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학교 선배가 여성학 동아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배는 ‘너도 들어올래?’ 물었지만 그 때만 해도 ‘여성학’이 뭔지도 모르고 무지했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선배는 동아리 방에서 자유롭게 과제도 하고 잠도 자고 수다도 떤다고 했다. 그러나 여성학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사실 나는 그게 더 궁금했는데.
페미니즘 안경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몇 년 후 덕질을 하려고 시작한 트위터에서 페미니즘을 만났다. 왜 이렇게 늦게 알았는지 억울했을 정도로 페미니즘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도서관에서 관련 도서들을 찾아보고, 페미니즘 관련 계정들과 여성 단체들을 팔로우하고, 터져 나오는 약자와 소수자들의 목소리들을 들으며 몰랐던 것들을 배워나갔다. 그 동안 불편했던 말들, 행동들, 시선들의 이유와 그 뿌리까지 알아갈수록 속이 시원했고, ‘페미니즘 안경’을 끼게 된 나는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가해자는 왜 그랬을까?
다시 들여다보니 : 자식이라도 함부로 관리를 해라 마라 하는 것은 쓸 데 없는 간섭이며, ‘자기 관리’가 왜 ‘몸매 관리’로 통하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자기관리를 하라는 말을 ‘여성’인 나에게만 했던 가해자야말로 ‘자기 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저 시기의 기억 때문에 나는 운동을 기피했었는데, 살면서 운동의 중요성을 깨달을 때마다 내게 운동을 시킨 가해자를 원망하곤 했다. 운동을 보다 즐겁게 접했었더라면 꾸준히 운동을 해서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다시 들여다보니 : 가해자는 ‘흉흉한 세상이므로 여자는 밤에 밖에 돌아다니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내게 통금을 걸었지만 난 속으로 코웃음 쳤다. 내게 가장 큰 상처를 주고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이 바로 가해자이고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는데, 집에서 나가는 게 훨씬 안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흉흉한 세상은 누가 만들었나(가해자도 그 흉흉한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흉흉한 세상을 만든 가해자에게 제한을 주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다시 들여다보니 : 가해자는 늘 만취 상태로 내게 폭력을 저질렀다. 그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왜 남동생이 아닌 나에게만 그랬을까?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취했으면 실수로 남동생에게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다 핑계다. 내가 여성이고 딸이기 때문에, 본인 보다 권력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거다. 가해자들은 폭력을 저질러도 괜찮을 상대에게만 폭력을 저지른다. 그 만취 상태에서도 상대를 골라가며 가해를 하는 가해자는 정말 나약한 인간이다.
다시 들여다보니 : 본인의 가해에 대한 반성으로 나온 말이 고작 연애와 결혼에 대한 걱정이라니. 가해자가 생각하는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가해자뿐만은 아니다. 이 나라에 사는 많은 이들이 여성에게 중요한 것은 연애, 결혼, 출산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중요하면 당신들이 하시길.
또한, 가해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가족은 하나고 해체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밥 먹듯이 했다. 그렇게 본인이 편리하게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울타리를 쳐놓고 본인보다 약한 가족 구성원에게 폭력을 저질렀다. 가족주의는 본인만 편하자고 내세운 표어에 불과했다. 정말 가족을 위하는 의미의 가족주의였다면 가족 구성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부장의 권력을 손쉽게 쓰기 위한 가족주의는 다른 이에겐 폭력일 뿐이다.
딸은 아내의 대체재가 아니다
가해자는 내가 성인이 된 후 갑자기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며 가까이 다가오려고 했다. 성장과정 내내 통금, 연애 금지, 학교 성적에 대한 압박 등 생활 전반적으로 통제를 가하던 가부장적인 사람이 이제 와서 친구가 되고 싶다니 헛웃음만 나왔다. 어렸을 때 내 몸을 만진 걸로는 모자라서 성인이 된 내 몸을 더 쉽게 만지기 위해서 저런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되어 더럽게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와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며 늘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 했고,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고, 심지어 부부관계의 불만족스러움을 토로하기 까지 했다. 딸은 아내의 대체재가 아니다.
위와 같은 상황을 겪을 때마다 몸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것처럼 더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가정폭력과 성폭력은 섞인 채로 내가 자라는 내내 일어났다. 가해자는 어렸을 때의 성폭력, 그걸 미처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내게 다른 폭력을 저질렀고, 나는 그를 무서워하게 되었고, 그는 그걸 이용해서 내가 자신을 두렵게 여기며 말을 잘 듣도록 길렀고, 나는 더욱 더 저항할 수 없었다.
자식이니까 저런 말까지 다 들어줘야 하는 줄 알았다. 부모가 내게 심한 말을 해도, 폭력을 써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줄 알았다. 더군다나 딸이니까. 이 집의 살림밑천이고 다정하고 상냥한 맏딸이니까. 하지만 이젠 안다. 그 모든 것들은 여성인 나를 간편하게 제압하기 위한 미사여구였음을. 나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