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발견 11. 왜 너를 잃었는가

알다여성 주인공문학

애서발견 11. 왜 너를 잃었는가

조은혜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 스포일러가 있으니 책을 읽으실 분들은 유의 바랍니다.

* 여성 작가 이두온의 <시스터(2016, 고즈넉)>는 동생을 잃어버린 언니가 아들을 잃은 한 아빠와 함께 동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추리 스릴러물이다. 이두온은 <시스터>를 통해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거친 폭력과 관음증적 시선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여성이 주체가 되어 여성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스릴러물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수능이 끝난 학교는 난장판이었다. 고등학교 3년 간 노력한 이유는 수능 하나였으니까. 그간 지켜온 개근을 수능이 끝나고 놓아버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선생님들도 대부분 수업을 하지 않았다.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돌아가며 보고싶은 영화를 다운 받아왔다. 아침 영어 방송이 나오던 TV는 선생님도, 학생도 무료한 수업 시간을 영화 보는 시간으로 바꿔줬다.

어느 하루는 누군가가 <추격자> 를 다운 받아왔다. 김윤석과 하정우의 욕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어떤 영화든 봐야 선생님들이 수업을 안 했다. 영화는 점심 시간까지 계속됐던 것 같다. 나는 그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원래 그렇게 잔인하거나 계속 긴장하며 봐야 하는 스릴러물을 잘 못 보긴 하지만 그 영화는 유독 불편했다. 모든 장면을 본 것도 아니었는데 모자 쓴 하정우가 꿈에 나와 거의 일주일 동안 나를 추격했다. 나는 그 뒤로 가능한 스릴러물을 보지 않았다.

여자만 죽거나 다친다

어느 순간부터 궁금했다. 나는 왜 스릴러물을 잘 보지 못 하는 걸까. <나는 악마를 보았다>를 일곱 번이나 본 사람도 있는데 왜 나는 그보다 잔인하지 않은 영화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 하는 걸까. 왜 <코인로커 베이비스(무라카미 류, 북스토리)> 같은 책을 보면 잠을 설쳐야만 하는 걸까. 친구가 있는 춘천에 놀러갔다 소양댐에 갔을 때는 왜 <7년의 밤(정유정, 은행나무)> 생각에 무서워져 황급히 버스를 타야 했을까.

거의 모든 스릴러물은 여자만 죽거나 다친다. 혹은 남자와 함께 죽거나 다친다. 여자라는 사실만으로 누군가에게 쫓기고, 죽여지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나온다. 나는 여성 캐릭터에게 감정 이입을 잘하는 편이다. 그러니 더 큰 공포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엄정화가 출연한 <오로라 공주>, 손예진이 출연한 <비밀은 없다> 같은 영화는 그래서 예외적으로 볼 수 있던 영화였다. 똑같이 긴장하고 눈을 가리면서도 이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건 여성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스릴러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는 여성의 시선이 있기라도 하다. 물론 우리나라 출판 시장에서 장르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굉장히 낮다. 고정 독자층이 있다 해도 메이저 시장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이너한 시장에서도 남성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스릴러물은 꽤 있는 편이다. 왜 여성이 폭력의 희생자가 됐는지, 피해자가 되는 여성의 서사를 설명하는 작품은 전무하다. 이두온의 <시스터>는 남성의 시선에서 쓰여지던 스릴러물을 여성의 시선에서 그려낸다.

너는 어떻게 살았는가

<시스터>의 주인공 ‘윤선이’와 그의 사라진 동생 ‘윤장이’의 부모는 “한때 브라운관의 잘나가는 청춘스타”였다. 한때만 잘나갔기에 부모는 돈이 없었다. 번 돈은 이미 탕진한 지 오래였고 둘은 틈만 나면 싸웠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렸고 어머니는 술을 마셨다. 장이와 선이는 부모의 사랑도, 끼니도 굶주려야 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선이와 장이를 세워놓고 생선을 고르듯 요리조리 살펴봤다. ‘밀리언달러 키즈’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갈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재기를 위해 장이와 방송에 나갔다. 화려한 이목구비를 가진 장이는 예쁜 외모와 귀여운 행동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보는 사람마다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서 인터넷만 봐도 장이의 하루 동선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예쁜 아이라도 방송에 나가면 안티가 생기게 마련이다. 제작진은 냉정했다. 장이를 믿고 날뛰는 장이 아버지와 장이를 방송 한 번으로 추락시켰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와 싸우고 집을 나간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즉사한다.

선이와 장이는 그래서 떨어져 살게 됐다. 장이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선이는 조부모에게 갔다. 선이는 장이가 똑똑하다 못해 영악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성인이 돼서도 장이의 소식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자신을 찾아온 형사 김경희에 의해 동생이 현재 실종됐고 한 남학생을 죽인 살인 용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미 멀어질 대로 멀어진 사이였지만 동생이 살인 용의자가 됐다는 말을 듣고도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선이는 죽은 남학생의 아버지인 해순과 동생이 왜 실종됐는지, 해순의 아들은 왜 죽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단서를 찾는다.

선이와 해순이 알아낸 진실은 슬프고 폭력적이다. 정신 이상인 아버지 없이 혼자 살던 장이의 집에는 누구에 의해 설치된 지 알 수 없는 “몰래카메라가 열네 대” 있었다. 장이네 집 근처에 살던 어떤 남자는 장이가 정해진 시간마다 옷을 벗었다며 장이가 “혼자 살면서 그런 식으로 남자를 꼬”셨다고 했다. 장이의 핸드폰에는 “걸레 년, 한 번만 하자” 라는 문자도 있었다. 어떤 남자 선생님은 장이를 보고 “’남자를 미치게 하는 타입인데’ 하고 말한 적” 도 있었다. 같은 반 남자애들은 장이와 해순의 아들을 엮어 포르노를 만들려고도 했다. 어떤 USB에는 “형편없이 말랐고 소녀 티조차 나지 않는 모습”을 한 “열두 살의 어린 장이가” 욕실 안에 있는 영상이 있었다. “동생은 치마 아래로 손을 넣어 입고 있던 팬티를 내렸”고 욕실에 들어온 “성인 남자”는 동생 앞에 서 있었다.

그동안 장이에게는 무수한 일이 있었다. “강간은 그런 일들 중 한 가지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 정신 나간 아버지에게서 동생을 떼어낼 수 있는 건 선이 밖에 없었다. 선이는 그걸 외면하고 살았다. 자기 자리를 꿰찬 동생을 질투했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동생도 나처럼 누군가의 팔을 부러뜨리거나 누군가에 의해 팔이 부러지기를 바라”며 살았다. 조부모에게 장이를 데려오자고 말하지도 않았다. 선이는 자신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고 싶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동생을 위해 선이가 할 수 있는 건 제정신이 아닌 아버지의 “머리를 후려갈기는 것” 밖에 없었다.

너는 왜 사라지는가

전 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했던 장이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장이는 자신의 팬들이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찍히며 감시 당했고 그들에게 감시 당하는 댓가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사랑은 과한 관심으로 변했고, 장이는 학교와 집으로 대변되는 모든 사회의 관음증적 시선들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아버지를 비롯한 수많은 남자들에게 성적인 시선과 폭력을 당해 그게 폭력인지도 모르게 커야 했다.

그나마 장이를 지킨 건 ‘장이 이모’ 라는 여자였다. 함께 장이를 감시하던 가해자 중 한 명이었지만 그래도 장이가 유일하게 조금이라도 믿었던 사람이 그 여자였다. 장이 사건을 수사했던 형사, 자신만의 방법으로 장이의 흔적을 찾아 나간 언니 선이도 여자였다. <시스터>의 주요 캐릭터는 여성이고 그 여성들은 (다소 거칠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장이를 지켜낸다. 죽는 사람은 해순의 아들 한 명 뿐이고, 남성 가해자들의 시선은 철저히 그들의 악함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시스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의 시선과 삶을 놓지 않는다.

‘윤장이’ 같은 캐릭터는 한국 스릴러물에서 한 문장 혹은 한 장 정도로만 나올 캐릭터였다. 갑자기 실종되고 다치거나 죽어버리면서 여성의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는데 일조할 뿐이었다. <시스터>에서의 윤장이는 다르다. 윤장이는 실제로 단 한 번밖에 등장하지 않음에도 그의 삶은 선이와 ‘장이 이모’의 시선에서 계속 설명되어 독자는 윤장이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첫 챕터부터 마지막 챕터까지 남성의 폭력적인 시선과 발언들이 끊이지 않는 건 윤장이가 사라진 게 그들의 폭력 때문이라고 폭로하기 위해서다.

악의로 찬 사람들을 그로테스크하게 뚫고 나가는 여성 캐릭터들과 모든 폭력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윤장이의 삶은, 어떤 면에서는 폭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세상 모든 윤장이들의 삶이다. 기이하고 괴상한 남성들의 폭력을 견디며 거칠게 변해서라도 살아가야만 하는 여성들. 누군가에 의해 한순간에 사라지는 여성들. 나는 가해자가 아닌 이들의 삶을 설명하는 스릴러물을 원한다. 여성의 시선에서 우리가 잃은 여성들의 삶이 쓰여지기를 바란다. 더 많은 이두온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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