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6. 쿠바의 음식

알다여행요리

떼아모 쿠바 6. 쿠바의 음식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마스 오 메노스(más o menos) 

오늘의 주제, 개인적으로 최애 파트인 쿠바의 음식이다. 말레꼰 편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고, 입에 음식이 들어갈 때 가장 행복하다. 

정확히 짚어 다시 말하면, 나는 한식을 정말 좋아한다. 향신료에 매우 취약해서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향으로 미각을 자극하는 나라의 음식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도로 편향된 음식 취향 때문에 전 세계 그 어떤 산해진미를 가져다준들, 김치찌개에 먹는 밥 한 공기보다 만족도가 떨어진다. 해외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 나라 음식에 대한 뒷조사를 철저히 할 수 밖에 없다. 여차하면 여행기간 내내 맨빵만 씹다 오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식도락 아니던가. 자고로 음식이 입에 맞아야 여행도 즐거운 것! 

이런 나의 촌스런 입맛을 기준으로 전반적인 쿠바 음식을 평가하자면 한 마디로 "마스 오 메노스(más o menos)", 그저 그렇다.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맛있지는 않지만, 이 음식을 평생 먹고 살아야 한다고 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나의 여행의 질을 깎아먹을 정도는 아니다. 

쿠바 요리는 꼬미다 끄리오야(Comida Criolla) 라고 부른다. 스페인 식민지 영향을 받아 조리법과 사용하는 재료가 간단한 편. 최소한의 조미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재료 그대로의 맛을 즐긴다고 할 수 있다. 약간의 시즈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를 섞지 않는다. 오랫동안 이어진 미국의 경제제재로 대부분의 나라와 무역이 금지되어, 재료가 그리 풍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향신료나 다양한 양념을 즐기는 이들은 쿠바 음식이 맛없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한식 위주로 편향된 식성을 가진 이에게는 이런 밋밋한 맛이 오히려 편하게 다가온다. 

쿠바의 주식인 꼬미다 끄리오야의 기본 구성은 한 접시다. 속이 깊은 넓은 접시에 쌀밥과 콩 스프(또는 팥밥)을 담고, 육류 또는 생선 종류의 주 반찬 한 가지, 약간의 채소 샐러드, 그리고 탄수화물로 된 곁들이 음식(비안다, vianda)을 한 조각 얹는다. 즉 쿠바의 주식은 밥이다. 기본 양념으로 양파, 마늘을 사용한다. 다분히 심플한 조리법과 익숙한 식재료, 이것이 바로 나 같은 '한식 밥순이'가 죽지 않고 쿠바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 

전형적인 꼬미다 끄리오야
레스토랑에서 볼 수 있는 상차림
나오미가 차려 본 쿠바식 밥상. 콩 스프가 보인다

안타깝게도 쿠바 음식은 대체로 혹평을 받는다. 반복되는 재료와 심플한 조리법에 사람들은 금방 질린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쿠바 음식은 다 거기서 거기야’라고 말한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질려서 먹기 싫어’ → ‘쿠바 음식 맛없어’의 순서를 밟는다. 한 가지 복병이 더 있으니,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음식이 전반적으로 짜다. 짠 음식을 못 먹는 이에겐 쥐약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누가 뭐래도 쿠바는 나오미의 사랑 아닌가! 이런 오해와 혹평 때문에 나는 슬프다. 다년 간 쿠바 음식을 얻어먹고 다니며 쿠바 음식에 적응한 스킬을 살짝 풀어본다.

쿠바의 손맛을 찾아서

쿠바 음식에 친숙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현재 숙박하는 까사에서 밥을 사 먹는 것. 아바나를 제외한 대부분 지방의 까사에서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까사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국가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재료비를 제하고 나면 그들의 순수익이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까사가 집에서 저녁식사를 해주길 원한다. 더러 노골적으로 식사를 유도해 난감함을 느낄 때도 있으나, 이럴 땐 식사를 포함하여 숙박비를 적정선에 흥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 또한 레스토랑 보다 까사에서 하는 식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쿠바의 가정식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기회이고,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몇몇 까사는 음식 솜씨가 너무 좋아 숙박객 외의 사람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찾는 경우도 있다. 보통 10쿡 전후의 가격인데 전채(샐러드 또는 스프), 고기 또는 해산물, 쿠바 스타일로 지은 밥, 과일이나 후식까지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온다. 

트리니다드 까사에서 주문한 랍스타 한 상. 1인 10쿡(약 1만2000원)
바라코아 까사에서 주문한 밥

까사에서 먹는 밥은 레스토랑 같이 보편화 된 맛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식사를 맛보는 재미가 있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 안주인의 손맛에 따라 후리홀레스(콩 스프)맛이 천차만별이다. 여기에 추가로 원하는 점을 더 상세히 주문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예를 들어 음식에 소금은 조금만 넣어달라든지, 생선을 단단하게 바싹 튀겨달라든지. 

트리니다드의 한 숙소에서는 여주인이 매일 저녁 아시안 누들을 이용한 스프를 끓여줬는데, 매운맛을 뺀 한국의 라면과 맛이 똑같았다. 쿠바식 퓨전 라면을 먹는 기분이랄까. 한동안 그 집 음식에 빠져들어 트리니다드의 식당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트리니다드 까사에서 먹었던 아시안 누들 식사

여기에 보너스 팁을 주자면, 한국에서 튜브 고추장을 한 개 준비하도록 하자. 간혹 지겨워질 때 밥에 고추장을 슥슥 비벼 먹거나 돼지고기에 찍어 상추 샐러드와 함께 먹으면 고향의 맛을 60% 정도는 소환할 수 있다. 덤으로 살사 삐깐떼(Salsa Picante, 매운 소스)를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쿠바노들과 유쾌한 친분을 쌓을 수도 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쿠바인들은 매운 걸 전혀 못 먹는다. 나오미도 한국에서는 매운 것을 잘 못 먹어 별명이 '맵찔이'인데, 쿠바에서는 무적의 혓바닥이 된다. 한 번은 쿠바 친구가 음식을 먹고 매워 죽겠다고 난리를 치길래 한 입 먹어봤더니 케찹 맛이 난 적도 있다. 불닭볶음면 한 젓가락만 있으면 쿠바인을 암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물론 농담이다. 이런 잔인한 짓은 하지 말자. 불닭볶음면은 나오미도 암살할 수 있는 위험한 음식이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이 정도면 충분히 쿠바를 여행 하는 동안 ‘그저 그런 중간 맛’의 쿠바 요리와 즐거운 동행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9년째 먹다 보니 한식만큼 익숙해진 쿠바음식, 지금부터는 내가 쿠바에서 얼마나 잘 먹고 다녔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다.

밥 잘 먹어 청혼 받다

P와 교제 중일 때의 일이다.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았고,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저녁밥을 먹었다. 동쪽 지방(오리엔떼, oriente) 출신인 P의 어머니가 해주신 밥은 정말이지 맛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전라도 음식을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처럼, 쿠바에서도 오리엔떼 음식은 맛있다는 얘길 하곤 한다. 

주 요리는 돼지고기였다. 고기에 어떤 양념을 곁들였는지 모르지만 약간 돼지갈비 같은 맛이 났다. 접시에 산처럼 쌓아 주신 음식을 설거지하듯 득득 긁어서 먹는 동안 어머니, 아버지, P의 6개의 큰 눈동자가 나를 주시했다. 다 먹고 배를 두들기고 있으니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자신의 무릎에 발을 올려 내 발톱을 손질하고 매니큐어를 발라주셨다. 발톱이 마르는 동안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멍을 때렸고, P의 어머니는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셨다. 아주 천국이 따로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P와 말레꼰으로 산책을 나갔고, 그날 밤 나는 청혼을 받았다. 

네가 우리 엄마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너와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어. 나오미, 나와 결혼하자.

이게 다 뭔 소리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구체적인 사연은 이렇다. 몇 년 전 이탈리아인과 잠시 교제한 경험이 있는 P. 친구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애인과 함께 친구 집에 동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애인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고,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챙겨주는 친구에게 시종일관 "노!"라는 대답만 했다고 한다. 레스토랑에서는 그 누구보다 음식을 잘 먹던 그였기에 거절의 사유는 묻지 않아도 명백했다. 가정식이 싫었던 것. 

우리는 가난하지만, 더럽지 않아.

파티 직후 친구 집 대문 앞에서 P는 그렇게 이탈리아인에게 이별을 고했단다. 이런 상처가 있는 만큼 또 다른 외국인인 나를 집에 초대했을 때, 음식을 먹는 척이라도 해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P. 하지만 먹는 척은 커녕 접시까지 씹어 먹을 기세로 달려드는 나를 본 순간, 이 사람은 인성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단다. 

사뭇 진지한 그의 표정에 더 이상 웃고 있을 수가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청혼은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연 있는 청혼이었다. 꾸준히 주는 대로 잘 먹고 살다보니 식성이 인성 평가에 시너지를 주는구나. 놀랠 노자다.

현재 나오미는 사육되는 중

지금 나는 쿠바에 있다. 쿠바에서도 동쪽 끝에 있고, 동쪽 끝에서도 여행자는 단 한 명도 찾아온 적이 없는 그야말로 ‘깡 시골’에 와있다. 이곳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O의 부모님 댁이다. 

나오미는 시골 취향이다. 도시보다는 한적하고 작은 마을을 선호하지만, 플라야, 라르가나, 비냘레스 같은 곳은 이미 너무 상업화 되었다. O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약 20시간에 걸쳐 오게 되었다. 오는 내내 O는 시골이라 화장실이 더럽고 식재료가 풍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시종일관 걱정만 했다. 하지만 그는 내게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가! 내 쿠바 인생 9년을 통틀어 그의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 어떤 레스토랑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 중의 최고의 맛이라는 것을! 정말이지 먼 길 달려 이곳까지 온 여정에 대한 후회가 눈꼽만큼도 들지 않는다. 

마리엘라의 정성이 가득한 밥상
O의 가족과 함께

위대한 셰프, 마리엘라! 신이 내린 요리 실력을 지닌 그가 내게 준 첫 번째 음식은 간단했다. 돼지고기에 양파, 마늘을 넣고 최소한의 양념을 한 음식과 양배추 샐러드. 그런데 웬걸. 이 양배추 샐러드, '미친 맛'이다. 양푼에 한 가득 있는 양배추를 혼자 다 퍼먹었다. 괜찮다! 의사가 양배추는 많이 먹을수록 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두 번째 음식은 닭고기, 팥밥, 유까(yuca, 카사바, 타피오카, 만디오까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탄수화물이 많은 뿌리채소), 바나나튀김, 양배추 샐러드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짜 ‘미친 맛’이다. 너무 맛있다. 뭘 넣었기에 닭고기에서 춘천 닭갈비 맛이 나는 걸까. 유까, 바나나튀김은 원래 내 최애니까 딱히 언급할 것도 없다. 세상에, 양배추 샐러드! 두 끼 연속 먹어도 이렇게 맛있을 건 또 뭐란 말인가. 이 동네 양배추 자체가 꿀맛인 건가. 

밥 먹고 동네 구경 살짝 하고, 흔들의자에 앉아 럼이나 홀짝대다가, 또 밥 먹고 가족들 소개 받고, 멍 때리다 보니 하루가 다 갔다. 잠자리를 준비해 주며 누추한 시골집에 모기가 많아 어쩌냐고 걱정하는 O의 어머니, 마리엘라. 평생 주방일과 생업에 혹사되어 늙어버린 그의 손을 조물조물 만지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순박한 미소로 해준 것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시지만, 우리 엄마가 해 준 밥 다음으로 허겁지겁 먹은 밥이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마리엘라와 함께

지금 마리엘라는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준비 중이다. 스파게티를 준비하는데 왜 꽈리고추볶음 향기가 나서 나를 이렇게 설레게 하는 건가. 슬쩍 들여다보니 피망으로 무슨 마법을 펼친 듯하다. 음식이 익는 동안 계속되는 흥겨운 댄스 또한 맛의 비법임이 확실하다. 

3월에는 돼지고기 바베큐를 해 주신단다. 20시간이 걸려도 기꺼이 다시 올 의향이 있다. 안 왔으면 어쩔 뻔 했을까! 평생 이 맛있는 음식을 모르고 살았겠지. 안 그래도 예쁜 O가 열배는 더 예뻐 보인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성급히 마무리 지어야겠다. 2019년 쿠바가 내게 준 선물, 마리엘라의 음식이 날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어찌 외면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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