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과 재테크에 밝은 친척 언니는 30대 비혼이지만 이미 자신이 직장을 다니며 살고 있는 비수도권 지역 혁신도시에 본인 이름으로 산 아파트가 있다. 나보다 몇 년은 더 일을 오래 했고 학력도 초봉도 급이 다른데도 막연히 부러워만 하는 나에게 언니가 말했다.
너, 청약 통장은 넣고 있어?
말문이 막혔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보긴 했는데. 딱 거기까지가 내 레벨이었다. 청약 통장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모른다. 경알못 중에서도 독보적인 '쪼렙'이다. 일단 내가 한심하고 무식한 건 알겠는데, 언니도 빨리 만들라고만 하고 그 이상을 친절하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아마 나만 빼고 다 알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이건 혹시 나만큼 '쪼렙'인 사람들이 있을까봐 쓰는 글이다.
기본 개념
청약 통장은 기본적으로 주택을 분양 받거나 임대 받으려는 목적으로 꾸준히 일정 금액을 저축하는 통장이다. 예전에는 ①어떤 종류의 주택을 분양 받을 건지 ②얼마나 돈을 자주, 많이 넣을 수 있는지에 따라 세 가지 종류의 청약 통장이 있었다고 한다.
첫번째는 청약저축. ①국민주택기금으로 지은 주택을 분양, 임대 받기 위해 ②매달 소액을 저축하는 통장이다. 청약저축 통장에 돈을 넣으면 주택공사와 도시개발공사가 공급하거나 국민주택기금의 지원을 받아 짓는 전용면적 25.7평 이하인 ‘국민주택’ 또는 ‘임대주택’을 분양 받거나 임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 해의 주택건설지역에 사는 20세 이상의 무주택 가구주가 1가구 1계좌에 한해 가입할 수 있다. 매월 2만원부터 10만원까지 5천원 단위로 자유롭게 넣을 수 있다. 가입 후 2년이 지나고 연체 없이 24회 이상 납입하면 청약 자격 1순위가 되고, 6개월간 납입하면 2순위가 된다.
두번째는 청약예금. ①민간건설업체가 지은 주택을 분양 받기 위해 ②한꺼번에 많은 돈을 넣어 놓는 통장이다. 지역별로 청약 가능한 면적에 따라 일시불로 납부한다. 목돈을 넣어 두고 6개월이 지나면 청약 자격 2순위, 2년이 지나면 1순위가 된다. 20세 이상이라면 1인 1계좌가 가능하다. 모든 시중은행에서 가입할 수 있고, 2년마다 한 번씩 청약 가능한 면적을 바꿀 수 있다.
세번째는 청약부금. ①전용면적 25.7평 이하의 민영주택을 분양 받을 수 있고 ②매월 5만원 이상 50만원 이내에서 자유롭게 돈을 낼 수 있다. 즉, 청약예금과 비슷하지만 매월 소액을 납부할 수 있다.
2015년 9월1일 이후 이 세 가지 상품은 신규 가입이 중단됐다. 하지만 이전에 가입해서 통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용할 수 있다. 이미 통장을 갖고 있다면 잘 따져서 자신에게 유리하고 청약 순위가 높은 통장을 이용하는 게 좋다. 물론 이 글을 쓰는 한심한 친구는 2018년이 되도록 청약 통장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사항이 없다.
주택청약종합저축
현재 신규 가입이 가능한 주택청약종합저축은 이전에 존재하던 제도를 '종합적으로' 합쳐놓았다.
- 국민주택과 민영주택을 가리지 않고 모든 신규 분양주택에 사용할 수 있고
- 적립식과 예치식 중 선택할 수 있으며
- 미성년자도 가입할 수 있다.
단, 청약을 넣으려면 만 19세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가입을 미리 해서 돈을 넣는 건 가능하지만, 실제로 주택을 분양 받는 신청은 만 19세가 넘어야 한다. 1가구가 아닌 1인 1통장이 원칙이다.
매월 2만원 이상 50만원 이내에서 5000원 단위로 자유롭게 입금할 수 있다. 가입 후 첫 달에는 이자가 없고, 1년 미만은 연 1.0%, 1년 이상 2년 미만은 연 1.5%, 2년 이상은 연 1.8% 금리를 적용 받는다.
땅덩이는 좁아 터져서 지어지는 아파트에는 한계가 있는데, 아파트를 분양 받고 싶은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 투자 또는 투기 목적으로 아파트를 사려는 부자들도 있고, 실제로 집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아파트 분양 신청(청약)을 받는 우선 순위를 정했다. 기본적으로 주민등록상 아파트가 지어지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 청약 통장에 얼마나 꾸준히 오랫동안 돈을 넣었느냐에 따라 청약 자격 순위가 높아진다.
주택청약종합통장 가입 기간이 길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입하는 것이 좋다. 오래 갖고 있을수록 금리도 높아진다. 소득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총 급여액 7000만원 이하 무주택 세대주의 경우, 연간 240만원 한도로 불입액의 40%(최대 96만원)까지 소득공제가 된다. 중도에 해약하더라도 원금과 이자를 유지할 수 있고, 만기가 없다.
여기에 청약가점제라는 것이 있다. 뉴스를 종종 보면 ‘청약 열기 후끈’ 같은 헤드라인이 반복되곤 한다. 너도 나도 아파트를 분양 받고 싶을 테니 당연하다. 청약경쟁률이 높은 지역은 1순위에서 청약이 마감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순위 중에서 가점 경쟁을 하는 것이다. 수도권 공공택지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에 지어지는 85제곱미터 이하 민영주택 아파트는 청약가점이 100% 반영된다. 85제곱미터를 초과할 경우 50%가 반영된다. 공공주택은 무주택 기간이 오래 된 세대부터 순차적으로 공급된다.
소액이라도 상관없으니 오랫동안 꾸준히 돈을 넣는 게 중요하다. 청약을 하려면 최소한 마련해야 하는 예치금액이 있는데, 그 기준은 지역마다 다르다. 가점 기준에는 청약 통장 납입 기간 말고도 신혼부부인지, 부양자녀가 몇 명인지, 무주택인지 등이 있다. 기본적으로 기혼 유자녀 가정에 유리하다. 치사하고 더러운 가부장제여.
가점을 받으려면? 1. 무주택기간(최대 32점)
청약자 및 배우자와 같은 주민등록표에 기록된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이어야 한다.
가점을 받으려면? 2. 부양가족수(최대 35점)
부양가족수에 해당되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1) 입주자모집공고일 당시 혼인신고가 된 배우자.
(2) 입주자모집공고일 당시 청약자가 세대주이고, 3년 이상 동일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직계존속. 부모, 조부모 등.
(3) 입주자모집공고일 당시 청약자 또는 배우자와 같은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미혼 자녀.
어서 법원이 시민결합이나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제대로 된 부양가족을 측정할 수 있겠다.
가점을 받으려면? 3. 주택청약 가입기간
여기까지만 알아봤는데도 지금부터 만나는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은행 가서 주택청약종합저축 통장을 만들라고 권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요즘은 고등학생들도 아껴쓰면 한 달에 2만원 정도는 꾸준히 넣을 수 있지 않은가. 그러면 벌써 20대가 되기 전에 1순위 통장을 만들 수 있고, 20대 후반이 되면 가점이 몇 점인가. 이미 발 빠른 부모들은 자식 이름으로 청약 통장을 만들어 준다고 하니 전국에 1순위 청약 통장이 천만개라는 '썰'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나의 묘비명에는 '주택청약통장 미리미리 가입하자'라고 적힐 예정이다.
청년우대형 청약통장
올해 7월31일부터 가입 가능한 새로운 상품이다. 일반 주택청약종합저축과 마찬가지로 주택 분양, 임대 청약을 할 수 있고, 매달 2만원 이상 50만원 이하 금액을 자유롭게 납부할 수 있다. 만 29세 이하, 총 급여 3000만원 이하(세전)의 근로소득자, 무주택 세대주만 가입할 수 있다. 사업소득이나 기타소득이 있는 자, 즉 프리랜서나 1인 창업자, 학습지 교사 등 법적으로 근로자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도 가입할 수 있다. 학생은 안 된다. 주민등록상 세대주만 가능하기 때문에 부모님 집에 세대원으로 같이 살고 있는 청년도 안 된다. 자취를 한다면 가능하다. 내년부터는 만 34세 이하까지 확대될 예정이라고 한다.
청년을 우대하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다. ①이자가 기존 청약금리의 두 배 이상이다. 1년 이하 가입자는 2.5%, 1년 이상 2년 이하는 3.0%, 2년 이상은 3.3% 금리를 적용 받는다. ②소득공제와 비과세 혜택을 준다. 연간 납입액 240만원까지 최대 40%가 소득공제 된다. 내년 1월부터는 2년 이상 유지할 경우 이자소득에 최대 500만원까지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혜택이 추가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매월 20만원씩 10년 간 납입했을 때, 기존 주택청약종합저축보다 청년우대형 청약통장이 이자를 180만원 더 받을 수 있다고 한다(청년우대형 청약저축에 가입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는 이자율이 1.8%로 기존 주택청약종합저축과 똑같아진다. 즉 이자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최대 기간은 10년).
경알못인 나와 달리 미리미리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해서 돈을 넣고 있던 청년이라면 이자율 차이 때문에 다소 억울할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가입 조건이 맞는다면 기존 주택청약종합저축을 해지하고 청년우대형으로 갈아 타도 이전 가입기간을 인정해준다. 역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뭐라도 가입했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정리하자면 이건 상대적으로 가난하지만 돈을 벌고 있는 20대가 주택 자금을 모으며 아파트 분양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국가 정책적 금융 상품이다. 모처럼 대상이 된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청약통장이 없었다면 하나 만들기 좋은 기회다. 이전까지 주택청약종합저축을 넣던 사람이라고 해도 가입 조건이 된다면 전환이 가능한지 알아본 뒤 갈아타는 게 이자와 비과세, 소득공제 면에서 이득이다.
실전
그렇다면 내가 청년우대형 청약통장 가입 대상자인지 확인해보자. 첫째, 만으로 29세 이하인지 나이를 세 본다. 둘째, 소득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국세청 홈택스(https://www.hometax.go.kr/) 사이트에 들어가서, [민원증명]을 누른다. 그러면 [소득금액증명]이라는 메뉴가 있다. 여기서 공인인증서로 로그인을 해야 한다. 그러면 처음 화면으로 돌아간다(공인인증서 만든 사람을 향한 살의가 치솟는다). 침착하게 다시 [민원증명], [소득금액증명]을 찾아간다.
신청서 화면이 뜬다. 기본 인적 사항은 공인인증서로 로그인하면 자동으로 입력된다. 전화번호, 휴대전화번호, 이메일만 입력하면 된다. 발급 유형은 한글증명을 선택한다. 증명구분을 잘 읽어보고 자신이 어디 해당하는지 선택한다(대부분 근로소득자일 것이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는 공개로, 수령방법은 프린터출력으로 선택하고 [신청하기]를 누른다. 다음 화면에서 발급번호를 누르면 작년 내 총 소득금액을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세대주 조건을 확인한다. 민원24(http://www.minwon.go.kr) 사이트의 [확인서비스] 탭을 누르면 [세대주 확인] 탭이 있다. 본인확인용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을 세대주로 전입신고를 했다면 정상적으로 세대주 확인을 할 수 있다. 만일 세대주가 아니라면 주민등록 정정 신고를 통해 세대주 변경 신청을 할 수 있다.
7월31일부터 KB국민은행,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NH농협, 신한은행, KEB하나은행에서 청년우대형 청약통장을 만들 수 있다. 신분증과 세대주임을 증명하기 위한 주민등록등본을 떼 가야 한다. 은행별로 차이는 없다. 다만 가입 조건에 맞는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경품을 내건 곳이 몇 군데 있는 것 같다.
모든 조건은 가입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작년 소득이 3000만원 이상인데, 올해 소득이 그 이하로 떨어졌다면,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급여명세서(회사 직인이 찍혀야 한다)를 챙겨서 은행에 가져가면 된다. 올해 가입하고 내년에 총 소득이 3000만원을 넘어도 상관 없다. 한 번 가입하면 만기가 없다.
실전
7월31일, 나 역시 청년우대형 청약통장에 가입하려고 서류를 챙겨봤다. 그런데 이럴수가. 작년에 혼인신고를 하고도 전입신고를 안 해놨다. 일단 민원24에 들어가서 전입신고를 하고, 주민등록정정(말소)신청에 가서 세대주 변경 신청도 했다. 민원24를 쓸 때는 반드시 팝업창 허용을 미리 해 놓기를 권한다. 이거 때문에 똥개 훈련 10번 정도 했다.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고 하루 정도 지나면 변경이 완료된다.
8월1일, 신분증을 들고 동사무소에 들러 주민등록초본을 떼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주거래은행인 신한은행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럴수가 시즌2. 주민등록초본이 아니고 등본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소득증명 서류도 가져갔어야 한다. 40도가 넘는 폭염을 뚫고 다시 동사무소로 갈 생각에 얼굴이 하얘진 나에게 행원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퀵파인드라는 앱을 다운받으세요!
신한은행에서는 모바일앱 가입자에 한해 '퀵파인드'라는 앱을 따로 다운받아서 공인인증서로 로그인을 하면 필요한 서류를 모두 내려받아 담당 직원의 메일함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유레카! 훌륭한 서비스다. 그럼 난 동사무소에 왜 간 거지? 약간 억울했다. 어쨌든 신한은행에서 청년우대형 청약통장을 만들 예정인 사람들은 신분증만 들고 가면 된다.
소득증명을 확인해보니 나의 작년 총소득은 3천만원 이상이었다. 공제되는 금액이 많아서 실수령은 200만원대 초반이었지만 아쉽게도 소득 기준은 세전이다. 그러나 나는 올해 이직을 해서 소득이 줄었다. 올해 소득은 확실히 3천만원 이하일 것 같았다.
"청년우대형 청약통장은 언제까지 가입할 수 있나요?"
"2021년 12월31까지요."
"제가 올해 이직을 해서 소득이 줄었어요.
올해 소득은 3천만원 이하일 것 같은데, 그럼 내년에 가입하면 되나요?"
"그러시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급여명세서를 떼 오세요.
회사 직인이 찍혀있어야 해요. 그걸로 환산해서 증빙할 수 있어요."
다행이다. 청년우대형 청약통장 가입 조건은 모두 가입 당시 기준이다. 가입 당시에 소득이 3000만원 이하고, 만 29세고, 무주택 세대주면 된다. 이후로는 쭉 가입이 유지되고, 만기가 없다. 일단 주택종합청약저축에 가입했고, 서류를 챙겨 청년우대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가입할 때 소득공제, 비과세 신청도 함께 하면 된다.
이자가 붙는 로또
이렇게 청약통장을 만들고 실제로 분양 받고 싶은 아파트 공고가 뜬다면? 이론적으로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해당하는 지역의 아파트에 청약할 수 있다. 그러나 아까도 설명했듯이 수도권이나 교통이 좋은 지역, 또는 부동산 상품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는 지역은 가점 경쟁이 치열하다. 1인 가구일수록 불리하기까지 하다. 거의 로또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역별 편중 현상이 심해서 청약 2순위인데도 순서가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비혼 여성이 청약 순위를 높이기 가장 좋은 방법은 오래 꾸준히 청약금을 넣는 것이다. 청년우대형 청약 통장은 시중의 웬만한 적금과 비교해도 이율이 높은 편이다. 청약 통장을 통해 아파트 분양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은 저축 상품이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가입하긴 했지만, 실제로 내가 청약 1순위가 되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한다. 일단은 이율 좋은 적금에 가입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직장이 없거나 돈이 부족하면 자동이체 금액을 확 줄이더라도 꾸준히 넣어볼 생각이다. 참고로 청약 가점으로 2년 이내에 당첨된 적이 있는 세대는 가점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의 경우 5년 이내). 그러니까 정말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때, 살 만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에 청약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