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온 편지 5. 기념일은 무엇을 기념해야 마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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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서 온 편지 5. 기념일은 무엇을 기념해야 마땅한가

황달수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멀게만 느껴졌던 2020년이 현실로 다가왔어. 생각보다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평범한 날들이지만, 같은 숫자가 두 번 반복된다고 또 이게 재밌기도 해. 넌 새해를 어떻게 맞이했어? 나는 말야, 친한 친구들과 함께 유자차와 와인을 가져가 유달산에서 카운트다운을 외친 후 매 년 하는 불꽃놀이를 관람하며 맞이했어! 올해는 바라는일들이 다 잘 되기를.

저번에는 우여곡절 끝에 가게를 오픈한 이야기를 했었지? 약 10평이 되지 않는 크기의 가게이지만 꽤 준비할 서류도, 돈도, 물건들도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진이 다 빠졌어. 발렌타인 데이라는 대기업의 상술로 가득 찬 날 가게를 엉겁결에 오픈했기에 그 날은나에겐 ‘내가 해낸 날'이야. 발렌타인 데이라는 화려하지만 실속 없는 사탕껍질같은 날 대신 말이야.

흰 장미 한 송이

왜 기념일로 이야기를 시작하냐면 여성의 날, 여성 폭력 추방 주간을 가게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야. 처음 가게를 연 2018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에 방문한 여성 손님들에게 하얀 장미를 한 송이를 나누어 주고, 목포에 와서 새로 알게 된 여성 분들에게도 장미를 한 송이씩 나누어 주었어. 사실 나도 그 날이 국제 여성의 날인지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연히 SNS에서 알게 된 후 이런 날이 존재한다는 걸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 참 이상하지 않니?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같이 유성애를 위한 날은 어릴 때부터 익숙해질 수 밖에 없으면서 국제 여성의 날이 있는지는 서른이 넘어서야 알게 된 게. 생각지도 못한 하얀 장미 한 송이를 받은 여성 분들이 웃으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기뻤어.

그 다음 해인 2019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에도 손님들에게 하얀 장미를 한 송이 나누어 드렸어. 왜 하얀 장미냐고?

1908년 3월 8일에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 1만 5천여 명이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 모여 권리를 주장한 첫 대규모 시위가 있었거든. 남성 노동자보다 가혹한 조건에서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도 없었대. 심지어 열악한 환경의 작업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여러 명의 여성 노동자 여러 명이 숨지자 여성들은 여성스럽게 거리로, 광장으로 모여 노동 조선 개선과 여성 지위 향상 등을 요구했다고 해. 그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고, 빵은 굶주림을 해소하는 ‘생존권', 장미는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의미해. 그리고 1911년 3월 8일 오스트리아와 덴마크, 독일과 스위스에서 처음 국제 여성의 날로 기념 된 뒤 1975년 UN이 공식적으로 3월 8일을 국제 여성의 날로 지정했어. 꽤 역사가 긴 날인데 내가 국제 여성의 날을 알게 된 건 2018년이었으니 햇수로 3년밖에는 되지 않았네. 하얀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 (#Me Too)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기에 국제 여성의 날에 하얀 장미를 나누어 준거야. 하얀 장미는 역사적으로 희망과 평화, 동정심, 저항을 상징하기도 하고. 1908년의 시위나 지금이나 여성이 요구하는 건 별로 달라지지도 않았다는 게 참 어이없지. 2020년엔 여성의 노동이 정당한 대우를 받기를.

일러스트 이민

귤 하나

2019년 11월 25일부터는 손님들에게 귤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어. 그 날은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이고, 세계 인권 선언일인 12월 10일까지는 여성 폭력 추방 주간이거든. 1960년 11월 25일에 도미니카공화국의 미라발(Mirabal) 세 자매가 라파엘 트루히요의 독재 정권에 대항하다 비밀경찰에게 살해당했는데, 정권은 그 일을 교통사고로 위장했어. 이들의 죽음으로 대중은 분노했고, 6개월 뒤 독재자는 암살 당했대. 1981년 남미의 여성 운동가들이 이 세 자매가 살해당한 11월 25일을 추모의 날로 지정한 게 시작이었지. 

부끄럽지만 2019년에서야 친구의 SNS를 보고 알게 이 날을 알게 되었어. 알게 되자마자 이 날을 반드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귤 한 박스를 샀어. 그래서 계산하며 나가는 여성 손님들에게 귤을 나누며 얘기했어.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이라 귤을 드려요.’하얀 장미만큼 큰 의미는 없지만, 겨울에 흔한 귤처럼 여성에 대한 폭력도 흔하잖아. 그 말을 하면서 난 한 달 전 세상을 등진 설리가 가장 생각이 많이 났어. 사실 고백하자면 나도 간접적으로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하는 주체였고, 그걸 아무런 생각 없이 하던 때가 있었거든. 다시 생각해도 너무 한심하고 무지해서 큰 반성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설리의 비보를 듣고 굉장히 많이 울고 반성하고 후회했어. 내 책임이 아예 없진 않으니 말야. 설리가 떠난 날은 앞으로 여성에게는 어떠한 형태의 폭력도 삼가하고 그저 보고만 있지 않기로 마음 먹은 날이기도 해. 그 후에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이라 귤을 드려요.” 라고 말하며 나의 다짐과 결심과 약속을 되새기게 됐어.

아직도 넘쳐나는여성혐오 범죄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모든 형태의 폭력이 하루 빨리 사라지길소망해. 2020년에는 적어도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폭력은 부끄러운 짓임을 알았으면 좋겠어.

내가 해낸 날,
네가 해낸 날

국제 여성의 날과 여성 폭력 추방 주간을 기념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되었어. 특히 내 과거를 반성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된 점은 내가 가게를 열고 잘 했다고 생각한 몇 안되는 ‘너 잘했어!’ 목록 중 하나이기도 해.

여성들은 끊임없이 여성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해 왔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건 내 앞의 여성이 소리치고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과연 그들이 소리쳐주지 않았다면 내가 혼자 연고도 없는 타지에 와서 가게를 열 수 있었을까? 지금도 ‘여성' 이기에 불편한 점들이 많고도 많은데. 상상조차 할 수 없어. 2018년 2월 14일, 타지에서 내가 원하는 작은 술집을 열게 된 건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소리치고 설치고 떠들고 말한 모든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이니까. ‘내가 해낸 날'은 ‘여성들이 해낸 날' 이기도 한 셈이야. 그래서 나도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할 거야. 장미 한 송이와 귤 한 개처럼.

기념일에 먹기 좋은 레시피를 알려줄게! 아무래도 파스타가 좋겠지? 조금 까다롭긴 하지만, 시원한 맥주와도 어울리고, 와인과도 어울리는 <세발나물 봉골레 파스타> 인데 이 요리를 하려면 화이트 와인이나 청하가 필요하니, 꼭 술이랑 곁들여 먹도록 해. 기념일에 알코올이 빠지면 좀 아쉽잖아. 세발나물은 마트에서 보기도, 구하기도 쉽지 않아 특별한 날을 기념할 때 잘 어울리지. 한 겨울이 제철인 세발나물은 목포 쪽에서 나물로 많이 먹어. 네가 사는 곳 근처 마트에 팔지 않아 구하기 힘들다면 세발나물이 잘 자라는 비금도에서 온라인 판매도 하고 있으니 확인해 봐.

<세발나물 봉골레 파스타>

일러스트 이민

재료

• 세발나물 한 움큼

• 마늘 좋아하는 만큼

• 스파게티 면 500원 크기 만큼

• 바지락 20개 남짓

• 베이컨 2줄

• 올리브유

• 달지 않은 화이트 와인 혹은 청주 반컵

• 페퍼론치노 (생략가능)

• 소금, 후추 취향껏

• 치킨스톡 (생략가능)

 

  1. 바지락은 2시간 전 미리 바닷물처럼 만든 소금물에 해감을 해 주세요. 해감 방법은 네이버와 유튜브 등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해감이 된 바지락은 흐르는물에 씻어 물기를 제거해 주세요.
  2. 파스타 삶을 물을 냄비와 함께 준비합니다. 소금을 두 스푼 정도 넣어서 끓이세요.
  3. 세발나물은 잘 혹은 대충 다듬고 흐르는 물에 씻어 물기를 털어주세요.
  4. 마늘은 편으로 썰고 페퍼론치노는 으깨고 베이컨은 한 입 크기로 썰어 준비합니다.
  5. 2)의 물이 끓기 시작하면 준비한 파스타 면을 넣어 삶아주세요. 스파게티면 말고 취향껏 펜네나 푸실리 등도 괜찮아요. 욕심쟁이들은 스파게티면과 펜네, 푸실리를 같이 넣고 삶아도 좋습니다. 봉투에 적힌 시간보다 2분 덜 삶아 주세요.
  6. 넓은 팬에 올리브유를 팬에 가득 두르고 30초 간 예열을 한 뒤 4)의 마늘을 넣어 재빨리 볶습니다. 타지 않게요.
  7. 마늘이 노릇해지면 4)의 베이컨과 페퍼론치노를 넣어 볶아줍니다. 페퍼론치노가 타는 연기는 눈과 코가 매워지니 연기가 나지 않게 부디 조심하세요.
  8. 1)의 바지락을 팬에 넣어 입이 살짝 열릴 때 까지 볶은 뒤 화이트 와인이나 청주를 넣어주세요. 개인적으로 화이트 와인이 더 좋아요.
  9. 바지락이 입을 벌리면 삶은 파스타 면과 함께 5)의 면수를 취향껏 넣고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춥니다. 이 때 치킨스톡을 넣어도 좋아요. 소금과 치킨스톡의 양은 조금씩 나눠 넣으며 조절하기! 2분 정도 더 끓인 뒤 접시에 담습니다. 여기까지 하면 일반적인 봉골레 파스타랍니다.
  10. 접시에 담긴 봉골레 파스타에 3)의 세발나물을 얹어 후추를 뿌립니다. 아삭한 세발나물의 식감이 바지락의 감칠맛과 잘 어울려요. 그러고보니 세발나물과 바지락은 서해의 대표적인 식재료네요. 서해의 맛을 기념일과 기분 좋게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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