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는 유별나게 못나고 솔직할 예정.
1인가구가 급증하니 어쩌니 해도 봄은 여전히 결혼식이 잦은 계절이다. 예식장에서 여섯 사람, 그러니까 새 부부와 그들의 부모들이 함께 서 있는 것을 볼 때면 ‘아아, 참으로 나의 것이 아닌 풍경이로구나’ 하고 생각한다. 외로움이라고 해도 좋고, 질투 혹은 박탈감이라고 해도 좋다.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 간의 마찰이 SNS에서 이슈로 떠오를 때면 나는 멍하니 그 여섯 사람의 풍경을 떠올리는 편이다. 인자한 양가 부모의 응원을 받아 꾸린 새로운 가정의 풍경을 들여다볼 일이 생길 때마다 내 마음 속에는 외로움, 질투, 박탈감 같은 것이 뒤섞여 떠오른다. 기혼 여성이 결혼을 통해 가부장제 안으로 한발짝 더 들어가 겪는 부당함에 분노하는 것도 진심이요, 마음 맞는 아름다운 두 사람이 잘 꾸린 가정의 단면들을 보고 마음이 아리게 부러운 것도 진심이다. 아름다운 부부를 보고 부러워한다고 해서 페미니스트 자격 박탈인 것도 아니고.
하여간에 저런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괴롭히는 건 결혼식, 집들이, 돌잔치에 참석했을 때뿐만이 아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 받겠다 할 때, 그렇게나 비싸게 주고 사는 집의 문짝 아귀가 맞지 않아 덜컹일 때, 이번 달의 카드값을 알리는 문자메세지를 확인했을 때, 지쳐 돌아온 집에 몸 닦을 깨끗한 수건 한 장이 없을 때 등등 나는 온갖 사소한 상황에도 수시로 괴로워했다. 살림 팁을 얻으려고 드나드는 블로거들이 올리는 행복한 가족의 흔적-넷이서 먹고 난 아침식사 접시-을 보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혼자인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그 중에 한 사람쯤 나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은가, 하고도 생각한다. 나의 부모는 어째서 그렇게까지 엉망진창인 사람들인가, 하고도 생각한다.
이 마음의 병을 나는 최근에야 객관적으로 인식했다.
훈련을 한다고 했는데도 이 깨달음을 얻는 데 꽤나 오래 걸렸다. 나는 스스로가 이른바 ‘정상적’인 삶의 모습의 일부가 되는 것을 매우 바라고 있었구나! 때로 급진적인 척을 하고, 결혼을 하느니 고양이나 키우고 사는 것이 좋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실망스럽게도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나! 세수하느라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본 거울 속 얼굴에는 원망이 가득하다. 그 거울이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또 서러워한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부모 무릎 앞에 숙이고 들어가 ‘신부 수업’ 같은 것을 받고 어른들끼리 정한 것 비슷한 결혼을 할까? 그런다고 하여 ‘깨끗한 수건 한 장’ 같은 것이 나의 나머지 삶에 쭉 보장되는가? 크고 예쁜 식탁을 사서 다같이 둘러앉아 빵과 커피를 먹고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나의 행복이 완성될까?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어떤 ‘정상적’인 화폭이 있어 그 그림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욕망부터가 내가 그린 허술한 판타지에 불과했다. 남자가 있고 내가 있고, 남자의 부모와 나의 부모까지 총 여섯 명의 사람이 흰 벽 앞에 나란히 서는 것을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 판타지에서 욕망하는 것의 중심에는 깨끗하고 볕이 잘 드는 아파트가 있다. 더불어 흔히 ‘진짜 어른이 됐다’고들 하면서 이 사회의 완성된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때의 평온한 느낌도 있다. 의자 놀이에서 혼자 남은 술래가 아니라는 안도감도 있다. 아니, 역시 무엇보다도 아파트가 가장 힘이 세다. 생각이 이렇게까지 흐르자 피식 웃음이 나고 거울 속 얼굴이 좀 덜 못나졌다.
그래도 마음이 아파서 며칠을 쉬었다. 쉬면서 대청소를 했다.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몇 개를 날라다 버리고 침구를 바꾸고 세탁기를 또 몇 번이나 돌린다. 좋아하는 캔음료를 박스째로 주문해 하나씩 까 먹으면서 청소기를 돌린다. 구겨진 것을 아랑곳 않고 입고 다니던 셔츠를 전부 꺼내 다림질도 한다. 그래놓고 가만히 앉아서 내가 이 날까지 삼십 몇 년을 살면서 꾸며놓은 인생을 훌훌 넘겨본다. 어깨의 힘이 툭 빠지면서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직장 동료의 조모상에 다녀왔다. 장례식장도 다른 가족을 구경할 좋은 기회이기는 하나 결혼식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법이다. 그리고 내가 못 가졌다고 생각하는 풍경이 여기에는 없는 것을 보면, 역시 나는 예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은 뒤 일주일씩 여행을 가고 새로 꾸민 아파트(가장 중요)에서 지내는 게 탐나서 그렇게 끙끙 앓은 게 맞나보다 싶었다. 진짜로 못났다. 그래도 못난 걸 알았으니 괜찮다. 이 못남으로 남을 쿡쿡 쑤시지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