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한아: 미모사에게 보내는 사랑의 말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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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한아: 미모사에게 보내는 사랑의 말들(하)

신나리

이 인터뷰는 <시인 정한아: 미모사에게 보내는 사랑의 말들(상)>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신나리 페미니스트로 세상을 보다 보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남자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남자들과 분리되는 공동체에 대한 상상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한아 제가 가장 페미니즘적이라고 생각하는 문구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후반부에 “성을 의식하도록 만든 모든 사람들이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썼던 마지막 부분쯤이에요. 저는 이 부분이 “나는 미래에는 자기의 성이 어떤 것인지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미래가 오기를 바란다, 그런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라는 뉘앙스로 해석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남잔지 여잔지 괘념치 않고 살 수 있는 세상, 내가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시스젠더인지 트랜스젠더인지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 내가 계속 그것을 생각하도록 강요하지 않는 세상이 저는 페미니즘적인 미래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남자가 되고 싶은데 여자인 사람도 있고, 남자들 중에서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죠. 생물학적 성을 기준으로 생물학적 남성과 분리되는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은 페미니즘적 공동체라고 생각하기 어려워요. 너무 폐쇄적인 것 같고요.

신나리 내가 나로서 인정받는 미래를 상상하시는 거네요.

정한아 저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제가 남잔지 여잔지 별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살던 사람이었어요. 아버지랑 살았던 시간이 길었는데, 아버지는 저한테 ‘너는 딸이면 말이야, 여자가 말이야.’ 같은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식하고 살았던 적이 없었죠.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니까 선배들이 ‘오 여학생이다! 여학생이야! 근데 막시스트야. 신기한데?’하고 반응하는 거예요. 철학과에는 여자가 별로 없었거든요. 이상했어요. ‘왜 날 이렇게 별나게 대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그걸 떨쳐 버리기 위해 애썼어요. 술자리에서 음담패설을 하면 처음에는 되게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난 남자야, 남자야.’하고 버티면서 한술 더 뜨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그러다 4학년 때 불문과 수업에 들어갔는데 남자가 하나도 없고 다 여자더라고요. 첫 수업 발표를 맡았는데 발표를 하다가 너무 무서워서 울었어요. 나중에 과방에 돌아와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더니, “그거 내가 고등학생 때 여학생으로 가득 찬 버스 탔을 때 받았던 느낌이었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대체 내가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자를 성적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아무래도 여자 옷을 입고 있지만, 마음 속에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 모양이야.’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꽤 오랫동안요. 그래서 연애를 할 때는 남자랑 연애하면서도 남자가 내게 여자이길 요구되는 것들을 바라면 굉장히 화를 냈어요.

사진 조아현

신나리 만약 제가 대학에서 남자들만 가득한 철학과에 들어가게 됐다면 바로 도망쳤을 것 같아요.

정한아 대부분은 재밌었어요. 개성적인 사람도 많았고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았거든요. 물론 우울한 일들도 있었고 그래서 심리 치료도 받으러 다니고 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거기서 얻은 게 굉장히 많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나 이상하고도 아쉽고도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은, 지금까지 연락하는 대학 때 친구들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난 뭘 포기했던 걸까

신나리 삶의 어떤 지점들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정한아 페미니즘을 진지하게 공부해본 적은 없어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90년대 중반은 많은 담론들이 들어와서 폭발하던 시기였어요. 여성학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여성학이 대학 교양에 포함되어 있었죠. 어떤 관심들이 솟아나고 자유롭게 펼쳐지던 시기였어요. 내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고민할 필요 없이 문화적으로 섭취하고 고민할 수 있었던 시기였고 다양한 사유실험이 가능했던 시절이었죠. 제가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에 골몰하게 된 건 97년도에 어학연수를 다녀오면서부터예요. IMF 터지기 직전에 아주 운 좋게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갔는데 홈스테이 파더가 게이였어요.

신나리 첫 시집 <시인의 말>에 나오시는 분이군요!

정한아 이 집에 들어가게 된 여학생은 제가 처음이더라고요. 집에는 게이 친구들과 이성애자 남학생들만 있었거든요. 거기 한 일본인 학생이 있었는데 쇼비니스트였어요. 심지어 한국에서 기생관광 가이드를 하던 사람이라 한국 여자를 보면 위안부와 기생만 떠올리던 사람이었죠. 그래서 그런 말들을 심심찮게 저한테 했고 그런 얘기를 들으면 온몸이 떨려오는데, 저는 표현을 잘 못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되게 소심하게 “어, 무섭네?”, “무섭다, 너.”하고 나직하게 말하곤 했어요. 그게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뭔가 엄청난 조롱처럼 느껴졌나봐요. 그래서 희한하게도 홈스테이 파더가 저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그 아저씨가 한국 같은 터프한 페미니스트 마켓에서 너는 살기 힘들 거라면서, 조언을 해주겠다고 밴쿠버 신문의 칼럼 기사를 오려서 전해줬어요. 남성들에게 공격적인 여성들에 대해 주는 조언이었죠. “당신은 남성들이 쓸데없는 자잘한 일들을 도와줄 때마다 날 무시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겠지만, 남자들은 그냥 그리 생겨 먹었으니 이용해라. 당신은 왜 쓸데없이 당신이 하이힐을 신고 짧은 치마를 입어야 하냐고 항변하겠지만, 남자들은 그냥 그런 거 좋아하니 이용해라. 너는 적극적으로 하이힐을 신고 짧은 치마를 입고 머리를 기르고 섹시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사람들에게 약한 척을 해라, 그걸 통해서 이득을 취하는 게 너의 삶에 훨씬 이득을 준다.”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이 아저씨가, 자기도 불이익을 당하면서! 아저씨는 자기 정체성이 자기를 불리하게 만들까봐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거든요. 자기 스스로 불이익이 두려워 평생 고통을 겪어야 했던 사람이 나에게 그런 칼럼을 충고라며 준 게 모욕적이었죠. 아저씨와 살면서 겪었던 일들과 이성애자 남학생들과의 분란 같은 것들이,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나의 그 이전의 삶을 돌아보게 했어요. 캐나다에 가기 이전의 삶을 돌아보게 했죠.

신나리 캐나다 가기 이전의 어떤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셨나요.

정한아 학교에서 형, 동생들과 남자 형제처럼 재밌게 지내고 있었을 때 나는 정말 재밌었을까. 그렇게 살기 위해서 난 뭘 포기했던 걸까. 왜 난 다 웃어넘겨야 했던 걸까. 그런 생각들을 계속하게 됐죠. 실제로 2학년 무렵에 아주 나쁜 일이 있었어요. 생각하면 너무 괴로워서 없었던 일처럼 하고 살았어요. 다른 활동을 더 열심히 하면서 제 분노 에너지를 다 해소하려고 했었죠. 그런데 늘 머릿속으로는 살인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었어요. 언제 어디서 기다리고 있다가 뭘 사용해서... 이런 식으로요.

또 캐나다에서는 십 대 여자아이가 브래지어도 안 하고 짧은 탱크탑에 짧은 핫팬츠를 입고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가도 아무도 안 쳐다봤어요. 그게 주는 해방감, 너무나 자유로웠죠. 거기에 가서야 내가 늘 시선 속에 옥죄어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됐어요. 그러다 IMF가 터져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거죠. 미쳐버리지. 한국에 돌아와서 학교에 올라가는데 히스테리 마비가 왔어요. 그냥 굳어서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어요. 15분 정도 움직일 수 없어서 가만히 서 있었는데, 표정도 내 마음대로 지을 수 없고 팔다리도 안 움직이고 계속 울고 있는데 왜 우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있었죠. 내가 지금 정상이 아니구나 싶어서 학생상담실에 찾아갔어요. 심리검사를 하고 일주일 후에 찾으러 갔어요. 학생상담실이 감당할 수 없다며 외부 센터로 보내더군요. 운 좋게 좋은 상담사를 만나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해결되지 않고 있었던 곪은 갈등을 쓰라리지만 인정했어야 했어요.

고독을 감당할 용기

신나리 자기만의 고독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사진 조아현

정한아 일단 용기를 갖는 게 중요해요. 고독을 감당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어서요. 플라톤도 용기가 일종의 구원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갑자기 완벽한 체제가 이뤄진다든가, 나의 삶이 전면적으로 변화될 뭔가가 나타난다든가, 그런 게 구원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실은 용기 자체가 구원이라고요. 저는 그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해요. 또 내가 어떤 사람으로 구성되어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요. 외부에서 오는 사건이나 사태의 충격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고 어떤 방식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킬 것인가는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태도와 부합하는 결과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때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왜 그렇게
섹스에만 집착할까

신나리 마지막으로,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이후에도 시를 계속 읽어보고자 하는 문학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정한아 한국 문학은 오랫동안 섹스에 집착해왔다고 생각해요. 일제 강점 시기부터 일관되게 왜 그렇게 섹스 얘기를 많이 쓰는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요. 이런 말이 약간 조심스럽긴 하지만, 식민지 문제도, 전쟁 문제도, 각종 사회적 모순에 관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도 그렇지만 실존주의적이거나 모더니즘적인 자기 반영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이 복잡한 문제를 다층적으로 제기하다가도 성관계를 전면화시킴으로써 문제를 손쉽게 해소하려 했던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어요. 

말하자면, 이념적이고 실존적인 주제로 시작한 문제를 결국 섹스로 해결하거나 해소하면서 이것이 또한 현실의 알레고리거나 비유거나 상징이라고 변명해왔지만 어떤 면에서 그것은 일종의 태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게 반드시 남성작가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불가피하게 남성 작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가부장적인 관점의 한계 속에 있었으니까요. 결국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 아니면 어머니나 누이로 여성의 표상이 축소된 건 그 같은 태만한 상투성과 오랜 가부장주의적 전통이 결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여성 작가들이 많이 늘어나고 실제로 순문학 독자들을 많이 얻기 시작했는데 당시 제가 목격했던 것은 중년 남성 비평가들의 특정 여성 작가들에 대한 지지와 호응이었어요. 대개 그들은 자기가 바라는 여성상을 그려주는 여성 작가들에 지지와 호응을 보냈죠. 처량하고 불쌍하고 어머니 같거나 누이 같은 짠한 여성들. 그러한 여성들에 대한 동정심과 후일담 소설은 얽혀 있고, 그로부터 소위 진보 진영 문학은 상처를 봉합할 반창고를 얻었던 것 같아요.

독해하는 독자,
집중하는 시인

저는 텍스트에 ‘실제로’ 집중하고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독자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기대해요. 매체, 방식, 소재들도 많이 변화해서 이제는 여러 종류의 작품들이 생산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말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자기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고 누가 보기에 좀 이상하게 생각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정말 고독하게 집중해서 써낸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마 어딘가에서는 작가들이 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그걸 세밀하게 읽어 내줄 수 있는 독자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전에 강좌에서 김수영의 <죄와 벌>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약간 유보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답변한 적이 있어요. 당시 저는 문단 내 성폭력 이슈에 골몰하고 있었고, 실제로 김수영이 젠더적 감수성이 뛰어났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좋아하는 시인에 대한 방어로 생각될까봐 그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이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문학작품에 대한 정밀한 독해의 문제가 얽혀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을 아주 꼼꼼하고 면밀하게 살펴보고 거기서 얻는 매력이나 혹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작가의 견해와 자신의 견해를 견주며 비교해보는 일, 또한 오늘날에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일이 필요할 텐데요.

덧붙여 김수영의 <죄와 벌>은 그다지 뛰어난 시가 아니에요. 자신의 ‘지질함’을 굳이 써서 남기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쪽팔림을 기억하도록 남겨둔 그의 태도의 윤리성은 당대 어떤 다른 작가들보다도 돋보이지만, 그보다 먼저 ‘여편네를 우산대로’ 때리는 사건이 안 일어났더라면 더 좋았겠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시가 없었다면 그 사실은 없었던 것이 되었을 테니까, 자기의 삶을 작품으로 쓰지 않은 많은 작가들은 허심탄회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난 받을 여지가 애초에 없지 않겠어요? 그는 ‘나 좀 봐 얼마나 지질한 사람인지’가 주제인 시를 공들여 썼습니다. 하지만 그 주제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 지나친 자기중심성이 그 작품을 태작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태작을 전부로 귀속시켜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버리지는 말자는 거죠. 대신 자세히, 꼼꼼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왜냐면 많은 쓰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의 현실과 의식과 상상 속에서 최대한 정밀하게 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리고 발견되기를 항상 기다리고 있거든요.

 

한창 문단 내 성폭력이 이슈가 됐을 때 미모사 연작을 송고하게 되었어요. 조심스러웠어요. 작품에 들어있는 표현들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그렇지만 내 마음의 불편함을 견디고 작품을 보내야 된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어요. 만약 보내지 않는다면 독자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연애편지는 때로 난해하고 횡설수설하고 장고 끝에 악수를 두기도 하고 장황하거나 지나치게 축약되어 있게 마련이지만, 그것은 분명 사랑에서 나온 것이니까,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마음을 다해서 읽어주시기를. 물론 재미없는 것들을 재밌게 읽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거고요. 저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보다 재밌고 똑똑한 작품들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쓰는 사람으로서의 저는 충분히 그렇게 못 하고 있어서 늘 유감이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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