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결정했다면 그 다음은 어디에서 졸업 전시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즉, 어느 나라와 어떤 학교를 선택할지 신중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대부분 학교는 석사 지원시 원서비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수능과 달리 몇 개의 학교에 원서를 넣는지도 제한이 없다. 다만 합격시, 서류를 지원한 만큼의 인터뷰를 준비해야 할 뿐이다.
학교 지원을 위한 서류와 구체적인 정보는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므로 원하는 학교에 반드시 찾아봐야 한다. 이 글에서는 내가 학교를 고르며 고민했던 부분들에 대해 짚었다. 나의 작업에 초점이 맞춰진 고민이기 때문에 정답은 아니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바란다.
학교가 고민이 된다면
졸업전시를 보자
가장 먼저 시작할 것은 자신에게 맞는 학교를 알아보는 것이다. 어떤 학교, 그리고 어떤 과에 갈 것인지. 학교 선택을 위해 가장 먼저 찾아보았던 점들은 내가 가고 싶은 과가 학교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그 과에는 어떤 사람들이 공부하고 있는지였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그 학교의 3~4년 치의 졸업 전시 작품을 찾아 봤다. 디자인 혹은 예술 학과는 대부분 매년 졸업 전시를 한다. 그 졸업 전시를 직접 보러 가지 못해도 학교는 매년 졸업생들의 작업을 온라인 도록으로 전시한다.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작업이 많은 학교로, 그리고 내가 해보고 싶은 작업이 많은 학교로 우선순위를 정한 후에 학교의 커리큘럼을 확인한다면 좀 더 명확하게 학과가 추구하는 방향을 알 수 있다. 나의 학교 선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요소는 학교 자체보다는 재학하고 있는 학생이 그 학교에서 어떤 작업물을 만들어내고 또 그 학교를 통해서 어떻게 발전했는가였다. 그리고 학교는 그들을 위해 어떤 것을 해주었는지 졸업전시에서 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다섯 개의 학교를 추려서 원서를 넣었다.
학과마다 필요한 서류의 종류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디자인석사를 지원하는 데 필요한 서류는 학부 졸업증명서, 학부 성적표, 지원 동기에 관한 statement of purpose (이하 SOP), CV, 추천서 2장과 포트폴리오를 기본으로 꼽을 수 있다. 포트폴리오에 무엇을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내가 왜 수많은 학교 중에서 이 학교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학교에서 그 과를 지원했는지를 설득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경험들이 왜 이 학교를 지원하게 했는지, 당신이 했던 작업들이 이 학교에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면 좀 더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다.
대부분의 영국 학교는 1월 중순에서 2~3개월가량 원서 지원을 받고 따로 원서 마감일이 없는 학교 역시 먼저 접수한 순으로 인터뷰와 학생 수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아서 1월 초까지 원서 준비를 마치고 1월에서 3월 사이에 학교에 원서를 넣는 것이 좋다. 몇몇 학교들은 10월 말 쯤 한국에서 유학 설명회를 열었는데 나는 그 학교의 교수님이 포트폴리오에 대해 코멘트를 해준다는 말에 설명회를 신청했었다. 포트폴리오를 챙겨가 작업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서 합격통지서를 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 한 분과 하는 1:1 인터뷰였던 것 같지만 원서를 넣고 인터뷰하는 방법 말고도 이런 기회도 있으니 원하는 학교의 설명회에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서 참여해보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서류 다음은 인터뷰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인터뷰 일정을 잡자는 메일을 받을 것이다. 대부분 학교는 영상 통화인 스카이프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전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던 곳도 있고, 면대면 인터뷰를 요구한 곳도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학교까지 직접 찾아가는 인터뷰였는데 가기도 힘들었고 돈도 만만찮게 들었지만 , 그 지역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인터뷰는 대체로 내가 지원한 학과의 학과장 혹은 수업을 지도하는 교수님과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상 인상적이었던 인터뷰는 학과장과 교수 2명 그리고 강사와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까지 총 5명이 나의 인터뷰이었던 학교다. 인터뷰는 5명은 무조건 나에게 하나 이상의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고 반대로 내가 궁금한 점에 대해서도 5명이 각기 다른 위치에서 대답을 해주어서 예상치 못한 질문과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학교의 인터뷰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터뷰 질문 세 개를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작업과 싫어하는 작업, 그 이유
- 나의 작업 방식이 가지는 강점, 약점
- SOP에 그 경험을 선택해 기재한 이유와 해당 경험을 거치며 힘들었던 점, 배웠던 점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해야 했던 것은 내가 왜 이 작업을 하는지, 그리고 내가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였다. 일단 유학을 가자고 결정해 버리고, ‘망하면 망하는 거지'와 같은 생각을 하다가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봐야 했기 때문에 인터뷰 과정은 꽤 힘들었던 것 같다. 마치 인터뷰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곧 내 인생을 좌우할 것만 같은 기분이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가 나를 인터뷰하는 이유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가장 좋았던 인터뷰의 교수님은 인터뷰 시작 전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영어 말하기 실력을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궁금해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당신 역시 나를 통해 학교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답을 찾아 당신에게 가장 잘 맞는 학교를 찾았으면 좋겠다. ’
미래가 달린 중요한 인터뷰를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한다는 것은 긴장될 수밖에 없다. 무조건 편안하게 즐길 수는 없지만, 합격/불합격만을 생각하기보단 주어진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학교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어떤 교수님과 수업을 하게 될지, 어떤 것을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될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인터뷰가 너무 긴장돼서 인터뷰 없이 바로 합격통지서를 주는 학교가 있다면 다른 곳은 인터뷰를 보지도 않고 그곳으로 가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인터뷰 없이 합격 통보를 받은 학교는 선택할 수 없었다. 네이버나 구글에 나온 형식적인 정보 외에는 학교에 관한 정보를 알 수 없었고 아무것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날 수는 없었다.
실수하고 싶지 않을수록
학교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학교의 순위가 높다는 이유로, 유명한 누군가가 졸업한 학교라는 이유로,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나라라는 이유로 학교를 선택할 수도 있다. 틀린 이유는 없다.
내가 넣은 원서 중 가장 이른 원서는 10월 말이었고 가장 늦었던 것은 5월 말이었다. 계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다고 나도 멋지게 적었지만 정작 나는 대부분 학교가 인터뷰를 시작한 5월 말에 원서를 넣었고, 원서를 넣고 3주 뒤에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치고 한 달 후에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나는 그 학교를 선택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정말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결정하기까지 여러 정보와 조언들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예술 쪽의 석사 유학은, 특히 내 나이대의 지원자들은 대부분 처음 가는 유학일 것이다. 실수하고 싶지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고 싶은 마음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학교의 등급이나 인지도는 당신에게 좋은 학교와 나쁜 학교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다른 나라에 땅을 딛자마자 어쩌면 그곳은 당신이 상상하던 그곳이 아닐 수도 있고 완벽할 것만 같은 해외 생활에서도 한국에서 느낀 어려움을 분명 한 번쯤은 반드시 느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좋아하는 곳을 갔으면 좋겠다. 당신이 선택한 하나의 이유라도 좋은 이유가 있는 곳으로 가 유학을 즐기면 좋겠다.
이 모든 결정과 흔들림 속에 인터뷰를 마치면 한 달에서 두 달 사이 합격통지서를 받는다. 그때부터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 수많은 서류를 챙기고 부랴부랴 전날 새벽까지 짐을 싸고 정신을 차려보면 세 개의 이민 가방과 함께 인천 공항에 서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과 함께 수화물 검사와 면세점을 통과해 두 번의 기내식을 먹고 우리는 12시간을 지나 영국에서 눈을 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