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생활일지 3. 아파트에는 왜 꼭 안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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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생활일지 3. 아파트에는 왜 꼭 안방이 있을까

백희원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문제는 집이다. 얼마 전에 지역에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여성 비혼공동체 멤버분의 이야기를 들으러 갔다. 가장 답을 구하고 싶었던 것은 솔직히 주거안정 문제였다. ‘집은 어떻게 하셨나요?!’ 내 마음의 소리가 들렸는지 강연 중에 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초지종을 들으며 나는 ‘역시나’, ‘이럴 수가’, ‘부럽다’가 섞인 복잡 미묘한 탄식을 조그맣게 내뱉고 말았다. 살고 있던 지역에 거주기간 50년이 보장되는 반영구 공공임대주택이 생겼고 비혼 멤버 중 한 사람이 신청해서 입주했다. 직접 들어가보니 다른 멤버들도 입주할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한 결과 한 명씩 같은 아파트단지에 들어와 모두 가까이 모여 살 수 있게 되었다. 월 십만원 남짓으로 유지할 수 있는 멀쩡한 집에 살면서 한 아파트 단지에 모여사는 중년의 비혼 친구들이라니. 부러웠다. 그날은 멋지고 참고가 되는 이야기들을 잔뜩 들었지만 이것만큼은 도무지 따라할 수 없을 것 같아 아주 조금 낙담했다.

모두에게 저금리 주택대출을

주거비를 공동부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반생활은 자립에 도움이 된다. 친구는 도심에 있는 아파트에 두 명의 또래 여성과 함께 사는데, 각자 방 크기에 따라 월세는 30만원 안팎을 부담하고 보증금은 1,000만원씩을 낸다고 했다. 높지 않은 월세를 내고 아파트의 인프라를 누릴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나는 연식이 좀 된 다세대 주택에 살면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을 낸다. 방 두 개와 옛날 식의 일자형 부엌, 베란다, 거실과 복도의 중간쯤 되는 공간이 있는 집인데, 아무래도 낡기는 했지만 교통도 좋은 편이고, 공간구성도 둘이 살기 좋아서 내 기준에서는 만족하고 있다. 고시원 월세에 준하는 돈으로 방이 아니라 집에 살고 있는 거니까. ‘집은 잠만 자는 곳’인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공간의 관성에 영향을 꽤 받는 편인 내게는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방문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곳에 사는 것이 몸과 마음 모두에 있어 중요하다. 우리는 이 집을 친구로부터 소개받았는데, 여성 동거가구는 집주인들에게 꽤 환영받는 세입자여서인지 별 이슈 없이 보증금을 낮춰서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부동산을 통해 첫 번째 집을 찾았을 때도 무던히 환영받았던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실수했다고 생각하는 점은 계약서를 한 사람의 명의로 작성한 것이다. 전입신고를 하려면 이름이 기재된 임대차 계약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함께 입주할 때에는 공동으로 계약하는 편이 좋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지금의 집에 만족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여전히 내 주거 형태에 불만이 있다. 보증금과 월세를 공동부담하는 데서 오는 이익은 임시적인 것이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주거를 담보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비혼 동거가구는 전세나, 주택구입처럼 목돈이 드는 선택지에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여기서 전혀 놀랍지 않은 사실 하나를 곁들이자면, 삼십대 초반인 내 주변의 지인들 중 집을 산 사람들은 다 결혼한(혹은 예정인) 커플들 뿐이라는 것이다. 식을 아직 올리지 않았는데 대출을 위해 혼인신고를 먼저 한 경우도 적지 않다. 나는 ‘그래봤자 아직 은행 거’라는 당사자들의 너스레를 들으며, 책임감을 얹은 안정감의 묵직함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볼 뿐이다. 내게는 근미래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물론 비혼 가구도 (비록 이자율이 신혼부부 대출상품의 두 배이기는 하지만) 청년 세대를 위한 저금리 주거자금 대출을 이용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생활동반자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한 명이 행정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은 어딘가 좀 껄끄럽다.

그렇다고 앞의 이야기처럼 공공임대주택을 통해 주거안정을 획득하는 것도 아무래도 현재 서울에 살면서는 취하기 어려울 것 같은 솔루션이다. 예전처럼 20년, 50년 단위의 긴 입주기간이 보장되는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이 줄어들고 있기도 하거니와  장기전세임대주택인 SH공사의 시프트가 그나마 입주기간이 20년 정도 보장되지만 완전히 중산층 4인가구를 타겟으로 한 상품이어서 비혼 가구에는 부적합하다. 최대 8년까지 살 수 있는 행복주택은 1, 2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지만, 그나마 교통이 괜찮은 지역은 한없이 경쟁률이 높다. 함께 같은 지역에 당첨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도 정책을 통한 돌파구를 포기할 일은 아니다. 한 번은 주거복지 정책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과 함께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의사결정을 하는 분이어서 운이나 띄워보자는 마음으로 청년주거복지로 친구들 여럿이 모여 산다고 하면 보증금이나 전세비를 지원해준다든가, 시장에 남는 중대형 아파트 지원해주는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자 약간의 뜸을 들이고 돌아온 반응이 ‘셰어하우스’ 모델이 보기보다 현장에서 문제가 많이 일어나더라는 대답이었다. 갈등도 많고. ‘아니, 셰어하우스가 아니라, 그러니까 그냥 집을 나눠 쓰라고 맥락없이 사람들을 모으는 게 아니라요. 신혼부부나 다둥이 가족 주거지원해주듯이, 마음맞는 친구들 여럿이 가족을 이루어 함께 산다고 할 때도 동등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요.’ 속으로만 생각했는지 소리내어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성애 가족을 위해서는 자원을 지원하면서, 그 외의 경우에 대해서는 자원이 우선하고 거기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밖에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참 뻔했다.

안방보다 각방

주거정책 뿐 아니라 살 만한 집이 별로 없는 것도 문제다. 집 구조도 가족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네 명이 함께 살고있는 친구들은 마땅히 각자가 동등한 크기의 방에서 살 수 있는 집을 찾기가 어려워 지금 사는 집에서 이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파트는 높은 가격도 가격이지만, 대체로 큰 안방과 아주 작은 방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개인들이 각각 사용하기에 적합지 않다고 했다. 부부와 아이를 상정한 집인 것이다. 도대체 부부의 침실이 그렇게 커야 할 이유는 뭘까? 이 사회에서 부부의 사생활은 꽤 존중받아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지. 그래도 옛날식 주택 중에는 좀 더 적합한 집들이 있을 법한데, 최근에는 큰 집들을 쪼개서 원룸으로 바꾸는 추세라 그마저도 매물이 없다고 한다. 현실의 선택지는 홀로 고립되는 원룸 아니면 남편과 한 이불 덮고 자야 하는 안방 있는 집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이다. 여성에게는 결혼 아니면 가난한 1인가구 되기라는 선택지 밖에 없는 척 하는 사회통념을 그대로 드러내는 집들이 아닐 수 없다.

갑갑한 이야기를 들으며 ‘해바라기 집’이라는 단어를 둥실 떠올렸다. kbs1에서 방영한 리얼리티 방송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 배우 박원숙 씨가 또래 여성배우들과 같이 사는 집을 만드는 게 노년의 꿈이라면서 언급하는 이상적인 집이다. 가운데 넓은 공용공간이 있고 각자의 방은 그 공간을 꽃잎처럼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 해바라기 꽃 모양이라고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동등한 자기만의 방들과 모두를 위한 공간. 개인들로 구성된 가족을 위한 집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이 집처럼, 나는 현실보다 내 상상이 더 상식적이고 말이 되는 것 같다. 나의 정확한 상상 속에서는 누구나 자신과 잘 맞는 사람과 함께 가족을 이룰 수있다. 이성 혹은 동성의, 연인 혹은 친구와 사회적으로 결합을 인정받을 수 있고, 어떤 가족이든 구분없이 동등하게 법적인 보호와 정책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잘 살기 위해 함께 사는 것이고 사회는 성별에 상관없이, 관계의 유형에 상관없이 그런 개인들이 무너지지 않게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하니까. 즉, 내가 바라는 것은 ‘1인 가구들을 위한 셰어하우스’ 같은 특수한 대안이 아니라, 기회와 선택지가 일반적이라고 간주되는 소수를 넘어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확장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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