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2-2. 집을 찾는 대장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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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2-2. 집을 찾는 대장정 (하)

한슈

일러스트레이션: 한슈

네 번째 숙소로 짐을 옮기면서 늘 그랬듯 우버를 불렀는데, 우연히 두번째 숙소로 옮길 때 만났던 우버 기사님과 또 만났다. 캐리어가 많아서 기억하고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유였지만 아직도 집을 못 구한 거냐고 걱정과 함께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숙사를 소개해 줄 수 있다고 정말 못 찾으면 전화해보라고 기숙사 번호를 주셨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마지막 숙소에서는 정말 어디든 집을 찾아서 계약하겠다는 마음으로 또다시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글래스고 시내.

네 번째 숙소는 중동에서 오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아저씨의 에어비앤비, 학교 뒤쪽에 있는 주택가였다. 이 숙소에 체크인해서 늘 그렇듯 짐을 풀자마자 나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잠을 자고, 아침부터 또 다시 뷰잉을 나갔다. 몇 개의 뷰잉을 마치고 계약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는 지난 며칠과 다를 것 없는 하루인 줄 알았다.

도망쳐!

그런데 오후에 집에 돌아오니 방문이 열려있고 집주인이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부터가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아무 문제 없느냐고, 잘 지내느냐고 웃으며 질문을 했다. 의례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해 잘 지낸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답하자 갑자기 그는 그렇지 않다고, 이 집의 싱크대가 막혔고 그게 건물 전체의 배관을 망가트렸으면 엄청난 돈이 들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몇십 분간 이어진 대화에 결국 하고 싶은 말은 결국 그러니 그 수리비를 내라. 에어비앤비에 규정도 나와 있고 그러므로 돈을 내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 집에서 싱크대를 쓴 건 딱 한 번 컵을 씻은 5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방문 앞을 서서 지키고 있는 집주인의 모든 책임을 탓하는 말에 정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겨우겨우 이 숙소에 들어온 지는 12시간도 되지 않았고 싱크대는 10분도 쓰지 않았다는 말을 몇 번을 했지만 결국 수리를 해야 한다면 돈을 내겠다고 말을 하고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억울함과 황당함을 뒤로하고 돈을 정말 내야 하는지, 이걸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고민하는 와중에 얘기를 들은 친구가 오히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없어 에어비앤비 측에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즉시 에어비앤비에 이와 같은 일이 있다고 메일을 보내자 바로 답장이 왔고, 이런 경우는 내가 책임질 필요가 없고 집을 관리하는 집주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집주인과 다시 얘기를 해보려고 기다렸고 며칠 후 다시 집주인이 집을 방문했는데 에어비앤비 측에서 연락했는지 모르겠지만, 수리비 얘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 후 그는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내게 방을 찾고 있으면 이 집에서 1년 정도 지내라고 계약을 연장하자는 얘기를 매일같이 했다. 또 주말에 글라스고 외곽을 여행하자고 제안하고 농담을 하며 자신의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본인은 이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되어서 기뻤던 걸까,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그 방으로 돌아가는 것도, 그 방에 있는 것도 정말 고역이었다. 왜 갑자기 나를 그 집에 살게 하려고 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난 수리비 문제가 불거진 그 날부터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던 기간보다도 가능한 한 빨리 그 집을 떠나려고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뷰잉을 갔던 사설 기숙사 중에 하나를 계약하고 바로 그 집을 떠났다.

그래도 좋았다

그렇게 나는 충동적으로 1년동안 사설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다. 기숙사로 짐을 옮기는 날도 비가 왔지만 우선 마지막 숙소를 벗어 나서 기뻤고, 더는 뷰잉을 위해 온종일 핸드폰을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당장 내일부터 학교의 수업이 시작되지만 나는 방 열쇠를 받고 짐을 놓자마자 텅 빈 방을 채울 생필품을 사러 비가 오는 글래스고의 번화가로 나갔다. 

(내가 갔던 곳은 Primark, H&M home, Zara Home, Marks & Spencer, TK Maxx이다. Primark는 옷과 더불어 이불, 담요뿐만 아니라 여러 생필품을 싼 가격에 파는 곳이다. 무난한 디자인부터 특이한 디자인까지 전부 있고 초기에 적은 돈으로 모든 물품을 살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가격이 싼 대신 질은 조금 떨어지기 때문에 오래 쓸 제품을 사기에는 추천하지 않는다. H&M과 ZARA home은 굉장히 트렌디하고 집을 꾸미기 좋은 제품들을 판매한다. 예를 들어 카펫이나 담요 같은 패브릭 제품들의 패턴 디자인이 특이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양초나 촛대, 식기류를 구매할 수 있다. Marks & Spencer는 식료품으로 유명한 브랜드인데 이곳에서 판매하는 침구류와 식기, 요리 도구들은 가격이 있는 제품들이고 무난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많다. TK maxx는 새 제품과 모든 브랜드의 B급 상품을 파는 곳인데 명품도 있다. 스크래치가 났거나 유행이 지난 제품들을 엄청나게 할인을 해서 팔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유명브랜드나 비싼 제품들을 값싸게 구매할 수있다. 전자 기기류와 작은 가구들은 Argos를 이용했다. 영국은 배송비가 비싼 나라이기 때문에 픽업을 통해서 가져갈 수 있는 Argos를 이용해서 배송비 없이 최대한 저렴하게 구매하였다. 이곳 역시 거의 모든 제품을 팔고 있고 이케아같이 제품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지만, 원하는 제품의 제품번호를 적어 데스크로 가져가면 상품을 꺼내와 눈으로 직접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할 수있다.)

이사한 직후의 기숙사 모습.

나는 이불과 컵, 주방 도구 같은 기본적인 살림살이도 하나 없었기 때문에 쇼핑에 예상 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이 급했지만 당장 정말 생존을 위한 것들을 구매한 후, 새로운 공간에서 나는 본격적인 글래스고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생필품을 막 사다 나른 날.

기숙사에 사는 것은 호불호가 있는 경험이다. 특히 무언가를 쉐어하며 산다는 것은 외국이든 한국이든 쉽지 않다. 어떤 기숙사이냐, 또 어떤 룸메이트를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천차만별인 경험이다. 나는 1년 정도 기숙사에서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학생들과 주방을 공유하며 살았다. 학교와는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같은 학교 학생의 수는 아주 적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숙사에 살았던 게 무척이나 좋았다. 성별에 상관없이 같이 맥주를 마시러 나가고 빵을 굽는 걸 좋아하는 룸메이트 아비게일 덕분에 두 달에 한 번씩은 아비게일 가족의 특제레시피 파이를 먹을 수 있었다. 

기숙사의 공유 주방.

다니엘은 같은 학교의 학사 3학년이어서 학교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하며 이런저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모두 친절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기숙사였다. 다만 이 기숙사는 대부분 갓 대학생이 된 학생들이라 정말 매주 모든 층에서 파티가 열렸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나는 그런 정신 없는 분위기를 좋아했고 북적거리는 기숙사의 활기로 덜 우울하게 살았다.

Cold weather,
Warm people

한 달간의 글래스고 집 구하기의 여정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글래스고는 바람과 비의 도시, 어쩌면 1년 내내 우비를 벗을 수가 없는 도시이다. 영국은 해가 뜨는 날보다 안개가 낀 날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스코틀랜드는 먹구름만 낀 날이어도 비가 오지 않으니 날씨가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날씨가 혹독하다. 여름 기온도 20~26도 정도를 오가서 선선하지만 비와 바람이 불면 여름이라도 많이 쌀쌀하다. 여름에는 밤 10시에 해가 지는 백야가 있고, 겨울엔 오후 3시만 되도 깜깜하게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당신이 집을 구한다면 가스비에 관해서 충분히 생각한 후 집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계절을 이기는 방법은 있다. 따듯한 옷을 입고 히터를 틀고 뜨거운 차를 마시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느냐, 어떤 사람과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집의 온도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돌이켜보면 집의 상태도 물론 중요했지만 어떤 사람들과 어떤 추억을 만드느냐가 그 집의 기억을 좌우하는 것 같다. 오븐이 다 타버려서 온종일 기숙사 애들과 오븐을 닦아내고 환기를 하고, 그 오븐에 같이 빵을 구워 먹던 기억들, 힘든 순간들도 힘들지만은 않게 기억할 수 있는 건 그 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좋은 집을 찾기를, 그리고 그 집을 채워줄 시간을 나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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