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온 편지 4. 지치고 힘들어도

생각하다여성 청년창업

목포에서 온 편지 4. 지치고 힘들어도

황달수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안녕, 어제 목포에는 큰 비가 내렸어. 날씨가 추워져서 눈이 올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는 그 정도의 추위는 아닌가봐. 좁디 좁은 한반도지만 아무래도 남쪽은 날씨가 비교적 따뜻한 느낌이야. 저번에는 석연치 않게 목포시 도시재생 사업에 합격한 이야기까지 했지?

합격만 하면 탄탄대로일거라는 생각은 대체 누가 우리에게 심어주는걸까. 대학교에 합격하면 여드름도 사라지고 로맨스 드라마 주인공 처럼 근사한 애인도 생기고 대기업에도 취직할 줄 알았는데 전부 다 사실이 아니었잖아. 여드름은 아직도 나고 있고 애인은 로맨스 드라마나 영화 같지 않았고 대기업 취직을 위해서는 각종 스펙과 경험과 집안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물론 전부 다 들어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야. 내 경우는 그랬어. 하나도 안 맞았지. 역시나 도시재생 사업에 합격을 했더라도 여드름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과 생리통 심지어 치통까지 생겨버린거야! 가게 자리를 두고서부터 공무원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거든.

처음부터 삐걱댔지만

일러스트 이민

몇 달간 교육을 받으면서 틈틈이 돌아다니며 내가 점찍어 둔 자리는 우리집 근처에 닫은 지 꽤 된 호프집이었어. 해가 바로 잘 들고 1층인데다가 목포 원도심과는 살짝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 개저씨들을 피해 조용히 가게를 운영할 수 있을거란 판단이었거든. 심지어 그 건물의 주인은 내가 종종 들리는 집 근처의 성격 좋으신 슈퍼마켓 사장 아주머니이기도 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포시 도시재생 센터에 주소를 알려주며 이 곳도 해당 되는 지역인지 체크를 했고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어. 그래서 계약을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서류 준비를 시작했어. 그런데 도시재생과 공무원은 본인들이 지정하지 않은 장소에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다른 자리를 알아보라더라? 교육 중에 장소와 관련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도시재생 센터에서도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힘이 쭉 빠졌어.

몇 주 동안 도시재생 구역 안에 있는 곳이니 가능하다는 나와 몇몇 합격자들과 본인들이 붉은 선으로 굵게 표시 한 곳만 가능하다는 목포시 공무원과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슈퍼마켓 사장님께 계약이 불가하며,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했어. 목포시 도시재생 센터에서 협약을 맺은 건물들 주소를 밴드 앱에 올려놨기에 나는 다시 그 건물들 중 가게에 알맞은 장소를 물색해야 했어. 결국 공무원은 나중에서야 구역 안에만 있기만 하면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그땐 이미 다른 곳을 계약해버린 후였어. 이때부터 명확히 알게 되었어. 아아! 이 도시재생 사업은 주먹구구구나! 마치 박경리 작가가 히말라야 노새를 보고 울었다는 박범신을 보고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하셨듯이 말야.

계약한 곳은 ‘목포시 노적봉길 18’. 도시재생 센터에서 알려준 주소에 도착해 전화를 했더니, 알려준 주소가 틀린 거야. 18이 아니라 18-1이었지. 건물에 들어가니 소독약 냄새가 진동을 했어. 옛날에 이 곳이 안과 자리였다며 설명하는 남자 건물주는 술을 안 마셨는데도 꼭 마신 것처럼 보이는 얼굴에 멋내기 새치 염색약으로 물들인 까만 곱슬머리를 하고 볼드한 금반지를 낀 금속테 안경을 쓴, 마치 내 고향 서울 지하철 1호선에서 종종 마주친 듯한 차림새의 할아버지였어. 현재 1층은 계약이 되었고, 2층에 하나가 비어있다며 공간을 보여주셨지. 싸구려 남자 스킨 냄새가 진동하는 할아버지의 뒤를 따라 올라 온 장소는 고색창연한 나무 틀로 된 유리창에 구름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는 창문이 크게 세 면을 가득 채워 빛이 잘 드는 9평 정도 되는 따뜻하고 근사한 곳이었어. 예전엔 이 곳이 수술실이었다며 이것 저것 설명해주시는데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어. 건물이 빽빽한 서울에 사느라 빛에 목말라 있던 난 ‘아묻따’ 여기로 가게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 지금은 좀 더 신중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하지만.

미스황

일러스트 이민

남자 건물주가 나에게 ‘미스황' 이라고 부르는 순간 바로 아이폰의 음성녹음 기능을 켰던 건 되돌이켜봐도 정말 잘한 일이었어. 내가 이 공간을 마음에 들어하는 기색을 비추자마자 남자 건물주는 ‘미스황' 이라는 호칭을 쓰면서 보증금과 월세에 대해 설명을 했고 시에서 보증금과 월세를 반씩 나눠 부담한다는 항목이 있었기에 나는 그가 제시한 월세에서 2만원을 더 얹는 대신 건물 관리-계단과 복도 청소 및 화장실 관리-를 철저히 해 줄 것을 구두로 약속받고 계약을 진행했어.

나중에 알게 된 두 가지 사실은 첫째, 내가 시세보다 좀 더 비싼 가격에 월세를 내고 있다는 것. 둘째, 남자 건물주 성격이 상식 밖이어서 몇 명이 계약을 시도했다가 포기했었다는 것. 하지만 이걸 알았어도 여기를 계약했을 것 같아. 정말 공간이 너무 근사하거든. 그래도 나를 화나게 한 건 남자 건물주가 쉽게 ‘미스황' 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내가 나이가 비교적 어린 타지에서 온 여자이기에 부당한 요구나 상식 외의 행동을 했던거야. 본인 건물 리모델링에 필요한 비용을 내가 50% 부담할 것, 본인 사무실이 내 가게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 오지 않는다며 수도세 내기를 거부한 것, 건물 관리에 대한 방치, 건물 용도를 제 때 변경하지 않아 나와 1층 세입자에게 목포시 제출 서류를 늦게 내도록 한 것, 본인 사무실에서 불법 도박행위를 해 건물 내 흡연 및 화장실 오염 및 위생 오염 문제가 생긴 것, 복도 쪽 바닥 누수에 관해 우리측 공사가 잘못 되었다고 뒤집어 씌운 것. 특히 마지막 사건 덕분에 나는 남자 건물주와는 더 이상 부딪히지 않고 ‘미스황' 이라고 불리지 않을 수 있었어. 이 얘기는 나중에 해줄게.

여자와 일하면
이렇게 좋다니

일러스트 이민

가게 자리를 우여곡절 끝에 구하고, 인테리어 공사 및 전기 및 수도 공사를 해줄 업체를 찾아보는데 이것도 참 막막한 거야. 서울이라면 뜻이 맞고 내 생각을 그대로 구현 해 줄 사람들을 금방 찾았을거야. 하지만 여긴 목포잖아. 인테리어의 경우 서로 좋지 않게 끝난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어. 심지어 시에서 준비하라고 한 인테리어에 필요한 서류는 보통 건물 건축에 필요한 설계도서라는 서류였기 때문에 민간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그닥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 이쯤 되니 사업에 합격한게 혹시 저주는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어. 겨우겨우 하나를 해 내면 또 말도 안되는 상황에 부딪히니 말야.

몸도 마음도 편하게 살기 위해 내려 온 목포에서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게 참 아이러니했어. 그러던 차에 서울에서 알게 된 친구의 큰언니 부부가 목포에서 건축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을 드렸어. 다행히 좁은 평수와 넉넉하지 않은 예산이 흥미롭다며 선뜻 함께 해주시겠다고 했어. 건축 일을 하시기 때문에 설계도서 서류도 어렵지 않게 해주실 수 있었고. 제일 좋았던 점은 여성과 일할 수 있었다는거야. 보통 인테리어 일은 남자들이 많아서 소소한 사기를 당하거나 무시를 당할 것 같았고, 거기에 내가 하나하나 반박을 하면 안좋은 소리 나올 게 뻔했거든. 하지만 이 부부는 내 의견을 존중해 주셨어. 이 업계에서 일하는 여자가 함께 있었다는 게 정말 좋았어.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을 부드럽게 지적하고 보완하면서, 내가 생각만 해온 부분을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공사를 해주셨지. 물론 공사가 끝나고 나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말야. 과연 내가 남자가 대표인 곳에서 인테리어를 했다면 마음 편하게 놀러가듯 내 공사 현장을 지켜 볼 수 있었을까? 지금같은 인테리어가 나왔을까? 종종 생각해.

‘각 분야의 여성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좋다!'는 그 기분이 힘든 일정을 견디는 나의 원동력이었어. 제일 걱정했던 인테리어를 끝내고 나니, 다음 과제는 가게와 어울리는 BI (Brand Identity,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과 식물 인테리어였어. 이 부분 역시 전부터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로 멋지다고 생각한 디자이너 팀, 그리고 식물 전문가와 함께했어. 모두 서울에서 활동하는 분들이어서 대부분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결과물은 아주 훌륭했지. 결과물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시간 엄수나 일의 진행 등이 아주 매끄러웠어. 둘 다 여성이었으니까. 대다수의 남성으로 구성 된 목포시 도시재생과 사람들과 일해보고, 각 분야의 전문 여성들과 일해 보니 ‘여자가 일을 잘한다’는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어. 앞으로도 무슨 일을 한다면 여성들과 함께 하고 싶어. 가게를 준비하면서 얻은 값진 교훈이랄까!

정말 우당탕탕 와르르, 고군분투하며 타지에서 홀로 가게를 열 준비를 마치고 나니 진이 빠져버렸어. 가게를 개업하자마자 폐업하고 싶었던 내 마음. 아마 세상 모든 자영업자들이 이 마음에 공감하지 않을까. 결국 난 2018년 2월 14일에 작은 술집의 사장이 되었어. 누구나 (개저씨 빼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술을 오롯이 홀로 마셔도 좋은 가게의 사장. 아쉽게도 이번 달 말에 시와 약속한 계약기간이 끝나 이 장소에서는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겠지만. 내가 왜 괄호에 (개저씨 빼고) 라고 적었는지는 다음 편지에 쓰도록 할께.

우당탕탕 와르르 고군분투 해서 지치고 힘들 때 조금이라도 삶의 의지를 붙들게 해주는 부드럽고 달콤한 레시피를 알려줄께. 저번에 <토마토 라면> 만들 때 사 둔 토마토 있지? 그거랑 연유만 있으면 돼. 기분을 업 시켜주는 <연유 토마토>야! 만드는 건 간단한데 맛은 간단하지 않아서 마음이 든든해져. 마치 여성들과 함께 일할 때의 기분처럼 말야.

<연유 토마토>

재료

잘 익은 토마토 먹고싶은 만큼

연유

견과류

슈가파우더

 

연유토마토
  1. 토마토를 먹고싶은 만큼 자릅니다. 마음대로 자릅니다. 웨지로 잘라도 좋고 깍뚝썰기도 좋아요.
  2. 자른 토마토를 깊이가 살짝 있는 접시에 담아주세요.
  3. 토마토를 담은 접시 위로 연유를 마음대로 뿌립니다. 달콤한 맛을 많이 좋아하시면 많이, 적당히 좋아하시면 적당히 뿌려주세요.
  4. 그냥 먹어도 좋지만 하루견과 처럼 사두고 잘 안먹게 되는 견과류가 있다면 위에 뿌립니다.
  5. 그냥 먹어도 좋지만 슈가파우더가 마침 집에 있다면 위에 뿌립니다. 하지만 2) 혹은 3)인 채로 먹어도 얼마나 맛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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