌다.

지난 글 ‘여자가 엄살이라고?’에서 언급한 심장병 연구가 이 시기에 쏟아진 대표적인 성차 연구 중 하나다. 미국 컬럼비아대 심장내과 의사 메리앤 리가토(Marianne J. Legato)는 같은 질환이라 하더라도 여성과 남성의 질병 체험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지금껏 심장병이 남성의 질환으로 여겨져 여성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리가토는 연구와 진료에 있어 남녀의 차이를 연구하는 새로운 의학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성인지의학(Gender Specific Medicine)이라 이름 붙였다. 이후 성인지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밝히는 연구가 축적됐다. 1998년에는 최초의 성인지의학회지인 <The Journal of Gender Specific Medicine>이 창간되었고, 성차 개념을 진료에 응용하는 센터와 의과대학에서의 성차 및 성인지 교육 프로그램도 빠르게 늘었다.

한국에서도 2004년 11월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성인지의학연구센터가 설립되며 성인지의학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현재는 활발히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성차 연구가 꼭 좋기만 할까?

일러스트 이민

성인지의학은 기본적으로 여성이 생식기관뿐 아니라 신체의 모든 측면에서 남성과 다르며 이것이 의학의 이론과 실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전제한다. 곧 성인지의학은 여성과 남성의 ‘다름’을 강조한다.

이러한 관점은 기존의 남성 중심 의학에서 소외된 여성의 몸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견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좀 더 복잡하다. 성인지의학은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가진다.

첫째, 성인지의학은 성차를 강조하는데 이때 여성과 남성의 경계는 생각만큼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을 가르는 분명하고 뚜렷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듯 남성과 여성도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간성(intersex)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존재해 왔다. 성별은 염색체를 기준으로 볼 때도, 호르몬을 기준으로 볼 때도, 해부학을 기준으로 볼 때도 완벽하게 구별되지 않으며 다만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이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연재에서 다룬다).

둘째, 성차를 강조하는 연구는 성별 스테레오타입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소외시킨다. 즉 여성이라는 집단 내에서의 다양한 차이를 가린다. 가령 “여성의 몸은 남성보다 지방이 많다” “여성은 남성보다 덜 활동적이며 따라서 산소를 덜 소모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고통을 잘 참는다” 같은 주장은 여성 전체를 일반화함으로써 이에 해당하지 않는 여성을 배제한다.

셋째, 생물학적 성차를 강조하다 보면 건강 불평등을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1.5배에서 2배가량 흔한 우울증을 예로 들어보자.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취약한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이때 그 원인을 ‘에스트로겐’에만 한정하면, 실제로 여성을 우울하게 만드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가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자,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평등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여성이 남성과 같다고 주장해야 할까, 아니면 다르다고 주장해야 할까? 이 질문은 둘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미 잘못되었다. 대신 우리는 더 섬세하게 물어야 한다. “여성이 남성과 다르다면 이 차이는 어떻게, 왜 만들어졌는가?”로 말이다. 

참고문헌

Epstein, Steven(2007), Inclusion : The Politics of Difference in Medical Research, University of Chicago Press.

Tavris, Carol(1992), The Mismeasure of Woman, Simon & Schuster.

 

하미나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Mad (Feminist) Scientists

과학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