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숨쉬는 시 읽기 1. 와샨 사이어 - 뒤로

알다여성 시인문학

함께 숨쉬는 시 읽기 1. 와샨 사이어 - 뒤로

[웹진 쪽] 이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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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와샨 샤이어

사이드 샤이어에게

이 시는 그가 방 안으로 뒤로 걸어오면서 시작해

재킷을 벗고 그는 평생토록 곁에 앉네

그렇게 우리 아빠를 다시 데려온다네

난 코피를 콧구멍에 집어넣을 수 있어, 개미들이 구멍으로 몰려가듯

우리 몸은 작게작게 자라 내 젖가슴도 사라지고

네 두 뺨도 보들보들, 치아는 잇몸 속으로 박혀드네

말만 해, 우린 다시 사랑받을 수 있어

한 번이라도 동의 없이 우리를 만진다면 그 손을 뭉개버려

난 시를 써서 시가 사라지게 할 수 있다네

새 아빠는 술을 도로 술잔에 뱉고

엄마의 몸은 계단 위로 굴러 올라가, 우두둑 뼈가 맞춰지네

엄마는 뱃속 아기를 지키려는 걸까

아가야 우린 괜찮을 거야

난 인생을 전부 새로 쓸 거야, 이번엔 아주아주 사랑이 넘치도록

넌 그 이상은 보지 못하겠지?

넌 그 이상은 보지 못하겠지?

난 인생을 전부 새로 쓸 거야, 이번엔 아주아주 사랑이 넘치도록

아가야 우린 괜찮을 거야

엄마는 뱃속 아기를 지키려는 걸까

엄마의 몸은 계단 위로 굴러 올라가 우두둑 뼈가 맞춰지네

새 아빠는 술을 도로 술잔에 뱉고

난 시를 써서 시가 사라지게 할 수 있다네

한 번이라도 동의 없이 우리를 만진다면 그 손을 뭉개버려

말만 해, 우린 다시 사랑받을 수 있어

네 두 뺨은 보들보들, 이는 잇몸 속으로 박혀들고

우리 몸은 작게작게 자라 내 젖가슴도 사라지네

난 코피를 콧구멍에 집어넣을 수 있어, 개미들이 구멍으로 몰려가듯

그렇게 우리 아빠를 다시 데려온다네

재킷을 벗고 그는 평생토록 곁에 앉네

이 시는 그가 방 안으로 뒤로 걸어오면서 시작해

 

일러스트 이민

해설

홈비디오 화면을 2배 속도로 되감기하는 것처럼 시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재생됩니다. 1연이 끝나고 한 번의 정지 화면, 그리고 다시 되감기. 1연과 2연은 말 그대로 서로의 ‘거울 이미지’입니다. 각 행의 순서만 반대로 되어 있을 뿐이죠. 제목처럼 실제로 시를 ‘뒤로’ 읽는 효과도 있고 시적 화자의 바람대로 훼손된 가족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으로도 보입니다. 

이 시에서 가족의 여러 고통스러운 정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동 학대, 성폭행에 대한 자매의 불안, 낙태를 하지 않으려는 여성, 남편의 알코올 중독과 폭력. 그러나 화자는 이 시를 씀으로써 이 모든 고통이 사라질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읽는 포인트는 행의 순서가 바뀌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어떤 시적 울림을 주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시인: 와샨 샤이어(Warsan Shire)

시인이자 난민 활동가. 1988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태어난 소말리아인이다. 어릴 때 영국으로 이주해 지금까지 런던에서 살고 있다. 시집으로 『엄마에게 출산하는 방법 가르치기(Teaching My Mother How to Give Birth)』, 『그녀의 파란 몸(Her Blue Body)』, 『남자들은 우리 소유가 아니다(Our Men Do Not Belong to Us)』가 있다. 

ⓒ Brunel University London/African Poetry Prize

그의 시는 상반된 문화의 렌즈를 통해 아웃사이더로서의 정체성, 이주, 트라우마, 사랑, 여성성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2013년 브루넬 대학 최초로 ‘아프리카 시 문학상(African Poetry Prize)’을 수상했으며 2014년 런던의 ‘젊은 시인(Young Poet Laureate)’으로 선정되었다. 2016년 비욘세의 비주얼 음반 《레모네이드(Lemonade)》에서 그의 시 6편이 낭송되어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 뮤직 비디오에서 비욘세는 아프리카 강물의 여신 오슌의 이미지를 가져와 흑인 여성의 인권, 결혼, 가족을 이야기해 그해 최고의 명반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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