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줍는 시 마지막. 이소호가 이경진의 입술을 열고 말을 불러 일으킬 때

생각하다취미

다시 줍는 시 마지막. 이소호가 이경진의 입술을 열고 말을 불러 일으킬 때

신나리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3월 12일 화요일 아침에 집을 나서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아침에는 엄마와 아빠가 또 큰소리를 내고 싸웠다./내가 스물 아홉이나 먹어서 이런 일기를 쓰다니 참 내 인생도 안 됐다./나는 엄마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린 시절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잘 몰랐던 거야./그래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아주 나쁜 선택을 했다./그리고선 지금까지 처벌을 받고 있다./그 이후의 불행에 대해, 그녀는 시정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똑같이 살고 있다./이건 한심하고 멍청한 일이야./이런 생각을 해본 건 처음이다.

나는 집에서 작업실로 걸어가며 홀로 했던 생각을, 그날 오후 일기장에 적었다. 이것은 용납될 수 없는, 아무도 몰라야만 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아무도 몰라야 하는 느낌과 생각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각자가 쥔 비밀 일기장에 조용히 적고, 우리 안에서 그것들이 어느 날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망각되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계속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

하지만 2018년 12월 발간된 이소호의 『캣콜링』은 입술을 연다. 이소호는 고백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경험한 삶을 낱낱이 말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한 사람의 고백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뒤흔들었고, 결국은 입술을 열도록 만들었다. 이 시집의 1부 경진이네는 다음과 같은 시구들을 가지고 있다. 

언니, 의사 선생님이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래. 그러니까/언니, 나 이제 너라고 부를래. 사랑하니까 너라고 부를래./사실 너 같은 건 언니도 아니지. 동생은 식칼로 사과를 깎/으면서 말한다. 마지막 사과니까 남기면 죽어. 동생은 나/를 향해 식칼을 들고, 사과를 깎는다. 바득바득 사과를 먹/는다.(「동거」) 

이소호는 자신의 개명 전 이름인 ‘경진’을 사용하여 자신을 타자화 해내고, 그럼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말들의 세계를 얻는다. 시집은 총 다섯 챕터인 <1부 경진이네>, <2부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의 탄생>, <3부 한때의 섬>, <4부 경진 현대 미술관>, <5부 서른한 가지 이경진을 위한 아카이브>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1부 경진이네>에 실린 첫 번째 시는 이렇게 끝난다. 

나는 동생의 팔목을 대신 그어 준다. 넌 배 속에 있을/때 무덤처럼 잠만 잤대. 한 번 더 동생의 팔목을 그었다./자장자장. 넌 잘 때가 제일 예뻐. 동생을 뒤집어 놓고 재운/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주고 재운다. 비좁다 비좁다/밤이. 하나에서 둘. 하나에서 둘. (「동거」) 

한 집에서 동거 중인 자매 경진과 시진은 서로에 대한 살의를 가지고 있다. 경진은 동생을 뒤집어 놓고 재우면서, 시진은 사과를 깎던 칼을 들이밀면서 자매는 서로에 대한 애증을 드러낸다. 이소호는 삶이, 집이, 관계가 자신의 몸과 마음이 비좁아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

이소호는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시에 하기 시작하면서 폭주한다. 너무 비좁아 견딜 수가 없는 상태는 자신을 비좁은 상태로 만든 가족 구성원에 대한 원한과 분노로 뻗친다. 나는 그가 가족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이미 여러 번 마음으로 죽여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부 경진이네>는 고통과 신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경진과 시진은 틈만 나면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눈다. 두 사람은 먼저 자살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에 참가 중이다. 시진은 경진의 머리를 후라이팬으로 내리치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경진의 엄마는 벨벳 거미에 대한 다큐를 보던 중 거미가 산란 후 자식에게 자기 몸을 먹이로 내준다는 대목에서 할머니로부터 “거미 같은 년”이라고 욕을 먹는다. 경진은 엄마가 아이처럼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우는 것을 본다. 그 모습을 본 경진은 극도의 분노를 느끼게 되고, 엄마에 대한 혐오감을 모욕으로 표현한다. 

불행히도 엄마의 자궁은 1989개의 동생을 낳은 후로 늙/고 닳았다/젖을 빠는 대신 우리는 자궁에 인슐린을 꽂고 매일매일/번갈아 가며 엄마 다리 사이에 사정을 했다/그때마다 개미가 들끓었다//잘 들어 엄마/엄마는 이제 여자도 뭣도 아냐/내가 이렇게 엄마 다리 사이를 핥아도 웃지를 않잖아/봐 봐/이렇게 손가락 세 개를 꽂아도 느낄 줄 몰라 엄마는//나는 문을 꼭 닫았다 (「경진이네-거미집」)

물론 경진의 아버지와 경진의 애인 역시 그를 미치도록 만든다. 아버지는 언제나 교회에서 기도를 하며 자신의 비밀스런 죄를 용서하는데, 아버지의 비밀이란 교회의 자매들과 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5월 8일에 온 가족의 머리를 깎아 제사상에 올리고(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주워다가 머리를 깎아 제사상에 올리기도 한다.) 온 가족의 손바닥에 못을 박으며 우리가 가족임을 명시한다. 그리고 경진을 빨던 애인은 경진에게 네 시는 구리다고 거기엔 네가 들어있어서 더럽다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애인 앞에서 경진은 무릎으로 방바닥을 기고 엎어진 상처럼 운다.

바깥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소호는 비좁은 ‘우리’의 바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연애를 하고, 해외에 나가고, 문단에 진출하며 완전히 짓밟히게 된다. 가족에 못박히며 그가 느꼈던 비좁음의 폭력이, 가족 바깥의 세상 역시 전부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이소호는 가장 사적이고 보편적인 경진이로 탄생한다. 이 세상의 남성들은 경진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경진을 팬다. 남자친구는 숨도 쉬지 않고 지껄여 대는 말들로 경진을 가스라이팅한다. 

뭐가두려워?나는내모든것을나눠줬는데넌만족을할줄을몰라/이래서난우울한여자는싫어야징징짜지말고똑바로말해/그리고말하기전에다시한번생각좀해봐내가이렇게무식한여자랑/사귀었었나?(「오빠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 

스페인 거리의 낯선 남자는 “헤이 뷰티풀” (「캣콜링」)하며 아시아인 여성인 경진에게 더러운 추파를 던지다가 “아유이그노잉미”, “퍼킹비취”, “고백투유어컨트리” (「캣콜링」)하고 경진을 욕하고 위협한다. 문단 사람들이 모인 송년회에서 한 선배는 경진의 시를 평가한다는 명목으로 경진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내가 보기에는 말이야 니가 착한데 나쁜 척을 하니까/그런 거라고. 그게 진짜 너라고 생각하면 독하게 밀고 가/란 말이야 미친년처럼. 시의 끝에 매달려 있으란 말이야./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란 말이야. 말해 봐 넌 어떤 시인/이랑 싸워서 이길 거야? 어떤 시인이랑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해 니가. 니 시는 말야 솔직히 아직 아무도 못 이겨. (「송년회」) 

우리가 수없이 들어 온 이러한 폭력적인 말들의 가장 나쁜 점은, 폭력의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경진은 2부의 끝에서 「사과문」을 쓴다.

보호해야 할 필요

이소호는 이경진의 입술을 열고, 이경진은 나의 입술을 연다. 이소호의 시는 2019년 지금 세상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인 젠더 이슈를 말하고 있다. 이소호의 시집은 곧 모든 여성들의 입술을 열 것이다. 어린 경진이 서 있던 비좁은 가족에서부터, 시인 경진이 도리어 사과하도록 만들었던 비좁은 세계에 살고 있는, 그저 보통의 여성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소호 시의 이 시의적절성 때문에, 그의 시집을 쥐자 마자 어떤 걱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장은정 역시 나와 같은 종류의 걱정을 하였음을 이야기한 바 있다. 문학은 가부장적 현실의 폭력을 단순하게 재현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평가, 현실에 대한 당위적 접근 때문에 미학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평가, 현재 득세하고 있는 페미니즘 담론에 편승해 대중들이 읽고 싶은 것을 조악하게 합성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 작품에서 드러나는 현실의 폭력이 과연 사실인지조차 의심하는 상황(장은정, 136-137쪽)까지.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장은정이 비판하였듯, 지금껏 한국 문학장은 문학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유독 여성의 현실을 다룬 문학들에 적용하면서 페미니즘 문학을 손쉽게 판결하고 처분해온 바 있다. 우리가 『캣콜링』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받아 들었을 때, 시인 이소호와 그의 시집이 응당 가져야 할 풍요롭고 아름다운 해석의 장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는 것은, 오늘날 여전히 한국 문학장 안에서 페미니즘 문학의 자유와 가능성이 보장받고 있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소호의 시는 사랑받아 마땅하다. 이소호의 시는 우리의 입술을 열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입술이 서로를 향해 말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대화하도록 만들 것이다. 『캣콜링』은 <3부 한때의 섬>에 잠시 머물렀다가 <4부 경진 현대 미술관>을 세운 후, 다시금 <5부 서른한 가지 이경진을 위한 아카이브>로 돌아온다. 1부의 끝에서 “이제/가족을 말하지 않고 나를 말하는 방법은/핑계뿐이다”(「경진이네-거미집」)라는 고백을 남겼던 이소호는, 마지막 장인 5부에서 너무나 여전하고 불행히도 영원해 보이는 이 지긋지긋한 가족에 대해, 다시금 입을 열고 말을 시작한다. “시진아/언제부터 흉터가 우리의 놀이가 되었을까?” 이 문장에는 강렬함으로 인해 가려진 큰 구덩이 같은 서글픔이 있다.

하필 우리 살아 있으니까

나는 이소호가 시집 전반에 있어, 지금 자신이 처한 비좁음에는 괴로움 뿐 아니라 외로움과 슬픔이 있다고 말해왔다고 느낀다. 가족이 나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근원이 된 것은 가부장제라는 구조 때문임을 알면서도, 경진은 가족으로 인해 죽고 싶을 때마다 자신이 쥔 칼날을 또다른 피해자 여성인 엄마와 동생 시진에게 겨눈다. 그리고 강하고 정확하게 휘두른다, 기필코 죽이겠다는 듯이 말이다. 왜일까? 나는 그것이 서글픔 때문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이 비좁은 집에서 경진은 자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와 동생 시진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경진과 가장 닮았고 가장 사랑하니까. 그리고 그것에 실패했을 때, 늘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실패했을 때 쏟아지는 분노가 있는 것이다. 사랑과 기대가 그리고 삶에 대한 욕망이 결국 가장 큰 분노로 바뀐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이소호의 시를 당신은 어떻게 읽을까. 우리가 삶을 그리고 삶의 가혹함을 불가피한 것이라고 느낄 때 쏟아지는 이런 문장들 앞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낄까. “하필 우리 살아 있으니까/겨누는 일을 멈추지 못하니까/슬펐어” 여성이 여성에게 느끼는 원한과 책망과 분노에 대해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정말로 궁금하다.

나는 이소호가 여성에게 휘두르고 있는 이 감정들의 정체를 밝힐 때, 우리가 3부의 이상향을 품고서도 늘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와 5부의 여성 예술가의 작업들에 대한 오마주가 품고 있는 의미를 더욱이 해석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소호를 읽으며 당신하고 대화하고 싶다. 2017년 12월부터 지금까지, 나는 <다시 줍는 시> 연재를 통해 시인 24명의 시 29편을 소개하며 당신과 만났다. 우리가 함께 읽었던 작품들은, 내가 기존의 문학장이나 사람들이나 언어로부터 다치고 상처받으면서도, 끝끝내 지키고 귀하게 생각해 온 시인들의 작품들이다. 나는 이 시인들의 작품들이 진심으로 사랑받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안에서 입술을 열고 말을 불러 일으키기를 바란다. 이곳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말들의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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