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우울증에 거의 집착하듯 매달려 지냈다. 이러한 관심은 우울증을 비롯한 다양한 정신질환으로 확장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여성이 정신의학 지식에서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가 나의 주된 관심사다.
여성과 정신병에 주목하게 된 것은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 20대 페미니스트 활동가 단체 ‘페미당당’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2016년은 페미니즘 이슈가 연달아 터진 해다. 그중 나와 동료 활동가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 것은 미투 운동 이전 앞서 이루어진 #OO계_내_성폭력 운동이다. 그해 10월 트위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성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잇달아 터져 나왔다. 억눌렸던 상처가 폭발하듯 드러나면서 우리는 피해자로서, 목격자로서, 방관자로서, 또 2차 가해자로서 크게 앓았다.
당시 많은 친구가 신경정신과에 갔고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약을 처방받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몇 달간 심한 불면증으로 잠을 자지 못했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책을 읽는데 한 문단을 넘어가지 못했다. 한 문장에서 그다음 문장으로 이어지는 논리를 따라가지 못했고 자꾸만 앞 내용을 잊었다. 책을 읽을 수 없다니? 엄청난 충격이고 공포였다. 다음날 바로 병원을 찾았다.
의사에게 내 평소 상태를 설명한 뒤 처방받은 약은 리튬이었다. 우울증을 겪는 친구들이 처방받는 약과는 달랐다. 리튬은 조울증 치료제다. 조울증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꼭 내 이야기 같았다. 리튬은 내게 너무도 잘 맞았고 처음 라식 수술을 하고 세상을 보는 사람처럼 약과 함께 하는 일상은 깜짝 놀랄 만큼 쾌적했다.
한편 약은 유용했지만, 조울증이라는 진단은 거슬렸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종종 이야기했다.
“조울증 환자는 성적으로 문란한 경향이 있습니다.”(그게 뭐?)
“조울증 환자는 결혼도 많이 합니다.”(어쩌라고?)
“지금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사셨죠, 이 약을 먹지 않으면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평생 드셔야 합니다.”(네가 뭔데 내 삶을 판단하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의사를 갈아치웠다. 너무도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여러 명의 의사를 거친 뒤 지금은 ‘심리학 이론에서 상정하는 인간은 죄다 남자인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는 여자 의사에게 정착했다. 진료실에서 내가 그토록 쉽고 간편하게 병리적인 인간이 되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형편없는 남자 의사가 함부로 하는 말에 거리를 둘 수는 있었지만, 조울증과 관련된 온갖 연구와 통계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았다. 이를테면 조울증 환자는 우울증 환자보다 자살률이 높고, 조현병 발병 위험이 크다 같은 것들. 내 미래가 통계 수치에 따라 어느 정도 정해진 것만 같았고 그래서 내 정체성이 조울증으로만 규정되는 것 같았다. 병명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체감한 순간이었다.
정신병에도
역사가 있다
그러니 과학사 중에서도 정신의학의 역사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 문제이니까.
과학에도 역사가 있듯 정신의학에도 역사가 있다. 우울, 조증과 같은 경험에 시대마다 다른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경험을 판단하는 우리의 생각도 역사적으로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울과 조증을 ‘질환’ 대신에 ‘경험’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것이 항상 병리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병과 관련해서 이야기하자면 2박 3일이 필요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우울증에 한정해 그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이것이 여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울증이 무엇이고 그 경험을 촉발하는 원인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지식은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오늘날 우울증은 소위 여성의 질병으로 여겨지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프로이트 전통 아래에서 신경증을 겪는 참전군인에게 나타나는 증상을 우울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때 우울은 독립된 질병이라기보다는 신경증(특히 불안)이 바깥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이처럼 우울증이 불안의 숨겨진 증상이라고 여겨지다가 1970년대를 거치며 뇌 속 화학물질의 불균형으로 나타나는 질환으로 정의되면서 ‘마음의 감기’처럼 흔한 병이 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하버드대 과학사 교수 앤 해링턴은 치료제에서 그 답을 찾는다. 1970년대에 발륨같이 불안 치료제로 쓰이던 신경안정제가 높은 중독성을 갖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1975년 FDA는 이를 엄격히 규제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정신과 의사들은 신경안정제를 처방하기가 전보다 훨씬 까다로워졌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불안을 호소하는 환자의 고통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간 정신과 의사들은 오랫동안 환자의 대다수가 불안과 우울을 동시에 앓는다는 사실을 관찰해왔다. 만약 불안과 우울 증상의 혼합이 불안 때문이 아니라 우울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들에게 항우울제를 처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에 이전에는 불안으로 다루어지던 정신질환이 우울을 중심으로 치료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불안이 우울로 재정의되면서 다른 결과도 생겼다. 우울증과 같은 질환이 증상을 기준으로 그 개념이 명확히 규정되면서 역학조사도 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WHO를 필두로 하여 전 세계에서 국가별 우울증 발병률을 조사하게 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두 가지 놀라운 결과가 나왔는데, 첫째로는 생각보다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것이었고 둘째로는 전 세계 공통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 발병률이 1.5~2배 높다는 것이었다.
우울한 여성
여성은 왜 남성보다 우울할까? 이 질문에 관한 답은 참으로 여러 가지다. 먼저 여성은 호르몬 때문에 남성보다 우울할 수도 있다. 생리 때문일 수도 있고, 경구피임약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임신이나 출산이 여성을 우울하게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의사와 과학자가 호르몬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여성이 처한 특수한 사회구조적 맥락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하다. 독박육아를 하지 않고, 경력단절이 없으며, 가사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에서 여성은 여전히 지금과 같은 산후우울증 발병률을 보일까?
이처럼 여성은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남성보다 높아서 더 우울할 수도 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 불리하기 때문에 우울이 찾아올 수 있다. 직장에서 받는 대우, 가족에게서 받는 대우, 그리고 스스로가 들이미는 잣대 때문에 더 쉽게 우울할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예일대 역학자 마이나 와이즈먼(Myrna Weissman)과 하버드대 정신과의사 제럴드 클러만(Gerald Klerman)은 흥미로운 주장을 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미국 여성이 우울증에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 때문에 미국 여성의 해방을 향한 갈망은 높아졌는데 실제로 여성들이 직면한 사회는 그들이 요구하는 평등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저항감과 박탈감 때문에 우울하다는 이야기다. 이를 반영하듯 1976년 미국의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Harper’s Bazzar)의 기사 중 하나의 제목은 “Does Liberation Cause Depression?(해방이 우울증을 일으키는가?)”이었다.
여성은 왜 남성보다 우울할까라는 질문에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답변도 있다. 실제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하지는 않으나, 남성은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여성보다 우울증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우울을 측정하는 기준 자체가 여성의 우울 증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남성보다 더 우울할까? 우리는 더 미쳐있을까? 내 주변 이삼십대 여성의 많은 수가 이토록 우울증을 앓는 것은 우리가 윗세대의 여성보다 더 깨어있고, 더 해방을 바라기 때문일까?
쉽게 답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지켰으면 좋겠다. 설령 그것이 의학지식에 의해 위협받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까지의 연재에서 잘 살펴보았듯 지식의 세계에서도 여성은 너무도 쉽게 공격받고, 소외받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