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안도 학교 밖도
어디나 전쟁터
너는 너무 조용하고, “진짜” 영문학을 하는게 아니고, 학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백인들의 인종차별과 가스라이팅에도 불구하고, 나는 박사과정 첫 해를 살아남았다. 학교 바깥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조차 편안히 쉬지 못하고 최악의 집주인과 하우스메이트로부터 살아남아야 했다.
보스턴으로 이사 간 첫 해, 한국에 체류 중인 채로 집을 구하느라 지역 평균보다 높은 렌트를 감수하고도 계약한 집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생겼다. 알고 보니 지역에서 악명이 높았던 집주인은 젊은 여자 셋인 나와 룸메이트들을 끊임없이 무시했다. 이사 당일까지 바로 윗집에서 진행 중이던 공사가 끝나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이사한 후에도 끊임없이 시설 문제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예컨대, 이사 들어가던 날 전혀 청소가 되어있지 않아 내가 항의하자, 그는 되려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위협을 했다. 나와 룸메이트들은 1년 내내 윗집 공사 때문에 룸메이트의 방 벽이 허물어지고, 바닥 장판이 들려 지하실에서 벌레가 기어나오는데도 그 집에 살아야했다. 예정보다 공사가 세 달 늦게 끝난 윗집의 하우스메이트들이 입주했을 때, 집주인이 우리에게 이삿날을 고지하지 않는 바람에, 한밤중에 들린 소음에 놀라 경찰을 부른 일도 있었다(우리 동네는 가택침입이 종종 일어났다).
잠재적 가해자들
그렇게 입주한 윗집 하우스메이트들은 요란하게 파티를 벌이고,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고, 우리가 공유하는 거실 공간에서 맥주 마시기를 좋아하는 건장한 백인 남자들이었다. 운이 좋지 않은 날이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공유 공간에서 술을 마시는 그들과 마주쳤다.
그들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또래였다면 조금이라도 덜 무서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삼십대의 건장한 시스젠더 헤테로 백인 남자들이었다. 나는 멀리서부터 온 몸을 훑는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현관으로 다가가, 넓지도 않은 현관에서, 나보다 압도적으로 큰 세명의 백인 남자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야했다. 날숨에 술 냄새가 느껴질 만큼 좁은 공유 공간에서, 그들과 어깨를 맞댄 채 스몰 토크를 하고,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기 까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육체적 위해를 가한 적이 없다. 하지만 위협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길 거리에서 나를 캣콜링하고 캠퍼스에서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자들과 똑같이 생긴 이들과 한 지붕 아래 있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집에서조차 마음을 놓지 못하고 일어날지도 모르는 공격에 대비했다. 한시도 쉬지않고 늘 누군가 정수리부터 내 머리채를 틀어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밤마다 이를 악물고 자는 바람에 나는 악관절이 생겼다.
살아남았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다. 1년이 지나 집 계약이 끝나 마침내 이사를 했다. 와중에 구질구질하던 애인과 이별도 했다. 그렇게 박사과정 첫 해를 살아남았다.
굳이 “살아남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우리 학교의 박사과정 규정 상 첫 해에 B를 3개 이상 받으면 대학원 교수회의 결과에 따라 프로그램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3년차에는 두 시간짜리 구술시험을 본다. 이 시험 자체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무수히 많은 학생들이 이 과정까지 버티지 못하거나, 이 과정을 통과한 후에도 떨어져 나간다. 미국의 박사과정은 이렇게 끊임없이 학생들을 검열하고 솎아내며, 거기서 살아남은 이들만이 학위를 받는다.
우리 프로그램에서는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은 흑인 여자가 프로그램 전체 역사를 통틀어 5명 뿐이고, 학위를 받은 흑인 남자나 아시안 남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은 박사과정이 구조적으로 얼마나 인종차별적이고 백인중심적인지 보여준다(우리 프로그램의 경우 졸업생 목록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대학원생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비공식적인 기록이다). 동시에, 유색인종으로써 백인이 주류인 학문에 진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지 보여주기도 한다.
빅토리아 시기,
영국 제국과 소설의 관계
박사과정 2년 차가 되면서 내 아래 학번이 입학했는데, 11명 중 9명이 백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 모두와 빅토리안 문학 세미나를 듣게 되었다. 전에도 언급했다시피, 나는 원래 이 시대의 문학을 전공할 생각이었을 정도로 빅토리안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교수가 입력한 세미나 개요에 따르면, 이 세미나는 ‘영국 제국과 소설의 관계’에 대한 논의를 할 예정이라 했다. 1년간 실망에 실망을 거듭하고도 나는 아주 조금 기대를 하고 말았다. ‘제국과 소설의 관계’는 탈식민주의 문학론에서 주로 사용하는 수사법과 키워드였기 때문에.
흔히들 빅토리아 시기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시기인1837-1901을 일컫는다. 종종 ‘19세기 영국’과 동의어처럼 쓰인다)를 영국 소설의 부흥기로 꼽는다. 한국의 독자에게도 익숙한 찰스 디킨슨, 브론테 자매, 토마스 하디, 그리고 조지 엘리엇 등 많은 영국 작가들이 이 시기에 작품 활동을 했다.
한 때 지구 면적의 약 25%를 점령, 통치했던 영국 제국의 부흥기와 소설이라는 장르의 부흥기가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때문에 탈식민주의 문학은 필수적으로 제국과 문학, 특히 소설과의 관계를 다룬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언급하듯, 유럽 사실주의 소설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사회 전체가 자국이 국외에서 벌이는 식민주의적 침략과 팽창에 심정적으로 가담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영국 소설은 ‘영국 문학’이라는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문화와 국가정체성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이국적이고 미개한 외국’을 창조해 내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제인 에어>와
제국주의 강화하기
이러한 빅토리안 시기에 가장 부흥했던 소설 장르가 빌둥스로만(bildungsroman), 즉 성장 소설인 점은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디킨슨이나 브론테를 비롯한 19세기 영국 작가들의 작품에 고아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학자 리사 로우가 <이민법Immigrant Acts>에서 설명하듯 빌둥스로만은 어리고, 미숙하며, 불확실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성숙하고 문명화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서술하는데, 궁극적으로 주인공이 사회질서에 성공적으로 편입할 때 그 목적을 달성한다. 즉, 빅토리안 소설의 주인공 고아들이 사회화를 통해 ‘미개함’이나 ‘야만성’과 멀어지고, 누구보다 영국적이고 백인스러운 개인으로 성장할 때 ‘영국스러움’ 또한 공고해지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성장 소설 중 하나인 <제인 에어>의 경우, 6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학대 받던 고아인 제인 에어가 가정교사가 되어 에드워드 로체스터와 사랑에 빠지고, 여러 곤경(로체스터가 사실 다락에 가둔 부인이 있다는)을 거쳐 결국 그와 결혼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가야트리 스피박이 <세 여성의 텍스트와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보여주듯, 제인은 게이츠필드 저택-로우드 학교-손필드 저택-모어 하우스-펀딘 저택과 같이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거쳐, 소설의 끝에 이르러 마침내 로체스터와 합법적으로 결혼하고, 남자아이를 낳아 이상적인 정상 가족을 꾸린다.
로체스터가 다락방에 가두는 “미치광이 부인” 버사 메이슨이 영국의 식민지 서인도 제도 출신이고, 로체스터 가문의 부가 식민지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나, 후에 제인의 경제적 독립을 가능케하는 외삼촌의 부 또한 식민지에서 유래한다는 점은 영국 제국과 소설의 긴밀함을 보여준다. 영국의 가정은, 그리고 더 나아가 영국 제국은 식민지에서 탈취한 자원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첫 수업 직전까지, 나는 어쩌면 우리가 이런 식으로 영국 제국의 식민주의 역사, 인종 담론, 그리고 반식민주의 문학의 미학과 정치학에 대해 더 심도있게 얘기할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했다.
그러나 수업 첫 날 받은 강의 계획서에 명시된 작가들은 전부 백인이었다. 강의계획서에 내가 앞서 인용한 스피박의 논문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세미나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교수J는(지난 화의 J와는 다른 사람이다) 영국 제국이나 탈식민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했다. 그는 한 학기 내내 영국 소설과 프랑스 소설의 전형인 조지 엘리엇의 <미들 마치>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기준으로 다른 소설들을 읽겠다고 했다. 빅토리안 문학을 읽는데 플로베르가 대체 무슨 상관인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영문학을 공부하러 가서 백인성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15명이 듣는 수업에 백인이 아닌 것은 여전히 나와 A, 그리고 H 뿐이었다. 지난 화에 설명한 바와 같이, 내 주장과 해석을 무시하거나 곡해하는 백인들의 헛소리에 시달릴 대로 시달렸던 나는 매 주 읽는 텍스트들에 대해 한 두 문단 정도의 글을 써 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빅토리안 소설은 엄청난 장편이다. 평균 500페이지가 되는 소설을 읽고, 보통 20-30페이지 정도가 되는 논문을 두 편 읽는 것이 수업 준비의 기본인데, 나는 수업 중에 꺼내고 싶은 주제에 대해 따로 조사까지 했다. 내 주장의 근거가 충분하도록 남들의 두배로 준비하고, 불시에 날아올 인종차별(혹은 성차별, 혹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응할 준비를 하다 보니 나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게다가 매 주 교수의 해석에 반하거나, 영국의 식민지나 노예제도 등 백인학생들이 결코 꺼내지 않을 주제들에 대해 매 번 의견을 내놓은 것은 심적으로 너무 힘겨운 일이었다. 내가 입을 열 때면 “쟤는 또 식민주의 얘기야” 하는 눈치를 받았다. 백인 남자들이 매주 지치지도 않고 “그로테스크”니 “기괴함의 미학”이니 하는 추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19세기 영국을 다룬 소설에서 기괴하고 추악한 것을 이야기하는데 식민주의적 침략과 착취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니, 나로서는 그들이 더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매 주 조금씩 더 노력했지만,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지쳐갔다. A나 H와 같은 다른 아시안 여성들이 한 공간에 있어, 서로의 이야기에 반응하고 토론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다크호스 데이빗
한국이든 미국이든, 수업을 듣다 보면 꼭 다크호스가 등장한다. 입을 열 때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거나, 누구도 동의하지 못하는 얘기를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꺼낸 말에는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고(또는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에 반응이 불가능하다), 나중에는 이 사람이 말하기 시작하면 다들 몸을 들썩이며 딴 짓을 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있다. 빅토리안 문학 세미나에도 그런 다크호스가 하나 있었다. 데이빗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존 스미스 다음으로 흔한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그냥 실명을 등장시켰다.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가 대학원으로 돌아온 데이빗은 자신이 나이도, 사회 경험도 많다는 점을 10분에 한번씩 안내방송 해야하는 사람이었다. 미국 동부에서 나고 자란 30대 백인 남자인 그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내자마자 내게 ‘킴취’의 효능에 대해 백인스플레인하기 시작했다. 데이빗보다 오래 박사과정에 있었던 백인 여자들에게는 학계에 대해 맨스플레인을 했다.
세미나를 듣는 모든 이들에게 안타깝게도, 풀 패키지 다크호스였던 데이빗은 내가 앞서 언급한 스피박의 논문에 대한 발제를 맡게 되었다. 인종을 염두에 두지않는 (백인) 페미니스트 문학비평은 결국 제국주의의 공리를 재생산한다는 것이 그 논문의 주요 골지로, 스피박은 백인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여성 해방 서사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제인 에어>가 제국주의적 텍스트로 작동하는 복합성은 무시하고 은폐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주어진 발제 시간 20분 동안 데이빗은 스피박의 주장이나 글에 대해 이야기 하기는 커녕,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의 맑시즘에 대해 발표했다. 알튀세는 스피박의 논문 다섯번째 각주에 한 줄 언급 될 뿐이다. 문학비평이 너무 백인 중심적이라 영국 제국주의와 소설의 관계에 대해 층위 있는 분석에 실패한다는 주장을 하는 인도계 여성학자에 대해 발표해야 할 백인 남자가, 발표 시간을 전부 백인 남성 학자에게 할애한 것이다. 알튀세와 맑시즘 얘기에 심취한 나머지, <제인 에어> 얘기는 거의 하지않은 데다가, 발표 실력조차 너무 형편없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는 것도 고역이었다. 단어 하나하나는 이해가 되는데, 그 단어가 모인 문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신묘한 발표였다.
데이빗의 발표를 들을수록 화가 났다. 일관된 논리도 주장도 없이 떠들며 모두의 시간을 낭비했다는 점과 별개로, 그가 스피박에 대해 발표하면서 스피박을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대신 백인 남자의 이론을 우선시한 것은 성차별이고 인종차별이었다. 나와 A, H 모두 데이빗에게 대체 왜 알튀세에 대해 발표했는지 질문을 했다. 공격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보여서는 안되기에 다들 한없이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로 질문했다. 정작 데이빗은 웅앵웅 초키포키하며 답을 피하더니, 이내 자신은 인종 담론, 특히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부스럭거리고 딴청 부리던 다른 백인 학생들까지 멈칫했다. 교실의 경직된 기류를 뒤늦게 읽었는지, 데이빗은 누가 보태기도 전에 방어적으로 돌변했다. 그러더니 제국주의나 노예제도 모두 자본주의의 논리에 의해 이윤을 추구하며 발생한 사건들이고, 우리가 지금에 이르러 소급적으로 인종차별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달리 말하자면, 제국주의/노예제도는 인종차별과 무관하므로, 자신은 스피박의 주장에 집중하기보다는 (본인이 관심있는) 알튀세르의 맑시즘에 대해 발표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을 마친 데이빗의 표정이 너무 득의양양해서, 나는 그에게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던지고 싶었다. 자신의 말이 남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혹은 알기에 더욱 성취감을 느끼는 그에게 육체적 고통이라도 가하고 싶었다.그는 말 한마디로 식민주의/제국주의를 현재와 단절된 과거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으로, 인종차별은 하나의 ‘프레임’으로 축소시키고 변질시켰다.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을 그렇게 쉽게 부정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백인의 가장 큰 특권이라는 것을 그는 영영 모를 것이다.
침묵이 더 큰 폭력일 때
하지만 그 순간 내게 가장 폭력적으로 느껴진 것은 데이빗이 아닌 모두의 침묵이었다. 나와 A가 발끈해서 입을 열려는 찰나에 교수J는 논쟁이 너무 과열되고 있으니 “넘어가자”며 이야기를 일축시켰다. 나나 A,그리고 H가 데이빗의 발표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동안 다른 11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친구들’이 침묵하는 이유가 데이빗과 동의해서인지, 이 주제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끔찍한 건 똑같았다. 우리는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서로가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팔꿈치가 스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 사실이 너무 힘겨웠다.
세 시간 동안 세미나를 견디고 건물을 나서는데, 수업을 같이 들었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나를 둘러싼 채 “용기 있는 발언”과 “중요한 지적”을 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내게 감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은 데이빗에게 동의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나에게 홍보하고, 침묵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려 한 것이다.
교수 J는 스피박의 논문을 강의계획서에 포함시켰으면서, 눈앞에서 “제국주의의 공리가 재생산”되는 것을 보고도 침묵했다. 한 학기 내내 수업 개요에 중점적으로 언급된 ‘영국 제국과 소설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결국 아시안 여성인 나와 A, 그리고 H였다. 그 누구도 하지 않아서 우리가 할 수 밖에 없었다. 백인 교수나 백인 학생이 침묵할 때, 결국 학문적 노동과 감정 노동은 오롯이 유색인종 학생의 몫이다.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학문과 캠퍼스는 이렇게 유색인종 학자를 소비하고 착취하며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