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게임: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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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게임: 독립

진영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서바이벌 게임>의 연재를 시작한 이후 종종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쪽지를 받는다. 대체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연령대의 여성들이 보낸 쪽지다. 부모로부터 현재진행형의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래도 따로 나와 살면 좀 나을 것 같아요. 혼자 사시는 진영님이 부러워요."라고 나에게 말한다. 나는 이들의 고통을 아니까, 구해 주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하지만 선생님(지난 회차 참조)이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때릴 준비가 된 부모가 몽둥이를 쥐고 서 있을 집에 들어갈 때는 맞을 용기가 필요하다. 

이건 어지간해서는 이골이 나지도 않는다. 어둑한 아파트 단지를 올려다보며 심장은 두근두근, 차가운 주먹을 말아쥐고 기어코 현관 앞에까지 당도했지만 차마 문고리를 못 돌리고 서 있는다. 현관문과 내 배가 같은 극의 자석 같고 내 몸이 뒤로 밀려나는 기분, 그런데 잘못 몸을 비틀면 이번엔 등짝이 문짝에 철썩 붙어버릴 것 같은 복잡한 기분이 든다. 이윽고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느냐고 맞을 위험이 기존의 두려움보다 더 커지면 맞을 준비가 되었든 아니든 입 안의 공기를 삼키고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나의 부모와 25년을 살았다. 왜 그런 부모와 25년이나 살았나? 당연히 달리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청소년기는 묘사할 필요가 없을 만큼 끔찍했다.

미드를 보면(최근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봤다.) 미성년의 자녀들은 사고를 쳤을 때 그 벌칙으로 '외출 금지'를 받더라. 볼 때마다 감탄한다, 얼마나 선진적인가! 하고. 한국의 학대 문화에서 '외출 금지'는 벌칙도 아니다. 나가더라도 어딜 간단 말인가. 한국의 어떤 부모들은 '타임 아웃'이나 '외출 금지' 대신 '짐 싸서 나가라'를 쓴다. 혹은 '네 물건은 전부 내가 사준 거니까 다 놔두고 꺼져라' 한다. 마치 어디서 배워온 것처럼 집집마다의 대사가 유사하다. 나가면 갈 데가 있는 아이에게는 결코 나가라고 하지 않는다는 점과, 나가라고 한다고 진짜 나가면 더 큰 일을 당한다는 점이 포인트다. 물론 나가서 신나게 놀다가 들어올 수 있는 멘탈의 아이에게는 애초에 나가라고 안 한다. 타겟이 엄청 분명한 협박인 것이다.

(부모들이 어째서 저렇게 끔찍해지는지를 나는 얼마간은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엄마들이 놓여있던 환경이 그녀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해가 곧 치유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므로-오히려 고통이 심화되었다-, 그 이해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도 못하겠다.)

나는 저 '나가라'를 25년간 듣다가 26년째 되던 해 결국 정말로 나왔다. 무슨 배짱인지 엄마에게 이불도 한 채 해달래서 얻어 짊어지고 나왔다. 내가 혼자 나와 처음 구한 방은 논 한가운데 지은 다세대-촌집의 한 칸이었다. 터를 덜 다지고 건물을 올려서 방바닥에 구슬을 놓으면 장롱 아래로 굴러들어가는 집이었다. 그리마도 나오고 개구리도 나왔다. 하지만 보증금이 없고 월세가 말도 안 되게 쌌다. 거기서 3년을 살았다. 두 번째로는 회사에서 마련해준 신축 아파트의 방 한 칸에 들어갔다. 그런데 저 방 한 칸이 2.99평이었다.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릴 것 같아서 뛰쳐나왔다. 회사 아파트에서 나가겠다 하자 다른 직원들은 해맑게 "엄마가 집 해준대? 얼마 해준대?" 하고 물었다. 다들 부모가 집을 해주나보다. 나는 대충 몇천만원쯤 해주신다 말했다. 아무도 안 놀랐다.

세 번째로 구한 방은 서울의 원룸이었다. 온수를 틀면 보일러가 터지고 설거지를 하면 구정물이 방바닥으로 쏟아지는 집이었다. 집주인에게 고쳐달라 말하면 전문가를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연장을 들고 와 실리콘 같은 걸 일없이 잔뜩 발라 놓았기 때문에 몇 번 당하고부터는 포기했다. 네 번째로는 드디어 '방'이 아닌 '집'을 구했다. 다용도실에는 세탁기를 욕실에는 욕조를 침실에는 공기청정기를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점점 행복해졌다. 고양이도 키우고 친구도 사귀었다. 그러나 '따로 살면 가족끼리 사이 좋아진다'는 가설은 내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도어지간해야' 통한다. 집을 나와서 5년쯤 살아보니 지난 25년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세월이었는지만 더욱 분명해지더라.

그래서 뒤집어 엎었다. 돈을 벌고-집에서 나오고-눈치를 보다가 상대의 약점을 노리고-뒤집어 엎고-그 엎어진 판을 유지했다. 심판을 봐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어쨌든 난 내가 이겼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한 조각의 평화를 붙들고 이런 글을 쓴다. 독자들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진심으로 여러분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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