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발견 2. 그런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알다

애서발견 2. 그런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조은혜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김나리/김현진 저, 박하)>

페미니스트들이 읽어도 편한 이야기들이 있다. 김나리와 김현진이 쓴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는 오로지 여자 둘의 이야기다. 그들의 대화를 읽어내려갈 때 독자는 자연스레 자신의 삶과 상처를 떠올리게 된다. 주인공 수미와 민정을 통해 여자들의 사랑과 상처에 대해 얘기해봤다.

 한 때 만났던 남자는 후려치기가 특기였다. 나는 몰랐던 외모의 결점을 지적하고 내가 다니는 학교를 욕했다. 싸울 때면 내가 예민하고 이상해서 그런 거라고 내 탓을 했다. 사귀지도 않았고 집 밖에서는 잘 만나지도 않으려 했다. 나는 바보였다. 그런 점을 비난하는 대신 그의 비위를 맞추려 애썼다. 예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고 그가 좋아하는 색깔의 립스틱을 발랐다. 지나가는 말로 한 단발머리 얘기에 가슴께까지 오던 긴 머리를 잘랐다. 그와 끝내는 건 힘들었겠지만 할 수는 있었다. 다만 그가 떠나면 아무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때의 나는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의 수미였다.

수미는 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했고 누군가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안 계신다”고 답한다. 한 남자를 9년동안 만나기도 했다. 둘은 “암묵적으로 섹스만 하는 관계”였다. 수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의 다정한 말투에 끌렸고 그보다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고백도 하기 전에 섹스를 해버렸다. 고작 그 사이에 마음이 식을 정도로 남자의 마음은 얄팍했지만 수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밥 먹고 영화 보고 카페를 가는 데이트같은 건 혼자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섹스만 하더라도 그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싶었다. 그는 술 마시면 수미를 찾고 다른 여자와 헤어지면 수미를 찾았다. 그렇게 쌓인 세월이 9년이었다.

9년동안 한 남자를 만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는 민정은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자”로 보이지만 “다치지 않기 위해 아주 애”쓰는 사람이다. 이번엔 다르길 바라며 남자에게 다가가지만 매번 틀렸다는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은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면 관계를 끊다보니 “걸레” 소리를 듣는다. 민정은 자신의 이성관이 아버지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마귀가 들렸다며 매질을 하던 신실한 아버지. 성추행을 당했다는 말에 “네가 밤 늦게 다니니까 하나님이 벌을 주신 거다”라고 말한 아버지. 민정은 자신에게 상처주지 않을 남자를 찾아다녔다.

둘의 삶은 언뜻 보면 달라보이지만, 그 본질은 같다.민정과 수미는 어디에서든 죄송하고 “늘 내가 경멸스럽”고 “구제할 수 없는 덩어리” 같다 느낀다. 원인을 아버지의 폭력이라고 단정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 않은 여자들 중 일부도 나쁜 놈과 헤어지지 못 하거나 내게 상처주지 않아 보일 놈들을 골라 떠돈다. 이 놈이 나쁜 놈이지만 나 “따위”를 만나주고 있으니 관계를 유지한다. 이 놈은 나보다 못났지만 바로 그래서 내게 상처주지 않을 것 같으니 “까짓것” 만나고 만다.

장강명 작가가 사비를 털어 만든 <한국 소설이 좋아서>에서 김인구 기자가 소개했듯 이 둘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노란색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고받는다. 수미가 실수로 보낸 카카오톡은 서로 대화를 나누는 계기가 되고 이들의 삶은 카카오톡 대화로 나열된다. 끊임없이 발신하고 수신하는 메시지 속엔 “나랑 있는데 지루해하는 것 같으면 막 죄송”하고 “내 앞에 있는 상대가 무안하거나 마음 다치지 않길 바”란다는 자조의 말들이 섞여있다. 이들의 대화를 읽으며 마음 아팠던 건 자꾸 자신을 탓하고 상대만 걱정해서였다.

자기애의 문제다. 수많은 사랑의 기본이 되는 사랑, 자기애. 너무 많은 여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는데 서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날 사랑하지 않았다. 그와의 모든 문제는 내 탓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은 열심히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뭔지 몰랐다. 나는 언제나 “따위”였으니 이 사람과 끝나면 다른 사람은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까짓것” 몸뚱이를 던졌다가도 사랑하게 될까 간이 달았고 상처 받을까봐 먼저 도망갔다. 이미 못난 내 자신이 더 못나지는 건 보고싶지 않았다.

황지우 시인은 <뼈아픈 후회>에서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중략)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고 노래했다. 나는 반대였다. 사랑이 끝날 때마다 나 자신에 대해 뼈아픈 후회를 했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는 늘 멀쩡했고 속절없이 부서진 건 나 자신이었다. 그를 사랑하느라 나 자신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에겐 관대했지만 내 자신에겐 엄격했다. 거울을 보면서도 예쁜 구석 대신 그가 알려준 결점을 보며 한숨 쉬었다. 태산만한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티끌만한 상처를 줬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와 다투면 늘 미안하다며 머리를 조아렸지만 울고 있는 나 자신은 돌보지 못했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는 너무 많다. 

사회는 여자들에게 너무 많은 기준을 주고 그에 부합하지 않는 건 ‘네 탓’이라고 한다. 그 기준을 없애는 건 너무 어렵고 우리를 탓하는 건 쉽다. 어떤 이들은 그 기준이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도 없이 자신을 탓한다. 그래서 수많은 여자들은 민정과 수미처럼 “어두운 서랍”을 적어도 하나는 갖고 있다.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괴로운 상처와 과거들을 꾹꾹 밀어넣었던 서랍 말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내 탓을 하지 않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안다. 하지만 남은 생이 얼마든 우리는 앞으로도 사랑할 거고 상대가 여자든 남자든 상처를 주고 또 받게 될 거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며 누군가와 사랑하면 없는 상처도 상처로 만들고 작은 상처도 크게 만든다. 별 거 아닌 싸움에도 상대가 떠날까 겁을 내고 상대의 감정과 기분에만 끌려 다닌다. 자신의 감정은 아랑곳없이 자신만 비난하게 된다. 어두운 서랍들이 마음에 쌓일수록 상처는 늘고 자신을 돌볼 여유는 줄어든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 사랑을 거부할 수도 있다. 악순환이다.

벨 훅스(bell hooks)는 <사랑은 사치일까?>에서 “진실로 어떤 여성도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사랑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시작이자 진짜 자신을 알게 되는 첫걸음이다. 사회가 정한 기준은 그 자체로 터무니없다. 그 기준에 부합하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이걸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면을 돌볼 시간을 갖고 마음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정말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은 안되는지 생각하고 상대에 대한 기준을 세워야 자신에게 상처 주지 않을 수 있다. 그 누구를 사랑하기에 앞서 자신이 하는 일, 꿈꾸는 것, 생각하는 모든 것을 먼저 사랑할 때, “사랑은 당신이 찾지 않을 때에도 당신을 찾아낼 수 있다(글로리아 스타이넘)”.

9년동안 만난 수미의 상대에게 복수를 계획하는 민정과 수미, 그리고 세상의 모든 민정과 수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슬픔과 고통에 허우적대던 모든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와주어 고맙다. 지금의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그런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아픔의 시간들을 조금씩 잊으며 자신을 좀 더 사랑하고 아끼기를, 그 어두운 서랍들을 죄다 털어내고 이제 서랍같은 건 만들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상대와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까지, 나는 끝까지 당신을 응원할 거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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