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위키피디아는 전형적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사용 언어와 무관하게 등재된 인물 정보 중 여성은 20%를 넘지 못한다. 왜일까? 위키피디아 편집자의 대부분이 남자다. 2018년 위키미디어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편집자 중 여성은 단 9%. 성별에 더해 서구 중심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참여자의 지역 분포를 보면 서유럽이 50%, 아시아가 20%로, 아프리카는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를 바꾸어 보려 매일 매일 과학계의 숨은 영웅을 발굴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의 젊은 여성 물리학자 제스 웨이드(Jess Wade)다. 그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유색인종 과학자를 소개하는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만들어왔다. 지금까지 세상에 소개한 과학자만 400명이 훌쩍 넘는다. 2018년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그를 ‘다양성 챔피언’이라 칭하며 가장 주목할만한 과학자 10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화제의 인물 웨이드와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물리학과 고분자 전자공학 센터의 박사후연구원입니다. 이곳에서 유기화합물을 이용해 빛이 나는 ‘유기 발광 다이오드(OLED)’를 개발해 TV화면의 디스플레이를 향상하는 연구를 합니다. 제 박사 논문을 지도해준 교수는 한국에서 온 김지선 교수예요. 또 전에 KAIST와 이화여대를 방문한 적도 있답니다.
Q. 위키백과에 꾸준히 여성 과학자 전기를 써오셨어요. 지금까지 쓴 페이지만 400개가 넘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가는 이유가 뭔가요?
사람들이 제게 과학과 공학에서 다양성이 왜 필요하냐고 물어오면 저는 오랫동안 “그게 옳은 일이기에, 공평한 일이기에 한다”고 대답해왔어요. 그러다 2017년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안젤라 사이니가 쓴 <열등한(Inferior): 과학은 어떻게 여성을 오해했나>라는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뀌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우스꽝스러운 고정 관념을 막는 일은 그것이 옳아서 중요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구조적인 편견이 여성이 과학에 이바지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중요하기도 합니다.
위키피디아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온라인 자원이에요. 하지만 위키 편집자의 90%가 남성이라는 점, 누구나 편집할 수 있는 개방된 백과사전이라는 점 때문에 위키피디아는 편향되어 있어요. 위키피디아에 수록된 인물 정보의 17%만이 여성입니다.
편향된 온라인 자료에 의존하면 할수록 우리는 역사에서 과소대표(under-representation)된 사람들을 지우는 셈이 됩니다. 저는 젊은 세대가 그렇게 단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라지 않았으면 해요. 젊은 세대가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Q. 과소대표된 집단에 대해 말하는 것은 왜 중요한가요? 과학에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할 때 과학은 더 빨리 혁신을 이룹니다. 국적, 연령, 성별, 종교 등 – 아무거나 이름을 대보세요! - 우리에겐 더 많은 다양성이 필요합니다.
저는 세계가 갈수록 디지털화되고, 일상이 컴퓨터 코드와 알고리즘으로 결정되는 것이 걱정스러워요. 알고리즘을 만든 사람이 가진 편견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지 않게도, 프로그래밍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캘리포니아의 젊은 백인 남성 무리지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위키백과 페이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당연히 글래디스 웨스트죠. 1931년에 태어난 흑인 여성 수학자로, 초기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개발에 기여했습니다. 제가 그의 위키백과 페이지를 만든 뒤 웨스트는 BBC 선정 100대 여성에 뽑혔고, 미국 공군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했어요. 와우! 또 ‘내셔널 지오그래픽’ 최초의 여성 편집장이었던 수잔 골드버그도 기억에 남습니다.
Q. 과학 분야에 여성의 수가 적은 이유가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과학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학계에 여성의 참여를 막는 다양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작용하는 성차별과 고정 관념은 젊은이들의 자신감에 큰 영향을 미치고, 커리어 상에서 기회를 제한하고 경제력에도 악영향을 끼치죠.
부모나 교사가 갖는 무의식적인 편견, ‘나쁜 과학’에 기반을 둔 고정관념은 어린 여자아이가 자신에 대해 갖는 믿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남녀 모두 쓸 수 없는 육아 휴직, 성폭력, 불확실한 커리어패스 등 대학에 진학하면 또 다른 문제들이 기다리죠. 돌봄에 대한 책임이 있을 때 특히 더 어렵고요. 동료 평가나 보조금 할당에서도 여성과 비서구인에 작용하는 편견이 있습니다.
저는 남성과 여성의 과학적 능력을 비교할 수 있는 때가 온 적이 없다고 봐요. 동일한 기반에서 시작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1900년대 중반이 돼서야 여성들은 옥스퍼드대나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여성이 얼마나 과학에 기여해 왔는가로 평가하는 건 불공평해요.
도나 스트리클런드, 조셀린 벨 버넬, 리제 마이트너 등 기회와 지원이 있었던 여자들이 얼마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는지를 보세요. 세상은 그들에게 기회를 넘겨준 여자들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Q. 위키백과의 불균질한 지식을 고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젊은 세대가 직면할 편견을 고칠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믿습니다. 안젤라 사이니의 ‘열등한(Inferior)’는 제 인생을 바꿨어요.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을 뒷받침하는 ‘나쁜 과학’에 대해 가르쳐줬고요. 역사 속에서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 그들 주위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본 방식에 대해, 어떻게 불평등을 생물학적 사실로 정당화했는지를 알려줬죠. 남자에 대한, 남자를 위한 책을 쓰면서요.
‘열등한(Inferior)’는 또 이에 맞서 싸운 여자들에 대해서도 가르쳐줬어요. 대학에 갈 수도, 재산을 소유할 수도, 투표권도 없었던 때 이에 맞서 싸운 여자들에 대해서요.
그래서 저도 싸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선생님의 월급이나, 교육 정책이나 다국적 기업의 광고를 바꾸기는 어렵겠죠. 하지만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보는 것을 더 평등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우리 모두 위키백과를 편집할 수 있어요. 무엇이 역사가 될지는 우리가 결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