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홍콩

알다여행

혼자 가는 홍콩

이그리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같이 가는 여행이 좋았던 시절도 있다. 2인분(혹은 그 이상)의 메뉴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다는 것, 말 안 통하는 타국에서 한국어를 활용할 고정적인 상대가 있다는 것, 도미토리형 유스호스텔에 머무를 게 아닌 이상 숙박비를 쪼개어 부담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같이 가는 여행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생각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일정과 예산 범위를 맞추기 힘들다는 것, 여행의 취향을 맞추기 힘들다는 것, 서로 다른 생활패턴을 여행이랍시고 억지로 맞추기조차 힘들다는 것. 어쩌면 맞춰나갈 기력을 잃어버린 인간의 푸념일수도 있지만, 나는 점점 혼자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이 글은 혼자 여행을 다니는 다른 여행자를 위한 글이다. 가본 도시의 혼자 묵기 좋은 숙소와 혼자 다니기 좋은 장소, 음식점 등을 소개한다. 팁 공유 상시 환영. edit@thepin.ch.

어째서 홍콩

운항하는 항공기 편수가 많고,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면 2박 3일만 가도 좋고, 길다면 일주일을 꼬박 채워 다녀와도 좋은, 구석구석의 매력이 있는 도시다. 지하철과 버스가 무척 잘 되어 있어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혼자 먹는 사람을 눈치 주긴 커녕 신경도 안 쓰는 식당과 길거리 노점 분위기.

개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이스타항공, 제주항공과 같은 저가항공부터 아시아나, 대한항공 등 국적기까지 폭넓은 선택지가 있다. 가격의 차이는 수화물 수의 차이라고 이해하면 적당하다. 짐을 많이 부칠 예정이라면 국적기를 고르고 넉넉한 수화물 양을 확보하는 것도 좋지만, 가볍게 다녀올 거라면 저가항공도 무리가 없다. 비행 시간이 아주 긴 편도 아니라서 비좁은 좌석도 참을 만 하다. 한두 달 전에 예약하면 저가항공 기준 왕복 20만원 초반 선에서 티켓을 끊을 수 있다.

홍콩은 면적만 놓고 보면 그렇게 넓은 도시는 아니기 때문에 오래 머물면 할 게 없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여행지가 그렇듯 골목과 건물과 동네마다 재밌는 사연과 볼 거리가 넘친다. 처음으로 여행을 간다면 3박 4일을 추천해 본다. 

번쩍이는 건물의 뒷골목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그게 홍콩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홍콩은 연초에 가는 것을 권한다. 1-2월이 제일 좋고 3-4월도 나쁘지 않다. 특히 1월은 새해맞이 겸 복합 쇼핑몰 이곳저곳이 큰 폭으로 세일을 하기도 한다. 2월은 춘절을 반드시 피할 것. 5월만 돼도 홍콩은 아주, 정말, 아주 덥다. 그 시기의 비행기 티켓이 묘하게 다른 시기보다 싼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5월에서 8월 사이에 홍콩을 간다면 타 죽는다고 보는 게 맞다. 홍콩의 여름은 40도쯤은 가볍게 넘기며 심지어 습하다.

홍콩은 무척 발달한 국제금융도시라는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일상에서, 특히 밥과 차를 먹고 마실 때 대부분 현금으로 지불하는 게 속이 편한 곳이다. 카드가 되는 곳은 대형 쇼핑몰과 프랜차이즈 정도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야시장과 현지 식단에 가까운 식당을 많이 다닐 예정일수록 전체 예산에서 현금화해 환전해야 하는 비율을 생각보다 넉넉하게 잡자. 머릿속으로 후딱 대충의 환율을 계산하고 싶다면 환율 비율이 굉장히 애매하므로 (1HKD = 2019년 1월 기준으로 143원) 만 원 = 70HKD 정도라는 것만 기억해 두면 된다.

홍콩은 몇몇 군데 빼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지하철 노선도와 역 명, 버스 정류장 정도가 영어로 표시되어있는 정도다. 실생활에서는 간단한 영어 회화도 기대하지 말고 다녀야 한다. 광둥어를 모른다면 식사 메뉴를 고르거나 쇼핑할 때 힘들 수 있다. 구글 사진 번역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고수가 광둥어로 어떻게 표기되는지 정도만 알아두고 가도 큰 지뢰는 피할 수 있다. 

이동수단과 일정 짜기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홍콩은 모든 게 빠른 도시다. ‘모든 것’에는 심지어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도 포함된다. 어딜 가든 촘촘하고 긴밀하며 빽빽한데 교통수단까지 그렇다. 원하는 목적지 근처에 지하철 역이 있을 확률은 매우 높다. 이동 시간 역시, 디즈니랜드 등 교외에 가지 않는 한 얼마 걸리지 않는다. 도시 여행의 편리함을 누리자. 특히 홍콩의 교통카드인 옥토퍼스 카드는 지하철(MTR)부터 버스, 트램, 페리 등 홍콩을 오가는 거의 모든 교통수단을 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다. 

나는 대부분의 목적지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오가며 지리가 더 익숙해지고 나서는 지하철 한두 정거장 정도의 거리는 대로변을 따라 도보로 이동했다. 걷기엔 애매하고, 지하철 역 연결도 애매하다면 대로변을 따라 움직이는 노선의 버스에 도전했다. 거리가 보는 맛이 있기도 하고, 길찾기가 아주 어려운 편도 아니다. 목적지 간 이동 시간이 짧기 때문에 원한다면 하루에 정말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숙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홍콩을 관광 목적으로 간다면 숙소를 잡을 만한 목 좋은 동네는 역시 네이선 로드(Nathan Road)를 따라 위치한 지하철 역 부근이다. 홍콩의 거리라고 하면 흔히 연상하는 그 대로변이 바로 네이선 로드다. 홍콩의 번화가를 관통하는 대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침사추이(Tsim Sha Tsui)역 부근은 서울로 따지면 명동에 강남을 합친 느낌이다. 너무 부산스러운 게 싫다면 침사추이보다 조금 더 올라간, 하지만 여전히 지하철 노선 두 개 환승역이라 접근성이 좋은 프린스 에드워드(Prince Edward)나 몽콕(Mong Kok) 근처를 보는 것이 좋겠다.

숙소의 상태와 치안, 위치한 골목은 굉장히 복불복이다. 특히 홍콩의 경우 한 골목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확 바뀌는 곳이 많아, 정확한 위치를 예약 전까지 보여주지 않는 에어비앤비는 진심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더불어 주거목적으로 지은 관광지 주변의 건물들은 굉장히 낙후된 경우가 많아서 에어비앤비로 관광지 근처의 숙소를 예약했다가 구시대적인 화장실을 울며불며 견뎌야 하는 일도 있다. 눈물나는 경험담의 냄새가 난다면 무시해 주자.

예산이 허락한다면 지하철 역 근처의 호텔을 잡는 것이 가장 좋다. 여행자를 위한 무난한 호텔은 1박에 5~7만원 선에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참고로 지하철 역 근처이거나 번화가 주변이면 새벽에도 시장골목에서 술을 푸는 고성방가가 아주 잘 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소음에 예민하다면 도심에서 떨어진 숙소를 찾는 것이 좋다. 어차피 홍콩 시내는 거의 다 지하철로 연결이 되어 있어 조금 외곽에 숙소가 위치하고 있다고 해도 지하철 역 접근성만 좋으면 이동에도 문제가 없다. 

볼 것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야경. 단연코 야경. 취향 따라 야경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일정마다 매일 다른 방법으로 야경을 감상해 보기를 추천한다. 여러 방법을 시도할 생각이 없다면, 딱 한 가지로 페리를 꼽겠다. 구룡반도와 홍콩섬 사이를 오가는 공용 페리는 한 번에 2.9HKD밖에 들지 않는다. 해가 진 후 페리를 타보자. 야경 감상용이라면 페리에 타서 구간을 왕복해도 좋다. 강 위에서 보는 야경이 마음에 들었다면 사설 페리 투어를 구입하는 것도 괜찮다. 보통 라이트 쇼 피크 타임에 맞추어 배를 강 위에 띄워주고 아예 멈춰주는 식이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 시간. 4~5만원 정도가 들었으나 후회는 없었다. 침사추이 쪽에서 공용 페리를 타는 항구 근처, 스타의 거리를 따라 저녁 산책을 하는 것도 정말 좋다. 산책로를 따라 앉을 곳이 매우 많기 때문에 걷다 앉다 쉬엄쉬엄 강변을 따라 다니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를 것이다. 

사설 페리를 타고 선상에서 본 야경.

유명한 관광지는 굳이 꼽지 않아도 알 테니, 이름 없는 홍콩의 볼거리를 짚고 넘어갈까 한다. 홍콩의 뒷골목에 위치한 밤도깨비같은 시장과 노점들, 거리들.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야시장을 굳이 찾아갈 필요가 없다. 번잡하고 화려한 대로변에서 딱 두어 골목씩만 더 들어가면 그곳은 밤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이 된다. 아마 낮에 더워서 그런 걸까? 홍콩 사람들은 밤에 더 부쩍 활발해 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굳이 뭔가를 사지 않아도 좋다. 거리를 따라 쭉 걸어다니며 활기찬 풍경을 구경만 해도 재밌다.

홍콩의 골목.

일정을 여유롭게 잡은 여행자라면 중간에 1박 2일 정도를 할애해 마카오에 다녀오는 것도 좋다. 마카오는 홍콩과 또 다른 멋이 그득한 곳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홍콩의 도심과 구룡반도 구경을 워낙 좋아해 길게 가는 홍콩 여행에서도 마카오를 가본 적이 없으니 언급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혹은 홍콩에서 흔히 관광 코스로 들리는 구룡반도와 센트럴, 완차이 등지로부터 벗어나서 홍콩섬의 외곽에 도전해 봐도 전혀 다른 홍콩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홍콩섬의 외곽에는 아주 작은 섬들이 있고 대부분 산 넘고 강 넘어 닿는 곳이기 때문에 도심과 분위기가 완벽하게 다르다. 

먹을 것

홍콩은 홍콩식, 중국식, 영국식 차 문화를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식사 때 당연한 듯 곁들여져 나오는 뜨끈한 자스민 차부터 시작해 홍콩식 밀크티인 나이차, 영국의 애프터눈 티까지 일상의 면면에 차를 마시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차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위해 찻집들을 찾아다녀도 좋고, 식사에 곁들여져 나오는 메뉴로 차를 골라도 좋다. 전문적인 찻집이 아니더라도 식사와 함께 나오는 차의 맛조차 실패하기가 힘들다. 곁들여 먹을 거라면 나이차(奶茶, 홍콩식 밀크티)나 랭차(檸茶, 레몬홍차) 정도가 무난한 선택.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또, 홍콩은 언제 어디서나 혼자 밥을 먹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는 곳이다. 아침 일찍부터 여는 죽집, 딤섬집과 맥도날드, KFC를 비롯해 차찬탱과 길거리 노점들까지 혼자 먹을 수 있는 자리가 당연하게 있고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사람들도 이미 많다. 대부분의 홍콩식 식당은 아주 큰 원탁이 여러 개 있는 식인데 인원수에 따라 빈 자리에 사람을 빼곡하게 끼워앉히는 식이다. 합석에 거부감이 있다면 여행의 피로도가 높아질 수 있는 점 주의. 합석을 피하고 싶다면 대부분의 홍콩식 식당을 건너뛰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몇 군데의 특정한 가게를 추천하기보다는 홍콩에서 앉아 먹어 봐야 하는 거리와 식당의 유형을 추천해 보고 싶다. 걸어다니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끼니 한 끼 하는 느낌으로. 첫째로 꼽고 싶은 곳은 란콰이풍. 도시의 거리 한복판을 길게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그곳 근처다. 비-홍콩 계열의 식당들이 많다. 특히 오래된 펍들이 곳곳에 있으며 대부분 해피 아워를 하기 때문에 늦은 오후의 피맥과 같은 종류를 즐기기 딱이다. 둘째로 꼽고 싶은 곳은 차찬탱. 홍콩 길거리에서 제일 흔한 식당의 종류다. 샌드위치와 커피부터 홍콩식 완탕면, 볶음밥, 죽, 기타 등등 왜 같이 있나 싶은 메뉴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다. 홍콩 사람들의 일상적인 식사를 책임지는 곳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둘 다 여행 온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홍콩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살 것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홍콩에는 한국에 잘 안 들어오는 유명 브랜드가 많이 들어온다. 한국에도 있는 브랜드의 제품이라면 제품군이 훨씬 넓다. 다층적인 비교를 할 것도 없다. 자라나 망고 같은 SPA 패션 브랜드만 들어가서 몇 번 둘러봐도 차이를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가격의 경우 환율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면이 있긴 하지만, 큰 폭으로 할인하지 않는 한 한국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 점이 바로 복병이다. 할인. 홍콩의 복합 몰에서는 정말 자주, 큰 규모로 할인을 하며 사실 이 세일을 노려서 쇼핑을 목적으로 한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 경우에 여행의 최적기는 정확히 1월로 한정된다. 구정 전이 대목이라서 그렇다.

브랜드나 의류 등을 제외하고 홍콩에서만 살 수 있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면, 좋은 차를 사 보기를 권한다. ‘먹을 것' 부분에서도 언급했듯 홍콩만큼 다양한 차 문화를 오랫동안, 수준 높게 즐긴 도시도 드물다. 당연히 도시의 곳곳에 질 좋은 차 전문 판매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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