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생활일지 4. 생활동반자법이 도입될 때 사라져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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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생활일지 4. 생활동반자법이 도입될 때 사라져야 할 것들

백희원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결혼을 삶의 선택지에서 제거하면서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지워버린 또 하나의 선택지가 있었다. 임신과 출산, 양육. 국가에서 아무리 출산력 지표를 만들고 나를 가임기의 자궁으로 보아도, 출산과 육아는 내게 완전히 비현실이다. 결혼의 기미도 없는 딸에게 갑자기 손주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치는 아빠에게 화도 안났던 것은 너무 터무니 없는 소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손주라니. 그게 무슨 소리람. 코로 웃어 넘기는 내 옆에서 아기라면 껌벅죽는 엄마도 손사래를 쳤다. 나는 서울에서 친구와 둘이 살고 있는 30대 초반의 여성이다. 월급을 받아서 월세를 낸다. 내가 나를 먹이고 입히고 기르는 이 일인분의 경제에 아이는 커녕 수정란도 들어 올 여지가 없다. 아주 직관적이고 단순한 셈으로 구할 수 있는 답이다.

이 명확한 문제를 다시 생각해봐야겠다고 느끼게 된 계기는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였다. 내가 생활동반자법을 찾아보게 된 것은 가부장제 정상가족의 바깥에 가족이라는 친밀한 공간을 갖고 싶어서, 무엇보다도 우정의 생활공동체 위에서 굴러가는 지금의 내 삶을 ‘충분한 것’으로 설명할 제도적 언어가 필요해서였다. 삶에 생활동반자라는 선택지를 들이자 가족을 의무가 아닌 권리의 관점으로 돌아보는 질문들이 솟아났다. 이를테면 ‘나는 누구와 함께 보호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삶을 만들고 싶은가?’, ‘그것은 어떤 감정에 기반한 관계인가?’. 그리고 당연히 이 질문도 따라왔다. ‘아이는?’ ‘나는 양육자가 되고 싶은가?’

비혼과 양육은 별개의 선택

질문들을 연달아 떠올리다보니 비혼도, 친구와의 동반생활도 나의 욕망에서 비롯한 내 선택이었지만 비출산은 별개였음을 깨닫게 됐다. 매달 생리를 하면서도 임신과 출산은 내 삶에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해 온 것이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물론 내 인생에서 가까운 미래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말이 안되는 결정이다. 단기적인 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보장받기 힘들다는 점이 당연히 더 크게 다가왔다. 이렇게 불보듯 뻔한 미래가 있으니,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를 외면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생활동반자법안을 통해 비혼을 결혼의 거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가족을 구성하기 위한 능동적 행위로 정의내리고 나자 이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리고 자문의 결과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전형적인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았을 뿐, 가능하다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을 누리며 살고 싶다.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난 존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기른다는 것은 생애를 관통하는 경험일테지. 무조건적이고 독점적인 사랑을 주고싶은 대상이 있는 삶, 거의 삶의 전부를 내게 의존하는 존재가 있는 삶은 어떤 것일까?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것은 나의 엄마와 나의 관계를 조금 바꿔놓게 될까? 이 호기심을 삶의 무게로 감당할 기회가 내게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이를 위해 가부장제 정상가족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착취없는 가족, 착취없는 사회

내가 상상한 엄마의 삶이 가능하려면 생활동반자법의 도입과 함께 풀려야 할 문제들이 있다. 여성이 섹스와 임신, 출산과 양육에 있어서 완전히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의 구축이 그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은 완전히 여성의 몸과 관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 하나 여성에게 온전히 허락된 것이 없다. 낙태죄의 나라는 필연적으로 임신과 출산의 주체일 수 밖에 없는 여성을 그로부터 소외시킨다. 낙태죄도, 비혼모에 대한 제도들도 여성에 대한 징벌적인 성격을 띈다. 이런 조건 위에서 개인이 아무리 주체적으로 임신과 출산, 양육을 도모해봤자 사회적 낙인과 자기희생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여건에서든 여성 자신이 임신과 출산을 스스로 결정하고 안전하게 아이를 기를 수 있을 때 위에서 발견한 나의 소망도 실현가능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여성이 충분히 돈을 잘 벌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정상가족은 여성에게 불리한 노동시장과 한 쌍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에게 더 적은 기회와 더 불리한 조건이 주어지기 때문에 여성은 안전한 가부장제 가족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받고,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 폭력적이어도 가구의 경제 바깥으로 나오지 못한다. IMF 경제위기 당시 한국사회의 가족주의적 복지시스템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세팅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책 <복지의 배신>(송제숙, 이후)에서는 경제 악화로 노동시장이 위축되었을 때 한국사회가 가부장을 먼저 구하기 위해 가장 먼저 여성을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삼고 가족과 비정규직 노동으로 밀어낸 사례들이 생생히 적혀있다. 그런 식으로 문제 해결을 가족에게, 가족을 돌봐야 하는 여성에게로 떠넘겼던 것이다.

즉, 사적인 삶에서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공적인 영역에서의 권리도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생활동반자법이 도입되면 우리는 “남녀 간의 정신적·육체적 결합”인 혼인 외에 조금 더 다양한 옵션들을 갖게 된다. 성별 불문하고 우정이나 애정이 포함된 신뢰에 기반해 ‘계약’관계로 결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여성의 비혼과 여성 간의 파트너쉽이 빈곤으로 이어지는 환경이라면, 여전히 아이는 혈연으로 이어진 부모 밑에서만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한 사회에서라면 우리가 새로운 가족을 꾸리며 누릴 수 있는 것은 절반의 자유일 것이다.

내가 선택한 가족

나는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결정을 내 삶에서 제외하지는 않되 유보하기로 했다. 대신 지금 내게 주어진 문제는 이 결정을 온전히 내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한 낡은 제약들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힘쓰는 것. 부모님의 행복을 위해서도, 실수로 임신해버리는 바람에도, 양육 가능한 상황이 되어서도 아니라 내 삶의 한 선택으로서 자녀가 있는 가족을 만들지 말지, 그 책임을 누구와 함께 나눌지, 나의 바람을 기준으로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에게 가족에 대한 생각은 늘 이렇게 여러 함정들이 놓여있는 미로를 빠져나오는 일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좁은 틈에 자유로 향하는 길이 있을 것을 믿는다. 우리는 자신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는 여자들이니까. 그 길이 저절로 만들어지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생활동반자법으로 그 방향을 겨눠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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