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10.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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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10. 졸업

한슈

일러스트레이션: 한슈

2018년 6월, 나의 졸업식 날엔 언제나처럼 비가 왔다. 어떤 졸업식이든 졸업을 맞는 기분은 싱숭생숭하다. 특히나 다른 나라에서 하는 졸업식은 함께했던 친구들을 서로 약속하지 않는 이상 만날 수가 없게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우리는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시간이 없었다

졸업이 다가오자,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비자(Visa)였다. 학생 비자 (trier 4 Visa)의 기한이 졸업식으로부터 4개월 후까지만 유효했고, 그 안에 일자리를 구해서 새로운 비자를 갱신하거나 이 나라를 떠나야 했다. 비자가 필요 없는 EU 학생들은 졸업하고 휴가를 가거나 집에 가서 몇 개월 쉬다가 돌아와서 일을 구하겠다고 다들 짐을 쌌지만 사실 나 같은 non-EU 학생들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석사를 지원할 때처럼 포트폴리오를 다시 만들고 내가 회사에 왜 지원하고 싶은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래스고보다는 런던에 지원할 만한 회사가 더 많았기 때문에 나는 런던으로 가기로 했다. 런던으로 이사를 결심하고 가장 고민이 된 건 주거 문제였다. 룸메이트의 고양이를 런던에 함께 데려가느냐 마느냐에 따라 살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넛넛.

싱가포르에서 온 룸메이트는 크리스마스쯤 룸메이트의 친구가 알레르기 때문에 더는 키울 수 없다는 ‘넛넛(Nut Nut)’이라는 이름의 아기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짧게 요약하자면 룸메이트는 처음부터 고양이를 싱가포르에 데려가지 않겠다고 했고, 맡아줄 사람을 찾겠다 찾겠다고 하다 결국 나와 함께 런던 행 기차를 타게 되었다. 세 개의 캐리어와 고양이 한 마리, 두 사람은 다섯 시간 반동안 기차를 타고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일러스트 한슈

상상초월 집값

런던의 집값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쌌다. 글래스고와 비교하면 한 달 월세가 세 배 이상 비싸다. 런던의 어떤 지역이 좋은지도 몰랐고, 관광하기 좋은 위치와 일을 하는 회사의 위치가 어떻게 다른지도 몰랐기 때문에 처음 글래스고에 갔을 때처럼 생뚱맞은 곳에 집을 구했다. 피카델리 서커스나 옥스퍼드가 있는 1존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집세를 아득히 넘어섰고, 대부분의 디자인 회사들은 2, 3존의 동쪽 끝에 위치했다. 하지만 나의 집은 2존, 정확히 서쪽 끝이었다.

나 말고도 런던으로 일자리를 위해 내려온 같은 반 친구들이 꽤 되었는데, 비자가 필요 없는 친구들은 대부분 프리랜서로 시작해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전공은 달랐는지만 알고 지낸 몇몇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들은 워킹홀리데이로 다시 지원해 잠시 쉬었다가 영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비자를 주는 회사를 우선으로 생각해 그런 회사에만 지원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에서만 해볼 수 있는 작업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 다른 공모전이나 전시에도 지원했다.

비자 문제도, 여러 회사와의 인터뷰를 거치는 것도 스트레스였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짧게나마 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영국에서는 어디서 프린트를 하는지, 판매되는 작업은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틈틈이 미리 일자리를 구한 친구들과 만나서 같이 맥주를 마시고, 런던 도심을 벗어나 작은 골목에 있는 저렴한 펍을 찾아 돌아다니고, 피크닉을 하러 기차를 타고 나가기도 했다. 주말에만 열리는 꽃시장에 라벤더를 사러 가는 친구를 따라가서 같이 점심을 먹으며 오후를 보냈다. 바쁘지만 바쁘지 않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하루를 살았다. 그 와중에 고맙게도 한국과 글래스고에 있는 친구들이 런던에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주었다. 흔히 말하는 취준생의 입장에서 한없이 우울해지기 좋은 런던의 날씨와 인터뷰 탈락의 연속에 만난 친구들은 내가 겪는 이 모든 일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해주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남는 건 없는 것 같은 기분들이 더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떨어지면 떨어지는 거지 뭐, 그렇다고 인생이 망한 건 아니니까.

비정규직으로 하는 짧은 프로젝트들도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왔던 것처럼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올 때와는 다르게 고양이가 한 마리 더 늘었기 때문에 계획이 필요했다. 고양이도 사람처럼 국가를 이동할 때는 서류가 필요한데, 우선은 고양이와 함께 탈 수 있는 비행기를 알아보는 것이 시작이었다. 영국 항공사들은 화물칸이든 좌석 칸이든 아예 동물과 함께 탈 수가 없었고, 경유하는 비행기는 경유하는 나라마다 서류가 필요할 수 있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의 직항편을 타기로 했다. 

일러스트 한슈

반려동물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항공사 사이트에 따른 규정에 맞춰 여행용 가방을 준비하고, 티켓을 구매한 후에 따로 전화해서 반려동물이 있다는 걸 알려야 한다. 그 다음은 서류다. 보통 EU 국가에서는 펫 패스포트(Pet passport)를 이용해 비행기를 타는데, 광견병 접종과 마이크로칩 삽입이 되어있으면 신청해서 받을 수 있다. 가장 쉽고 편한 방식이지만, 내가 데려가려는 고양이는 광견병 접종을 하지 않아서 접종 후 이를 확인받는 데에 3개월이 걸렸다. 3개월의 짧은 런던 생활,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저녁 식사 다음 날 나는 고양이와 함께 한국으로 향했다.

선택은 방향을 만든다

2년 동안 보냈던 영국에서의 삶이 끝났다. 달라진 것 없는 내 방으로 돌아오고, 변함없는 친구들을 만나고 떠날 때와 달라진 것 없는 삶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할 일을 고민하고, 여전히 새로운 일에 긴장이 되고, 어느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모른다. 하지만 유학을 가기로 마음먹은 날처럼, 학교에 인터뷰하러 간 그 순간처럼 어제도 오늘도, 늘 그랬듯 내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며 나아가는 것뿐이다. 내가 배운 것은 정답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다 작은 선택에서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들이 연결되어 방향이 된다는 것이다. 유학이든 아니든 모든 선택은 방향을 만든다. 그 방향에 옳고 그른 건 애초부터 없다. 다만, 그 선택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 당신이 원하던 삶이기를, 돌이켜보니 원했던 그곳에 도착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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