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우리 이민갈까? 15. 고양이와 함께 뉴질랜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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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우리 이민갈까? 15. 고양이와 함께 뉴질랜드로

유의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파트너와 나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이민을 고민할 때 우리의 가장 큰 걱정은 고양이였다. 사람은 어디에서든 결국 적응해서 살 수 있겠지만 아기 고양이도 아닌 4살, 6살인 고양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줄지 걱정이었고, 우리의 욕심으로 인해 고양이들이 괜한 고생만 하게 될까 봐 망설이기도 했다. 뉴질랜드와 한국은 직항으로도 12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데, 우리 고양이들은 비행기를 타본 적 없다. 강아지라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고양이들은 조금도 인간의 마음대로 되어주지 않는다. 둘째는 병원 갈 때 10분 정도 택시만 타도 불안해하며 이동 시간 내내 울었고, 첫째는 이사를 해서 낯선 환경이 되자 꼬박 이틀은 이동장 안에서 나오지 않던 아이다.

세계에서
고양이를 반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

일러스트 이민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고양이를 반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다. 뉴질랜드 농림축산검역본부라고 할 수 있는 MPI 홈페이지에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가진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이 나라는 기본적으로 무언가 반입하기 까다로운 나라고,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워낙 중시해서 입국 시 신발에 묻은 흙까지도 유의해야 한다. 반려동물 반입도 마찬가지로 영국, 호주와 함께 절차가 복잡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오죽하면 다니던 동물병원 원장님께서는 ‘뉴질랜드요?’ 하며 한숨을 쉬시더니, 차라리 가서 한 마리 새로 입양하라고 농담을 던지셨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의 ‘아가’가 인간 어린이가 아니라 고양이니까 중간에 이민 계획에 차질이 생기더라도 자녀의 학교나 비자가 꼬일 문제는 없다는 게 어디인가!

실제로 고양이를 데려오는 과정에는 난관이 많았다. 주된 어려움은 돈이 많이 들고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운송 전문 업체에 모든 과정을 맡기면 정보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문의한 업체마다 견적이 한 마리당 서류만 300만 원 이상이었다. 서류만 꾸민다고 다가 아니고 운송 및 계류장 비용도 있어 제반 비용을 합치면 두 마리이므로 거의 천만 원에 육박하는 비용이 든다. 우리는 영어를 읽을 줄 아는 가난한 청년들이고, 이건 절차를 직접 밟을 수밖에 없는 최적의 조건이다. 

한국에 있던 파트너가 바쁜 직장 생활의 와중에도 짬을 내어 준비했다. 한국어로 된 정보가 부족해서 영어로 된 내용을 한참 들여다보며 조건을 확인하고, 시기별로 해야 하는 검사를 위해 동물병원을 왔다 갔다 했다. 뉴질랜드에 먼저 와 있던 나는 뉴질랜드 쪽에서 연락해야 하는 일을 맡았다. 감사하게도 다니던 동물병원 원장님께서 적극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많이 도와주셨다.

참 험난했던 과정

일러스트 이민

인터넷에서 최소 4개월 전에 준비하면 가능하다는 내용도 봤는데, 그건 모든 상황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변수가 하나도 없을 경우에 한해서다. 경험해보니 최소한 6개월 정도, 넉넉하게 1년 정도는 여유를 두고 미리 계획하여 움직여야 했다. 접종할 것도 많고 결과를 기다리는 기간도 필요한 데다가 시기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이 꽤 걸린다. 우리도 6개월을 생각하고 준비했으나 실제로 고양이들은 약 9개월 만에 수입 허가를 받고 10개월 만에 입국할 수 있었다. 고양이를 반입하기 전에 수입 허가서를 먼저 받아야 하고, 허가서를 받기 위해서는 충족할 조건들이 있다. 

고양이들은 마이크로칩이 있어야 하고, 기준에 맞는 예방 접종이 되어 있어야 하며 그 외에도 여러 건강 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시기에 크게 영향을 주는 건 광견병 접종과 항체가 검사인데, 이전에 접종한 적이 있다고 해도 뉴질랜드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맞춰야 해서 다시 해야 할 수도 있고, 항체가 검사 후 몇 개월이 지나야 출국할 수 있는 기준도 있다. 우리도 마이크로칩을 삽입해야 했고 광견병 접종을 새로 해야 했다. 우리는 중간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 절차가 한번 늦어지는 첫 번째 난관을 만났고, 일정이 변경되면서 고양이의 출국은 애인의 출국 일자보다 뒤로 밀렸다. 우리는 운송 일자 및 계류장도 다시 모두 조율해야 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모두 한국에 없는 기간에 고양이를 맡길 곳까지 알아봐야 했다.

네? 다쳤다고요?

일러스트 이민

일부 국가는 동물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것도 가능한데, 뉴질랜드는 기내 수하물이든 위탁 수하물이든 개인이 동물을 운송할 수 없다. 현재 뉴질랜드 입국은 오직 허가받은 동물 운송회사를 통해서만 가능해서, 서류나 다른 준비는 몰라도 운송만큼은 직접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동물들이 뉴질랜드에 도착해도 공항에서 보호자는 반려동물을 만날 수 없고, 운송회사에서 계류장으로 바로 인계한다. 그러기 위해 고양이 입국 전부터 계류장을 알아보고 예약하는 것도 필수다. 고양이들은 비행 중에 규격에 맞게 제작된 이동장에 머물고, 이동장에 물통과 사료통을 달 수 있다. 

우리도 서류는 직접 마쳤지만 운송은 따로 업체를 끼고 진행했다. 일정이 늦춰진 바람에 고양이의 출국 당일 우리는 모두 한국에 없었고, 업체에 모든 것을 맡긴 채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고양이들이 비행기를 타던 그날, 조금 다치긴 했는데 무사히 비행기를 탔다는 연락을 받았다. 순간 모두 내 탓인 것 같아 눈앞이 깜깜해졌다.

“네? 다쳤다고요? 얼마나요?”
“아니, 고양이는 괜찮고 사람이 다쳤어요.”

그 짧은 순간에 미안함과 함께 안도감도 밀려왔다. 우리의 첫째 고양이는 겁이 많고 예민해서 낯선 상황이 닥치면 공격적으로 변한다. 내가 아니면 누구도 그 아이를 손으로 잡을 수 없고, 눈치도 빨라서 누군가 이동장을 들이밀면 수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피한다. 그날도 어떻게 유인해서 이동장에 넣긴 했으나 금세 다시 도망쳤고, 결국 억지로 잡아넣는 과정에서 직원분이 고양이 발톱 때문에 피를 본 것 같았다.

열흘간의 기다림

일러스트 이민

얼마 뒤 고양이가 무사히 뉴질랜드 땅을 밟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물론 도착했어도 바로 데려오지는 못하고, 계류장에서 최소 10일을 머무르며 살펴보는 절차를 마쳐야 한다. 이쯤 되면 애가 탄다. 사람도 힘든 열 시간 이상의 비행을 잘 견뎌냈을지, 아프진 않은지, 밥은 먹는지, 낯선 환경에서 잘 지낼지 걱정이 앞선다.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계류장은 하루에 십오만 원 이상이어서 열흘만으로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금액인데, 문제가 생기면 더 있어야 할 수도 있고 비용은 모두 보호자 부담이다. 애타는 마음으로 일주일쯤 지났을 때, 계류장에서 연락이 왔다. 검사에서 특정 구충제 성분이 기준에 미달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한 번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돌려보내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며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묻자, 친절한 답장이 왔다.

한 번 더 투약한 다음에 데려갈 수 있는데, 고양이가 난폭해서 우리가 못하겠어. 와서 안정을 시켜줄 수 있겠니?

근무를 빼고 약 1시간을 운전해 고양이를 데리러 갔다. 계류장에서 첫째를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보더니 왜 이제 왔냐고 지금 뭐 하는 거냐고 꾸중하듯 울어대는 그 목소리가 정말 반가웠다. 눈빛에 힘이 없고 얼굴이 조금 야윈 것 같아서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지금 나 하나 때문에 팔자에도 없던 긴 시간의 비행을 하고 주변에 온통 낯선 것투성이였으니 안 그래도 예민한 성격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으르렁대는 첫째를 끌어안고 필요한 조치를 받게 했고, 고양이들은 열흘 만에 드디어 집에 올 수 있었다. 참 다행이었다.

공존하는 건
노력하는 것

일러스트 이민

이미 정해졌기에 서로를 받아들이며 사는 가족처럼, 사실 고양이와 나는 각별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첫째가 사람의 애정과 손길을 찾는 성격이 아니기도 해서, 마음이야 아무래도 좋고 적합한 수준의 생활 환경을 제공하고 해야 할 도리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저 그런 사이로 계절이 몇 번 바뀌고 우리는 같이 성장했다. 대체로 고양이도 나를 본체만체하고 우리 사이는 데면데면하지만, 가끔 예쁠 때도 있고 가끔 미울 때도 있었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지친 아이들의 얼굴을 보던 그날, 내 안에 고양이를 향한 이렇게 강렬한 감정이 있었나 싶도록 가슴이 미어지는 걸 느끼고 조금 놀랐다.

고양이들은 다시 한국에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왔다 갔다 할 수도 있겠지만 고양이는 안 된다. 다시 입국시키기 위해 저 어마어마한 절차를 반복하는 건 생각도 하기 싫다. 그래도 여기 오니 더워서 축 처지는 폭염도 없고, 미세먼지도 없다. 인간 입장에서는 좀 싫지만, 벌레도 많아서 가끔 사냥하느라 정신이 없고, 창밖에 새도 가끔 놀러 오니까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 보인다. 둘 다 바깥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창문이 한 개라서 둘이 늘 싸웠다. 여기는 공간도 넓고 창문이 세 개나 있어서 둘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날도 줄었다. 뉴질랜드 우리 집 앞에는 쥐가 지나다녔는데, 고양이가 도착한 이후로 쥐가 점점 덜 보이는 생각지 못한 효과도 있다. 

고양이는 인간의 말을 못하니까 이 이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뉴질랜드에 함께 온 것이 내 무리한 욕심이었는지 아닌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이 아이들이 뉴질랜드에서 보낼 날들이 더 행복하기만 할 수 있기를, 우리 가족의 이민이 고양이들에게도 좋은 결정이었기를 바라며 부족한 내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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