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발견 10. 가난은 잘못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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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발견 10. 가난은 잘못되지 않았다

조은혜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 부자 나라 미국에서 빈민 여성으로 사는 린다 티라도는 2013년 ‘Why I make Terrible Decisions, or poverty thoughts(왜 나는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가)’ 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미국 주요 매체에 보도되며 가난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린다 티라도는 첫 책인 <핸드 투 마우스(2017, 클)>에서 가난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선택을 하는 이유를 썼다. 가난한 사람이라는 낙인, 그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가난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갖는 편견은 비슷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게으르다고, 옳은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그들이 계속해서 가난을 자처하는 거라고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벤츠를 타다가 현대차로 바꿔야 하는 가난이 아니다. 지난 달까지는 스테이크를 먹었지만 오늘은 샌드위치를 먹어야 하는 가난도 아니다. 당장 내일 학교에 갈 차비가 없다거나 오늘 저녁에 먹을 밥이 없는 가난이다. 단 하루도 돈 걱정에서 자유롭지 않은 날을 살아본 적이 없는 가난이다.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밑창으로 생리대를 만들고 돈이 없어 밥을 굶어야 하는 가난. 어떤 사람들은 평생 겪지 않을 고통을 어떤 사람들은 시지프스처럼 ‘측량할 길 없는 시간’ 내내 견뎌야만 한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다. 누군가에 의해 굴려지는 굴렁쇠가 된 기분이다. 살아내고는 있지만 내 의지로 되는 것은 거의 없다. 굴려지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벌어 먹기 위해 태어났을 뿐이다. 당장 오늘 저녁, 내일 일 말고는 뭔가를 생각할 여력이 없다.

“빈곤은 졸라 돈이 많이 든다”

린다 티라도가 사는 나라는 부자 나라 미국이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점이나 달러스토어, 주유소 등 미국의 많은 곳에서 대부분의 직원들은 8~9달러 미만을 번다”. 한국으로 치면 최저임금을 받는 셈이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한다는 것은 “쉴 새 없이 일해 쥐꼬리만큼 돈을 벌고, 그렇게 살면서도 남보다 떨어지기는 아주” 쉬운 삶을 산다는 걸 의미한다. “수중의 돈은 동날 때까지만 내 돈이며 공과금은 납기가 가장 오래 지난 것부터 내게 된다”.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걸 가난한 사람들도 알고 있다. 노후를 위해 저축도 하고 연금도 붓고 집도 장만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인생을 길게 보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밀려 있는 월세와 공과금을 못 내 쫓겨나게 생긴 마당에 투자와 저축 같은 일은 딴 세상 얘기일 뿐이다. 시골에 살기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은 어렵다.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싸구려 중고차를 헐값에 사지만 “언제라도 길가에서 차가 망가져 멈출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돈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거지같은 일자리라도 필사적으로 잡아야 하”고, “아무리 몸 상태가 개떡 같아도 병가를 낼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상황에 따라 근무 시간이 달라진다.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자기들이 필요할 때” 일할 수 있는 걸 기대한다. 얼마나 바쁘냐에 따라 열 시간을 일할 지 서른 시간을 일할 지가 결정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번 주에 얼마의 돈을 벌지 모른다. “근무 일정을 미리 짠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떻게 될 지 모른 채 몸이 힘든 삶을 살다 보니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행동은 거칠어진다. 누군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무시할 지도 모르니 “필요에 의해 약간은 거칠고 툴툴거리며, 날을 세운 채 다닌다”.

외적으로 고상하게 보이고 싶지만 그건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드니까”. “외모에 투자해야 사람들에게 더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말”은 숱하게 들었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정장을 살 이유가 없다. 일주일에 20달러를 저금할 수 있다면, 15주 후에는 300달러짜리 정장을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일주일도 안되어 화장실 휴지나 우유 같은 생필품들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스타일 매뉴얼이나 패션 잡지”를 볼 시간도, 자원도 없지만 뭘 입어야 하는지 안다 하더라도 소용 없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피임을 할 때도 가난은 걸림돌이 된다. 먹던 피임약이 안 맞아 “피임약 브랜드나 피임 방법을 바”꿔도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지거나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식의 지옥이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 정기적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할 수 있”다면 임신을 하는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피임에는 돈이 많이 든다. 경구피임약 비용만이 아니다. “일터에 휴가를 내야 하고, 진료소를 오갈 자동차가 있어야 하며, 그 차에 넣을 기름값도 내야 한다”. 진료소는 있겠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진료소는 없을 수도 있고, 설사 있다 해도 피임은 지원하지 않을지 모른다”.

복지 혜택을 받으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지만 복지 혜택을 받기까지의 단계는 무척이나 복잡하다. 공무원들은 언제나 느리고 아무리 재촉해도 확답을 주지 않는다. 현명한 소비를 위해 무언가를 살 때부터 좋은 걸 사라고 할 수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좋은 품질의 물건은 처음 살 때 돈이” 들어서 안 사는 거다. 계속 망가질 싸구려 토스트기보다 3배 비싸지만 튼튼한 토스트기를 사는 게 득이 된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얼마나 자주 고장날 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금 가진 돈으로는 싸구려 토스트기밖에 못 산다. “돈을 아끼기 위해 사실은 돈이 더 드는 것이다”.

“가난한 것은 범죄가 아니다”

미국 최고의 SF작가가 된 옥타비아 버틀러는 가난했고, 흑인이었고, 여성이었다. 린다 티라도처럼 돈이 없어 치과를 가지 못해 치열이 엉망이라 말을 할 때면 입을 가렸다고 한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집 <<블러드 차일드(2016, 비채)>>에는 가난한 노동자로 살 때 경험을 살려 쓴 <넘어감> 이라는 작품이 있다. <넘어감> 에는 환각을 보는 사람, 술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작품 후기에 이렇게 썼다.

내가 끔찍하고 하찮은 일자리를 얻던 공장, 창고, 식품가공장, 사무실, 소매점에는 언제나 정말 괴상한 사람이 한두 명씩은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그 사람에 대해 알았다. (중략) 나는 그런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할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았다. 그런 끝도 없이 지루한 일자리들이라면 누구라도 미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와 같이 일한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나를 꽤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다.

린다 티라도와 옥타비아 버틀러 모두 날카롭고 툴툴거리는 사람들이다. 너무 오랫동안 가난해서 피곤하고 지쳐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끔찍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것이 그들의 삶이었다. 이들의 이야기가 미국만의 것은 아니다. 지난 해 우리나라 최저임금 미달자는 264만 명으로 임금노동자 7명 중 1명(13.7%) 꼴이었다. 2017년도 최저임금인 시간당 6470원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35만 2230원이지만 2014년 기준 ‘1인 가구의 월평균 생계비’는 155만 원이다. 3년 전임을 감안하면 최저 생계비는 더 올랐을 것이고, 2017년에는 노동자 7명 중 1명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삶조차 불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아침 첫차를 타고 일 나가는 사람들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다”. 40년 전에도, 지금도, 미국도, 한국도 마찬가지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며 소득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다. 가난이 대물림 되듯 재산 또한 대물림 된다. 지위와 취향 또한 대물림 된다. 사회는 이들을 차별한다. 은행은 가난한 동네에 지점을 내지 않고, 가난한 이들의 삶과 취향은 갈수록 피폐해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일부러 가난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가난은 “불편하고 피곤하며 무례하고 외”롭다. 가난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고, 멸시 받아도 되는 존재로 만든다. 가난은 질기고 강하게 사람들의 삶에 들러붙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단 한번의 기회를 희망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계획할 수는 없다”. 이 가난만큼이나 힘든 게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가난을 이해하지 못 할 수는 있지만, 가난이 가난한 이들만의 잘못이 아님을 인지할 필요는 있다. 린다 티라도의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지금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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