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4. 쿠바의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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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아모 쿠바 4. 쿠바의 패션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쿠바의 패션 피플 탐구

한국은 유행에 민감하다. 시즌마다 유행하는 스타일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20년 전에는 힙합바지에 군함만큼 큰 운동화가 유행이었다. 지금 30대라면 본인 발 사이즈보다 두 치수 정도 큰 신발을 신고 통 큰 긴 바지로 바닥을 쓸고 다녀 본 경험이 있으리라 믿는다. 바지폭은 점점 줄어들어 10년 전 쯤엔 부츠컷이 유행했다. 그 후 한동안은 스키니가 유행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스키니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때 다시 복고로 부츠컷이 시작되었다. 패션을 알지 못하는 나는 한국의 빠르게 굴러가는 패션시장에서 항상 낙오하곤 했다.

쿠바는 한국보다는 조금 쉽다. 내가 말하는 몇 가지만 기억한다면 당신도 쿠바에서 패션 리더가 될 수 있다. 쿠바에도 물론 때마다 유행하는 스타일이 약간씩은 있지만, 그들에게 있어 패션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명확하다. 지금부터 쿠바의 패션 피플을 파헤쳐 보기로 한다.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다

지금 주머니에 전 재산 3만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의식주 중 한 가지만 해결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쿠바 사람은 ‘의衣’를 선택한다. 여기에 내 보물 1호 민트초콜릿을 건다. 쿠바 사람은 패션에 민감하다. 세 끼를 굶을지언정 옷은 갖추어 입어야 하며, 대강 입고 외출하는 법은 절대 없다. 외출할 때 입는 차림새에도 A급, B급, 나름의 차이가 있다.

늦은 오후 길을 걷다 오랜만에 쿠바노 P군을 만났다. 나는 차이나타운에 가는 길이었고 그 역시 특별한 계획이 없다기에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나의 초대를 거절했다. 혹시 미안해서인가 싶어 한 차례 더 권유했으나 역시나 거절을 당했다. 그가 말했다.

나 지금 잠깐 나온 거라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야. 이런 차림으로 레스토랑에 가는 건 무리야.

뜻밖의 대답이었다. 차이나타운의 식당은 복장 규정이 있는 호텔 레스토랑이나 바도 아니고, 그저 배고플 때 내 집처럼 드나들던 쿡 식당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쿡 식당이라는 장소 자체가 옷차림에 격식을 갖추어야 다른 쿠바노에게 무시 받지 않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는 듯 했다. 이런 차림새로 그곳에 가면 민망함에 식사에 집중할 수 없을 거라는 그의 말에 더 이상 동행을 요청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예가 있다. O군과 클럽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오랜만의 밤마실에 기분이 들떠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그의 집에 갔다. 가장 멋진 옷과 향수로 치장하느라 바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하는 O군.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운동화가 망가져서 나는 오늘 클럽에 가고 싶지 않아.

바닥에는 김연아가 트리플악셀도 할 듯 반짝반짝 닦아 놓은 그의 흰 운동화가 놓여있었다. 아무리 봐도 망가진 곳이 없어보였다. 어디가 망가졌냐고 묻자 그는 미세하게 살짝 들려있는 운동화의 앞코를 보여주었다. 정말이지 기가 찼다.

얘, 세상의 중심은 네가 아니야! 누가 그걸 본다고 그래. 이거 안 망가졌어!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외국인은 모르겠지만 쿠바노는 1초 안에 무조건 알아챌 것이라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본드를 샀다. O군의 두 손에 살포시 얹어주었다. 본드를 바르는 그의 표정은 내가 알고 지내던 세월을 통틀어 가장 비장하고 진지했다. 마침내 우리는 클럽에 갈 수 있었다.

신발에 힘 준 O군의 모습.

루즈핏을 왜 입지?

쿠바 사람들도 스키니를 선호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이 아니다. 절대적 스키니다. 쿠바에서 루즈핏을 찾기는 쉽지 않다. 상의부터 하의까지 입고 꼬맨 듯이 타이트한 옷을 입는 것이 그들에겐 익숙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쿠바나(Cubana, 쿠바 여성)들의 평상복은 대부분 레깅스에 스판소재로 된 민소매셔츠이고, 외출복은 스키니 청바지다. 이곳에서도 몇 년 전 한국처럼 스키니가 판을 치고 있지만, 예상 외로 나의 심기는 한국에서와 달리 불편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쿠바에는 군살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쿠바나들의 뒷모습을 보면 학처럼 쫙 뻗은 롱다리에,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당겨진 힙을 가졌다. 하지만 그에 비해 옆구리와 배는 매우 인간적이다.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는 성향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무조건 타이트하게!
임산부를 위한 옷에도 루즈핏은 없다. 왜 임산부의 몸을 감춰야 한단 말인가?
엄마도 아가도 멋스러운 가족.

레깅스로 인해 뱃살과 옆구리살이 불룩 튀어나와도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청바지를 살 땐 어쩐지 한 치수 크게 주문해야 할 것 같은 바지를 골라서 사 입는다. 여성의 가슴이 볼록한 게 당연하듯 몸 곳곳에 위치한 군살들도 그들에겐 당연하다. 쿠바에서는 의자에 앉을 때 쿠션으로 배를 가릴 필요도 없고, 허벅지 안쪽 살을 가리기 위해 롱티셔츠를 고집 할 필요도 없다. 그들에게 있어 군살은 일상이기 때문에, 루즈핏은 이해할 수 없는 범주다.

덤벼라 텔레토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쿠바에 오면 중학교 미술 수업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쿠바 사람들은 색깔을 좋아한다. 색깔은 항상 선명하고 명료해야 한다. 걸어다니는 팔레트인 이들을 보며 온갖 보색대비, 색상대비 훈련이 가능하다. 이왕 노란 옷을 입을 거라면 치자 단무지처럼 샛노란색이 좋고, 보라색을 입을 거라면 가지처럼 짙은 보라가 좋다. 은은한 파스텔 톤은 B급이다. 여기서 더 패션센스를 높이려면 깔맞춤을 한다. 가능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맞출 수 있는 건 다 맞춰주는 게 좋다. 텔레토비 동산엔 네 가지 색깔 뿐이지만 이 곳 쿠바 거리는 온갖 색깔로 깔맞춤한 이들로 가득하다.

쿠바식 패션 피플의 정석과도 같은 사진.
커플 깔맞춤으로 한껏 멋을 냈다.
화려한 레드와 커다란 장신구, 타이트한 쫄바지. 역시 쿠바식 패션 피플의 정석이다.
쿠바식 스트리트 패션의 정석과도 같은 사진.

2011년, 쿠바에서 룸바 공연을 보기위해 로컬 공연장을 자주 찾던 시기가 있었다. 공연장을 매일 찾는 한 할머니가 계셨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지 않은 호호 할머니였다. 하지만 내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머리카락이 없는 여성이어서가 아니다. 그의 눈부신 패션센스 때문이었다. 노란셔츠를 입은 날엔 노란색 꽃이 달린 헤어밴드를 착용하셨고, 빨간색 바지를 입은 날엔 빨간 매니큐어에 빨간 헤어밴드를 착용하셨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는데 어떤 날에는 신발과 지팡이 색깔을 맞추기도 했다. 룸바 공연을 보러가는 날이면 은근히 할머니의 OOTD(Outfit Of The Day)가 궁금해지곤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늘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인생은 크레센도, 과한 것이 남는 것! 자신감을 장착하라

지금까지 우리는 쿠바에서 패션고자가 되지 않기 위한 스킬을 습득했다. 체크리스트를 보며 한 가지씩 오늘의 의상을 검토해보자. 전신 스키니를 입었는가? 깔맞춤을 하였는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갖고 있는 온갖 장신구를 몸에 걸치도록 하자. 귀걸이도 가장 큰 것으로 고르고, 목걸이도 갖고 있는 건 다 착용하도록. 쿠바에서 과유불급, 여백의 미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착용한 의상의 브랜드 네임은 가능한 잘 보여야 하기에 큰 글씨일수록 유리하다.

이 정도 목걸이는 해 줘야 쿠바식 패션 피플.

친한 친구 R과 A와 함께 클럽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인생의 절반을 무채색으로 살아 온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검정색 옷을 선택했다. 클럽에 가는 날인 만큼 내가 챙겨간 모든 장신구를 몸에 걸쳤다. 팔찌, 목걸이, 귀걸이 남김없이 착용했다. 팔찌와 손톱 매니큐어 색깔도 맞춰주었다. 나의 친구들은 오늘 우리의 드레스코드가 '블랙 앤 화이트'로 잘 맞는다며 매우 기뻐했고 우리는 클럽 출발 전 전신 인증샷까지 남겼다. R은 백인이고 A는 흑인인데 피부색과 대비되도록 옷을 신경써서 입었다고 했다. 귀여운 발상이었다. 

블랙 앤 화이트 컨셉으로 남긴 인증샷.

하지만 클럽에 간 후 나는 후회했다. 텔레토비 동산 파티에 초대된 가오나시가 된 기분이었다. 

흔한 쿠바의 클럽 패션.

쿠바 갈 때 외출복으로 어떤 옷을 가져가면 좋나요? 하는 질문 역시 내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에서 구매해놓고 단 한번도 입어보지 못한 옷을 꼭 한 벌 챙겨가세요.
디자인이 너무 부담스럽다거나, 핏이 심하게 달라 붙는 것 일수록 좋아요.
장담하건대 반드시 그 옷을 가장 많이 입고 다닐 겁니다.

내 대답을 듣고 모두 의아해 했지만, 그들이 쿠바에 다녀온 뒤로 들려주는 후기들엔 행복이 가득했다. 용기가 없어서 한국에서는 입어보지 못했던 핫팬츠를 입고 여행 내내 다른 바지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던 지인도 있었고, 모델컷과 심각하게 달라 의류함에 가기 직전이었던 난해한 그물 모양의 셔츠를 입고 구시가지에서 화보를 찍어 왔다고 기뻐했던 지인도 있었다.

나오미의 쿠바나 따라잡기. 깨알같이 손톱 색깔도 깔맞춤했다.

나는 요즘 쿠바로 가기 위해 짐을 챙기는 중이다. 방금 착용감은 매우 편하지만 배가 꼭 껴서 한번도 못 입었던 원피스를 챙겨 넣었다. 쿠바에서는 남의 시선따위 상관없이 내 스스로 예쁘고 편하면 그만이니까. 쿠바에서 패션을 완성하는 지름길은 속옷을 입기전에 자신감을 먼저 장착하는 것! 나의 소중한 그대들도 절대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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