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발견 4. 꼬추의 발광

알다

애서발견 4. 꼬추의 발광

조은혜

일러스트레이터: 솜솜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에 실린 작품, <층>은 한 여자와 남자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이지만, 독자는 여자 주인공 예연을 통해 일상에 만연한 남성들의 폭력성을 마주하게 된다. 예연 앞에 놓인 상황들은 현실의 여성들이 겪는 상황들과 꼭 닮아있다. 소설 속 예연의 선택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 얘기해봤다.

 미드 <굿 와이프(The Good Wife)>의 마지막 시즌인 시즌 7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계단을 오르던 남자와 내려가던 여자가 부딪친다. 아주 우연히 발생한 사건일 뿐 두 사람 모두에게 악의는 없었다. 어느 쪽도 다치지 않았다. 들고 있던 커피가 쏟아지지도 않았다. 신발이 더러워지지도 않았다. 가방을 놓쳐 별 별 잡동사니가 계단에 널부러지지도 않았다. 정말 단순한 해프닝일 뿐이었다. 여자는 남자에게 바로 “미안하다”고 말한다. 남자는 여자를 보며 말한다.

“조심해요!”

이런 경우, 많은 수의 여성은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인다. 특히 상대가 남성이라면 더욱 그렇게 된다. 남성이라는 성별 자체가 갖고 있는 위협과 폭력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다. 이 남성의 심기를 거슬려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걷다가도 두들겨 맞고, 염산을 뒤집어쓰고, 칼에 찔리는 세상 아닌가. 되도록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부딪치지 않으려 몸을 웅크리고, 혹 부딪쳤다면 얼른 죄송하다는 말을 한다. 애초에 어떤 여지를 제공하지 않는다.

아는 남자와의 상황은 그리 쉽지 않다. 가끔 내 손목을 거칠게 잡아 끌거나, 싸울 때 욕을 뱉는 걸 봐도 바로 남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쓸데 없이 그의 상황을 헤아린다. ‘친구들이랑 있으니까 그래’, ‘잠깐 흥분해서 그래’, ‘괜찮을 거야’. 이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괜찮을 거라고 합리화하며 넘겨버린다. 어떤 폭력성을 볼 때마다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괜찮을 거라던 순간들이 쌓이면 괜찮지 않은 순간에 가닿을 수 밖에 없다. 모든 나쁜 일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다.

<층>에 등장하는 예연은 30대 중반 여성이다. 남성들이 이따금씩 수틀릴 때 뿜어내는 폭력성을 겪을만큼 겪었다. “남자들 속에 숨어 있다 슬글슬금 비어져나오는 왜소하고 더러운 내면의 고추들”이 “견딜 수 없이 지긋지긋”하다. 예연이 서른 셋에 만났던 인태는 좀 달랐다. 낮에는 헬스 트레이너로, 밤에는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성실하게 사는 “반듯한” 사람이었다. “구운 생선”을 좋아한다는 예연의 말을 기억해 굴빗살을 발라줄만큼 다정했다. “돌 같은 어깨와 근육”을 가졌지만 “세심하고 정교한 젓가락질”을 하는 남자였다. 예연은 “그의 삶이 궁금했”고 “그의 삶에 매혹되었다”.

인태는 예연같은 여자를 처음 봤다. “젊었을 때 나쁜 짓도 좀 했”고 헬스 트레이너인 자신에게는 “꼬추의 발광”으로 들리는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는 여자였다. 게다가 “박사과정까지 마친 상태였다”. 인태는 “박사인 여자”, 그러니까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한 여자와 대화를 나누거나 차를 마신 적이” 없었다. 예연은 그를 “예의 바르게” 대해줬다. 예연은 저 먼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인태는 그 “거리감”이 좋았다. 예연은 “낯설지만 따뜻한 무언가”였다.

둘의 만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인태는 그 이유를 미루어 짐작했다. 예연이 자신이 일하는 일식집에 왔을 때 있었던 사촌때문이었다. 그는 인태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었다. 인태는 “변경”하고 싶은 누나가 있었다. “평균 체중의 곱절”에, “길에서 만난 낯선 남자를 따라”가서는 “일주일, 열흘”, “몇달, 때로는 1년 넘게 돌아오지 않”다가 노숙자의 몰골을 하고 나타나는 정신지체 누나, 인희. 예연에게는 “외동”이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사촌이 그 비밀을 말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공교롭게도 사촌과 만난 다음날, 인희가 집에 돌아왔었다. 전화기 너머로 그 소식을 들으며 인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려 애썼”지만 “인희년이 애를 뱄다”는 어머니의 말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년 그거, 미친년 아니야?”
“뭐냐, 이게? 뭐냐고, 씨발.”

인태는 이런 말들을 뱉었다. 돌아온 인희가 원망스러웠지만 곧 “사라질”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때가 되면 예연에게 말하리라 다짐했었다. 하지만 사라진 건 예연이었다.

예연은 인태의 사촌으로부터 그의 가족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인태가 어머니와 통화를 하던 그 날, 뒷모습을 보이며 서있던 그를 향해 걸어가다 그의 통화를 들었을 뿐이다. “소리를 지르”고, “미친년”이라는 욕을 “낮게 으르렁거리는” 그를 봤다. 그의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예연의 손에서는 땀이 났다. 반듯한 줄 알았던 그의 삶이 “무섭게 느껴졌”고 “잘생긴 얼굴과 늘씬한 키와 자갈주머니처럼 울퉁불퉁한 근육질 몸”은 “징그럽고 파렴치”하게 느껴졌다.

예연은 그 뒤로 헬스클럽을 가지 않았다. 인태에게서 온 전화도 딱 한번만 받았다. 인태는 “이상한 목소리”로 “집 씽크대에 라면발이 떨어져 있”다고 말했었다. 몸 관리 때문에 라면을 사 놓지도, 먹지도 않는 인태였다. “이상해서 미치겠”다고 좀 만나 달라는 인태의 말에 예연은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해요.”라는 “사무적”인 말투로 그의 말을 막아버렸다. 

둘은 어차피 헤어질 거였다. 아르바이트 한 번 하지 않으며 박사과정까지 마친 예연과 투 잡을 뛰는 인태의 삶은 너무 달랐다. 그들 삶의 거리는 “초추의 양광”과 “꼬추의 발광”의 차이만큼이나 멀었다. 하지만 이 둘이 헤어진 건 사회적 격차때문이 아니었다. 인태는 누나 인희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낯선 이가 침입했다는 사실에 정말로 무서웠다. 하지만 그건 그의 사정이다. 예연에게 중요한 건 인태가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했다는 사실 뿐이다. 예연은 그의 사정을 들어보지도 않고 헤어짐을 선택했다.

<층>은 분명히 여성이 처한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은 아니다. 소설집 전체가 우연과 행운같은 운명적 요소들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초추의 양광”이란 단어가 왜 인태에게는 “꼬추의 발광”으로 들렸을까. 작가는 왜, “초추의 양광”이라는 고상한 단어를 “꼬추의 발광”이라는 속된 단어로 바꾸어 보여줬을까. 많은 우연과 행운,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도 꼬추는 발광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수많은 운명적 요소뿐만 아니라 발광하는 꼬추에도 지배 당하는 게 여성의 삶이어서가 아닐까.

여성들은 먼저 가겠다는 예연에게 “가라고, 씨발. 아, 기분 개 같네!”라며 욕을 하는 예연의 동료같은 남자들을 한 두 번 본 게 아니다. 남성의 존재 자체가 무서울 때가 많다. 기분이 상했다고 나오는 “왜소하고 더러운 내면의 고추들을” 여성들은 너무 많이 겪었다. 그럼에도 그의 사정을 들어보지 않는 건 너무 매정한 것도 같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할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도 싶다. 그래서 예연처럼 행동하는 건 힘들다. 그처럼 술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단번에 연락을 끊는 단호한 행동은 익숙하지 않고, 어렵고, 무섭다.

여성들이 지금껏 경험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마주할 남성들의 비열한 행태는 그들이 자신들을 기득권이라고 믿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여성이 약자라는 걸 알기에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할 수 있다. 이 발광들을 받아주기 시작하면 그래도 되는 줄 안다. 빈도는 잦아지고 강도는 심해진다. 폭력적인 그를 최대한 빨리 떼어버려야, 나를 후려치기하는 그를 끊어내야, 왜 같이 술을 안 마시냐며 욕하는 그를 놓고 나와야 내가 안전할 수 있다. 그래야 그들도 조심한다. 여성들 위에 있으려는 그들의 지겨운 발광에 단호하게 대처할수록 그들의 발광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한 마리의 검은 백조가 있다는 건 세상 어딘가에 무수한 검은 백조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 여러 번 착하고 다정할 순 있지만 한 번만 나쁘고 폭력적일 수는 없다. 사소해 보이는 “꼬추의 발광”들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해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일”들과는 빨리 이별해야 한다. 이해해보려고, 견뎌보려고 하면 안된다. 사라진 상대를 향해 "개년"이라 욕하는 그의 사정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매정하지 않다. 알지 않는가. 우리는 운 좋게 살아남은 존재들이다. 그들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최선은 단호함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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