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지 않은 사람들 6. '법학도' 답지 않은 난별

알다독립인터뷰

답지 않은 사람들 6. '법학도' 답지 않은 난별

유의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여의도의 커피 전문점에서 난별을 만났다. 전날 밤에도 기숙사 룸메이트와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은가?’하며 고민하다 잠들었다는 그는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다. 과제와 예습복습, 시험준비, 수업까지 할 게 너무 많다고 말하면서도 무척 활기차고 밝은 모습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가족한테 의지를 많이 해요. 특히 엄마가, 가끔 시크하게 답을 내려주거든요. 로스쿨 처음 들어갔을 때, 내가 제일 못하는 것 같고 나만 찌끄레기 같아서 주눅 들어있는데 엄마가, ‘너 대학 처음 들어갔을 때도 똑같이 얘기했어.’ 하더라고요. 엄마는 나를 태어날 때부터 봐와서, 내가 기억 못 하는 나를 기억하고 있잖아요. 제가 새로운 어려움인 줄 알고 유난 떨 때마다 너는 늘 그랬다고 말해줘요. 그럼 또 안심돼요. 지금 새삼스럽게 호들갑 떨고 있지만 나는 늘 이랬구나. 이 어려움도 결국은 지나가는 패턴 속에 있고 잘 넘어가겠구나. 그럴 때마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좋아요.

Q. SNS에 주로 뭘 쓰나요?

A. 트위터를 하는데, 트위터는 뭘 쓰려고 쓴다기보다는 그냥 쓰면서 생각하는 거예요. 트위터는 항상 타임라인이 있잖아요. 누가 계속 말을 하고, 나도 아무 말을 하면 되고. 아무리 죽는소리를 해도 아무도 깊게 신경 안 쓰잖아요. 페이스북에 그런 거 써봐요. 위로하는 댓글이 달리고 요즘 힘드냐고 카톡 오고 난리일 거예요. 아, ‘덕질’용 계정이 원래는 따로 있었는데, 정리했어요. 덕질을 좀 쉬려고 해서요.

Q. 팬 활동을 말하는 거죠? 왜 쉬려고 해요?

A. (한숨) 일단 첫째로 공부를 해야 해서 그랬고... 실시간으로 관련 정보를 안 봐도 된다는 걸 저 스스로 익힐 필요가 있었어요. 너무 습관처럼 붙들고 있으니까.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것도 문제지만, 심적 거리 조절이 필요해서요. 사실은 팬덤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어요. 팬들이 아티스트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가사를 써서 비판을 받을 때면, 그의 앞길을 망치지 말라면서 잘못을 정당화하기 바쁘고. 그렇게 의심도 비판도 없이 전적으로 지지하는 게 무슨 종교 같고, 저는 종교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완벽한 인간은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랑 같이 있기가 싫더라고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 중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자란 20대 남자고, 난 아니니까, 그 경험의 차이를 계속 생각하게 돼요. 친구 사이라면 얘기하면서 좁힐 수 있어요. 상대가 페미니즘을 이해하지 못해도 맥락 속에서 설명할 수 있고, 내 삶으로 보여줄 수 있고.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런데 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비판하려면, 잘못된 지점을 하나씩 나열해서 논리적인 언어로 전할 수밖에 없어요. 나 하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얘기하니까, 비판을 받는 입장에서는 공격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그럴 때 나는 익명의 군중인 거고, 어제까지 얘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던 바로 그 사람이고, 동일인물이란 걸 얘는 모르잖아요. 그게 이 관계의 본질적 문제고,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 사람의 인생에 전혀 침투할 수 없는 게 과연 관계가 맞나? 얘가 영화 포스터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이걸 보면서 뭘 느꼈을지 알 수가 없어요. 영화에 이런 문제점이 있었는데 알기는 할까. ‘알까?’ 하는 기대든 ‘모를 거야.’ 하는 실망이든, 나와의 간극만 확인하게 되죠. 어쨌든 얘는 남자로서 나이 들어갈 거고 우리의 차이는 점점 커질 텐데, 어느 순간 내가 이걸 정리하고 가지 않으면 얘를 미워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절대로 미워하고 싶지는 않은데.

얘를 사랑하는 과정은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얘가 모두에게 특별한 사람이 아닌데, 나한테 특별한 거잖아요. 왜 특별하지? 어떤 점이 좋지? 생각하다 보면 나를 알 수 있었고. 저는 감정이 납득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좋아하는 이유를 찾고 싶어서 처음에 미친듯이 좋아할 때는 얘가 잘못을 해도 어떻게든 선의로 해석해주려고 노력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내가 아는 말에 구겨 넣으려다 보니 결국 나를 오해하고 걔를 오해하게 됐어요.

Q. 나름대로 잘 사랑하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게 있나요?

A. 네. 우선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기. 감정이 고조 됐을 때 왜 드는 감정인지 먼저 생각하고, 집단적 플로우에 편승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어떤 사건이 있어서 팬들이 다 화나 있으면 거기에 섣불리 말 얹지 않고, 나의 생각을 하는 거에요. 함께 덕질하는 페미니스트 친구가 있어요. 주로 저는 걔랑 얘기했죠. 공유하는 정서가 있고 맥락을 아니까 대충 말하면 오해의 여지 없이 알아듣잖아요.

그리고 사생활 관련된 거 안 보기. 목격담, 공항 사진, 출퇴근길, 대기실 영상 이런 거요. 계속 보면 심적 거리 조절이 잘 안되기도 하고, 존중하고 싶다면 그런 걸 봐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이게 경계가 모호한 게 대기실 영상 같은건 회사에서 올리는 거거든요. 노동자로서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는 건 아이돌 산업 구조 전체의 문제지만, 나부터라도 덜 소비하려고요. 브이앱으로 팬들과 ‘실시간 소통’을 하는 것도 그만큼 그 사람의 자유시간을 뺏는 거잖아요. 카메라 켜는 순간 그게 일이 되는데. 물론 일이 아니라 팬들과의 소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본인도 팬도 경계를 잊고 점점 노동자로서 일하는 시간이 불분명해져요. 대기하거나 이동하는 시간은 나부터 소비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Q. 서울에서 청년 여성으로 살아가는 건 어떤가요?

A. 일단 서울은 중심부의 언어잖아요. 청년은 좀 애매하고, 여성은 주변부고. 저는 이렇게 세 키워드를 들으면 서울이 가지는 힘을 엄청 크게 느껴요. 저는 부모의 집이 있어서 서울에 계속 살았고, 그래서 집을 구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없었어요. 서울 왔다 갔다 하기 힘들다는 경기권 친구들의 고충이나 지방 친구들의 주거나 일자리 관련 고충을 들어도 직접 피부로 느낀 적은 없어요. 서울에 계속 살아서 오히려 스스로 ‘서울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서울사람’이라는 어떤 존재는 비서울일 때 더 명확하게 인지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청년. 제 생각에 청년이란, 먹고 살 걱정을 하는 거예요. 저는 변호사가 될거지만, 그래도 취직을 해야 먹고 사는데. 공부만 했지 취업전선에 아직 뛰어들어보지 않았는데 벌써 두렵고. 먹고 살 걱정 때문에 뭔가를 할 때마다 이게 나의 커리어에 어떤 작용을 할 것인지 고민하게 돼요. 그렇다고 뭔가를 하고 안 하고의 결정을 뒤바꾸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생각을 안 할 수 없어요. 인사담당자나 면접자의 시선으로 내가 하는 일들을 보게 돼요. 여성이라는 점은 이 모든 것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요.

여성이라는 게 저한테는 페미니스트라는 것과 같아요. 그렇다는 건 하루하루가 힘들다는 건데. 제가 페미니스트라는 걸 숨기지 않고 말하고 다니면 잘 싸운다거나 굽히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요. 그런데 사실 저는 저를 타협의 귀재라고 생각하거든요? 문제를 못 느끼는 사람들은 타협하지 않잖아요. 로스쿨 생활을 하면서 매일 새롭게 각오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화내고 설득할 수 없으니까, 알아들을 인간에게 알아들을 방식으로 이야기하려고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매 순간 신념을 타협해요. 그래서 주변에서 저한테 타협하지 않는다고 하면 화가 나요. 타협할 필요가 없는이십 대 남성이 타협에 관해 뭘 안다고.

Q. ‘~답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A. 제가 가진 속성들을 생각해보면, 나를 대표하는 것들은 내가 선택하거나 긍정한 속성이라서 별로 이질감을 느끼지 않아요.

Q. 미디어의 찬란하고 희망찬 20대 여성의 이미지를 보며, 그에 비해 20대 여성답지 않다는 응답도 있었어요.

A. 저는 자의식이 강해서 20대 여성을 나에 맞춰 생각해요. 나다운 게 20대 여성다운거지. 내가 20대 여성이니까. 아. 하지만어느 정도는 그 속성을 가져야 이질감도 느끼는 것 같아요. 여성답다는 게 무엇인지는 고민이지만, 일단 그런 게 있다고 치면 저는 여성다운 부분도 있고 여성답지 않은 부분도 있어요. 만약 공존하지 않고 전적으로 여성답지 않은 부분만 있다면 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속성을 버릴 테니까. 그럼 여성이 아니니까 여성답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게 되잖아요? 그래서 뭐 답지 않은지 모르겠어요.

Q. ‘인터뷰이’답지 않은 걸로 해요. 보통은 답을 하려고 하는데 자꾸 질문을 해주시네요, 하하.

A. 아, 저는 법학도답지 않아요! 자꾸 질문에 의문이 생겨요. 일어난 일만 그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꾸 의문을 제기해요. 사건이 하나 벌어지면 한쪽은 불쌍하고 억울한데, 자꾸 억울한 사람의 처지를 생각해보게 되고. 로스쿨 처음 들어왔을 때 공부하는 방법이 너무 달라서 힘들었어요. 학부 때는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정확히 몰라도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내 의견을 쓰는 식으로 답안을 썼어요. 때로는 교수님의 허를 찌르고 새로운 시각을 제안해도 괜찮았어요. 법학은 이러면 안 되거든요. 교수님의 허를 찌르면 절대 안되고, 쓸데없는 말을 쓰면 안 되고. 이미 벌어진 일들을 공부하는 거고, 판례가 있는 거라서 의견도 그에 입각해서 써야 해요.

난별은 스스로 ‘낙관적이고, 나를 좋아하고, 욕심이 많고, 간지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간지란, 타인이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또한, 난별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신조로 살아간다.

지금 뭐가 마음에 안 들고 힘들어도, 나중에 뭔가의 초석이나 전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위안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굴곡이 있었기에 길이 생겼고 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 과정이었어요. 미래에서 보면 저의 지금도 그렇겠죠. 이건 사람한테도 적용되는데, 누가 나쁘고 못되게 굴어도 사정이 있겠거니 해요. 그의 삶이나 맥락에서 뭔가 이유가 있겠죠. 그래서 사람을 잘 안 미워해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요.

<답지 않은 사람들>은 6회를 끝으로 시즌 1을 마무리합니다. 더 많은 '답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시즌 2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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