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시즌 투 12. 권태기, 쿠바가 싫어졌다?!

생각하다쿠바여행

떼아모 쿠바 시즌 투 12. 권태기, 쿠바가 싫어졌다?!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양다리만 10년 째

사남매 중 셋째 딸, 초중고를 있는 듯 없는 듯 얌전히 졸업, 잠시 술독에 빠져 살았지만 큰 사고 없이 국가고시 합격, 취업 후 일하며 큰 이슈 없이 살아가기. 이것이 나의 인생 전반부 25년을 요약한 것이다. 단 두 줄로 표현이 가능할 정도로 특별할 것이 없는 나날이었다. 

잔잔한 호수 같던 내 인생에 작은 조약돌 하나가 던져졌고 그 파장으로 물보라가 일었다. 쿠바였다. 

이 나라는 나에게 있어 금단의 과실과 같았다. 쿠바를 알게 된 후부터 내 삶은 예전과 같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쿠바에서의 삶은 가난하고 찌질했다. 하지만 쿠바에서 느낀 자유로움과 해방감은 나에게 범접할 수 없는 극도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선 한국에 정착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고, 이중잣대를 마주쳐야 했다.  눈을 감아도 쿠바가 보이고, 눈을 떠도 쿠바가 보였다. 쿠바를 주기적으로 드나들지 않고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전문직은 중요하지 않았다. 주머니는 가볍더라도 행복이 중요했다.

나는 쿠바를 지속적으로 드나들기 위해 정규직을 포기했다. 그리고 1년에 3개월, 한국이 가장 추운 시기에 쿠바로 갔다. 3개월 간 탈출할 예정만 바라보며 나머지 9개월을 이 악물고 버틴 셈이다. 이렇게 조국을 놔둔 나의 외도는 시작되었고 나는 10년째 두 나라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고 있다. 

오늘 내가 할 얘기는 이토록 애틋했던 쿠바에 대한 나의 권태기다.

일러스트 이민

쿠바야 네가 싫어졌어

처음 쿠바에 도착했을 땐 정말 극도의 행복감에 취해 살았다. 하늘의 구름도 별도 달도 모두 아름다웠다. 코 끝을 간질이는 말레꼰 특유의 비릿한 공기도 좋았다. 매일 일분일초가 행복하면서도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 천천히 가라고 시간의 허리춤을 당기고 싶었다. 3개월이 다 지나 쿠바를 나오는 날은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있어 쿠바를 떠나는 날은 다시 쿠바로 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디데이 카운트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6년 정도 쿠바를 드나들었을 때 문득 불청객이 날 찾아왔다. 권태기였다.

나의 권태기의 시초는 ‘불화’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지난 연인 P군과의 교제 시절이었다. 이 때는 잘 다니던 병원도 때려치우고 정기적인 수입이 끊겼던 시기라 쿠바를 드나드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연인을 위해 쿠바를 찾았고, 한 때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열 두번씩 들락거리는 그의 충동적인 성격은 곧 나의 정신을 매우 황폐하게 만들었고 우리는 자주 다투게 되었다.

사랑이 밥 먹여주니?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 없었다. 처음엔 사랑에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니 현실에 부딪히게 되면서 어느 순간 '현자타임'이 찾아 온 것이다. 그와 행복하게 지내는 상상만 몇날 며칠 했었는데, 정작 쿠바에서 그와 함께하는 동안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두 번째 권태기의 원인은 ‘갈증’이었다. 기분이 좋고 행복할 땐 전혀 개의치 않았던 일들이 나를 화나게 하기 시작했다. 물품의 희소성에서 오는 작은 불편함조차도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를테면 손톱깎이, 클렌징 오일 같이 한국에서는 손가락만 몇 번 까딱하면 이틀 내에 사용 가능한 것들을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구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을 때 말이다. 

‘내가 편안한 내 집 놔두고 왜 이 불편한 나라에 와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며 눈물이 펑펑 났다. 말레꼰에 올라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소리를 내며 통곡을 했다. 한국에 있는 내리 그토록 쿠바만 바라고 살았는데, 쿠바에 있는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불행했다.

세 번째로 날 지치게 했던 건 ‘무례함’이었다. 쿠바노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상냥하다. 초면일지라도 옆을 스치면서 인사를 주고 받고, 어린 아이와 노인은 무조건 우대한다. 하지만 개중에 상식을 뛰어넘는 무례한 자들이 있다. 당시 내가 체류했던 까사 근처에 상당히 무례한 남성이 한 명 있었다. 밖을 나설 때마다 마주치곤 했는데 이 남자는 나를 볼 때마다 의도적으로 비아냥거렸다.

올라 고르다(hola gorda : 뚱녀 안녕)

그는 항상 이런 인사로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나는 눈도 안 마주치고 무시했다. 그러다 말겠거니 하고 참고 넘기려 했다. 하지만 이 할일 없고 집요한 저 세상 텐션의 남성은 나를 점점 더 악랄하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가 걸을 때면 뒤에서 “아이고 쿵쿵 소리가 난다” 라고 말했고, 음료를 마시며 걸어갈 땐 “몇 키로 나가니?” 하고 내 어깨를 툭 치고 가기도 했다. 

어느 날이었다. P군과의 다툼으로 오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아 하루 종일 굶었고, 오후가 되어서야 허기진 몸을 일으켜 가까운 노점에서 작은 피자를 하나 샀다. 뜨거운 피자를 받아 한 입을 먹으려는 순간 또 그 미치광이가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검지로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너는 이런 것 먹으면 안 돼. 이거 피자 먹으면 더 뚱뚱해진다고. 알아?

순간 오랜 기간 부여잡고 있던 나의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럼 이 피자는 마른 너나 다 처먹어!!!!

나는 화덕에서 갓 나온 뜨거운 피자를 그의 면상을 향해 세게 집어 던져버렸다. 용케 얼굴로 날아온 피자는 피했지만 기겁을 한 그는 내게 빠른 속도의 스페인어로 욕을 하기 시작했다. 아끼는 셔츠에 튄 피자 양념이 그를 더욱 돌게 만든 것 같았다. 그 뒤로 그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그렇게 마음의 문은 더 단단히 닫혀버렸다.

쿠바가 싫으면
오지 않아도 돼

나는 ‘1년에 3개월은 쿠바에서 지낼 것이다’라고 스스로와 약속했고, 그것을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전처럼 쿠바가 사랑스럽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비통하게 만들었다. 처음 몇 년간은 한국에 있는 동안 마치 알맹이는 쿠바에 쏙 빼놓고 빈껍데기만 한국에 놓여진 기분이었다. 쿠바에만 가면 내 알맹이를 찾고 다 해결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권태기로 인해 쿠바에서도 내 마음이 허전했고, 결국 나는 그들에게 있어 한낱 이방인일 뿐 친구도 이웃도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되고 나니 한국에서도 쿠바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는 우울감과 자괴감이 동시에 나를 공격했다.

P를 정리하고 나의 애인 O와 다시 연락을 시작했을 때였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쿠바에 지쳤어. 이제 쿠바가 전처럼 좋지 않아. 그래서 속상해.

O가 말했다.

"네가 1년에 3개월은 쿠바에서 체류하지 않는다고 해도 누구도 너를 비난할 수 없어. 다시 쿠바에 오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잠시 쿠바는 잊고 지내도 돼."
"하지만 네가 거기 있는 걸."
"나오미. 가장 중요한 건 네 자신이야. 네가 쿠바에 오는 목적이 나여서는 안 돼. 나는 이렇게 연락하며 기다릴 수 있어. 다시 쿠바에 오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 때 돌아와."

그 해 나는 처음으로 쿠바에 가지 않았다. 큰 이벤트 없이 한국에서 삶을 이어가고, O군과는 전화와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그렇게 쿠바를 외면한 지 10개월 쯤 되었을 때, 나는 다시금 미치게 쿠바가 그리워졌다. 어수선하면서도 질서 있는 아바나의 거리와 상냥한 사람들의 미소가 그리워졌다. 무엇보다 나의 O군을 하루빨리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단지 그를 만나기 위해서 쿠바로 다시 떠날 마음을 먹진 않았다. 

나는 쿠바를 궁금해하는 8명의 동행인을 모아 함께 쿠바로 돌아갔다. 쿠바를 외면한 지 13개월만이었다. 나의 일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그의 의견을 수렴하여 O군을 만나는 것은 잠시 미루고 동행인들과 한 달간 행복한 여행을 했다. 일행들이 쿠바를 너무 좋아했던 덕분인지, 쿠바를 13개월 만에 다시 찾아서였는지 모르지만 또다시 일 분 일 초 매 순간이 행복했다. 한 달간의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O군과 재회하였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게 수줍은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다시 연인이 되었다.

쿠바와의 권태기를 호되게 겪었던 나는 지금은 상당히 안정된 상태다. 쿠바의 ㅋ자만 봐도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나는 다시 한국과 쿠바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이 관계가 언제 어떻게 정리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년에도 나는 쿠바에서 3개월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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