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인 위험과 모델 마이너리티 신화
앞서 이야기했던 여러 판에 박은 듯한 아시안 여성에 대한 전형화에 대해, ‘어차피 인간의 공감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다소 기분이 상해도 굳이 예민하게 하나하나 반응하는 것보다는 그냥 웃고 넘기는 게 낫지 않느냐’고만 할 수가 없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자기 주장이 없으며, ‘여성스럽고', 갈등을 최대한 피한다는 등의 폭력적인 전형화가 아시안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실제 범죄의 증가에 일조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아시안 여성은 상대적으로 뒷탈 날 일이 적은 ‘만만한' 대상으로 보여진다는 얘기다. 미국 내 41-61%의 아시안 여성과 태평양 섬 출신 여성들이 신체적, 성적인 폭력을 경험한 바 있으며 아시안 아메리칸 여성 열 중 하나가 자신의 파트너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다. 여기서 국적과 민족별로 자세히 들어가면 이 숫자는 크게 증가하는데, 56%의 필리핀 여성과 64%의 인도&파키스탄 여성이 성폭력을 경험한 바 있다고 보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서구 사회 내 아시안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전면적으로 공론화되지 않을까? 이걸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시안 여성에 대한 전형화를 이루는 요소 중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모델 마이너리티'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 사회에서 아시안계는 흔히 모범적 소수자, ‘모델 마이너리티’로 불린다. 아시안들이 성실하게 일을 하고, 또 교육 수준도 높아 윤택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감으로써 다른 소수계들에게 모범이 되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다. 아시안을 일견 추켜세우는 듯한 이런 전형화는 실상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또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다. 모든 아시안을 ‘성공한 모범적인 소수'라는 하나의 고정된 틀에 넣음으로써 실제로 아시안이 맞닥뜨리는 수많은 차별과 어려움을 은폐하는데 크게 일조하기 때문이다. 아시안은 다른 소수 인종의 ‘모범'이니만큼 항상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고, 바람직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하며, 또 상대적으로 ‘인종차별 같은 건 겪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 역시 서구사회와 때로는 같은 아시안 커뮤니티에 의해서 꾸준히 축소되고 숨겨진다. 같은 아시안 중에서도 민족별로 빈곤과 교육 문제 등에서 편차가 크고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것이 실상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라는 뜻에서 ‘모델 마이너리티 신화(model minority myth)’라는 단어가 이 개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쓰인다.
허핑턴포스트에 “아시안 여성을 해치고자 인종차별과 강간 문화는 어떻게 결합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한 Rachel Kuo는 이러한 모델 마이너리티 신화가 아시안 여성이 자신이 당하는 차별과 억압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델 마이너리티 신화는 정보 접근의 불평등을 지워내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인종 간 정의를 막는 내러티브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인종 예외주의의 “모범"이어야 한다면, 폭력과 같은 문제들을 우리가 직면하는게 가능키나 하겠는가? 어떻게 감히 우리가 고통이나 비통함 같은 감정을 가질 수나 있겠는가? (...)
만약 우리가 (*흔한 아시안 여성에 대한 전형화대로) 귀엽고 연약하고 섬세하다면, 우리는 반드시 더 많은 보호를 필요로 한다. 또는 우리가 냉정하고, 비정하고, 공감 능력이 없는 드래곤 레이디(아시안 여성에 대한 또다른 전형화로, 사납고 냉혹하며 미스테리한, 감정이 없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라면 우리는 반드시 ‘길들여' 져야 할 것이다. 뭐가 되었든 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 의사, 그리고 안전의 주체라는 점을 부정당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러한 페티시와 전형화는 강간문화에 일조함으로써 훨씬 더 심각하고 폭력적인 결과를 낳는다.”
또다른 ‘코르셋'
시간이 갈수록 국경이 가진 영향력과 구속은 줄어들고 있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인종 간 교제 역시 늘어만 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시안 여성에 대한 전형화와 여성혐오가 없는 곳은 없다. 그게 내가 지난 10년 간 수십 개의 도시에서 일하고 살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이다.
아시안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적인 전형화를 통해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를 동시에 느낄 때마다 매번 괴로웠고, 시간이 지나도 무뎌지기는 커녕 갈수록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전형적인 아시안 여성'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친 적도 있다. 과거 한 사교 모임에서 참가자 중 아시안 여성은 나를 포함해서 단 두 명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여성은 몇몇 주제들로 논쟁이 오가는 동안 한 번도 자신의 주장을 개진하지 않고 모호한 답변 또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모임이 거의 파할 무렵, 그 여성이 자리를 뜨자 남녀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몇몇 모여 그 여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 역시 OO나라 현지 여자라 자기 의견이 없다, 왜 자기 생각도 제대로 이야기 못 하냐 등, 당사자가 자리를 뜨자마자 모양새만 점잔을 갖춘 채로, ‘아시안 문화에 대한 분석과 이해' 라는 탈을 쓴 채로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그 여성의 인종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성격이 그럴 수도 있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거의 트라우마에 가깝다시피 남겨지면서 내가 상당한 시간 그 ‘전형화'의 체크리스트에 하나라도 해당하지 않도록 수만 가지 노력을 하는 엉뚱한 결과에 일조했다. 체형이 말랐으니 운동을 해서 근육을 조금이라도 붙이고, 숏커트를 유지하고, ‘하얀 피부'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니 태닝을 하고, 항상 턱을 들고, 최대한 편한 복장을 하고, 웃지 않고, 화장은 필요할 때가 아니면 하지 않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말투와 행동까지 나 스스로 강제하는 것들이 생기고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리스트가 점점 늘어나면서, 오히려 또 다른 모양의 억압을 스스로에게 가했던 거다. 그리고 웃기게도, 이건 실제로 다양한 방면에서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나의 일과 삶에 상당한 도움을 가져다 주었다. 왜 사회적으로든 뭐로든 소위 ‘성공한’ 여성들이 자신을 오히려 남성에 가깝게 정체화하는지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내 경우는 비-아시안 여성에 가깝게 정체화하고자 하는 자기혐오가 섞인 시도였던 셈이다.
이런 현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도 화살이 가게 했는데, 국외에서 일하고 살면서 저런 ‘유약한' 아시안 여성의 전형화에 해당하는 여성을 목격할 때 그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촉발시키는 상황으로까지 나아갔다. ‘저들이 저렇게 행동을 하니까, 같은 아시안 여성인 나까지 업무적으로나 개인 생활, 사교 영역에까지 전반에 이르러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하고 이건 실제로 내 삶에도, 심지어 연애에도 지대한 손해를 끼친다. 그러니까, 밉다’라는 원인과 결과, 그리고 선후관계도 뒤죽박죽 된 해로운 사고의 흐름이었다.
한 예로, 한 중남미 국가에 머무를 때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친척 동생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휴가를 함께 보낸 일이 있었다. 당시 내가 매일 같이 오가던 동네 길을 그 동생과 걷자마자 우리는 그 즉시 수많은 성희롱, 캣콜링의 타겟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 이유를 나와는 다르게, 즉 ‘전형적인 아시안 여성 관광객'처럼 더운 날씨에 긴 생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하얀 얼굴 화장과 틴트로 물들인 입술, 현지인과 두드러지게 차이나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여리여리한’ 사촌의 모습과 행동에서 찾아 크게 화를 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수준으로 캣콜링을 당해 충격을 당한 어린 동생 앞에서 말이다. 익명이 아니었다면 차마 드러내지 못할, 끔찍한 흑역사다.
자구책, 공부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혐오' 하나만 놓고 보면 많은 서구 국가가 한국보다는, 특히 제도적으로나 사회적인 합의와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 한정해서는 말도 안 되게 낫다. 그게 더욱 환멸이 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국외 생활 처음 얼마간은 전혀 이런 부분에 대한 인지가 없었고, 스트레스도 없었다. 그러다 현실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매일같이 논쟁하고(여기서 조금이라도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감정적이 되면 이번에는 만국 공통으로 ‘여성'이라 감정적이라는 덫에 걸린다. ‘나’에 대한 이야기이니만큼 감정이입을 하지 않는 게 매우 어려운 상황이고, 이 논쟁의 시작점부터가 평등하지 않은 자리에서 시작하는데도 상대는 그걸 인지조차 하길 거부한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끝까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해야만 동등한 ‘사람'으로 대해질 수 있었다.
즉 자기주장을 내세움으로써 ‘아시안'이라는 뜀틀을 뛰어 넘으면 그다음에는 ‘여성'이라는 뜀틀이 기다리고 있고, 이 모두를 벗어나야면 겨우 대화라도 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길거리에서 캣콜링이라도 당할라치면 ‘내가 지금 이렇게 한번 지랄을 떨어 놓으면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이놈은 다시는 다른 아시안 여성은 쉽게 못 건드리겠지’라는 생각으로 두 배 세 배로 강하게 항의하고 때로는 사과를 받아냈다. 아시안 여성을 찾아다니는 지인이 눈에 띄면 눈에 불을 켜고 ‘불순한' 의도는 없는지, ‘걸리기만 걸려라'는 느낌으로 지켜보다가 소위 ‘건수'가 걸리면 쥐잡듯이 몰아붙였다. 그리고 몇 년 되지 않아 지쳐 나가떨어졌다. 결국 다 다른 개인일 뿐인데, 굳이 ‘아시안', 그리고 ‘여성'이라는 군집에 내가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서 괜한 고생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울화가 북받쳐서 매일 같이 저렇게 지내다가, 힘이 빠지자 그다음부터는 무기력과 체념이 시작되었다. 올해 출간된 책 ‘Why I'm No Longer Talking to White People About Race (by Reni Eddo-Lodge)’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오는데, 당시 내 상태가 저랬다.
“그들은 한 번도 백인이라는 데서 가지게 되는 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점을 희미하게라도 상기시키려는 시도를 곧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해석한다.(...)
이건 감정적인 단절이고,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왜냐면 그들은 유색인종을 그들의 것만큼 가치 있는 생각과 감정을 가진, 진정으로 동등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이 문제를 백인들에게 상기시켰을 때 그들이 보이는 연속적인 부인들, 어색한 재주넘기 그리고 정신적인 곡예 때문에, 나는 이제 인종 문제에 대해서 백인들과 더이상 이야기할 수가 없다. 누가 타인을 비용 삼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적 시스템에 대해 알고 싶어 하겠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했기에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나는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인종차별의 역사(Une histoire du racisme by Christian Delacampagne)', ‘황인종의 탄생(Becoming Yellow by Michael Keevak)', 서구 페미니즘의 차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시선을 비판하는 ‘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彼女の「正しい」名前とは何か―第三世界フェミニズムの思想 by 岡 真理)’ 같은 인류/사회학 책들이 그 시작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싶었다. NCBI의 관련 저널을 필두로 젠더 및 인종별 공감 능력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도 찾아 읽었다. 바늘로 피부를 찌르는 영상을 피실험자들에게 보여줄 때, 영상에 등장하는 피부가 백인의 것이면 흑인일 때보다 피실험자가 공감하는 고통의 양이 대폭 증가했다는 내용부터, 백인 남성의 공감 능력 부족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읽었다. 아무것도 모를 때에 비해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 조금이나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만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백인, 그중에서도 백인 남성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이제는 ‘입증’까지 된 마당에,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바로 이들인 지금 (미국 인구의 30% 가량인 백인 남성이 미국 의회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겠는가. 내 연애조차 제대로 핸들링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차별은 존재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에는 결국 한계가 존재하는 거라면, 우리는 어디까지 타협하고 어디까지 나를 지켜내고 어디까지 나서서 싸워야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
최근 우연히 이런 구절을 읽었다.
처음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페미니스트’든 모두, 자기 혼자 ‘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선구자 의식과 동시에 피해 의식과 울분을 갖기 쉽다. 여성의 경험은 공유되지 않고 여성의 역사는 전수되지 않기 때문이다.
- 정희진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97p)
입을 열기 시작하니 주변에 같은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눠주는 아시안 여성들이 넘쳐 났다. 관련해서 갈등이나 문제가 있을 때도 혼자 끙끙대기보다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길게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일처럼, 자기 일로 바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음을 발견했다. 다들 뾰족한 수는 없어도 각자의 경험을 토대로 한 조언을 아낌없이 서로 나누었다.
열린 국경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장점 하나가 있다. 전 세계를 무대로 미디어, 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때로는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수많은 여성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출신 친구로부터는 ‘헌팅 그라운드' (미국 대학교 캠퍼스에서 수없이 발생하고 수없이 묻혀지는 강간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필리핀 출신 친구로부터는 ‘파더 피겨스’ (73세의 아버지가 23세의 필리핀 여성과 결혼하면서 발생하는 갈등을 딸의 입장에서 담담히 카메라에 담은 캐나다 출신 다큐멘터리 메이커 이야기) 같은 다큐멘터리들을 추천 받았고, 나는 알 자지라가 한국의 강남역 살인사건과 이로 이해 촉발된 다양한 일들을 영문으로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를 친구들에게 추천했다. 한국에서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가 열렸을 때, 당시 사진과 이야기들을 시위의 시발점이었던 폴란드 출신의 친구와도 나누었다. 당시 폴란드에서 일어난 시위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던 그 친구는 기쁨을 넘어서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인도에서 지금도 수많은 여성의 살해 원인이 되고 있는 다우리(결혼 지참금)와 사티(남성이 사망할 때 배우자인 여성을 순장시키는 풍습) 같은, 심각한 제 3세계 여성 문제의 해결책 촉구를 위한 청원 운동 등에도 힘이 닿는 만큼 참여를 시작했다. ‘BBC 인터뷰 내니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각지에 사는 아시안 여성 지인들과 다같이 분노하다가, 각자 자신의 삶에서 맞닥뜨리는 ‘멍청한' 백인 남성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었다. 혼자 울고 웃을 때에 비해 훨씬 더 ‘살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글을 통해 스스로 많은 정리가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테라피와도 같은 과정이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의 힘과 용기가 되어서 그렇게 오늘 하루도, 내일 하루도 살아 나가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