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고에서는 오래된 붉은 벽돌의 건물을 쉽게 마주친다. 그 건물을 가로질러 가자면 ‘내가 유럽에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난다. 런던의 현대적이고 다듬어진 도시적인 건물의 양식과는 조금 다르게 글래스고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당신을 에워쌀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영국보다는 좀 더 중세시대의 건물들이 많이 유지되고 있다. 이 도시만이 가지는 매력은 아마 이런 오래된 이야기가 있는 전통적인 건물과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이 만드는 매력
글래스고에 대해 말하자면 이 도시를 디자인한, 그리고 내가 다니는 학교의 건물을 디자인한 스코틀랜드의 대표 건축가이자 공예가인 찰스 래니 매킨토시의 글래스고 예술을 빼놓을 수 없다. 아르누보와 모던의 경계에 있다고 평가받는 그의 디자인은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이다. 그가 디자인한 건물과 가구를 본다면 그의 깔끔하고도 장식적인 디자인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은 글래스고에 있는 GSA(Glasgow Shool of Art)와 윌로우 티 룸(Willow Tea room)이다. GSA의 건축학과 졸업생이자 자신의 학교 건축 디자이너인 매킨토시의 건축 디자인을 보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학교 내부를 구경할 수 있고 특별 관에 있는 매킨토시의 가구 디자인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투어를 진행하고 있으니 언제든 신청해서 매킨토시의 글래스고 예술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매킨토시 빌딩은 2014년 화재로 전소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매킨토시 빌딩을 마주 보는 건물에서 수업하고 작업실을 이용했다. 2019년 재개관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완성에 가까워지는 매킨토시 건물을 보며 모두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비극은 일어났다. 2018년 6월, 내가 졸업식을 한 그 날 밤, 매킨토시에 또 화재가 발생해 재개관은 다시 미뤄졌다.
각자 다른 매력의 티룸
영국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티타임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런던의 포트넘 앤 메이슨과 같은 글래스고의 윌로우 티룸이다. 역시 매킨토시가 디자인한 윌로우 티 룸은 글래스고에 총 세 개가 있다. 하나는 번화가에, 또 하나는 번화가에서 학교에 가는 중간쯤에, 마지막으로는 학교 바로 앞, 1903년에 지어졌고 2018년 리모델링을 통해 재개점한 윌로우 티룸이 있다. 차를 마시고 싶다면 번화가에 있는 곳을, 브런치나 식사를 하고 싶다면 가장 최근에 재개점한 학교 앞에 있는 윌로우 티 룸을 추천한다. 같은 윌로우 티 룸이지만 세 가게 모두 서로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이 둘은 인테리어가 확실히 다르다.
번화가의 윌로우 티룸은 청록색의 밝은 색상의 가구들 덕분에 경쾌하고 가볍게 차와 티푸드를 즐기기 좋다. 3층에 있어서 글래스고의 번화가를 내려다보며 차를 마실 수 있다. 가장 최근에 다시 문을 연 윌로우 티룸은 좀 더 초기의 매킨토시 디자인에 가깝다. 흑백이 깔끔하고 강한 색으로 ‘아르누보와 모던’에서 모던에 가깝다. 2층 구조인 가게는 조금은 우중충한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자연광을 극대화했다. 차보다는 샌드위치나 식사류를 즐기는 사람이 많고 앞서 말한 곳보다 좀 더 고급스러운 느낌의 윌로우 티 룸이다. 같은 이름의 같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가게이지만 서로 다른 매력이 있어서 배로 즐길 수 있는 재밌다. 가게의 간판 역시 독특한 폰트로 되어있으니 차 한잔으로 글래스고의 예술과 건축 모두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계탑과 웨스트 엔드
윌로우 티룸을 따라 걷다 내려가다보면 번화가 왼쪽쯤에 자리하고 있는 머천트 시티(Merchant city)로 가는 아치를 볼 것이다. 그 아치를 통과해 조금 걷다보면 아주 큰 시계탑을 볼 수 있는데 이 시계탑은 글래스고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다. 예전 왕족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5개의 도로가 만나는 중심지 역할을 하고있는 이 시계탑을 중심으로 번화가로 향하는 길에는 수 많은 개인 카페와 빵 집, 그리고 명품 브랜드들이 쭉 길을 잇고 있다. 학과 수업 중 하나가 스튜디오 투어였는데, 대부분의 예술가와 작은 디자인 스튜디오들이 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작은 갤러리와 개인 출판물을 파는 곳도 많은 개성있는 곳이다. 이 곳에 GSA의 대표 학과 중 하나인 파인 아트(fine art) 학생들의 작업실이 있고 매년 졸업 전시를 이 시계탑 옆 건물에서 하니 누구나 들려 예술을 즐겨 보면 좋겠다.
이 시계탑으로 부터 정확하게 정반대에 있어 40분가량을 걸어가면 나오는 웨스트 엔드(west end)에는 햇살을 즐기기 좋은 곳들이 많다. 가족들이 반려견과 아이들과 함께 주말을 즐기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 글래스고의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에서는 늘 사람들이 잔디밭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청설모와 함께 견과류와 나눠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식물원인 이곳에선 계절에 따라 다양한 공연을 하기도 하고 백야현상이 있는 여름밤에는 밤늦게까지도 공연을 하기도 한다.
번화가와 웨스트 엔드를 잇는 켈빈 그로브 공원 역시 날이 좋을 때는 피크닉을 그리고 동물을 좋아한다면 글래스고의 모든 동네 강아지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산책하기도 너무 좋고 자전거를 타기도 너무 좋은 곳이다. 그 공원 뒤편에 있는 1650년대 지어진 후로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글래스고 대학(Glasgow University)의 건축물도 함께 구경할 수 있다. 겨울에 특히 눈이 온 날에는 이 공원의 언덕에서 온 동네 썰매를 타고 온갖 모양의 눈사람들을 볼 수 있으니 날이 추워도 나와서 함께 즐겨보길 바란다.
동상에도 이야기가 있다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 글래스고에서 본 가장 신기했던 것을 꼽으라면, 글래스고 시내의 중심지 그리고 글래스고 현대 미술관(GoMA(Gallery Of Modern Art))과 조지 스퀘어(George Square), 붉은색 돌 바닥이라 레드 스퀘어라고도 불리는 광장 앞에 있는 동상이다. 말을 타고 있는 웰링턴 공작(Duke)을 형상화한 이 동상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는 이 동상이 쓰고 있는 주황색의 공사 라바콘 때문이다.
웰링턴 공작이 잉글랜드인이라는 역사적인 이유와 아편전쟁을 지지했던 그의 정치적 행적 때문에 이 공작을 좋아하지 않던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동상을 타고 올라가 공작의 동상 머리에 고깔을 씌우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도 고깔을 쓴 모습이 보였다니, 역사적이고 어쩌면 끈기있는 사람들의 장난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몇십 년째 정부가 이 고깔을 벗기면 또 누군가 다시 씌우고 벗기면 씌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동상의 머리에서 고깔을 치우기 위해서만 연간 10,000파운드를 쓴 정부는 결국 이 동상을 더 높게 제작하여 사람들이 고깔을 씌우다 사고가 나는 일을 방지하기도 하고 더는 고깔을 씌우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무려 72,000명이 모인 글래스고 시민의 반대 시위에 결국 없던 일이 되었다.
이 웰링턴 공작의 동상은 글래스고 뿐만 아니라 영국 곳곳에 있다. 하지만 고깔을 쓴 공작의 동상은 오직 글래스고에 의해, 글래스고에만 존재하고 있다. People make Glasgow, 사람이 그리고 우리가 글래스고를 만든다는 도시의 슬로건은 어쩌면 이런 것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