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앞에선 언제나 긴장하게 된다. 글래스고에 온 지 1년째, 막 두 번째 과제 제출을 마치고 글래스고의 도시에도 그리고 내가 사는 삶에도 익숙해졌을 때쯤 모든 것이 변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작업실도 2년에 한 번씩 모든 전공이 돌아가며 장소를 바꿔 사용해서 1년 넘게 다 같이 있었던 작업실을 다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야 했고, 1년 전공을 선택한 친구들은 최종 과제를 제출하고 졸업식을 하며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나는 기숙사에 관해서도 결정을 해야 했다. 내가 등록한 기숙사의 계약은 딱 1년이었기 때문에 내가 글래스고에 산지 딱 1년쯤 기숙사에서 계속 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나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다.
기숙사에서는 기존에 살던 학생에게는 할인된 가격과 거주하고 싶은 방의 우선권을 주겠다고 했고 대부분의 학생은 방을 바꾸더라도 계속 기숙사를 이용했다. 나와 같이 기숙사를 이용했던 아이들도 졸업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와 제공하는 기숙사로 옮기는 친구를 빼고는 모두 기존의 기숙사에서 살기로 했다고 했다. 사실 집을 찾는 것만큼 귀찮으면서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없고 1년 동안 늘어난 살림살이를 들고 이사를 한다는 건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이사도, 집 찾기도, 뷰잉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 기숙사 방만 바꾸려 했는데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가 같이 플랫에서 살자는 제안을 했다. 서로 잘 모르고 단둘이 집을 쓴다는 것도 부담이 되었지만 몇 번이나 집에 초대해 방을 소개해준 끝에 나는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사를 결심한 후에 해야 할 것들
어디 살든 떠나기 전에 부서지거나 벗겨진 것들이 있는지, 제공되었던 집기들은 모두 멀쩡한지 확인을 해야 한다. 특히 플랫의 경우 청소 업체를 본인이 부르지 않으면 집주인이 보증금에서 임의로 차감하는 경우도 있다. 확인을 마치면 보증금을 받는다. 돌려받는 데에 한 달, 길게는 세 달까지 걸린다. 따라서 예전에 살던 곳의 보증금을 받아서 새 집의 집세를 낸다든가, 귀국 티켓을 사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증금은 바로 돌려받지 못하지만 보증금의 액수나 정산 중이라는 확인 메일은 보증금 요청 후 며칠 내로 오니 이메일을 꼭 확인하자.
보증금 환급절차를 마친 후 나는 이사를 어떻게 할지 막막해졌다. 한국처럼 용달차를 부를 수도 없고, 차가 있는 가족을 부를 수도 없었다. 특히 내가 이사를 하는 친구의 플랫은 내가 있는 기숙사와 걸어서 대략 한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이삿짐센터가 너무 비쌌기 때문에, 나는 캐리어를 이용해 세 번 정도 짐을 옮기고 남은 것들은 가방에 담아 우버(Uber)를 이용했다. 하지만 가장 큰 산은 그 짐들을 엘리베이터 없이 4층 꼭대기의 방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정말 정말 감사하고 친절하게도 바로 밑에 사는 이웃 주민이 짐을 함께 옮겨주었지만 4층은 생각보다 굉장히 높고 계단도 엄청나게 많아서 계단에 앉아 서로 죽을 것 같다는 이야기한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영국에서 이삿짐센터를 찾아보게 될 줄도 이 나라의 인건비가 그렇게 비싼지도 생각도 못 했다. 그렇게 7월 중순에 짐을 싸기 시작해 8월 중순이 되어서야 이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플랫에 친구와 단둘이 살면 기숙사보다 훨씬 개인적인 공간에 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나와 친구 둘이서 모든 걸 공유한다는 단점도 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았는데, 벽 하나만을 두고 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또 기숙사와 다르게 우리는 매달 가스비와 무선 인터넷, 그리고 집세를 날짜에 맞춰서 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쓰이는 일이었다. 택배를 받아주는 리셉션도, 주방을 청소해주는 시스템도 없었다. 몇 번 청소할 건지, 쓰레기는 어떻게 버려야 공평하게 버리는 건지 등을 결정해야 하니 사실 귀찮은 게 훨씬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동네는 글래스고의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기숙사에서는 초대할 수 없었던 친구들을 초대해 이곳에서 작은 파티를 하기도 하고 종종 서로 모여 요리를 할 수 있어서 집에서 만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날씨가 안 좋기도 하고, 식당이나 펍은 비싸기도 하고. 서로가 모여 같이 주방에서 떠들며 음식을 만들고 같이 밥을 먹는 시간이 거의 유일한 휴식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이사를 하기 전 1년은 이상하게도 날이 좋았다. 바람은 불지만, 비가 거의 오지 않았고, 여름도 보통의 여름과 마찬가지로 30도를 웃돌며 햇살이 쨍쨍했다. 그래서 처음 지냈던 1년 동안 스코틀랜드 날씨가 견디기 힘들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에게 잘 맞는 날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사를 한 그다음의 1년은 가장 혹독한 스코틀랜드의 날씨를 경험했다. 말 그대로 우비를 벗을 수가 없는 1년이었다. 갑작스럽게 변한 햇살도 없는 여름을 보내고 나서 가을과 겨울은 좀 괜찮게 버틸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그해 겨울은 유례없는 폭설의 계절이었다. 사실 스코틀랜드는 비는 많이 와도 눈은 거의 오지 않는데 그 겨울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결국 며칠간 공항이 닫히고 학교도 일주일간 문은 닫았다. 마트의 음식들도 거의 없는 데다가 대부분 문을 열지도 않아서 음식을 구하러 이곳저곳 돌아다녀야만 했다. 재난이라면 재난인데 갑자기 생긴 휴일 같은 시간에 나는 친구들과 함께 서로 먹을 것은 있는지, 방에 전기가 나갔는지 필요한 게 있는지 얘기를 나누며 서로 가진 재료를 가지고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요리를 해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나마 가까운 곳에 사는 애들끼리 만나고 모여 일주일 동안 매일 저녁이 핫팟(Hot pot) 파티였다.
이 예상치 못한 시간이 지나자 나는 이상하게도 평정심을 찾았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날들이 있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유학을 와서 어떤 걸 하게 될지 몰랐을 때 나는 유학을 끝내고 뭘 할지만 고민했다. 하지만 이젠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지 속에서 나도 모르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속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