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대화> 편에서 잠깐 등장했던 선생님이 의원을 이전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글이 발행될 때쯤이면 의원은 이사가 끝난 후겠다.
어쩌다 알게 되어 찾아간 정신과 전문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 가족 갈등의 끝에는 무엇이 있나요?
선생님: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습니까?
나: 힐링책 보니까 용서를 해야 치유가 된다던데요.
선생님: 그 이론은 예전 한때… 하여간 지금은 유행이 끝났습니다.
이런 실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2년여를 드나들었던, 나중에도 여차하면 달려가리라고 생각했던 낡은 건물 구석의 작고 창문도 없던 방이 이제 세상에 없는 게 사실은 조금 섭섭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섭섭... 네 그런데 저기 진영님, 제가 의원을 이전한 거지 의사 면허를 없앤 게 아니니까요."라고 대꾸할 사람이다. 만나서 이야기 나누지 않아도 이제 그 정도는 짐작한다. 그런 사람이니까 마음놓고 2년을 다녔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공교육 사교육 십수 년을 받으며 수백 명의 선생님들을 만나왔고 수많은 가르침을 받아왔지만, 나에게 '선생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정신과 전문의인 박모 선생님이다.
첫 진료에서 나는 선생님에게, 도저히 잠을 못 자 찾아왔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많은 시간과 돈이 절약되었을 텐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선생님이 어려워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친구처럼 편했고 나를 잘 이해할 것 같아 보였던 나머지, 내 인생 이야기가 이 사람에게는 너무 흔하고 지겨운 이야기로 들릴 것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신경질적인 어머니와 사랑을 독차지하는 남동생 사이에서 주눅든 딸-누나-여자인 나. 불안에 떨고 주눅이 들어 있고 잠을 못 자며 혼자서 술을 마시는 나. 교과서를 펴면 나 같은 사례는 오백 개 정도 실려 있을 것 같았다. 사례 아래에 '이럴 때는 블라블라 하고 응대하면 좋다'고 모범 답안도 적혀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선생님 주변에는 이런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담자가 오억 명 정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뻔한 것을 이슈라고 부둥켜안고 찾아간 게 관심종자 같아서 굉장히 부끄러웠다. 하지만 관심이 너무 고팠다.
잠이 안 오는 게 문제인 것처럼
그래서 나는 그냥 잠이 안 오는 게 문제인 것처럼, 일이 바빠 몸이 피곤한 게 문제인 것처럼 쿨하게 말하며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긴 의자에 누워 칸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없었다. 내 일을 남 일처럼 조각조각 말하면서 집-회사-상담실-약국을 기계적으로 왔다갔다했다. 그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무작위로 이야기했다. 한편 상담을 하며 주운 에피소드 조각들을 블로그에 올려 사람들을 웃겼다. 물론 아주 가끔 어쩌다가 엄마 이야기를 할 때도 있었는데, 갉아서 뱉은 것처럼 툭툭 던지는 식의 이야기는 항상 결론 없이 끝났다. 그래도 그런 식이나마 반 년을 반복했더니 '내 일을 남의 일처럼 생각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 오븐 장갑 끼고 냄비를 잡는 것처럼, 무뎌지니까 어지간한 일론 화도 안 났다. 그때는 '상담받으면 이런 기술이 생기나보다, 이게 결론인가보다' 했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고, 마침내 기회로 삼을 만한 위기가 찾아왔다. 내가 거하게 실연을 당한 것이다. 나는 그 창문도 없는 방에서 엉엉 울면서 얼굴에 휴지 쪼가리를 붙이고는 말했다. 선생님, 사람들은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연애를 하나요. 이렇게 좋다가도 금방 망가지곤 하는데, 지금은 사랑한다고 하다가 언젠가 날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지금은 비록 흥하지만 언젠가는 망할지도 모른다는 게 너무 두려워요, 라고. 선생님은 표정도 별로 안 바꾸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불확실성이 두려워서 차라리 지금 당장 망하는 걸 택하겠다고요? 바로 그런 선택이 인생을 골로 가게 만드는 지름길인데요.
선생님이 내 앞에서 이 문장을 말해주던 때가 생각난다. 표정은 안 바꾸었으되 내 앞에서 처음 내는 단호한 목소리였다. 에피파니의 순간이었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불확실성이 두렵다는 이유로 경쟁이나 갈등이 필요없는 구린 선택을 하지 말아라. 싸움 끝에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네가 이긴 걸로 하자'며 져 주지 말아라. 포기하지 않으면 50%의 확률인 인생, 미리 포기하면 0%가 된다. 어리석은 인간은 그 방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0%
오랫동안 나는, 일찍 망한 사람답게 무기력으로 일관하며 쓸데없이 기대하느라 오락가락하지 않는 것이 신조인 삶을 살아왔다. 정신과 상담실에 시간과 돈을 바치며 연구하여 보니 그 무기력의 뿌리는 불안이라는 감정 안에 깊이 묻혀 있었다. 그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등짝이 오그라드는 수치심을 나에게 안겼다. 나는 내가 뭔가를 '기대'하며 살아간다는 걸 인정하는 게 너무 쪽팔렸던 것이다! 하지만 등짝을 오그라뜨릴 가치가 있는 깨달음이었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시도를 하자! 불확실성이 크면 시도를 여러 번 하면 된다! 여러 번 시도하면 여러 번 망하겠지만, 마지막에 딱 한 번만 성공하면 되니까! 현대 정신의학의 힘이 이렇게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