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서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내용을 미리 준비한다고 달라질 게 없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 말을 길게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냥 최대한 길게 말하자고 다짐하고 왔어요.
서초구의 한 복합문화공간 안에 위치한 활기찬 분위기의 카페에서 자몽을 만났다. 자몽은 커피를 잘 못 마시지만 새로운 카페에 가보는 걸 좋아한다며, 도착한 카페에서 차가 들어간 음료를 주문했다. 이내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자몽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태도로 열심히 답해주었다. 떠오르는 대로 답하기보다는 질문을 듣고 언제나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비로소 신중하게 입을 뗐다.
Q. 어제의 사소한 잘한 일이 있나요?
A. 어제는 강남역에서 친구를 만나고 왔어요. 밥을 먹으려는데 갑자기 비가 와서 일단 비를 피했고, 원래 가려던 식당이 문을 닫아서 카레를 먹었어요. 친구랑 후식으로 배스킨라빈스에 아이스크림 먹으러 갔는데 거기에 배스킨라빙수 라는 빙수가 있더라고요. 배스킨라빈스에 빙수 있는 거 아셨나요? 빙수가 있어요! 초코나무숲 빙수를 먹었는데 초코나무숲 아이스크림이랑 초코볼이 들어가서 맛있었어요! 그 맛있는 빙수를 발견한 게 어제의 잘한 일이에요.
Q. 잠이 안 오면 뭘 하나요?
A. 어제도 낮잠 자서 잠이 안 왔어요. 보통 자기 전에는 항상 트위터를 하는데 잠이 안 오면 더 오래 해요. 종종 유튜브도 보고요. 유튜브로는 다른 사람들 브이로그도 보고, 평소에 궁금했던 것 찾아보기도 하고. 웃긴 것도 많이 봐요. ‘가인 학생’ 꼭 보세요. 진짜 웃겨요! 그러다가 진짜 자야 하면 ASMR을 들어요. ASMR은 그냥 잡담 같은 얘기를 소곤소곤 말하는 콘텐츠인데 그걸 틀어놓으면 잠이 와요. 잠이 안 올 때 잠 안 온다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뒤척이게 되는데, 뭐라도 청각적인 자극이 있으면 듣다가 잠들 수 있어요. ASMR의 포인트는 별로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내용, 그냥 어제 뭐 먹었고 오늘 뭐 했는지 그런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귀 기울여 듣기보다 신경 쓰는 듯 안 쓰는 듯 있다가 잠들 수 있어요.
Q. 자몽은 어떤 사람인가요?
A. 어... 트위터에 중독된 사람이요. 저는 할일 없으면 트위터만 하는 사람이에요. 근데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죠. 그래서 매일 트위터만 해요. 휴학하고 취업 준비를 한다고 말은 하는데, 막상 준비해보니까 시험공부가 하기 싫고 아무것도 안 하게 되었어요. 대책이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Q. 사람들이 나에게 주로 하는 오해가 있나요?
A. 오래된 친구가 나를 무뚝뚝하다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100% 오해인 건 아니지만 조금 섭섭해요. 그렇게 안 봐줬으면 하는데 그렇게 봐주니까요. 제가 사투리를 쓰고 말씨가 상냥한 편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요. 길게 얘기 못 하는 타입이고 목소리가 낮아서 그런 것도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말투만 그렇지 착한 사람이거든요. 착한 부분을 많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Q. 요즘 하는 걱정이 있나요?
A. 건강에 관한 걱정이요. 생리를 평소보다 오랫동안 안 하고 있는데, 산부인과는 무서워서 아직 못 갔어요. 자취하면서 살이 1~2년 사이에 급격하게 쪘어요. 밥을 제때 안 챙겨 먹고 편의점 음식을 자주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혼자 사니까 수면 패턴도 조절이 잘 안 돼서 늦게 자고 싶으면 한없이 늦게 자고 하니까 건강을 해치게 돼요.
Q. 뭔가 만들어본 게 있나요?
A. 평소에 하고 싶었던 비디오 게임 ‘심즈 4’가 무료로 풀리면서 하기 시작했는데요. 거기서 예쁜 심 캐릭터를 만드는 걸 좋아해요. 그러려면 원래 게임에 있는 아이템 말고 다른 유저들이 만든 CC 템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한꺼번에 다운로드가 안 되거든요.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연예인이랑 비슷하게 만드는 ‘심즈 셔누’ 같은 건 들어보신 적 있죠? 그런 거 만들려면 진짜 하나하나 따로 받아야 해요. 최근 노트북이 고장 나기도 했지만, 그런 번거로움 때문에도 거의 포기했어요.
Q. 최근에 일어난 새로운 일에 관해 말해주세요.
A. 최근에 이사를 왔어요. 서울에 있는 학교 앞에서 자취하다가 본가 내려가서 살다가 경기도에 있는 기숙사로 오게 됐어요. 경기도에서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아, 처음에는 물론 서울에 살아보고 싶었는데, 서울은 이제 한번 살아봤으니까요. 서울은 뭐 CGV 같은 영화관도 많고, 번화가도 있고 학생들도 많아서 살면서 불편한 게 없었어요. 경기도는 좀 조용한 베드타운 이미지여서 서울과는 다를 것 같고, 수도권에 사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했거든요. 근데 좀 후회되는 게 여기서 학교까지 1시간도 넘게 걸려요. 경기도 자체는 좋은데 통학이 힘들어서 그냥 호기심으로만 끝내는 게 좋았을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기숙사가 시설도 잘돼있고 밥이 잘 나와서 불만은 없어요. 학교가 멀지만, 평소에 운동량이 적어서 많이 움직이는 데에 의미를 두려고 해요. 살이라도 빠지지 않을까요?
Q. 혼자 사는 것과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 중 뭐가 더 좋아요?
A. 두 개 다 해봤는데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게 저에게는 더 좋은 것 같아요. 혼자 살면 스스로 통제가 잘 안 돼요. 요리도 안 해 먹고 잠도 제때 안자고. 제가 몸을 움직이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누구랑 같이 살면 그래도 종일 누워있지는 못하니까요. 룸메이트랑 같이 살면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너무 한심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좀 더 일어나려고 해요. 이게 방에 소파가 없고 침대만 있어서 계속 누워있는 것 같기도 해요. 소파가 없으니까 마땅히 일어나 앉을 곳이 없고, 그렇다고 책상에 앉고 싶지는 않고. 아 그리고 혼자 살 때는 엄청 심심했어요. 가족은 그 나름의 답답함이 있는데 룸메이트 같은 관계는 좋은 것 같아요.
Q. ‘~답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요?
A. 저는 대학생이지만 대학생답지 않은 것 같아요. 전형적인 대학 생활을 안 해본 것 같다는 아쉬움도 마음 한구석에 늘 있어요. 뭐 술 많이 먹고, 토하고,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요. 친구들이랑 자주 어울려 다니고 축제나 학교 행사도 참여하고 무리에 잘 섞이는, 소위 ‘인싸’라고 불리는 행동을 하나도 안 해봤어요. 대학생답다는 말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을 텐데,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에요. 친동생을 보면 전형적인 대학 생활을 하고 있어요.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짧은 치마 입고 대학생처럼 꾸미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꾸미는 일도 하지 않고, ‘여대생’ 이미지에 들어맞아 본 적이 없어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안 좋아하고 그냥 당장 내가 편한 대로만 살았어요.
그런 것들 안 하고 대학 와서 뭐 했나 생각해보면, 인권동아리를 하고, 집회도 가고, 교지 활동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다고 거기서도 완전히 운동권이었던 건 아니었지만요. 저는 그냥 대학 도서관에 책이 많길래, 늘 도서관 가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사회과학책 읽고 트위터하고 그랬어요. 처음에는 인권 영화제나 여성 인권 행사 참석하고 민우회 같은 여성 단체에서 하는 강의도 찾아 듣는 걸 좋아했어요. 서울 오면 하고 싶었던 것들이 그런 거였어요. 여성 영화제도 신촌에서 하고, 퀴어 영화제도 있고 아무튼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예전처럼 그런 행사에 자주 가는 것도 아니에요. 서울에 살 때보다 거리가 멀어지기도 했고, 요즘은 판도가 바뀌었잖아요. 저는 메갈리아 붐이 막 시작될 때 신입생이었는데, 지금은 온라인 페미니즘도 ‘래디컬’, ‘쓰까’로 나뉘고 노선이 분리되기도 했고 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저는 메갈리아 때의 신입생이어서 재밌었어요. 미러링 때문에 학교 게시판에서도 이슈였고, 여성학 교양 들을 땐 수업에서도 토론하고 그랬어요. 내가 만약 메갈 이후의 신입생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지금이랑은 조금 달랐을 것 같기도 해요.
저랑 관련이 있는 이야기라서 여성학에 늘 관심이 많았어요. 관심은 있었지만 어릴 때는 정보력이 없어서 ‘페미’인지 ‘퀴어’인지 그런 말은 잘 몰랐어요. 처음에 고등학교 친구 중에 인권에 관심 많은 친구가 트위터를 해서 저도 시작했어요. 트위터가 그런 공간인 건 알았고 저도 스마트폰 생기면 시작하려고 마음먹고 있다가 바로 시작했죠. 그리고 2015년에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운동이 있었잖아요. 그때 그런 트위터 페미니즘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Q. 서울에서 청년 여성으로 산다는 건 어떤가요?
A.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저는 부모님이 어느 정도 지원해주시고, 운 좋게 기숙사에 살게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생활비가 많이 들어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불공평한 구조인데, 개인적으로는 서울에 살면서 최근 유행을 빠르고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게 편해요. 제가 계속 서울에서 살았더라면 이런 걸 몰랐겠지만 저는 그동안 대구에 살면서 이런 다양한 영화나 인권 담론을 항상 접하고 싶었는데 별로 없었거든요. 예전에도 그랬고 얼마 전까지 서울에 사는 동안에도 ‘서울에 살면 좋다.’는 생각을 항상 했었어요.
서울은 돈이 많이 드는데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서울에 지금 청년 노동력이 희소하지 않으니까 다들 하찮게 취급하는 것 같아요. 여자는 더 그런 취급을 받고요. 그런 게 너무 화가 나요. 그냥 사람이 너무 많다 보니까 누군가는 쉽게 다른 사람을 부릴 수 있고, 그걸로 유세를 부리는 것들까지 다 짜증이 나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제가 최근에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다가 알았는데, NVLD(또는 NLD)라고 비언어성 학습장애라는 게 있어요. 이게 맥락을 읽고 분위기를 파악하여 반응하는 부분의 발달이 떨어지는 증상인데, 제가 이해하기로는 사회성을 담당하는 지능이 떨어진다는 것 같아요. 좀 더 알려진 아스퍼거 증후군이랑도 비슷한데, 전문적인 내용이라 정확한 설명은 어렵지만, 아스퍼거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게 한국어로 찾아보면 자료가 많이 나오지도 않아요. 저는 그동안 제가 사회성이 부족해서 답답했고 이게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런 게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이런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노력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증상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이런 게 세상에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