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고를 즐겼다면 좀 더 다양하고 깊이 있게 스코틀랜드를 즐겨볼 수 있는 곳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위스키!
런던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런던의 수질에 관해 한 번쯤 고민해 보았을 것이다. 수돗물에 석회질이 강해서 생수를 사 마셔야 하고 샤워를 하면 피부에 뭐가 나거나 머릿결이 뻑뻑해지는 등 일명 ‘물갈이’를 경험한 사람들도 다수 있을 것이다. 반면 스코틀랜드는 런던과 같은 영토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수질이 깨끗한 나라 중 한 곳이다. 그래서 스코틀랜드에서 유명한 것 중 바로 위스키이다. 깨끗한 물로 만든 유명한 위스키들이 많이 생산되는데 나는 이 위스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가이드와 함께 위스키 투어를 간 적이 있다.
대부분의 위스키 공장은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라 운전을 해야만 갈 수 있는데, 우리가 간 Speyside(스페이사이드)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를 꽉 채운 이 투어가 생각보다 좋았던 것은 단지 위스키 제조 방법을 구경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페이사이드를 가는 길 자체가 자연 그대로의 스코틀랜드를 가로질러 가야 했기 때문에 광활한 숲을 지나가고 중간중간 내려서 경관을 둘러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자연 속에서 운이 좋게도 스코틀랜드에서만 만날 수 있는 하이랜드 카우(Highland cow), 그중에서도 숲에 사는 야생의 하이랜드 카우도 만났다. 스코틀랜드에선 이렇게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런 정제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즐길 수 있다.
에어 & 아일 오브 아란
작은 바닷가 도시인 Ayr(에어)는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기차를 타는데 주의해야 할 점은 글래스고에는 목적지에 따라 같은 기차라도 타는 역이 다르다는 점이다. 글래스고에는 Queen’s Station(퀸스 스테이션)과 Central Station(센트럴 스테이션) 두 기차역이 있는데, 두 역은 걸어서 10분~15분 내외로 가깝지만, 도착지에 따라 파는 티켓이 다르므로 출발역를 꼭 확인하고 가자. 스코틀랜드는 특히 섬이 많은 데 에어와 같은 바닷가 도시에서 페리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대부분의 섬은 운전할 수 있다면 차를 빌려서 구경하는 게 가장 좋다. 섬 내에서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운행하거나 주말이면 운행을 안 하기도 해서 대중교통만 믿고 갔다가는 온종일 걸을 수 있다.
에어는 당일치기로 구경하기 정말 좋아서 페리를 타기 위해 스쳐 지나가는 도시로만 두기에는 아까운 곳이다. 시간이 있거나 좀 더 있어 충분히 즐기고 싶다면 페리를 타고 에어 옆의 Isle of Arran(아일 오브 아란)을 구경하는 것을 추천하지만 도시 자체도 충분히 매력이 있으므로 여유롭게 걸어서 도시를 구경하는 것도 추천한다.
이 도시는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 에든버러와 글래스고에 비교하면 아주 작은 도시이지만, 해안가를 따라 지어진 성과 또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인 의미를 큐레이팅해 주는 등 볼거리가 충분하다. 성을 구경하고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언덕에 있는 작은 야외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간단한 점심을 먹었는데 테이블에 앉아서도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울창한 숲을 걸어서 내려가다 보면 넓은 호수가 나오고 그 뒤에는 바다가 있는 멋진 도시다. 다들 호숫가에 앉아서 아이스크림과 피쉬앤 칩스를 먹고 있으면 등 뒤로 유유히 백조가 다가와 사람들이 감자튀김을 나눠 먹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레이트 쿰브레,
로치 로먼드
Great Cumbraeisland(그레이트 쿰브레) 라는 작은 섬도 무척 좋았다. 글래스고에서 Largs(락스)라는 도시로 한 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페리를 타고 섬에 들어가면 된다. 친구와 여기를 갔던 목적은 단 하나, 햇살을 흠뻑 쐬고 자전거를 타고 온종일 빈둥거리기. 삼 주간의 시간이 없어서 피를 말렸던 과제 제출을 마치고 3일은 집에서 잠만 자다가 우리는 여름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이 작은 섬으로 떠났다. 스코틀랜드의 가장 좋은 날씨를 즐기고 싶다면 5월부터 8월에 가는 것이 좋다.
이 섬을 갔던 날도 5월의 마지막 주였다. 페리에서 보이는 섬은 화려한 들꽃들로 뒤덮여 있었다. 페리 선착장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면 보이는 작은 마을을 보면서 우리는 스코틀랜드의 자연환경을 즐겼다. 자전거를 빌려서 본격적으로 섬을 구경하기 시작했는데 달리는 자전거의 길,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과 바다의 풍경만이 가득했다. 아주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파도 소리와 귀 옆을 스치는 바람 소리만 있는 섬이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세워놓고 바다 코앞에서 케이크를 먹으며 하루를 즐겼다.
한여름에도 스코틀랜드 날씨는 그다지 덥지 않다. 반소매를 입는 날도 며칠 되지 않고 그마저도 저녁이 되면 쌀쌀하기 때문에 겉옷을 챙겨 입는다. 이런 여름날에도 여름을 여름답게 즐기기 위해 떠난 곳은 Loch Lomond(로치 로먼드), 국립 공원 근처에 있는 큰 호수다. 크기가 상당해서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고 깊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수상 레저를 즐길 수 있었는데, 난생 처음 패들 보트를 빌려서 열심히 노를 저어 호수 중간의 갈매기만 사는 아주 작은 섬에 들리기도 하고 호수 한가운데에 띄워진 트램펄린에서 몸을 말리기도 했다.
햇살도 내리쬐는 화창한 날이었지만 물은 엄청나게 차가웠고, 물속은 새까매서 깊이도 방향도 가늠되지 않았다. 수영을 좋아하는 편임에도 잠수를 하면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새까만 물속 깜깜한 발밑을 보고 있으면 정말 스코틀랜드에는 네시가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곳에는 그렇게 친하지 않은 친구들과 갔는데 차를 타고 가면서도 재미가 없고 어색하기만 할 거 같았다. 하지만 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수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여섯 시간 동안 함께 수영을 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
가장 멀리 떠났던 스코틀랜드 내 여행은 2박 3일로 떠난 Lack District(레이크 디스트릭트). 사실 굳이 따지자면 스코틀랜드가 아닌 영국 지역이다. 이곳에는 2017년 유네스코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광활한 국립 공원이 있고, 넓은 호수와 영국에서 가장 높은 Scafell pike(스카펠 피크) 산이 있는 지역이다. 친구들과 함께 글래스고에서 부터 자동차를 빌려서 직접 운전을 하며떠난 시끌벅적한 로드 트립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바로 앞에 양 떼 목장과 염소들이 사는 산속의 집이었다. 차 한 대가 겨우겨우 지나가는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나오는 이 집은 해가 지기 시작하면 아무 불빛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외진 곳이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며 한 학기가 끝난 것을 자축했다. 그다음 날은 호수 근처로 이동해 호수를 따라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고 깊은 산길을 달리고, 페리를 타고 맞는 차가운 바람, 반대편으로 이동해 열심히 자전거를 타다가 아이스크림을 사서 앉은 호숫가 근처의 공기는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자전거를 다섯 시간 타고 다음 날에는 다리가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지만. 같은 호수가 있는 곳이고 바다가 있고 산이 있는 곳들이지만 장소마다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같은 것들이 있다고 같은 장소가 되는 것이 아니고, 같은 장소라도 누구와 가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충분히 바뀔 수 있다.
아일 오브 스카이
& 아일 오브 룬가
이 외에도 당신이 가봤으면 하는, (나는 못 가봤지만) 모두가 추천한 두 곳을 추천하자면 Isle of Skye(아일 오브 스카이)와 Isle of Lunge(아일 오브 룬가)라는 곳이 있다. 아일 오브 스카이는 날씨가 가장 중요한 여행지 중 한 곳인데 스코틀랜드 위쪽의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한 섬이다. 스코틀랜드의 무수한 섬 중에 가장 유명한 곳이고 특히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그만큼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거칠지만 그만큼 흔히 볼 수 없는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 차를 운전해서 산을 넘고 페리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 한참 걸어가야 해서 혼자 가기에는 부담이 있고 또 힘들게 도착해도 날씨가 안 좋으면 물안개가 짙게 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가야 하지만 다녀온 사람 모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입을 모아 추천했던 곳이다.
아일 오브 룬가는 사실 섬자체를 관광하기 보다는 섬에 사는 특별한 새를 보러 많이들 가는 곳이다. 퍼핀(Puffin)이라는 짧고 뚱뚱한 부리를 가지고 있는 이 귀여운 새를 보기 위해서 매년 많은 사람들이 이 섬을 찾는다. 세계적으로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퍼핀의 서식지인 이 섬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1년 중에 이 섬을 방문할 수 있는 날은 아주 짧다. 또 대부분 신청을 통해서 한정된 날에 소수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까다롭다고 생각하지만, 퍼핀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녀온 친구의 말로는 마치 큰 퍼핀의 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누워있으면 퍼핀들이 다가오기도 하고 둘러싸여서 퍼핀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왔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정말 가보고 싶고 궁금한게 많은 섬이다.
스코틀랜드 이곳저곳을 가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혼자 갔다면 하지 않았을 것들을 해봤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섬까지 충분히 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것. 어떤 곳이든 내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몰랐던 세상에서 누군가와 함께 갔기 때문에 배울 수 있었던 수많은 것들이 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어도 좋다. 이 글에 적어놓은 곳들이 아니어도 좋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