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줍는 시 4 - 포기에 대하여

생각하다

다시 줍는 시 4 - 포기에 대하여

신나리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호명>

당신이 부르시면

사랑스러운 당신의 음성이 내 귀에 들리면

한숨을 쉬며 나는 달아납니다

자꾸 말을 시켰죠

내 혀는 말랐는데

마당에서 키우던 개를 이웃집 개와 맞바꿉니다 그 개를 끌고 산으로 가 엄나무에 매달았어요 마당에는 커다란 솥 이 준비되었어요 버둥거리던 개가 도망칩니다

이리 와 이리 와

느릿한 톤 불확실한 리듬

어딘가 숨었을 개가 주인을 향해 달려갑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을 향해 사랑이라 믿는 걸까요 날 이해하는 사람은 나를 묶어 버립니다 호명의 피 냄새가 납니다

개 주인은 그 개를 다시 흥분한 사람들에게 넘깁니다 이번엔 맞아 죽을 때까지 지켜봅니다

평상에서 서로 밀치고 당기는 사람들

비어 가는 접시와 술잔

빈 개집 앞에 마른 밥 몇 숟가락

아버지는 나를 부르고 나는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옥수수 밭 너머 신작로가 보입니다 흐르는 구름 너머 골짜기 개구리 소리밖에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동경하지 않아요


당신이 부르시면

날개 달린 당신이 부르셔도

- 김이듬, <호명>, 『표류하는 흑발』, 민음사, 2017, 111-112쪽.

 사람들하고 말이 안 통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자주 그런데, 그럴 때면 외로워지니까 담배를 피우거나 책을 읽거나 한다. 물론 시집도 읽는다. 아주 가끔 운이 좋으면 말이 잘 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인이나 시집을 만나곤 한다.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은 참 특별하다. 온전히 나에게서 맴도는 느낌인데, 우리는 이 느낌 때문에 낯선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거나 나아가 그 사랑에 생을 걸어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느낌을, 크나큰 매혹을 나는 시인 김이듬과 그녀의 시집 『표류하는 흑발』로부터 받았다.

얼마 전 그녀의 시집을 들어 맨 뒤편부터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가장 마지막에 실린 시편의 제목은 <노량진>이다. “시체 몇 구가 떠 있는 하늘”, “언제나 죽은 이들과 함께 흐르려는 취지가 있”는 구름 아래, 두 사람이 걷고 있다. 완전히 지친 채로 서로에 대한 약간의 적의를 가지고. 두 사람의 삶은 “마모 한계선을 넘은 바퀴”처럼 방향을 잃고 나아가고, 그러한 삶이 그들의 얼굴에 “골목길 벽보 뗀 자리처럼 진득한 자국”을 남긴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스스로의 상태를 가늠할 수 없는 채로 진행되는 인생 그리고 그로부터 엉망이 되어가는 그들의 얼굴. 그 노량진 거리에서 시적 화자는 “지금이라도 제가 포기하면 여러 사람이 편할 텐데”하고 이야기한다.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기

김이듬의 시집에는 포기하고 싶고 달아나고 싶은 마음들이 솔직하게 흩어져 있다. 그런 게 꼭 내 마음을 듣는 것만 같아서 이 시집이 좋았다. 포기하고 싶다, 죽고 싶다, 이런 말들은 참 하기가 어렵고 힘들다. 나만큼이나 주변 사람들 역시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는지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 하는지 내가 아니까. 나의 말 한마디가 주변 사람들의 맥까지 빠지게 할 것임을 또 내가 아니까. 그래서 그런 말이 하고 싶어도 꾹꾹 참게 된다. 김이듬의 시집을 읽는데 그녀의 참고 있던 마음들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것 같아서, 그런 게 꼭 내 마음을 듣는 것 같아서 좋았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나도 삶의 첫 고리부터 하나하나 끊어내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곳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으니까.

이를테면 시편 <호명>에 등장하는 아버지. 나는 이 지긋지긋한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아 지겹고 끔찍한 그리고 이제 아무런 재미도 없는 가부장제 서사를 내 입으로 다시 읊으려니 너무나 싫다. 그렇지만 뭐 어쩌겠는가, 평생을 싸우고 절연하고 도망치고 그러다 가끔 망각해버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버지는 나를 끝끝내 쫓아와 괴롭히는 것을.

가부장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렇듯 나의 아버지 역시 뻔한 가부장이다. 덧붙일 만한 특징은 그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맨손으로 자신만의 사업을 일구어낸 사람이라는 것. 그의 아침은 티브이를 켜고 경제 채널을 아주 큰 소리로 틀어 놓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큰 목소리로 가족들을 깨운다. 밥 먹으라고. 그에게 가족이란 아침 일찍 일어나 한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낮에 사업장에 나가 종일 일을 하고, 밤이면 집에 돌아와 또 가족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곤 그는 자신이 종일 가족들을 위해 헌신했음을 이야기한다. 사실 나는 이제 그를 잘 모른다. 지금 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이게 전부이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션 : 솜솜

과거에 나는 그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그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속속들이 분석하고 끊임없이 경멸하고 증오했다. 나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자식의 전형들 중 하나로 성장했다. 삶의 목표는 아버지와 다른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었다. 권위적인 것, 폭력적인 것, 남성적인 것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갈 것. 아버지와 닮은 그 무엇도 가까이하기 싫었다. 멀리는 티비 속 정치인부터 가까이는 학교의 선생들까지. 예민하게 반응했고 격렬하게 저항했다. 아버지에게 죽을 힘을 다해 반항했다. 물건을 집어 던지고 집을 뛰쳐나가면서, 내 십 대는 아버지에 대한 투쟁의 역사로 속속들이 메워졌다.

십 대가 끝나고 이십 대가 되면서, 돈을 벌 수 있었고 그로부터 다른 삶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이 생기는 족족 아버지 곁을 떠났다. 아버지 곁을 떠나면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어서 좋았다. 인생에 아버지 말고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서 좋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쌓여서 내 일부가 되어버린 분노나 증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망각은 순간일 뿐, 도로 아버지에게 붙잡혔다. 가족이나 아버지로부터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에게서 이질감이나 아니 이질감은 무슨 거부감이나 가끔은 경멸이나 증오를 느낄 때. 나는 내가 가장 근본적인 인간관계로부터 실패한 인간이며, 그 인간관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인생에서 맞이할 인간관계 역시 계속 실패할 것이라는 망상에 시달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존재가 나를 자꾸 아버지 곁으로 불러들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고통받는 존재, 고통을 참고 견디는 존재, 그러다가 말을 잃어버린 존재였다. 어떤 시점을 지나면서 나는 더 이상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음을 느꼈다. 아버지를 떠날 여력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떠날 수 없는 어머니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머니를 너무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날 수 없고, 나는 그런 어머니 곁을 떠날 수 없다.

얼마 전부터 긴 방랑의 세월을 마치고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나는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숨을 쉰다. 가끔 마주치고 아버지가 건네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응답도 한다. 늙고 병든 아버지는 이제 나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집안을 뒤집지 못한다. 성격이 고약한 것은 여전한데 힘이 부족해서. 나의 계획은 당분간 아버지 집에 살다가 영원히 이 집과 이 도시를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를 보고 또 어머니를 보자면 좀 망설여지는 마음이 든다. 그 복잡한 마음에는 실낱같은 책임감, 연민, 억울함 이런 것들이 뒤엉켜 있을 것이다. 나는 자꾸 묻게 된다. 포기하고 도망가는 것, 그러고 나면 정말 편해질 수 있을까.

포기의 책임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거나 도피하는 일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포기하거나 도피하는 행동에도 어떤 책임이 따르는 것 같다. 그 책임이란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것. 만약 아버지와 이 도시를 떠나게 된다면, 나는 내 선택을 스스로에게 납득 시켜야 할 것이다. 죽고 싶고 포기하고 싶어도, 내가 그런 선택을 한 것을 스스로 책임질 수 없을까봐 스스로 납득하지 못할까봐 망설이는 것처럼. 어쩌면 포기하고 도망치는 일이 가장 어려울지도 모른다. 시인 김이듬은 우리가 그토록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포기’에 대해 이리저리 이야기하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나 포기하고 싶어서 포기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을 준다.

시편 <호명>을 좋아하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어딘가 숨었을 개가 주인을 향해 달려갑니다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을 향해 사랑이라 믿는 걸까요 날 이해하는 사/람은 나를 묶어 버립니다 호명의 피 냄새가 납니다” 시인 김이듬은 작품 속에서 포기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끊임없이 외치는 인물들을 그려내는 동시에, 또 사랑이라 믿는 무엇인가를 향해 날 이해한다고 느껴지는 그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들 역시 그려낸다. 왜 우리는 여러 번 포기하고 또 포기하고 나서도 다시 희망을 갖는가. 호명의 피 냄새가 나는데, 왜 나는 아버지를 포기하지 못 하는가. 포기하고 죽고 싶은데 왜 자꾸 삶의 곁으로 어슬렁거리며 돌아오는가. 그리고 말이 잘 통하는 누군가를 마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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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줍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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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소호가 이경진의 입술을 열고 말을 불러 일으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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