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주고 말았다
지난 회에서 이야기한 바, 나는 지난 여름 집 앞으로 찾아온 어머니에게 내 소중한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말았다. 왜 그래야만 했던가 손톱을 깨물고 입술을 깨물며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부모와의 절연을 시도한지 2년만에 전화번호를 트고 말아버리게 된 것이다. 내 번호를 받아가며 어머니는 본인이 많이 변했다고, 정말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절대로 예전처럼 너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이미 앞 문장 1/2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짐작하셨겠지만, 사람은 안 변한다.
어머니는 예전과 다름없이 아무 시간에나 전화를 걸었다. 내가 전화를 받지 못하면 원망하는 메세지를 보냈다. 2년간 왕래가 없이 지내던 과거가 무색하게 언제 시집을 가느냐고 다그쳤다. 내가 메세지에 답장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흔들림이 없었다. 신속하게 다른 SNS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러나 곰 같이 굴기로 작정했던 나는 여전히 답장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마도, 문자 메세지에는 답하지 못하나 카카오톡 메세지에는 답하는, 그리고 카카오톡 메세지에도 답하지 않으나 텔레그램에만은 답할 수 있는 매우 특수한 사정이 나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나보다.
왜곡된 믿음
어머니의 잘못된 믿음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차라리 잘못된 종교에 빠지는 것이 나으리라 여겨질 만큼 왜곡된 믿음을 많이 갖고 있었다. 우선 내가 외로움에 사무쳐 떨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외지에 나와 살며 잘 먹지 못해 시름시름 앓고 있을 것이라고도 믿었고(근육 돼지가 되려 하고 있었다), 돈이 없어 빌빌대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딸이 이제 더 이상 용돈을 기다리는 소녀가 아님을, 매달 월급을 받은 지 10년째가 되는 직장인이라는 것을 잊었나보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딸에게 부모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메세지가 유효할 것이라고도 믿고 있었다(이런 글을 잘도 써서 돈을 벌고 있다).
그렇게 한없이 스토킹에 수렴하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어머니가 나에게 보낸 첫 번째 메세지의 내용은 놀랍게도 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나타난 내 외모에 대한 평가였다. 헤어스타일은 웨이브를 넣은 쪽이 좋고, 아이섀도는 펄감이 없는 것을 바르라고 했다. 나는 차례차례 어머니를 차단했다. 텔레그램에서, 페이스북에서, 카카오톡에서, 문자메세지와 전화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딜 다니러 가서 남의 전화기를 만질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신자 표시 란에 모르는 번호가 뜨면 절반 정도가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전화였다. 나는 폰의 모든 알림 설정을 무음으로 바꾸어 버렸다. 전화기는 나에게 한동안 저주의 메세지를 전하는 사자나 다름없게 여겨졌다.
이것은 상황이지 질병이 아닙니다
별로 덥지도 않았던 지난 여름을 나는 울지도 않고 술도 마시지 않으면서 조용히 보냈다. 예전처럼 불안 발작이 일어나려 할 기미도 없었고, 따라서 아무에게도 상황을 호소하지 않았다. 병원에 상담을 받으러도 가지 않았다. 내게 닥친 것은 상황이지 질병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하고 앉아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했다. '이것은 상황이지 질병이 아닙니다.'라니, 우주를 탐험하다가 미지의 생물을 조우한 함장이 지구의 본부에 연락해 격양된 목소리로 외치는 대사 같다.
그렇다고 내 부모를 진귀한 미지의 생물에 비할 건 아니다. 집착하는 어머니와 폭력적인 아버지는 너무 흔하다. 흔하고 동시에 또 너무 해롭다. 마치 다섯 개가 한 묶음인 라면 덩어리만큼 흔하다. 탄수화물을 기름에 튀겨 나트륨을 묻혀 놓은 것일 뿐인데 아주 가끔 그 맛이 떠오르면 먹지 않고는 못 배기며, 주변을 돌아보면 누군가는 먹고 있고, 물론 정말로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도 때로는 존재하고, 그러나 '먹을 게 라면밖에 없다'는 문장은 행복한 목소리로 읽을 수 있는 말이 아니며, 먹고 있노라면 2/3 지점쯤에는 서러워지는 순간이 있는데('현타'라고들 한다), 결코 몸에 좋은 구석이라고는 없다.
어머니는 불과 며칠 전에도 070 번호로 시작하는 남의 집 인터넷 전화를 빌려 전화를 걸어, 페이스타임이었더라면 아마 젖은 눈이 보였을 것같은 목소리로 울먹이며 이제 좀 남들처럼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남들이 자식 자랑을 자꾸 해오니 약이 올랐다고, 그래서 백화점에 가서 목걸이를 사고 가방을 사서는 딸이 사준 거라며 친구들에게 거짓말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마음을 고쳐 먹으라고 했다. 나쁜 건 당신들인데 왜 내가 마음을 고쳐야 하느냐고 되물으니, 자기들은 이제 더 이상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고 했다. 나쁜 사람들이 아닌데 어째서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지? 난 어릴 때 거짓말을 하면 온 몸에 피멍이 들도록 맞았는데. 어머니의 말은 마치 '몸에 좋은 라면'처럼 설득력이 없었다. 그래도 한 차례 통화를 치렀으니 또 얼마간은 평화롭겠지. 부모와 절연한 사람은 이렇게 연말연시를 보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