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시즌 투 1. 캣콜링

알다쿠바여행아시안 여성

떼아모 쿠바 시즌 투 1. 캣콜링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주의! 본 회차의 일러스트는 독자의 뒷목 당김을 방지하기 위해 그려졌으므로, 캣콜링과 무관합니다.

 

TNR이 필요한 도시, 아바나 

캣콜링(catcalling)이라는 단어를 들어봤는가? 캣콜링이란, 남성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불특정 여성을 향해 휘파람 소리를 내거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들이 여성에게 보내는 "헤이, 베이비", "예쁜아, 나 좀 봐줘!" 등의 말들은 결코 칭찬이 아니다. 명백한 희롱이다. 당해 본 여성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많이 불쾌하다. 

여성 여행자들 사이에 악질 캣콜링으로 유명한 국가들을 꼽자면 프랑스, 이집트, 스리랑카 그리고 안타깝게도 내가 사랑하는 나라 쿠바를 꼽을 수 있겠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구 시가지를 거닐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캣콜링을 경험하게 된다. 

말레꼰의 캣콜러들

쿠바를 드나들었던 초창기의 나는 도가 지나친 캣콜링의 중심에 서있었다. 지금은 한국인 여행자가 쿠바 거리에서 많이 보이지만, 2010년 초반에만 해도 동양인 여행자는 매우 희귀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묵었던 까사는 여행자 거리인 오비스포(obispo) 주변이었기 때문에 외출만 했다 하면 캣콜링에 시달려야 했다. 

그 시절에는 아바나 구시가지에 체류하는 동안 캣콜링에 질려 아바나를 등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여성 여행자들도 더러 있었다. 또한 쿠바를 여행했던 일부 여성 여행자들 중 캣콜링에 의한 깊은 '빡침' 때문에 쿠바를 안좋게 기억하는 이들도 많았었다. 

나의 사랑 아바나가 이들로 인해 이미지가 안좋아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악질 캣콜러의 더이상의 번식을 막기 위해 TNR이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캣콜러에게 당당히 맞서기로 했다. 

캣콜러 vs 나오미 

일러스트 이민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해발 600m의 높이를 지닌 봉의산이라는 산자락에 위치해있었다. 동선 상 나는 학교 정문을 통해 등교해야만 했다. 학교 정문까지는 언덕진 좁은 길을 30분 가량 걸어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꺾어진 골목의 귀퉁이에 언젠가부터 나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바바리맨이었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깜짝 놀라 고함을 지르며 그 높은 언덕길을 단숨에 달려 올라갔었다. 그는 매우 흡족해했다. 멀리 도망 가 아래를 쳐다보니 환히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는 나를 기다렸다 튀어나왔다. 나는 놀라긴 했으나 점점 처음보다는 담담해졌다. 어느 순간 그의 등장에도 내가 시큰둥하자,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며칠 후 방심한 나의 틈을 겨냥해 등장한 그는 더 과감해져 있었다. 바바리맨에서 '곰돌이 푸'로 전향한 것이다. 티셔츠 한 장만 걸친 그는 실실 쪼개 웃으며 휘적휘적 걸어왔다. 마치 자고 일어나 거실에 물 마시러 가는 듯 터덜터덜 자연스럽게 내 앞에 섰다. 너무나 깜짝 놀랐지만 나는 이를 앙다물고 그에게 말했다.

"아저씨. 진짜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요. 면봉인 줄 알았네요. 팬티 입기 싫으시면 대신 꼬깔콘이라도 끼우세요. 보기 흉하니까."

다음날은 비가 왔다. 그는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꼬깔콘 드립에 '잔뜩 성난' 면봉과 함께 말이다.

"아오! 우산으로 확 그냥 찍어버릴까보다. 저리 가 쫌!! 귀찮아 죽겠네! "

소리를 빽 지르고 자연스럽게 등교했다. 그 뒤로 그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후문 쪽에 바바리맨이 출몰한다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지만, 정문으로 등교하는  나는 평화로운 등교를 할 수 있었다. 

쿠바에서도 캣콜링에 맞서기로 결심한 순간, 고교시절의 바바리맨이 떠올랐다. 그들은 바바리맨과 마찬가지로 관심종자이고, 캣콜링에 화를 내거나 나쁜 감정을 드러낼수록 더더욱 강도 높은 야유를 보냈다. 반대로 그들의 캣콜링에 같은 방식으로 매일 같이 대응하니, 점차 시들해지다가 언젠가부터 나를 부르지 않았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쿠바에서 겪었던 캣콜링의 종류와 그에 맞섰던 나만의 극약 처방에 대해 나열해볼까한다.

1. '중국성애자' 형

가장 기본형이다. 캣콜러들은 나를 향해 당당히 '치나(china)!'를 외친다.치나는 중국여자를 뜻하는 스페인어이다. 이건 뭐 하도 들어서 내 이름이 치나였던가 착오가 올 지경이었다. 너무 자주 불러대기에 대부분은 무시하였으나, 가끔 에너지가 넘치는 날은 캣콜러들과 말장난으로 응수하였다.

캣콜러 : 치나! 치니치니치니치니! 칭충총!
나오미 : (타이트한 옷과 선글라스 장착 후) 나 멕시코 여잔데?
캣콜러 : 메히까나! 메히꼬 메히꼬 메히꼬!
나오미 : (선글라스를 슬며시 내리며) 치나지롱~~~~~
캣콜러 : 치나! 치나!
나오미 : 내 나라는 키르키즈스탄이야. 따라해봐. 키.르.키.즈.스.탄. 키르키즈스탄.
캣콜러 : 키... 응...?
'남미 스타일' 나오미

2. 무아지경 무림고수 형

열심히 걷고 있는 내게 다가와 기합을 넣으며 성룡의 취권을 능가하는 무술 동작을 보여준다. 노력과 성의가 가상하니 그에 응당한 답변을 주도록한다. 주의할 점은 온 세상이 나를 주목할 것이기 때문에 창피하다는 것이다. 

캣콜러 : 흐아앗! 하앗! 아이아이아이! 칭! 충! 총!
나오미 : (사마귀권법 자세를 잡으며) 쩌뿨! 쩌뿨! 쩌뿨!! 다 죽여 버리겠다으!!!! 국! 기! 태권도! 태권!!!!!!!
캣콜러 : ....(할 말 잃음)

3. 강남스타일 형

내가 묵던 까사 골목에서 과일을 파는 남자였는데 나만 지나가면 "오빤깡남수따일 우우우!" 하고 노래를 열창하며 입술을 쪽쪽 댔다.

캣콜러 : 오빤 깡남쑤따일 우!우!우! 쪼옥!
나오미 : (신들린 듯 격렬하게 말춤을 땡겨준다) 나 춤춰줬으니까 망고 하나만 선물로 줘.
캣콜러 : 안돼. 돈 내고 가져 가.
나오미 : 강남 사람은 돈 많아. 선물 줘. 망고 싫으면 구아바 하나 줘.
캣콜러 : 안돼.......
나오미 : 그럼 바나나 하나 줘. 안돼? 

이렇게 몇 번 진상 떨었더니 아는 척도 안 하더라. 

쿠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채, 과일 트럭. 이 분은 캣콜러는 아니다.

4. 순정만화 많이봤음 형

골목 모퉁이에서 레스토랑 호객을 하던 남자. 길을 걸어가는 내 팔을 낚아채서 벽으로 밀치며 최대한 느끼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캣콜러 : 예쁜 치나, 나랑 데이트 할래~?
나오미 : 오늘은 살사 레슨 가야 되니까 다음에 가자.
캣콜러 : 예쁜 치나, 오늘은 시간 되니?
나오미 : 어이 멋진 쿠바노. 오늘도 안되겠어. 다음에 가자.
캣콜러 : 예쁜 치나, 하우 아 유?
나오미 : 멋진 쿠바노! 내가 한국말 가르쳐줄까? 따라해 봐. 여기 좋은 식당 있어요!
캣콜러 : 요기 요운식따 이써요!
나오미 : 옳지! 잘 하네!

결코 그가 원하는 '데이트'를 한 적은 없지만, 말하다 보니 애는 착해보여서 나중에 친구 먹었다.

친구가 된 '순정만화형' 캣콜러와 나오미

5. 말이 필요없는 악질 형.

나만 지나가면 쫒아다니며 괴롭히는 남자가 있었다. 

캣콜러 : 헤이! 헤이! (바짓가랑이를 손으로 쥐며 혀를 낼름거림)
나오미 : 뽈리씨아(policía, 경찰)!!!!!!!!!

이런 놈은 괜히 말 상대하고 감정 소비할 필요가 없다. 저 짓거리를 할 때마다 여행자거리에 500m마다 상주 중인 경찰의 도움을 받았다. 

화내면 나만 늙어요 

일러스트 이민

위의 여러가지 처단법 중 나오미가 여러분께 추천하는 캣콜러 처단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좋은 방법은 '무시'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혹자는 내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아니, 본인은 사마귀권법에 경찰에 난리가 났었으면서 결국 그냥 무시하라니. 그게 무슨 해결법입니까?

위의 몇 가지 예들은 내가 아바나 구시가지에 장기체류 했던 당시에 대처했던 방법들이다. 그 시절 나는 시간도 많고 매우 심심한 상태였다. 다시 말하자면 캣콜러들에게 나의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상황이 다르다. 모처럼의 소중한 휴가기간을 캣콜러들과의 입씨름에 낭비할 수는 없는 일. 정의감도 좋지만, 그들과 상대하다 보면 마찰이 생길 것이고 감정이 상하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결국 내가 쿠바를 여행하는 여성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다. 음악을 듣지 않아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걷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최근에는 구시가지를 갈 때 늘 O군과 함께였기에 캣콜링으로부터 해방된 지가 꽤 오래되었다. 보통 캣콜링을 하는 찌질이들은 건장한 이성과 함께 다니는 여성에겐 접근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전에 질리도록 겪어봤기에 이것이 얼마나 성가시고 화가 나는 일인지 잘 안다. 캣콜러에게 신경을 쓰고 성을 내면, 계속 그 성가심으로 인해 여행을 즐길 수 없고 미간에 주름도 생긴다. 도무지 캣콜러를 무시할 수 없고 귓전에서 앵앵 대는 모기만큼 성가셔 하는 성격이라면, 쿠바 여행은 나오미와 함께 떠날 것을 추천한다. 믿음직한 현지인 가드와 그의 어깨 넓이에 버금 가는 '한 성깔' 나오미가 캣콜러로부터 여러분을 안전히 지켜드릴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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