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게임: 비정상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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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게임: 비정상 가정

진영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초대형 철광석 운반선인 스텔라데이지호가 지난 3월 31일 우루과이 인근 남대서양에 침몰했다. 배에 타고 있던 선원 24명 가운데 2명만 구조됐다.

원양어선을 타던 큰아버지는 슬하에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뒀다. 

나의 사촌들은 항상 동물을 키우고 있었고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덜 들었으며 용돈도 후하게 받고, 뭘 잘못했다고 해서 얻어맞지도 않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았다. 지금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촌들이 평균보다 특별히 관대한 환경에서 성장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당시 어린 내 눈에는 그래 보였다. 내가 받는 대접이 부당한 줄은 꿈에도 모르고 부러움만 삼켰던 모양이다. 가끔 큰아버지가 항해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늘 양손에 선물이 가득이었다. 아이들 선물, 아내 선물, 심지어 남동생의 아내(즉 내 어머니) 선물까지 챙겼다. 어머니는 신혼 초, 어른 구실 제대로 못 하던 아버지 때문에 콱 죽고 싶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아버지 몫까지 다 해주는 큰아버지 때문에 어떻게든 버텼던 거라고 했다.

그랬던 큰아버지가 한번은 배를 타고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이 글(<2014년 6월>)에서 이야기한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 일은 도미노처럼 내 주변을 잠식해 무너뜨렸다. 아버지는 실직을 했고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나를 하루종일 괴롭힐 수 있게 되었다. 열네 살 때의 어느 날 나는 아버지의 점심을 차려 드리고도 겸상을 하지 않았다고 뺨을 맞았다. 왜 함께 앉아 먹지 않느냐고, 개 밥 차려주는 것처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고의 유가족들, 그러니까 큰어머니와 나의 사촌들은 오히려 괜찮게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내가 짐작하기 어려운 많은 슬픔들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큰어머니와 사촌들은 서로 사랑했고, 서로를 믿으며 의지하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무시하며 모욕을 주지도 않았다. 큰아버지의 실종자 보상금이 나오자 친척들은 그 돈을 서로 가지려고 했고, 큰어머니더러는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천성이 대범하고 씩씩한 큰어머니는 잘 이겨냈다. 조그만 구멍가게를 열어 돈을 모았다가 식당을 차렸다. 사촌들은 큰어머니를 잘 돕고, 자기들 하고 싶은 일 찾아 잘 하다가 또 결혼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잘 지낸다. 행복한 가정이다.

사촌언니는 어릴 때부터 고양이를 좋아했다. 

마당에 풀어 키우는 고양이도 있었고 가끔은 털이 길어 공주님 같은 고양이도 있었다. 어쩌다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큰어머니는 너희도 예쁜 애로 한 마리 가지고 가라고 늘 사람 좋게 말했다. 어머니는 강하게 손사래를 치고, 나에게는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저 집 애들은 아버지가 없으니까 불쌍하다고 오냐오냐 해주는 거라고, 그런 걸 부러워하면 안 된다고 매우 부적절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라고 질 수 없지. 속으로 ‘차라리 아버지가 없는 게 더 좋아!’ 하고 더욱 부적절한 생각을 했다. 사촌언니의 고양이가 부럽던 나는 동물을 키울 기회가 어디 또 없나 호시탐탐 살폈다. 내가 구박덩어리인 걸 진작에 눈치챈 이모들이 우리 집에 놀러와 가끔 나에게 강아지 한 마리 사 줄까, 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매번 단칼에 제안을 거절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이모들은 내가 불쌍한가보다, 강아지라도 한 마리 안겨주고 싶게 불쌍한가보다, 생각했다. 서글픈 시절이었다.

다른 도시에 살아 자주 만나기 어려웠던 사촌언니 말고, 초등학교 때 내가 좋아해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예쁜 애였는데 이 집에는 어머니가 안 계셨다. 어른 없는 집에 놀러 가는 게 재미있어서 반 애들과 같이 그 친구 집에도 자주 놀러갔다. 그걸 알자 어머니는 또 부적절하게, 친구를 좀 가려 사귀라고, 그렇게 엄마 없는 애랑 어울려 놀지 말라고 했다. 이것 보세요 어머니, 댁의 가정이나 조금 더 검열하도록 하세요. 댁의 딸은 밤마다 아버지에게 이불을 빼앗겨 오들오들 떨고, 얻어맞아 피멍이 들고 뼈에 금이 가고, 버스비가 없다는 말을 못 해 왕복 세 시간을 걸어서 다니고 그렇게 아낀 팔백원으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으며 끼니를 때우는데, 누구네 집에는 아버지가 없다는 둥 어머니가 없다는 둥 말해보았자 우위를 점할 수 없다구요.

그림을 그리던 예쁜 친구는 분야 최고의 명문대에 입학했고 지금도 엄청 잘 지낸단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고 한다. 사촌 언니도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어머니는 이런 소식들을 전해 듣는 족족 억울함을 가득 실어 나에게 전해 준다. 그 비정상 가정의 딸들도 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와 안겨 주는데, 왜 너는! 싶은 모양이다. 당신이 갖고 있는 정상-비정상의 기준이 잘못된 것이라는 깨달음은 언제쯤 얻으시게 될까. 내 힘으로 역부족인 것만은 알겠다. 그리고 독립해 사는 나는 이제서야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운다. 고양이를 데려오고 얼마간은 맞고 자란 애들이 나중에는 아이 때리는 부모 된다는 말을 잔뜩 의식하면서 지냈었다. 사람 아이로 실험해볼 순 없잖아요. 다행히 나는 동물을 때리는 사람은 아니었던 걸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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