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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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에필로그

한슈

일러스트레이션: 한슈

한국에서 글래스고를 갈 때도 인천 공항에서 왠지 모를 눈물이 났는데, 혼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왠지 모를 섭섭함, 아직 공항을 떠나지도 않았는데 밀려드는 그리움. 나 삶의 어떤 부분을 남겨두고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2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 시간과 친구들, 관계들을 그 공간에 남겨두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글래스고를 갈 때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이상하게 늘 기분은 뒤죽박죽이었다. 가고싶다, 떠나고 싶지 않다, 남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이 주는 즐거움과 내가 익숙하고 편안해했던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은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했다. 영국에 더 머무르기 위해서 일을 찾고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른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밤에는 한국에 가는 티켓을 알아보다가도 아침이면 인터뷰를 위해 집을 나섰다.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고 나조차도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기분은 가장 나를 불안하게 했다. 과제에 관해 몇 주째 의견이 맞지 않아 제자리걸음을 할 때, 혼자 이사를 하기 위해 몇 번 씩 짐을 나를 때, 면접을 보러 지하철을 1시간을 타고 갈 때, 힘든 일도 일인데 이걸 다 혼자 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 때 마다 돌아가고 싶었다.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그 자유와 해방감 곁에 늘 같이 따라다니던 모든 것에 대한 책임감. 누군가가 도와주길 바라서 보다는 내가 익숙했던 공간과 그곳에서 보내는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내 존재의 의미가 비자 한 장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스스로를 허무하고 작게 느껴졌다.

그렇게 돌아온 한국에서 시차 적응이 안 돼서 한 한 달 정도를 새벽에 잠들고 저녁에 일어났다. 잠들기 전 새벽에 혼자 침대에 누워있자면 내가 어디있는지도 헷갈리고, 글래스고를 다녀온 게 맞는지 유학을 다녀온 건지 아닌지조차도 헷갈릴 때가 있었다. 책장 한구석에 박혀있는 졸업장을 빼고선 내 인생에 크게 달라진 것도,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일러스트 한슈

그럼에도 스코틀랜드 유학을 통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내 인생에서 가장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학교 내의 친구뿐만 아니라 카페에서, 기차에서, 공원에서 만난 스쳐 가는 사람들도 내가 보내는 하루에 영향을 받았다.

수능을 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해 20살에 대학을 가고 적당히 일하다가 30살에는 결혼을 하는 삶. 내가 보고 알아 왔던 평범한 삶은 기준은 아마도 이런 것이었다. 그 삶이 나쁘다기보다는, 그 틀에서 벗어나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은 기분이 싫었다. 하지만 회계사 일을 하다가 8년 차에 그만두고 사진을 전공해 사진작가가 되는 삶도, 어떤 것을 포기하고 떠나온 유학 생활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돌아가는 삶도 틀린 삶이 아니다. 유학을 거치면서 무언가를 하기로 한 것도, 그만두기로 한 것도 본인이 원한다면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배웠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누군가가 그랬던가. 내가 글래스고를 선택하기부터 한국으로 돌아오는 티켓을 사기까지 누군가 선택지를 준 것도 정답과 맞추는 것도 아닌 온전히 내가 선택을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선택들이 얼마나 용기와 고민이 필요했던 것인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었다. 눈에 보이게 달라진 점은 없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도, 세상을 뒤바꾸는 경험도 없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예전과는 다른 하루를 살고 선택의 무게를 다르게 두고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이 내 세상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 믿는다.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넓고, 가보지 못한 곳이 훨씬 많다. 다시 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곳. 나에게 스코틀랜드는 그런 곳이다. 당신에게도 이 글이 당신에게 스코틀랜드에 발을 딛게 할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수 있기를, 용기에 한 스푼 정도의 응원이 되기를, 이 글에서 보여주지 않은 곳을 보고 내가 찾지 못한 부분을 채워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내가 언제가 돌아가 볼 글래스고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엇을 선택하던 어떤 인생을 살던 언젠가 우리가 만날 때까지, 안녕!

안녕 글래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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