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행숙의 네 번째 시집 『에코의 초상』은 이토록 아름다운 시로 시작한다.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물결처럼//우리는 깊고/부서지기 쉬운//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인간의 시간」) 오랜 시간 김행숙의 작업은 인간의 본질에 무엇이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 탐구의 과정을 시로 그려내 왔다. 기나긴 여정 속에서 시인은 인간의 본질에 사랑이 있다고 확신하게 된 것처럼 보인다. 시집을 열면 울려 퍼지는 시인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본질에 사랑이 있다고 믿고 이야기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는 인간에 대한 실패와 절망을 경험한 것일까?
우리는 나 아닌 존재와 마주하고 진정으로 소통하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존재와의 소통이란 순간의 착각이고, 다른 존재와의 합일이란 불가능의 영역 아닐까. 또렷한 비관들이 무한히 몰려오는 데도 불구하고, 시인은 존재의 집 앞에 선다 그리고 집의 입구 앞에서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서성이는 시간은 영원할 것처럼 이어진다. “그런 입 모양은 아직은 침묵하지 않은 침묵을/침묵으로 들어가는 입구를/입구에서 조금만 더,/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기다리고, 끊어질 것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사람을 뜻한다”(「존재의 집」)
단연코 사랑
오랜 시간을 기다려 들어간 그곳은 얼어 있다. 바닥을 쓸면 빗자루에 물기가 묻고 벽에는 살얼음이 끼어 있는 존재의 집. 존재의 물결이 다시금 돌아올 때까지, 당신이 침묵을 벗어나 입을 뗄 때까지 시인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물결이 사라지듯이 말수가 줄어든 사람이/아직은 침묵하지 않은 침묵을/침묵으로 들어가는 좁은 입구를/그런 입 모양은/표시했다”(「존재의 집」) 나와 다른 존재의 집이 진정으로 열리는 그 날을 상상하면서, 그 날의 입구의 모양이란 어떠할까 그려보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단연코 사랑이다. “그런 입 모양은 아직은 입을 떠나지 않은 입을/아직은 입으로 말하지 않은 말을/침묵의 귀퉁이를/아직까지도 울지 않은 어느 집 아기의 울음을”(「존재의 집」)
눈이 풀풀 내리는 한 겨울에, 마음에 벽을 세우고 서로의 입구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이 너무나 어렵고 버겁게 느껴지는 어떤 날에, 시인은 혹 우리가 중력을 거스르며 날아오르는 새처럼 사랑의 욕망에 억지로 저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모든 무게를 내려놓고 우리가 서로의 품 안으로 추락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아오르는 새는 얼마나 무거운지, 어떤 무게가/중력을 거스르는지,/우리는 가볍게 사랑하자. 기분이 좋아서 나는 너/한테 오늘도 지고, 내일도 져야지.” 사랑한다는 것은 당신에게로 한없이 추락한다는 것이며 당신에게 매일매일 져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시인은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줄줄 흘리며 당신 앞에 서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만약 그러한 사랑이 가능해진다면 나는 끝없이 가벼워져서 너에게 달려들 수 있을 텐데, 배신당할까 두려워 집의 입구를 닫는 일 말고 상처받을까 두려워 집의 내부를 꽝꽝 얼리는 일 말고, 만약 그러한 사랑이 가능해진다면 나는 온 몸에 힘을 풀고 사랑으로만 녹아 내릴 수 있을 텐데. “나는 너를 공기처럼 껴안아야지. 헐거워져서 팔이/빠지고, 헐거워져서 다리가 빠져야지./나는 나를 줄줄 흘리고 다녀야지. 나는 조심 같은/건 할 수 없고, 나는 노력 같은 건 할 수 없네. 오늘/은 내내 어제 오전 같고, 어제 오후 같고,”
결국 지워져도
용기낼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랑에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겨울이 끝나지 않고 아름다운 눈이 영원히 내려, 결국 나의 존재가 지워진다고 해도 우리는 사랑에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곧 사라질 조그만 발자국 하나, 금방 흩어질 소근거리는 목소리 한 줄기로 스스로를 증명하면서 사랑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어쩜 눈이 내리고 있네. 오늘은 할 수 없는 일이/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오늘은 발자국이 생기기에/얼마나 좋은 날인지,” 시인은 죽는다고 해도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시인에게 인간이란 만약 사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해도 사랑에 용기를 낼 수 있는 고귀한 존재인 것이다. 시인은 인간의 본질에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전부 발자국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네./춥다, 춥다, 그러면서 땅만 보며 걸어다니네./눈 내리는 소리는 안 들리는데 눈을 밟으면 소리/가 났다./우리는 눈 내리는 소리처럼 말하자. 나는 너한테/안 들리는 소리처럼 말했다가/죽은 새처럼 말했다가/죽은 새를 두 손에 보듬고 걸어가야지.”
그러나 시인도 알고 있다. 인간이 자기 존재의 본질을 구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랑에 실패하고 사람을 상실할수록 존재의 집은 꽝꽝 얼고 존재의 입구는 굳게 닫힐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랑을 경험하는 만큼 사랑으로부터 돌아설 수밖에 없다. 다른 존재와의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내걸수록, 다른 존재와 사랑에 대한 허무함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어둠 속에서/어떻게 내 입술이 다른 입술을 찾았고/또 잃어버렸는지를/한참/생각하면”(「허공의 성」)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을 욕망하는 일이란, 허공의 성을 세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가피하게 사랑 앞에 다시 서는 인간 존재의 운명이란 얼마나 눈물겨운가.
시인 김행숙은 매일 저녁이면 몰려오는 그 너무나도 인간적인 감정에 굴복한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다른 존재에의 희구와 사랑에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현기증이 몰려와서 흐느낌이 되고, 몸을 낮게 만들수록 등이 축축해진다고 해도, 매일 저녁 시인은 사랑의 감정에 자신을 내준다. “가장 낮은 몸을 만드는 것이다//으르렁거리는 개 앞에 엎드려 착하지, 착하지, 하/고 울먹이는 것이다.”(「저녁의 감정」) 저녁의 감정이 그려내는 장면은 속절없이 아름답다. 시인은 뒤따라오는 슬픔이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다시금 스스로를 다독이며, “눈을 감으면, 이제 눈을 감았다고 다독이는 것이다//그리고 2절과 같이 되돌아오는 것이다”(「저녁의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