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진은영: 아름답고 정치적인 페미니스트(하)

알다인터뷰

시인 진은영: 아름답고 정치적인 페미니스트(하)

신나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신나리 시인님의 시집에는 늘 청춘 연작이 있잖아요. 이번 시집에 실린 청춘 연작을 읽으면서, 이제 시인님께서 청춘 연작을 그만 쓰고 싶으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시인님께 청춘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진은영 일단 저는 젊은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해요. 같이 있으면 정신이 자극받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 오기 전에는 이대에서 강의했기 때문에, 항상 스무 살 친구들하고 같이 있었어요. 시인은 시를 쓸 때 대화하는 가상의 상대가 있어요. 항상 20대에 둘러싸여 살았으니 제게 그 상대들은 다 스무 살들이었죠.

사진 조아현

이제 청춘에 대해 쓰지 않게 된 건 청춘이 신체적으로 나와 멀어졌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동료 시인들을 늘 밤늦은 시간에 호프에서 만나다가, 용산 참사가 있었을 때 낮 열두 시에 서울역 광장에서 만난 적이 있어요. 인터뷰가 있어서 각자 자기 이름과 사는 곳을 밝히게 되었는데, 햇빛에 친구들의 머리가 하얗게 드러나서 ‘아, 얘네들이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마흔 살이 넘어서도 계속 젊은 시인 소리를 듣고 지냈거든요. 그래서 스스로를 젊은 시인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나의 신체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게 내 삶의 어떤 부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여전히 젊은 시인으로 남아있는 것은 멋지고 기분 좋은 일이고 그럴듯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럴듯한 포즈를 취하기 위하여 내가 인생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나의 새로운 변화에 좀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나리 앞서 시인님께서는 기질적으로 정직한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듣다 보니 기질을 가지고 계신 것뿐 아니라 삶을 정직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의무감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진은영 의무감... 제 생각에 이건 취향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에게 멋져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불편해요. 물론 내게도 그런 면이 있죠. 내게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아, 참 별로다.’ 싶은 생각이 들어요.

신나리 흥미롭네요. 저는 사람들에게 그런 욕망을 발견하게 될 때, 그로부터 사람들에게서 어떤 모습을 보게 될 때 되게 웃기고 재밌거든요.

진은영 그건 사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잖아요 우린 모두 그런 욕망이 있어요. 그런데 그 욕망이 과도해지는 건 경계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시에서는 사랑에 대해 많이 쓰지만 사랑 속에 용해되는 걸 원하지는 않거든요. 인생이 관계로만 환원되기를 원하지 않고, 사랑 속에 용해되고 싶지 않아요. 그런 게 제 시에 어떤 까칠함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도 행복하지 않은 결말을 맺는 경향이 크거든요.

신나리 사랑 속에 용해된다는 게 어떤 뜻이에요?

진은영 사랑 속에서 자기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 있잖아요. 엄마가 아이에 대한 사랑 속에 자기를 잃는다던가. 특히 여성의 경우, 너무 관계 속에서 용해되기를 요구받는 위치에 놓이는 것 같고요.

여성 지식인, 여성 시인으로 살아가기

신나리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시를 쓰셨으니까, 학문과 예술에 대한 믿음의 망을 가지고 계실 것 같아요.

진은영 일반적으로 공부를 계속 안 하게 되는 이유는 전망이 없어서이기 때문이잖아요. 그것에 대해서 저는 좀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나는 이게 너무 재밌어서, 그러니까 그냥 한다는 마음이었죠. ‘이렇게 살면 가난하고 힘들겠지만, 근데 뭐 부자로 사는 것도 별게 있을까’라는 생각이었죠. 현실감각이 없었던 게 공부를 계속하도록 만들었어요. 그냥 좋으니까 힘들어도 계속했던 거죠. 물론 공부 자체에 대한 회의는 있죠. 내가 공부에 갇혀서 세상을 못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고, 그 불안 때문에 내 작업과 세계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라는 고민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신나리 저는 시인님의 논문 언어가 가진 아름다움에 매혹되곤 해요. 논문 언어와 시 언어 사이를 오가는 게 어려울 것 같은데요.

진은영 문학을 전공한 작가들은 논문 언어에서 시 언어로 금방 넘어갈 것 같지만, 저는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 그게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시 언어를 쓸 때 워밍업이 더 필요하기는 해요. 저는 시에 철학의 언어를 가져오고 싶어요. 또 논문이라는 엄격한 학술적 글쓰기 속에 시적인 상황을 두는 것을 너무 좋아해요. 물론 논문 심사 받을 때 굉장히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요, 그래도 해보려고.(웃음)

신나리 얼마 전 열린 연단에서 강연하신 영상을 봤어요. 근래 작업들을 이어 오시는 과정에서 어떠한 질문과 답을 만나셨는지 궁금해요.

진은영 저는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상담을 가르치고 있어요. 자기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문학과 만나 어떻게 그것을 풀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계속 해 왔어요. 그러면서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시 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죠. 또 그 동안 사회적인 활동을 하면서,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작품은 탁월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실제로 제 자신도 사회적 활동에 집중할 때는 작품을 쓸 시간이 없다는, 좋은 작품을 쓸 시간은 더 없다는 고민이 늘 있었고요.

내가 예술을 통해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활동에 불편함을 느끼게 드는 게 뭘지 고민을 했어요. 그 결과 탁월한 작품을 생산해야 된다는 예술가의 관념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사람들은 좋은 작품을 쓰는 게 중요하지 예술가가 인생을 잘 사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들 하고 저 스스로도 그렇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어떤 순간에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든 내 안의 관념이 뭘까 생각해봤는데 그게 탁월성의 관념이더라고요. 열린 연단 강의에서는 영화 <패터슨>을 경유해서 예술가를 제작인으로서의 예술가와 행위자로서의 예술가, 이 두 종류로 구분해서 설명했어요. <패터슨>에서 늘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들 궁리를 하고 그것을 완성해서 사람 앞에 공개하고 찬사를 받기를 원하는 로라가 제작인으로서의 예술가라면, 시 쓰기의 순수한 기쁨에 만족하는 패터슨은 행위자로서의 예술가죠.

그 중 나는 제작인으로서의 예술가로서만 삶을 살았던 거죠. 우리에게는 두 가지 삶을 오가면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항상 나는 제작인으로서의 예술 관념에 묶여서 다른 예술가의 형상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탁월성의 관념을 먼저 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당시 토론자에게 몇 가지 문제 제기를 받았는데, 그 문제는 내가 글을 쓰면서도 생각했던 것이어서, 앞으로는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공부를 해보려고 해요.

신나리 ‘우리들의 시인 최승자에게’라는 시인의 말 때문인지, 시인님을 생각하면 최승자 시인이 떠올라요. 여성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여성의 입으로 목소리를 내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진은영 실제로 내가 영향을 받거나 사랑한 시인이 최승자만 있는 건 아니죠. 그런데 최승자를 호명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참 뛰어난 시를 쓰는데, 불행한 시대를 살았고 여성 시인이어서 삶이 더 고단했던 분이거든요. 사실 여성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고 어쩌면 무척 힘든 일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예감을 만들어 준 시인이기도 해요. 너무 어려운 길을 걸어온 사람이고, 그것 때문에 자신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고통이 많았던 사람이니까 특별한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으로 최승자 시인을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시집을 통해서 그걸 공적으로 표명하고 싶었죠.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계속 활동해오면서 저도 여성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크게 가지고 있고요.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여성의 입으로 지적인 목소리를 내는 게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이 있어요. 여성들이 감성적인 목소리를 내면 남성들이 그렇게까지 난폭하게 반응하지 않는데, 지성적인 목소리를 내면 못 견뎌 하는 것 같아요. 남성들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긴 머리 짧은 생각’의 여성에 대한 상이 있기 때문이겠죠. 

제가 학술적인 이론서를 낸 적이 있는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남성 베스트셀러 작가가 그 책을 거론하면서 제게 지적 허영심이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해요. 물론 제 글에 단점이 있을 수 있고 학술서였던 만큼 전공자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수도 있죠. 이론적 입장이 다르면 제 글에 대한 반박도 충분히 가능하고요. 그런데 지적 허영심이 보이는 글쓰기라고 말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어요. 내가 만약 남성 지식인이어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그들이 시인에게, 특히 여성 시인에게 기대하는 목소리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게 마음에 둘 일이 아니었는데도, 여성으로서 모종의 목소리를 강요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페미니즘 운동과 여성 간 연대

신나리 문단 내 성폭력 해쉬태그 운동 이후에, 계속 시를 쓰고자 하는 젊은 여성 습작생들은 좀 난처해진 것 같아요. 지면을 얻고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어 등단을 준비하는 입장이나, 등단 제도에 반대하여 홀로 시를 써 나가는 입장이나 둘 다 난처해진 것 같아요. 또한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들과 어떻게 계속 연대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계속 있고요. 시인님께서는 문단 내 시인이신데, 젊은 여성 습작생들에게 어떤 얘기를 전해주고 싶으신지 궁금해요.

진은영 지도 학생 중 한 명이 자신이 문학계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등단을 안 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왜 그러냐고 그랬죠. 잘못은 그 자들이 했는데, 왜 여성들이 그 자리를 피하냐고. 이 싸움에는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했어요. 하나는 들어가서 거기를 바꾸는 작업. 우리가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들어가서 바꾸는 일에는 실패와 좌절들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그걸 포기할 수는 없죠. 그런데 꿈쩍 않는 제도에 대항하다가 오히려 그곳의 논리에 포획되거나 매몰될 수도 있으니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에서 다른 방식으로 문학활동을 이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글 쓰는 데에 등단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문단을 균질화된 공간으로 상상하는 건 위험해요. 사실 완고해 보이는 영역들에도 많은 구멍들이 있고 변화의 가능성이 있어요. 거기서 불편한 일을 당했을 때 연대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는 그냥 썩은 대로 내버려 두고 우리는 다른 데서 뭔가를 하자는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건 가해자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거예요. 그들을 내보내야지요. 또, 등단을 했다고 해서 항상 문단 내에 있는 건 아니거든요. 문단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을 때도 있고 거기서 물러 나올 때도 있는 거죠. 이 이중의 가능성을 통해서 자신의 작업들을 열심히 하고, 문단 밖에서의 작업의 흐름을 문단으로 가져가기도 하는 상호작용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신나리 시인님께서 최근 어떤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고, 젊은 여성 세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생각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해요.

진은영 근 몇 년간 무척 아파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러운 마음이 커요. 내가 나랑 다른 상황에 있는 여성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크기 때문이에요.

이화여대 본관 시위 이후에 학생들에게 우울증에 관한 강연을 해달라고 해서 간 적이 있어요. 사전 모임에서 본관에 들어갔던 친구들을 열 명 가까이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공포감이 너무 컸던 때문인지 소속도 이름도 밝히지 않더군요. 또 그간의 싸움의 기록도 모두 폐기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저에게는 너무 낯선 풍경이었어요. 우리 세대는 항상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는 누구인지 밝히고 왜 싸웠는지를 이야기하고 싸움의 과정을 기록해서 공개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었거든요. 이 20대들은 너무나 훌륭한 일을 했는데... 싸움이 너무 값지고 귀중해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점도 있었지만, 자신의 활동을 사회적이고 공적인 방식으로 위치 짓는 작업을 해야 싸움의 과정에서 얻은 상처가 치유되거든요. 그게 가로막혀 있으니 상처가 계속될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어요.

당시에는 그 친구들의 반응을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 이후에 자신의 소속과 신원이 밝혀지게 되면 SNS상에서 굉장한 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건 제가 미처 생각지 못한 현실인 거죠. 그것에 대한 피해 감각이 내게 없었기 때문에 당시 그 친구들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일단 선배 세대는 이 친구들이 마주하는 공포의 현실을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또 이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같이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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