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온 편지 3. 이방인, 여자, 예민러

생각하다여성 청년

목포에서 온 편지 3. 이방인, 여자, 예민러

황달수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오랜만이야. 그 동안 별 일 없었지? 언제나 무탈한 네가 되길 바래. 해가 짧아지니까 말보다 카톡보다 긴 글을 쓰고 싶어서 또 편지를 보내. 오늘은 어쩌다가 목포에서 작은 술집을 열게 되었는지 얘기해 볼게.

사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천천히 내 가게를 준비하려고 했어. 서울보다는 임대료가 당연히 저렴할 거라는 생각에 한 6개월 정도 일하면 사업 자금을 모을 수 있을 줄 알았지. 참 멍청할 정도로 순진한 생각이었지만.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가 원하는 인재가 되기에 내 나이는 너무 많고 내 경력은 너무 다채로웠어. 일자리도 별로 없었어. 시급도 넉넉하지 않고. 왜 다들 서울에 일하러 오는지 그제서야 알게 된거야. 서울은 인구가 많은 만큼 일자리도 많아서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 자리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잖아? 목포는 인구 수가 적은 만큼 일자리도 적었어. 그리고 혈연, 지연이 없어서 더 어려웠어. 목포에 내려온 이유가 내 발목을 잡았던 거지. 그렇게 타의로 백수가 된 나는 저렴하게 산 자전거를 타고 목포를 쏘다녔어. 서울에 있을 땐 언덕도 많고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아서 자전거 타는게 번거롭고 힘들었는데, 목포에서는 쌩쌩 달릴 수 있어서 좋거든.

목포에 내려 온 지 몇 주 되지 않아 목포시 원도심 발전을 위한 [문화예술 및 청춘창업 지원사업] 을 알리는 포스터가 이 곳 저 곳 붙어있더라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이 사업때문에 목포에 온 줄 알기도 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목포에 살려고 온 게 먼저입니다.’ 라고 말하곤 하지만. 처음엔 문화예술이니 청춘이니 내가 싫어하는 단어가 들어있었으니 도시재생 명목으로 아픈 청춘들 열정을 불태우길 바란다고 생각했어. 최대 5000만원을 지원해 준다는 이 사업은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어떤 장소에도 붙어있었어. 그러다보니 ‘그래, 알바도 못 구하고 있는데, 되든 안되든 한 번 해보자! 돈 준다는데!’하곤 별 고민도 대책도 없이 지원해버렸어. [외식업] 이라는 카테고리에 ‘혼자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로 말이야.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서울엔 내가 혼자 가도 편안한 여자 사장님 혹은 친한 남자 사장이 있는 술집이 몇 군데 있었지만, 목포에서 내가 혼자 술을 마시려면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4캔을 만 원에 집어 오는 것 말고는 혼자 편안하게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어. 유머랍시고 건네는 성희롱이나 인사처럼 건네는 바디셰이밍, 그리고 숱한 시선강간에 불편함을 표출하는 혼자 온 ‘여자' 손님은 별걸 다 불쾌해 하는 ‘예민러’ 취급을 받거든. 지금은 내가 가게를 연지 2년 반 정도가 되었지만, 목포는 아직까지 (여자 혼자) 술을 혼자 마시는 문화가 생소해 보여. 아마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아직까지 목포는 여성인권에 대해서 말하고 행동하고 설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라 생각해.

일단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생각으로 지원서를 낸거였는데 이게 1차 합격이 된 거야. 물론 당연히 될 줄 알았어. 각종 카페 아이템들로 난무한 지원서 중에서 ‘혼술-내가 제일 쓰기 싫어하는 단어지만 공무원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단어야-’ 이라는 현실을 아주 잘 반영한 트렌디한 아이템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인턴으로 일하던 곳에서 진행하던 도시재생 사업에 잠깐 발을 담갔고, 꽤 유명한 해외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고, 홍대에 있는 서점 및 카페나 바에서도 일을 했었고, 재미있는 축제의 마케팅 및 홍보 일을 했고, 연남동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헌옷가게를 동업하기도 한 내 과거는 ‘청춘창업'에 딱 맞는 이력이었거든. 특히나 이런 이력을 가진 사람은 기를 쓰고 서울에서 일하고 싶어할텐데, 목포시에서도 어리둥절 했을 거야. 카페로 가득 찬 외식업 카테고리에서 술집이란 아이템을 유일하게 꺼낸 내가 너무 자랑스러워. 그리고 50명 가까이 되는 창업자 중 현재 점포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기도 한 게 자랑스러워! 물론 아직까지도 ‘혼술집' 사장님이라고 불리는 건 너무나도 닭살이 돋지만.

일러스트 이민

여혐 범벅

1차 합격자임에도 불구하고, 시에서도 이런 사업이 처음이었기에 필요한 서류나 계약서를 몇 번이고 수정하고 공문을 보내고 시간낭비로 느껴지는 컨설팅 및 선진답사 등의 과정이 많았어. 관료제 시스템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이 그렇듯이.

1차 합격 후 교육 및 친교를 목표로 하는 1박 2일 일정의 오리엔테이션을 억지로 참가해야 했고 (알고보니 소위 ‘빽’으로 합격한 사람들은 오리엔테이션을 비롯한 공식 일정에 나타나지 않았어. 이 과정들이 번거롭고 사실 필요가 없다는 거란 걸 반증한다고 생각해.) 그 오리엔테이션 과정에서 진행한 소위 전문 강사들의 강의는 여혐 범벅이었기 때문에 깜짝 놀랐어. 나랏돈으로 진행하는 강의에서 화장 안 한 여자의 민낯이 서비스직에선 불쾌감을 준다고 하질 않나, 진상 에피소드를 말하면서 살이 찐 아줌마라는 것을 강조한다든지, 군데 군데 성희롱에 가까운 말을 농담조로 뱉곤 이러면 요즘 잡혀간다느니 라고 말하던 강사의 외모 역시 나에겐 불쾌감을 주는 K-저씨의 모습이었던게 지금 생각하니 너무 부조리하고 웃기지.

서울에 살면서도 불쾌한 일을 많이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서울에서는 같이 불쾌하다 말해 줄 사람들이 많았어. 그런데 여기선 그 강사의 농담에 사람들이 웃고, 동의하는 거야. 아직까지 ‘목포는 여자의 외모나 지위 등을 비하하는 말들을 유머로 받아들여 주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무기력해졌어. 게다가 나는 겨우 1차 합격을 했을 뿐, 최종 합격을 위한 관문 비스무레 한 것이 두 번 더 있었기 때문에 그 강사에게 격렬하게 항의하지 못하는 낮은 위치에 있었으니까. 그래도 ‘저런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자!’ 라는 생각으로 빻은 말들과 행동들을 무시하고 기억하기 시작했어. 지금 너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말 할 수 있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세상은 바뀌고 있잖아. 누군가가 말하기 시작해서.

합격 후 난관 시작

최종 합격까지는 남은 몇 차례의 심사가 있었어. 심사는 내 사업의 가능성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 아마 내가 이 사업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지방 도시 특유의 불공평한 부분을 한 참 후에나 느꼈겠지. 도시의 익명성을 기대하면서 내려온 목포는 내가 즐겨보던 미국 드라마 ‘리버데일' 이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 같은 일들이 많았어. 두 다리만 건너가도 아는 사람이고 조금만 파고 들어가도 누가 누구랑 친하고,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가족사항이 어떤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게 되는 건 몹시 끔찍한 일이더라. 나처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서울에서 살다가 온 사람에게는 더 끔찍하게 느껴졌어. 누구의 아들이기 때문에, 같은 학교 동문이기 때문에 사업에 선정 된 것으로 추정 되는 사람들이 몇 있었고, 그런 의구심을 씻어내기 위해 목포시의 공정함의 근거가 되어 줄 나처럼 연고가 없는 타지 출신 사람들이 몇 있었어. 뭐 이건 그냥 내 추측이지만, 지방 소도시에서 이런 일이 아예 없진 않잖아? 뉴스 보도나 신문 기사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말야. 심지어 지금 목포시는 이 건으로 인해서 소송 중이기도 해. 뭐 그렇다구.

과연 내가 최종 합격을 했을까?! 두구두구두구두구!! 최종 합격을 했으니까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겠지? 싱거운 결말 미안. 그런데 방금 내가 ‘결말’이라고 표현했네. 결말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잖아? 석연치 않은 목포시 사업에 석연치 않게 합격하니까, 다른 현실의 벽과 부딪히기 시작했거든.

오랜만에 이 때 일을 생각하니까 답답하고 짜증나네. 속을 뻥 뚫어줄 시원하고 얼큰한 게 먹고 싶어졌어. 너도 편지 읽으면서 답답했지? 요리하기 쉬운 토마토 라면 레시피를 알려줄게. 토마토 한 개가 들어갔을 뿐인데 맛있어져! 과정도 번거롭지 않고 말야.

다음에 또 편지할게. 추운데 감기 걸리지 말아.

<토마토 라면>

일러스트 이민

재료

잘 익은 토마토 하나

올리브유 한 큰 술

진라면 매운 맛

숙주나물 한 움큼

 

  1. 중불에 냄비를 올립니다. 그리고 올리브유를 한 큰 술 둘러줍니다.
  2. 올리브유를 냄비 전체에 묻을 수 있게 냄비를 흔들어 준 뒤 토마토를 마음대로 잘라서 넣은 뒤 볶습니다. 이 때 기름 연기가 어마어마 하기 때문에 냄비 뚜껑을 덮은 뒤 흔들 흔들 해 주면 요리를 마친 후 청소하기가 수월합니다.
  3. 토마토가 익은 냄새가 나면 물 500ml를 넣고 센불에 물을 끓입니다.
  4. 물이 끓어 거품이 올라오면 진라면 매운 맛의 면과 동봉된 스프를 넣고 끓입니다. 2분 30초 동안 타이머를 켜 주세요.
  5. 숙주 한 웅큼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줍니다.
  6. 타이머가 울린 뒤 면만 꺼내 면기에 담습니다. 1분 동안 타이머를 켜 주세요.
  7. 타이머가 울린 뒤 잘 끓여진 국물을 면만 담은 면기에 부어줍니다. 그 위에 숙주를 올립니다.
  8. 후추, 고춧가루, 파슬리 가루 등 기호에 맞게 향신료를 뿌려 줍니다. 답답할 때 먹기 좋은 ‘토마토 라면' 완성!
황달수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목포에서 온 편지

여성 청년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