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6.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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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로 유학을 갔습니다 6. 과제

한슈

일러스트레이션: 한슈

매일 대화를 하는 사람들과 사용하는 언어, 내가 가는 곳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바로 과제는 힘들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대학원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학교처럼 학기별로 나뉘어있지 않고 2년이 크게 세 개의 스테이지로 나뉘어 있다. 하나의 스테이지를 통과해야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한 스테이지에는 개인 프로젝트, 교양 수업, 워크샵이 포함돼 있다.한 주에 공식적인 수업일은 3~4번이고 그 외에는 자유롭게 작업실과 학교의 작업 실습실을 이용하면 된다. 학기 초에는 무조건 전공 실습실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일종의 설명 수업을 듣게 된다. 매 스테이지가 시작할 때마다 듣는 또 하나의 설명 수업은 바로 일렉티브(electives)다. 여기선 교양 수업의 종류와 각 수업의 수업 목표를 확인할 수 있다. 

교양

스테이지마다 한 개의 교양 수업을 선택하게 된다. 교양 과목의 수는 대략 열다섯개 정도이며 예술 전체에 관한 교양 수업이기 때문에 특정 전공생만 받는 2~3개의 교양을 제외하고는 어떤 교양이든 선택해도 좋다. 악기를 이용해서 영상의 음악 작업을 해볼 수도, 도시 곳곳을 걸어다니며 나만의 방식으로 도시를 매핑(mapping) 해볼 수도, 1960년대부터의 예술의 이론과 연구 과정을 연구해 볼 수도 있다. 나는 기초 재료들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수업과 개발자를 위한 코딩 수업, 만화책의 역사를 배우고 나만의 만화책을 만드는 수업을 선택했다. 

새로운 분야를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 전공생들을 만나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배우고, 아이디어를 주고 받고 서로 현재 관심있는 주제들은 어떤 것인지 얘기를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나는 교양 수업에서 내 전공도 아니고 진행하는 프로젝트 주제도 아니지만, 일러스트의 도움이 필요한 인테리어 디자인 전공을 하는 친구를 만나서 함께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러스트 한슈

워크샵

유일하게 매년 달라지는 프로그램은 학과에서 주최하는 워크샵인데, 워크샵에서는 현업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짧게는 하루, 길게는 2주 정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특정 분야를 지정하지 않지 않아서 다양한 워크샵을 접하고 시도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진작가의 워크샵에서는 사진을 촬영해 그 사진으로 짧은 콜라주 책을 만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워크샵은 함께 만들었던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워크샵이었다. 최종 포맷은 영상을 만드는 것이고 어떤 방식이든 자유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워크샵에서는 그룹별로 랜덤으로 사진을 받아서 영상을 만들어야 했다. 왜 이 물건이 발명되었는지, 디자인이 바뀌거나 더 쓰이지 않는다면 왜 그런 건지 등에 초점을 맞추어 이 물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거나 명시하지 않아도 만든 영상을 통해서 어떤 물건에 관해 영상을 만든 건지 알 수 있게 연구하는 워크샵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진은 1950년대의 여성 피임약이었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동그란 콤팩트 디자인에 대해 연구하면서 우리는 이 약의 주기가 달의 주기와 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모양을 발전시켜 달이 차오르고 또 지는 모습을 이용해 영상을 만들었다.

개인 프로젝트

최종 평가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졸업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개인 프로젝트다. 매 주 한 번에서 두 번은 개인 프로젝트에 관한 수업을 수강해야 한다. 수업은 교수님과 1:1로 프로젝트에 관해 얘기를 나누거나, 비슷한 주제로 작업을 하는 3~4명의 학생이 모여서 교수님과 함께 피드백을 하는 그룹 튜토리얼나, 모든 교수님과 학생을 대상으로 개인 작업을 발표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방식이든 학부 수업과 달랐던 점은 과제의 최종 제출 형태가 정해져 있지 않고, 모든 수업은 잘 그리고 못 그리고가 아니라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잘 전달이 되는가를 중점적으로 본다는 것이다.1:1의 튜토리얼 역시 내가 얼마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다음의 과정은 어떤 것을 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가 중심이다. 그리고 내가 진행한 작업에 대해 교수는 참고해보면 좋을 만한 작가나 비슷한 주제로 완성된 작업물들을 피드백해 주면서 나의 프로젝트가 어떻게 하면 더 발전하고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업 방식은 그룹 튜토리얼이었다. 내가 선택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라는 전공은 일러스트, 그래픽디자인, 포토그래프 세 그룹으로 세부 전공이 나누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레퍼런스와 피드백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교수와 학생 간의 피드백보다 나와 같은 학생의 입장에서 서로가 시도해봤던 접근법이나 마침 새로 구매해본 재료를 추천해주는 것처럼 좀 더 생생하고 실험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발표 수업

한 스테이지에서 한 번, 많아야 두 번 있는 발표 수업은 가장 떨리고 많은 준비가 필요한 수업이다. 대부분 프로젝트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된 후에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가고 있는 방향과 작업의 메시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 무엇보다 모든 학생의 작업을 볼 수 있는 기회라 다들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는지, 같은 주제라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방향을 알 수 있다. 또 나와 주로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메인 교수님의 의견뿐만 아니라 내 프로젝트를 처음 보는 교수님, 반 친구들에게서도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좀 더 확실하게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전달되었는지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

나는 스테이지마다 다른 주제를 연구해 총 세 개의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삶은 무엇으로 연결되고 어떤 것을 인생이라고 정의하는지에 관한 프로젝트,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에 관한 연구, 그리고 플라스틱 오션에 관한 프로젝트였다. 사실 두번째 스테이지 중반까지도 내가 이때까지 배워왔던 방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과제를 해나가기 어려웠다. 매 수업마다 듣는 질문은 ‘그래서 네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뭔데?’였고, 그걸 어떻게, 왜 조사했는지 설명해야 했고, 내 생각을 설명해야 했다. 아직도 완벽하게 제대로 리서치하는 법을 안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졸업 전시를 하게 되는 세 번째 스테이지가 되고서야 조금은 이 방법을 이용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얼추 알 수 있었다.

평가

이 모든 과정을 평가하는 것도 조금은 달랐다. 과제 평가는 아무것도 없는 큰 방에 우리 이름이 랜덤하게 붙어 있는 책상을 주는 걸로 끝. 그 책상에  프로젝트의 모든 것을 올려두면 채점을 했다. 학기 내내 무엇을 ‘더 해라. 이건 제출하지 말아라’ 이런 피드백은 한 번도 없었지만 얼마나 시도했고, 열심히 했는가는 이 책상 위의 작업이 보여주었다. 어떤 과제를 어떻게 올려서 제출할 것인가, 완성 작품은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작은 전시를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내 결정으로 만들어내는 셈이다.

학교는 새로운 것들의 연속이었기에 즐거웠지만, 그 중간중간 언어의 장벽에 대한 좌절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기분은 늘 소용돌이쳤다.  수업들이 정말로 좋았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테지만, 나는 이 수업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업과 내가 가진 가능성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다. 천을 자르고 모아서 스튜디오를 빌려서 하루 만에 영상을 만들 수도 있고 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누군가와 며칠 뒤에는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 같이 전시를 할 수도 있다. 한 달간 주말 내내 백화점에서 어떤 플라스틱 봉투가 몇 개나 쓰이는지 길바닥에서 하루 종일 앉아 갯수를 셀 수도 있다. 우박이 떨어지는 날에도 아침부터 혼자 몇 번씩 기차를 갈아 타고 내려서 처음 가보는 바닷가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모을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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