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도 그리기가 하늘의 별 따기
쿠바의 가족에 대한 첫 번째 대화.
O : 나는 5형제 중 넷째야. 첫째, 둘째형은 아빠만 같은 하프 브라더고, 셋째형은 엄마만 같은 하프 브라더, 나와 막내동생 둘만 부모님이 같아.
나오미 : 응...?
O : 지금 나는 나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남편과 살고 있어. 그에겐 야니라는 딸이 한 명 있는데, 근처에 살아서 거의 매일 우리집에 오지.
나오미 : 그럼 그들은 너의 가족이야?
O : 그는 나의 엄마의 남자일 뿐, 나의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아. 야니 역시 내 여동생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오미 : 피가 섞이지 않았으면 가족이 아닌 거야?
O :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살았고 나에게 아버지 역할을 했다면 가족이겠지. 하지만 내게 있어 그들은 아직 가족은 아냐.
나오미 : 흠... 그렇구나...
두 번째 대화.
O : 인사해. 이 쪽은 옆집 사는 아멜리아, 까멜리아, 그리고 레이니따. 아멜리아는 까멜리아의 어머니이고, 레이니따는 내 삼촌 로베르또와 까멜리아의 딸이야.
나오미 : 그럼 너의 가족인 거네?
O : 로베르또와 까멜리아는 예전에 헤어졌어. 아멜리아, 까멜리아는 이웃으로서 우리와 매우 친하게 지내지만 이제 가족은 아냐. 이미 오래 전에 헤어졌으니. 하지만 레이니따는 내 삼촌의 딸이니까 가족이지.
나오미 : 아..... 그렇구나.....
세 번째 대화.
O : 멜라니랑 미첼이 서로 좋아하는 것 같아.
나오미 : 근데 그러면 안되잖아. 멜라니는 너의 삼촌의 손녀고, 미첼은 너의 이모의 아들인데? 가족이잖아.
O : 멜라니는 삼촌의 손녀가 아니고 삼촌과 함께 사는 여자의 손녀야. 친척이라고 할 수 없지.
나오미 : 그... 그런 거야...?
떼아모 쿠바 첫번째 시즌의 마지막 주제는 가족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대한민국 국어사전에 명시된 의미를 보면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말한다. 그렇다면 쿠바에서 가족은 과연 어떤 집단일까?
쿠바의 지인들 가족을 소개 받다 보면 이건 뭐 '콩가루 집안'이라는 생각밖에 들지않는다. 가뜩이나 한국에서 온 나에겐 이름들도 눈에 익지 않아 생소한데, 관계까지 외워야 하니 머리에 쥐가 난다. 결혼이라는 행위 후에 가족이 결성되는 한국과 달리, 서로 사랑하고 연인관계가 시작되면 함께 동거하는 것이 쿠바의 문화이다. 그 기간이 짧아 금방 헤어지면 거쳐가는 인연이 되는 것이고, 기간이 길어져 계속 함께 살면 가족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부모가 죽을 때까지 함께 사는 경우가 지극히 드문 국가이므로 친가, 외가, 현재 함께 사는 부모님의 배우자와 그의 가족까지, 친족의 범위가 정말 방대하다.
그 뿐인가. 쿠바노에게 가족은 내 부모와 형제 자매로 끝나지 않는다. 이모, 삼촌, 고모, 조부모, 사촌, 조카까지 모두 내 가족이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있다.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니어도 오랜 기간 이웃으로서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었다면, 이 또한 서로를 가족으로 여긴다. 아이러니하게 함께 살아도 본인이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가족이 아니지만 말이다.
친척의 일은 곧 나의 일
한국은 1970년대 이후 이미 핵가족화가 되었다. 대부분 1대 또는 2대까지만 함께 산다. 드물게 3대가 함께 사는 경우도 있지만, 맞벌이하는 자녀들을 돕기위해 손자들을 돌보려는 특정한 목적이 크다. 직계가족이 이렇다보니 친척은 멀고도 먼 사람들이다. 각자 타 지방에 떨어져 사는 경우가 허다하고, 같은 지역내에 살아도 굳이 그렇게 자주 왕래하지 않는다. 사는 게 바쁘다보니 결혼식, 장례식, 제사 같은 큰 집안 행사를 제외하면 안부전화도 뜸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쿠바는 다르다. 씨족사회로 살도록 국가에서 강제한 것도 아닌데, 친척들이 한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직업 상의 문제로 타지에 멀리 떨어져 살더라도, 여름 휴가 기간에는 늘 고향에 있는 가족을 찾는다. 이들에게 있어 가장 마음 편한 장소는 가족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돌볼 여건이 되지 않으면 조부모, 이모, 삼촌이 육아를 돕는다. 자연히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사촌들과 함께 자라기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사촌과 친형제자매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이런 연유로 친척의 경조사는 곧 본인의 경조사가 된다.
2018년, O군과 재회를 위해 만날 날짜를 정하던 중이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1월 말은 안돼. 그레첼의 피에스타 낀세아녜라(15세 생일 파티)가 있어. 중요한 집안행사고 축하해주고 싶어. 절대 빠지면 안 돼."
지구 반대편에서 연인이 몇 년만에 만나러 온다는데, 절대 빠지면 안 된단다. 그땐 사실 좀 섭섭했다. 그런데 올해 그의 집에서 바베큐 파티를 해 보고 깨달았다. 나를 위해 열리는 바베큐를 위해 사촌동생 미첼은 O군과 함께 산에서 나무를 해왔고, 삼촌은 손수 돼지를 잡고 손질까지 해주셨다. 조부모님께서는 자기 집 안뜰을 제공해주셨고 마리엘라, 이모들, 옆집 이웃까지 오셔서 돼지고기와 함께 먹을 반찬과 밥을 요리해주셨다. 남자 가족들은 6시간 동안 내리 교대를 하며 바베큐바를 수동으로 돌려주셨다. 그들은 내게 말했다.
O는 나의 가족이고 나오미는 우리 O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 우리에게도 특별한 존재인 거야.
쿠바를 드나든지 9년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도 이 가계도조차 그리기 힘든 '콩가루 집안'의 한 구성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평적인 가족관계
"레이나가 나한테 말하더라. '사탕 사 와. 민트맛은 싫어.'"
"레이나한테 양념 말고 고기를 달랬더니 고기 맛 나는 양념은 고기와 다름없다네."
"어느 날 레이나가 음식 대신 접시 한 가득 감자, 호박, 바나나를 주길래 이게 다 뭐냐고 물었더니 내게 말하더라. '일단 먹어 봐, 살살 녹으니까.'"
"하하하. 레이나는 짱이야. 진짜 최고지."
2018년 O군의 삼촌, 이모들과 첫 인사를 나누던 날, 당시 대화 주제는 '레이나' 라는 사람이었다. 얘기를 듣다보니 이 가족에 상당히 핵심적인 사람이고 뭔가 귀여운 캐릭터 같았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너무 궁금해진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대체 그 레이나라는 사람은 누구죠?"
나의 질문에 가족들은 모두 빵 터졌다. 레이나는 O군의 외할머니라고 한다. 나로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들의 어머니이자 O군의 외할머니인 집안 최고 연장자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왜 그를 어머니 또는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느냐 물으니, 그들은 또 다시 빵 터졌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레이나는 우리 집안의 레이나(Reina, 여왕)이니까."
앞서 언급했듯이 쿠바는 아직도 한 마을에 가족이 모여 사는 경우가 많다. 한 집에 같이 살지 않지만 대가족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매일 서로 얼굴을 보고 일상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O군은 잠이 별로 없는 편인데, 이른 새벽 눈을 뜨면 곧장 옷을 갈아 입고 '여왕님' 댁으로 간다. 여왕님과 여왕님의 평생 동반자인 할아버지께 아침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이른 아침, 한 집안의 최고 연장자에게 문안인사를 올리는 풍경을 떠올렸다면, 그것과는 살짝 다르다. 그는 습관처럼 그 곳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빵과 쥬스로 간단히 요기를 하며 어제 하루는 어땠는지 조부모님과 조근조근 대화를 나눈다. 그렇게 시간을 잠시 보낸 뒤, 바로 옆에 있는 이모댁으로 간다. 이모와 아침인사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매일 친척에게 인사를 챙기는 것이 귀찮고 수고스럽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그게 도통 무슨 의미인지 이해를 못했다. 쿠바노에게 있어서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가장 친한 친구이다. 연애사부터 마음 속 괴로운 고민들까지, 가족에게는 못 털어놓을 속 얘기가 없다. 내 친구 R은 한참 피끓는 청춘이었을 때, 동시간대에 5명의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있다. 그에게 월화수목금 매일 다른 여자친구를 소개 받을 때 도통 표정관리를 어찌 해야 할 지 몰랐던 기억이있다.
마음의 벽도 없고, 위아래도 없고
놀라운 점은 그가 본인 엄마에게도 똑같이 5명의 여자친구를 소개했다는 것이다. R의 엄마 역시 나와 같이 경악했다. 엄마는 그에게 4명의 여자를 정리하고 한 명과 진지하게 사귀라고 늘 충고했지만, 그래야만 한다고 강제하거나 명령하지는 못했다. 쿠바의 가족관계는 수평적이다. 연장자를 공경하고 예를 갖추는 것이 당연한 수직적 유교사상이 이 나라에는 없다. 그래서 엄마고 할아버지고 죄다 이름을 부른다. 또한 윗사람의 말씀은 웬만해선 거역하지 않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다. 당신이 뭐라고 하든 그것은 당신의 의견일 뿐,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 뿐이다. 얼핏 보면 상당히 버르장머리 없어 보일 수 있으나, 그 대신 그들 사이엔 '불편한 감정' 따위는 없다.
나는 10년째 매년 해외에 나가고 1년 중 3개월은 해외에서 지낸다. 이런 나를 보면 상당히 자유로운 집안에서 자란 것 같지만, 사실 우리집은 상당히 엄격한 스타일이다. 나는 부모님께 늘 존대말을 사용하고 20세가 되기 전에는 거의 남의 집에서 자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집에서 하룻밤을 자기 위해 친구의 부모님이 우리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주셔야 했다. 나의 평생 중 약 7년을 제외하고 늘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그들은 나에 대해 잘 모른다. 내가 몇명의 남자를 사귀었고, 사는 동안 어떤 문제를 겪었고, 현재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부모님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한다는 것 역시 나로선 아직 많이 어려운 일이다.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부모님이 반대하신다면,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부모님이 그만 두길 바라신다면, 나는 그들을 설득하거나 거역할 자신이 없다. 간혹 친척 어르신댁이라도 방문하게 되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몸을 배배 꼬며 겨우 인사를 올린 뒤, 불편함에 엉덩이가 들썩거려 차려주신 식사에도 잘 집중을 못한다. 나에게 있어 연장자는 공경하고 예의를 갖추어야하는 존재이지만, 친숙하게 다가가긴 힘든 존재같다.
이런 나는 올해 O군의 고향에 처음 인사갔을 때, 단 5분만에 그의 엄마 마리엘라의 껌딱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를 길에서 처음 만났을 때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어가 그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를 쳤다.
어이! 빠삐로(할아버지 별명)! 목이 말라 죽겠네. 꼬레아나에게 물 한잔 떠오시게나!
물론 마리엘라가 시킨 장난이었다. 나의 지독한 말장난에 빠삐로는 물론 온 동네 할아버지들까지 웃음꽃이 빵 터지며 나의 볼에 환영의 뽀뽀를 해주셨다. 그들은 나를 조건없이 두 팔 벌려 환영해주었고, 11세 어린이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모두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한국의 1980년대와 꼭 닮은 쿠바
생각해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쿠바와 비슷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던 막내이모와 함께 살았다. 부모님이 생계를 위해 외출하시면 이모가 나를 돌보아주셨다. 지금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던 이모는 나를 참 잘 돌보았었다. 3살 때 이미 한글을 다 떼었던 나를 위해 이모는 없는 돈을 쪼개어 내게 책을 사다주셨다(그땐 내가 천재인 줄 알고, 계속 가르치면 엄청 똑똑해질 거라 믿었다고 한다. 하하하). 함께 야외수영장에 가서 가녀린 이모 목에 튼실한 두 다리로 암바를 걸고(즉, 목마를 타고) 찍은 사진도 있다.
이렇게 몇 년 함께 살았던 덕분인지, 이모는 지금의 이모부를 가족에게 인사 시킬 때도 우리집에 가장 먼저 왔고, 시집간 뒤에도 우리집을 자주 찾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내리 참던 거센 눈물을 우리집에 와서야 터뜨리셨다. 막내이모에게 바로 위 언니였던 우리 엄마는 가장 가까운 친정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띠동갑인 사촌동생과 나도 친동생처럼 친하게 지낸다.
나는 쿠바가 좋다. 타인과 더불어 살 때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를 가르치고, 도움이 필요한 이는 기꺼이 도와야한다는 기본 도리를 어린 시절부터 철저히 가르친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어른과 아이의 경계없이 자유로운 분위기다. 그들에게 가족끼리 모여서 살라고 강제한 이는 아무도 없다. 쿠바의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 그것 하나 뿐이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가족을 구성한다면, 나의 사람들에게 쿠바의 가족처럼 친숙한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