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줍는 시 11. 당신은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생각하다문학

다시 줍는 시 11. 당신은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신나리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당신은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 느낌에 머물러본 적이 있는가?

나는 망상을 정말 많이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망상이란 다른 관념과 다르게 1)본인이 상당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 2)경험과 논증이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 3)내용이 비현실적인 것으로 모든 잘못된 판단을 의미하는 단어다. 낮에는 망상으로 밤에는 꿈으로 내 머릿속은 언제나 바쁘고 정신이 없다. 누군가 나를 부르면 내가 깜짝깜짝 놀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항상 거의 다른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부터 올 여름까지, 나는 지난 연인에게 버림받았다는 망상에 시달리고 있다.

상실, 그리고 버림받았다는 망상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전애인이 해외의 다른 도시에 살기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장거리 연애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헤어졌다. 아주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닌데, 정말 이상한 일이지. 나는 자꾸 그녀가 나와 이 도시를 버리고 떠났다는 망상에 시달린다. 대체 왜 나는 이런 망상에 시달리는 것일까. 지난 헤어짐 이후로 마음 속 어느 부분이 꺾인 것처럼 아프고 누군가로부터 버려졌다는 생각에 비참하고 서러운 마음이 든다.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친구도 상실 이후에 그런 느낌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상실 이후에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일까.

모든 상실이 우리에게 버려졌다는 느낌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험을 생각해보자면, 일방적으로 상실을 맞게 되었을 때 그리고 상실 당시 나의 상황이 좋지 않았을 때, 그런 상실이 유독 내게 버려졌다는 느낌을 남기는 것 같다. 나의 처지가 좋지 않을수록 그래서일까 내가 누군가를 절박하게 필요로 할수록, 누군가와 헤어지는 사건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고 스스로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도록 만든다. 실은 그 누구도 타인을 ‘버릴 수는’ 없다. 모든 상실은 한 사람과 한 사람이 헤어지는 사건일 뿐이다. 그렇지만 느낌이라는 것은 참 이상하고 무섭다. 아무리 아니라고 생각해봐도, 누군가로부터 버려졌다는 느낌은 아주 날카롭게 존재를 베어내고 맹렬하게 마음을 갉아먹는다.

아주 오랜만에 다시 펼쳐본 시인 강성은의 두 번째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은 상실이라는 사건이 남기는 버림-버려짐에 대한 느낌과 생각으로 온통 얽어져 있었다. 시집의 첫 시편 <기일(忌日)>을 읽어보자. 

버려야 할 물건이 많다/집 앞은 이미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하다//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고 나면 보낼 수 있다/죽지 않았으면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나를 내다 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같다//한밤중 누군가 버리고 갔다/한밤중 누군가 다시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다//창밖 가로등 아래/밤새 부스럭거리는 소리

죽은 사람의 물건을 버리면 죽은 사람의 존재도 쓸어내 버릴 수 있는 걸까. 만약 가능하다면, 시인은 죽은 사람의 존재를 이제 그만 마음에서 쓸어내 버리고자 한다. 그러나 사람을 버리는 일이란 불가능하다는 듯이. 버려진 물건들이 쌓인 창밖 가로등 아래에서, 누군가가 쓰레기 더미를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끝이 없다. 이 <기일(忌日)>이라는 시편은 무척 슬픈데, 누군가를 버리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도 시인이 버려진 자신에 대한 상상을 기필코 해내기 때문이다. “나를 내다 버리고 오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할 것만/같다”

비참함, 서러움, 공포, 악몽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낮의 망상과 밤의 꿈은 우리의 존재와 마음을 산산이 쪼갠다. 오늘 소개할 시편 <불 꺼진 방>은 그 느낌에 대한 이야기다. “악몽을 꾸다 소리를 지르며 깬 나는 일어나 침대에/앉는다 캄캄한 밤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사내가 나/를 토막 내고 커다란 검은 비닐봉투에 담아 집 앞 가/로등 아래 버리고 사라졌다” 시인은 악몽을 꾸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깬다. 악몽 속에서 시인은 토막이 나 비닐봉투에 묶인 채 집 앞 가로등 아래 버려져 있었다. 이 악몽은 시인을 잡아먹는다.

시인은 봉투에 담긴 채로 비명을 질러 보지만 아무도 듣지 못한다. 시인은 집 앞 미용실 여자와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배낭을 메고 훌쩍이는 아이가 자신의 곁을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곁을 지나가는 그 누구도 시인의 끔찍한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다. “어째서 내 비명은/오직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걸까 가슴에서 커다란/덩어리 몇 개가 갑자기 불쑥 솟아나와 비닐봉투는 터/질 것 같았다 내 비명은 내 귀를 멀게 만들 것처럼 고/통스럽게 터져 나왔다” 버려졌다는 비참함과 서러움을 누가 알까, 그리고 버려진 것들과 함께 영원히 당신으로부터 멀어질 수도 있다는 공포를 도대체 누가 알 수 있을까. 시인은 비명을 지르고 시인이 담긴 비닐봉투는 터질 듯이 팽창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악몽이 가져온 고통은 불 꺼진 방에 앉은 시인을 짓누른다. 나쁜 망상이 시인을 잡아먹기 시작한다. “얼굴이 보이지 않던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그 남자의 얼굴을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악몽이 불러온 나쁜 망상들이 자신을 짓누르자, 시인은 꿈은 꿈일 뿐이라고 꿈속에는 원래 알 수 없는 일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가득한 것이라고 말해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불 꺼진 방의 불은 켜지지 않는다. “주방의 불도 켜지지 않는다 욕실의 불도 켜지지 않/는다 정전이라도 된 것일까” 참 이상한 일이지, 집안의 모든 불이 켜지지 않는다.

시인은 자신이 버려졌던 집 앞의 가로등 아래를 바라본다. 그곳은 여전히 환하며, 그곳에는 쓰레기봉투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시인은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우리가 아무리 ‘버려졌다’는 느낌을 꿈, 망상, 허깨비로 치부해보아도 그것은 이토록 슬프고 고통스럽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생생한 진실일 수 있다.

발소리

다행히도 시인은 누군가로부터 버려졌다는 상상과 그로부터의 끔찍한 고통의 묘사에서 시를 끝내지 않는다. 시인은 누군가의 발소리를 상상한다. 물론 현실은 악몽과 같이 잔혹할 수 있다. 누군가의 발소리는 버려진 나의 곁을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다. 아무도 나의 비명을 듣지 못하고 불 꺼진 방은 나의 고통스런 비명으로 부풀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아니라면.

당신은 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그 느낌에 머물러본 적이 있는가? 당신에게 이 구절은 어떻게 들릴까. “고양이 하나가 가로등 주위를 맴돌고 맞은편 미/용실에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저편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고 나는 불 꺼진 방에 서 있다 나는 마치/수천 년 동안 불을 켜려고 했던 유령 같다 얼굴을 모/르는 당신의 꿈속 같다” 시인이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가로등 아래를 가만히 바라보았듯, 당신은 시와 삶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이 시편의 곁에 설 수 있다. 당신에게 이 구절은 어떻게 들릴까. 나는 당신의 꿈 속이 환하고 당신의 꿈에 반가운 발소리들이 잦게 들리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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