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발견 12.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알다

애서발견 12.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조은혜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정혜윤이 쓴 <그의 슬픔과 기쁨(2014, 후마니타스)>은 쌍용자동차 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르포 에세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에 대한 포괄적인 정리 뿐만 아니라 노동 및 투쟁 현장에서 직접 뛰었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을 수 있다. 이들이 대변하는 노동자들의 실상과 현재 노동의 현실은 어떨까. 당사자는 아니지만 언젠가 당사자가 될 지도 모르는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연휴와 축제가 누구에게나 기쁜 건 아니다. 이제 쉴 수 있다는 혹은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설렘이 가득한 2월 14일 서울역에는 코레일 외주 노동자들이 있었다. 서울역 로비에 일렬로 늘어선 노동자들은 연휴와 올림픽의 열기로 들뜬 서울역에서 코레일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고 있었다. 9년 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사정도 비슷했다. “부산의 대표적인 축제인 기장의 멸치 축제”가 끝났던 2009년 4월 쌍용자동차는 2,646명의 정리 해고안을 발표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해고자 수는 3천여 명에 달했다.

2009년 4월 2일부터 12일까지 총 11일간 일산 킨텍스에서는 모터쇼가 열렸다. “아름다운 기술, 놀라운 디자인” 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모터쇼에는 9개국 158개 업체가 참가했다. 총 149대의 자동차가 전시됐고 개막식에는 당시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이만희 환경부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그리고 “이날 행사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GM대우, 동희오토, 쌍용자동차, 기륭전자 소속 비정규직들이었다. 그들은 모터쇼 전시회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리는) 모터쇼의 그늘에서 강제휴업, 임금 삭감, 대량 해고로 죽어가며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로 만들어진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겠다.” 이들은 미리 준비해 온 모닝 한 대에 선지를 뿌렸다. 이른바 ‘선지 퍼포먼스’ 였다.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기아차의 준대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쏘렌토R과 GM대우의 차세대 마티즈가” 빛을 내며 서 있었다. 행사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노동자들이 생산했거나 생산할 차들이었다. 피를 뿌렸던 노동자들은 연행되었다.

산 자

이사카 고타로는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2017, 아르테)>에서 정리해고를 마녀사냥에 비유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그랬다. 3천여 명의 해고자들은 경영 악화의 원인인 마녀가 됐다. 그들은 죽어야만 하는 자들이었다. 나머지 노동자들은 산 자가 되었다. 함께 밥을 먹고 힘을 모으던 동지들을 산 자와 죽은 자로 가른 건 고작 그 명단이었다. 산 자들 모두가 안도하며 마음 편하게 일했던 건 아니다. 윤충렬은 자신보다 일도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 총각이라는 이유로 해고 대상자가 됐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정리 해고 자체도 나쁘지만 대상 선정도 나빴”기에 그는 후배들과 같이 평택 공장에 올라갔다.

박호민도 산 자였지만 파업에 참여했다. 홀로 있는 노모에게 자신은 공장 안에 없다는 거짓말까지 했지만 잘릴까 두려웠다. 하지만 “죽은 자들만 싸우고 산 자들은 가만히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파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회유 당하고, 누군가는 포기한다. 이 싸움을 언제까지 할 수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 죽치고 앉아있는 것 뿐이잖아. 이런 소리들이 마음 곳곳에서 들려온다. 박호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공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나가 1/3 정도의 인원만 남았을 때도 그는 끝까지 하겠다고 생각했다.

파업 같은 큰 사건의 주체가 될 때 가장 힘든 건 배신하고 타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2009년 5월, 동지들과 함께 굴뚝에 올라간 서맹섭도 그랬다. “굴뚝에 있을 때 어떤 날은 번개가 쳤다. 온통 쇠판으로 둘러싸인 굴뚝에선 번개가 가장 두려웠다. 어떤 날은 최루액이 쏟아졌다. 어떤 날은 먹을 것이 올라오지 못했다.” 그건 다 괜찮았다. 가장 슬픈 건 기쁜 일을 함께 나누던 동지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일 괴로운 것은 산 자랑 죽은 자랑 새총 쏘고 쇠파이프 들고 싸우는 것을 위에서 보는 거였어요. 처참했지요. 기본적으로 그분들은 15년 이상 맘 모았던 동료들이잖아요. 한순간 악연이 되어버리는 거잖아요. 우리끼리 싸우는 거잖아요.

“열심히 사는 것 외에는 달리 살 방법을 몰랐던” 노동자 고동민도 마찬가지였다. “라면 끓여서 막 먹으려고 하는데, 최루액이 너구리 라면에 푹 빠지”는 것도, 용역 깡패도, 경찰도 무서웠다. 파업이 무서웠다. 하지만 정말 슬펐던 건 “그 밤에 몰래 몇 백 명이 나가는 거였”다.

“옆에서 자고 있다가 누가 나가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잖아요. 자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서로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계속 자는 척하는 거죠. “고생해라.” “고생했다, 잘 가라.” 이런 이야기는 못 하는 거죠.”

죽은 자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는 노동자들을 진짜 죽음으로 몰고 갔다. 2009년 정리 해고자 명단이 발표된 뒤로 지금까지 쌍차 노동자 및 그 가족들 29명의 숨이 졌다.

2011년 2월 26일 사망한 무급 휴직자 임무창은 열 세 번째 사망자였다. 1년 전인 2010년 4월 25일 임무창의 아내는 임무창이 옷을 갈아입는 사이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아내는 쌍용자동차 파업 이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임무창은 2011년 2월 26일에 엎어진 자세로 자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빠를 흔들어 깨웠”지만 아빠는 일어나지 않았다. “무급휴직자인 그는 날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인이 남긴 것은 쌀 한 줌, 라면 하나, 통장 잔액 4만 원, 카드빚 150만 원이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10, 김영사)> 판매가 1백만 부를 돌파한 해였다.

“자본과 개인이 싸우는 건 굉장히 어렵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는 게 부끄러운 죽은 시간을 억지로 견뎌야 한다. 싸워야 할 대상은 너무 크고 멀기 때문에 가까이 있는 이들을, 자기 자신을 원망하게 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해버렸을까. 그깟 자존심, 불합리를 눈 딱 감고 모른 척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왜 사람들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이렇게 집단은 와해된다. 이들이 모자라고 못난 게 아니라 세상의 시스템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쌍용자동차는 그렇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그리도 좋아하던 일터를 벗어나 거리를 전전하며 싸운 게 올해로 벌써 9년 째다. 반대로 말하면 자본도 9년 동안 공고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복직된 해고자는 불과 37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해고자들은 설 연휴 이후 사측과의 실무교섭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지난 설은 죽은 자들과 죽지 못해 살았던 산 자들의 시간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야 하는 괴로운 시간이었다. 현재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해고자 복직을 위해 ‘함께 살자’ 쌍용차 영업소 집중 집회 1인 시위, 촛불 집중 문화제 등 집중 투쟁을 하는 중이다.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2013년 4월 4일 서울 중구청과 남대문경찰서가 쌍용차 희생자들을 위한 대한문 분향소를 기습 철거하자 나흘 뒤인 8일부터 쌍용자동차 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자들을 위한 미사를 시작했다. 이 미사는 2013년 11월 18일까지 225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되었다(2014년 정의구현 사제단은 미사를 재개했다). 마지막 미사 때 대한문에 걸린 플랜카드에는 이런 구절이 쓰여 있었다.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이 책을 읽는 건 괴로운 일이다.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노동자의 말도, 자본에 의해 파괴된 노동자들의 삶도 정말 모두 괴롭다. 이 괴로운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울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억울하지만 무력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는 도저히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주하려고도 애썼다. 이 아프고 슬프고 괴로운 이야기를 마주해야만 내가 절망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희망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부디 누군가에게 절망만은 주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와락’의 존재를 알게 됐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정신 건강을 책임지고 그 자녀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곳이다. 2016년 연말에 와락에서 노동자 자녀들이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공개했던 적이 있다. 문화상품권이나 장난감 그런 선물들이 있었다. 후원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 선물을 사서 보내주면 되었다. 나는 꽤 빠르게 선물 후원 신청을 했지만 이미 모든 선물이 마감된 상태였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서로 선물을 보내겠다고 한 거다.

어린이집 선생님인 지인이 일이 너무 힘들어 원에서 운 적이 있었다. 그때 지인 반의 한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달려왔다. 아이는 우는 선생님에게 양 주머니에서 엄마가 준 음료수를 하나씩 꺼내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우리 때문에 힘들었어? 이거 먹고 울지마. 이제 안 힘들게 할게.” 지인은 그 말을 듣고 더 열심히 울었고 아직까지 그만두지 않았다. 무언가를 지속시키는 힘은 대단한 권력도, 거창한 선물도 아니다. 그저 그의 슬픔과 괴로움을 지나치지 않고 함께 슬퍼하고 울면 되는 것이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면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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