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當事者
어떤 일이나 사건에 직접 관계가 있거나 관계한 사람.
나는 ‘여성’,‘가부장적 집안의 장녀’, 그리고‘친족 성폭력 생존자’다. 때로는 부인하려고도 했었지만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의 당사자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왜 그랬을까
“왜 참았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치킨 먹다 목에 작은 뼈 조각이 걸렸던 그 때처럼 숨이 막히는 물리적 고통이 느껴졌다. 심리적인 원인으로 이렇게 생생하게 물리적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해 하면서도 말문이 막힌 채로 한참을 있었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셨고, 그 침묵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울면서도 왜 참았는지 끊임없이 자문했지만 눈물만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 눈물이 대답이었는지도 몰랐다.‘그러게, 참지 말 걸.’
왜 이렇게 늦게 집에서 나오게 되었냐는 질문에 할 말이 없었는데, 첫 상담 이후에는 ‘잘 참는 성격이라서’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됐다. 잘 참고, 남에게 피해 끼치기 싫어하고, 말 못하는 성격이라서. 여기까지 쓰고 다시 생각해본다. 혹시 내가 여성이라서 그랬던 건 아닐까? 이 모든 게 사회가 바라는 고분고분한 여성으로 길러져 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가부장적인 부모 밑에서 살림밑천 소리를 들으며 자란 맏딸인 나는 이 질문에 ‘길러진 것’이라고 말하겠다. 부모는 나를 그렇게 길렀다. 내게 함부로 해도 어디 가서 말하지 못하도록.
반대로 왜 끝까지 참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여기엔 딱히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잘 참는 성격의 소유자라도 한계가 있는 것뿐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간헐적으로 이어져 온 가해행위가 내 인생을 서서히 좀먹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잘 참는 나만 믿고 계속 견뎠다. 그래도 한계가 있는 인간이라서 다행이다. 계속 참을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난 아직도 그 집안에서 내 방문을 닫은 채로 울고 있었을 테니까.
바라던 생일선물
변화는 작년 내 생일에 이메일로 시작되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년 내 생일이 다가오기 일주일 전부터, 이번 내 생일에는 스스로에게‘전화 상담을 받는 것’을 생일선물로 주자고 생각했었다. 상담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 바로 실행해도 될 것을, 의미부여에 집착하느라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정말 생일날 오전에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상담전화가 밀려있는 모양인지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도 계속 통화 중이었다. 1시간 정도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마찬가지였고, 더 이상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쓰다 보니 첫 가해가 벌어졌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을 낱낱이 적게 되어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이왕 메일을 보냈으니 전화를 다시 걸기 보다는 답장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일주일 넘게 기다린 끝에 답장이 왔는데,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지만 바랐던 내용이 담겨있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얼른 집에서 나오세요.’
쉼터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오래 전에 알았다고 해도 내가 과연 그 곳에 갈 수 있을지, 그 곳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심한 피해를 입은 게 맞는지 등의 자기 검열로 섣불리 손을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문가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확신이 생겼다. 쉼터에 갈 수 있구나. 그건 이 집에서 나갈 수 있다는 얘기였고, 더 이상 이 집에서 참으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었다. 메일만으로는 자세한 상담이 어렵다고 해서 전화통화로 상담을 이어갔는데, 상담원은 내게 ‘다시는 안 보고 살아도 돼요.’라고 말했다. 그 한 마디에 눈물이 터졌다. 상담을 통해‘1366 여성긴급전화’를 연결 받았고(검색창에‘1366 센터’를 검색하면 각 지역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상담은 지역번호-1366),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그 날로 짐을 싸서 나왔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집을 나오니 알게 되었다. 무수히 느꼈던 자살충동과 무기력감, 우울감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를.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가해자와 한 공간 안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그 시간들이 문제였다. 그것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나니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좀 더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매일 메모장에 빼곡하게 적었던‘죽고 싶다’는 말 대신에‘어떻게 살아야 할까’,‘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가 적혔다. 평생 죽고 싶다는 갈망 속에 안락사만을 바라며 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삶에 대한 열정이 끓어오르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손목에 커터 칼을 대고 단번에 긋지 못하는 스스로를 책망하지는 않게 됐다.
생존자들이 겪은 폭력이 동일한 종류의 폭력으로 묶일 수 있을 지라도 개개인이 겪는 상황과 그에 따른 상처, 고통은 하나로 묶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타인이 보기엔 비슷비슷한 환경, 피해상황, 아픔일 지라도 당사자들이 느끼는 것들은 외로울 만치 묵직하게 혼자의 것이다. 그래서 당사자임에도 글을 시작하기가 더 두렵고 조심스러웠다. 누군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나 스스로에게도 상처가 되진 않을까.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폭력적인 상황을 벗어나는데 이 글이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므로 명시해둔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다. 나의 글을 읽고 모든 생존자들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생존자들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결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다름까지 공감할 수 있기에 연대할 수 있다. 이 점을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참지 않아도 된다
당신이 겪은 것이 말이든 행동이든, 폭력적인 상황을 겪었고 그 상황에 지금도 놓여 있다면 결코 참아서는 안 된다. 과거의 나를 참게 했던 건 가해자가 가족이라는 사실이었다. 가족이니까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 또한 가해자와 다른 가족들이 만든 억압일 뿐이었다. 일방적인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모든 것은 무너져야 한다. 그것이 설령 가족일지라도, 가정일지라도.
중요한 건 당신이다. 당신의 희생으로 이뤄지는 것에 더 이상 참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은 어렵다고 느낀다면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이라도 마음속에 품었으면 한다. 나는 직업이 없는 상태로 집을 나왔다. 그래도 살 수 있다. 살아갈 수 있다. ‘살고 싶다’는 느낌은 당신을 억압하는 그 공간을 벗어나야 더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폭력이 폭력인 지도 모르고 젖어 들어 살고 있었던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나처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언제 다시 시작하든 그 시작은 늦지 않았다.
* 이어지는 글에서는 나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 당사자로서 느끼는 감정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일단은 내일 7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알람을 맞추고 눕는다. 모두 본인이 딛고 있는 땅에서의 일상을 잘 꾸려나가시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