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4. 야구아하이

알다쿠바쿠바 여행

떼아모 쿠바 시즌 쓰리 4. 야구아하이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킨지

야구아하이에 간 사연
구구절절 주의!

야구아하이 풍경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산타 클라라 근교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야구아하이(Yaguajay)에서의 기묘한 여행을 소개해볼까 한다. 야구아하이는 산타 클라라에서 약 90km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여행자가 이 곳을 방문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일 것이다. 나조차도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르고 그냥 흘러가다 닿았으니 말이다.

이 작은 마을을 알게 된 건 나의 전 남자친구 P 때문이었다. P의 엄마는 5번 결혼했다. P에게 있어 친아빠보다도 더 애틋한 존재가 있었으니 세 번째 새아빠 D였다. P는 10대 시절 약 5년 간 D와 함께 살았는데, D는 의붓아들에게 모든 것을 헌신했다고 한다. 맛있는 간식이나 음식이 생기면 꼭 챙겨뒀다가 P부터 먹였고, 예쁜 신발이 없어 파티에 참가하지 못하고 우울해 있는 P를 위해 한 켤레뿐인 백구두를 30분간 반짝반짝 닦아서 벗어주기도 했단다. 친아빠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P로서는 D가 그의 인생 롤모델이자 우상이었다. 

하지만 P의 어머니가 새로 꾸린 가정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P는 D와 헤어진 뒤 15년 간 연락이 끊겼다. P는 나와 함께 여행하던 도중 한 도시에서 D의 친척을 만나 우연히 D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는 산타 클라라와 가까운 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나는 산타 클라라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목격할 수 있었다. 

부둥켜 안고 행복해하던 두 사람은 잠깐의 만남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수많은 현지인들과 함께 트럭버스의 뒷좌석에 매달려 있었다. 제대로 된 교통편도 없었던 야구아하이에 들어가는 동안 트럭 버스에 두 번, 올드카 콜렉티보 택시에 한 번 옮겨탔다. 이것도 자리가 없어서 P의 무릎에 겹쳐 앉아 어거지로 이동했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 한 시간이면 충분히 갈 법한 곳이었는데 도착해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트럭버스를 타고 야구아하이로

야구아하이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맞이한 건 D의 여자친구 M이었다. 약속 없이 찾아온 전 부인의 아들과 그의 외국인 여자친구가 반가울 리 없으련만, M은 상냥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신기하게도 이 마을에 숙박시설용 까사가 한 채 있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실이 없다고 했다. 괴물을 보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여러 번 훑어보는 것으로 봐선 현재 그 집에 외국인이 묵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난감해하는 나에게 D는 본인의 아파트를 통째로 빌려주셨다. 내가 묵는 동안 M의 집에 가서 지내면 된다고 했다. 미안하고 감사했다. 

D의 아파트로 들어간 순간 정말 깜짝 놀랐다. 예상보다 건물이 상당히 깔끔했고, D의 성격도 심하게 깔끔해보였다. 옷장 속 질서정연한 옷들과 깔끔히 정돈된 침구, 물기 하나 없는 주방 식기들. 화장실 또한 중년남성 혼자 사는 집 같지 않게 향기가 솔솔 났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야구아하이

마을 유일의 숙박업소

가방을 내려놓고 근처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무상으로 집을 빌려주셨으니 식사 한 끼는 거하게 내고 싶었다. 스페인어를 쓰는 '중국 여자'를 보고 동공이 흔들리는 직원에게 주문을 넣어 닭요리와 밥을 먹었다. 사이드로 소금에 절인 오이로 만든 샐러드가 나왔는데 우리네 오이지랑 맛이 같아 깜짝 놀랐다. 마을에서 가장 크고 인기 있다는 레스토랑에서 네 사람이 배불리 밥을 먹고 음료까지 마셨는데 15쿡도 나오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M이 보여줄 것이 있다며 자꾸만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긴 이동에 피곤해서 씻고 싶었지만 호의를 거절할 수 없으니 그의 집을 향해 함께 걸었다. 아파트 옆쪽에는 마을 사람들이 텃밭을 만들어 각종 채소를 경작하고 있었다. 밭 옆 오솔길을 지나니 작은 집들이 정갈하게 줄지어 있었다. 그 앞은 가로수로 심어진 아몬드 나무가 달큰한 향내를 뿜어댔다. 

거리에서 한 걸음 옮길 때마다 큼직한 눈망울들이 나를 구경하러 나왔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쳐다보는 아이들, 사탕이라도 줄까 한 걸음 다가가면 이내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코코넛 나무를 기둥 삼아 길게 이은 빨래줄에 알록달록 옷들이 말라가고 그 앞으로 말 탄 노인이 지나가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본 풍경같이 느껴졌다. 

아파트 옆 마을 텃밭

M의 집 근처에는 바나나 밭이 울창했다. 노랗게 익어가는 바나나를 보고 환호성을 지르자 이런 ‘외국 촌 것’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잘 익은 바나나 한 뭉치를 손에 쥐어주셨다. 짧고 뚱뚱한 바나나는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M의 집에 도착했다. 빨리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그를 따라 들어가니, 우리 안에 큰 돼지 두 마리가 있었다. 그토록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돼지라니 웃음이 나왔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비친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 큰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어머!! 돼지잖아!! 이거 집에서 키워요?????

나의 호들갑스런 리액션이 마음에 들었는지 M은 각 돼지의 이름을 내게 알려주며 함께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전혀 신기하지 않았지만 신기한 표정으로 돼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M은 내게 물었다.

돼지와 나오미
나오미. 유까(감자와 비슷한 맛이 나는 구근식물의 뿌리)라고 알아? 먹어봤어? 치차론(돼지껍데기 튀김) 이라는 건 먹어봤어?

둘 다 즐겨 먹지만 잘 모르는 척 했다. 그는 D를 닦달하여 돼지 껍데기를 손질시키고 빠른 속도로 유까 껍질을 벗겨 삶을 준비를 했다. 유까와 치차론을 먹으며 즐거운 오후를 보낸 뒤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 위험할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시골길인데 초행이라 위험하다며 아파트까지 두 분이 함께 데려다 주셨다. 아파트로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노점을 발견한 나는 잠시 발길을 멈추었고, 눈치 빠른 M은 내게 아이스크림을 권했다. 구아바 맛으로 먹겠다 했는데 아이스크림을 사지 않고 그대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 뭐지? 왜 물어본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파트에 도착했다. 

잠시 후 집에 오자마자 다시 밖으로 나간 M의 손에 양동이 가득 구아바맛 아이스크림이 들어있었다. 한 개만 맛보려던 구아바 아이스크림을 1인 당 3개나 먹고, 떠나는 D와 M을 배웅한 뒤 긴 하루를 마감했다. 푹 자고 일어나니 언제 왔는지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M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M의 요리가 특별히 맛있는 건 아니었지만, 날 위해 매 끼니 다른 반찬을 풍성하게 차려내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마음이 감사했다. 그 감사한 마음은 늘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먹는 것으로 표현했다.  

양동이 가득 구아바 아이스크림

야구아하이에 도착한 둘째날. 시골 마을 야구아하이에 유명한 가수가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처음 듣는 이름의 가수였는데 나름 유명하다고 했다. 늦은 밤, 야구아하이에 있는 넓은 공터로 가보니 야외 무대장치가 떡벌어지게 설치되어 있었다. 외국인 따위 볼 수 없는 마을이기에 입장료는 매우 미미한 금액을 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속된 공연시간이 다가올 때 쯤 어디선가 강력한 굉음을 내며 올드카 한 대가 도착했다. 잔뜩 멋을 부린 두 남자가 뒷좌석에 탄 것으로 추측컨대 가수인 듯했다. 공연장에 사람이 가득 찼다. 약속된 공연 시작시간이 한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그들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썬팅되지 않은 차라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였는데 그들은 딱히 하는 것도 없이 앉아 있었다. 신기한 건 컴플레인 하는 이가 아무도 없고 다들 맥주를 마시며 즐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의 밤 12시가 다 되어서 두 남자가 차에서 어기적 어기적 나왔다. 무대 위로 오르는 가수를 보며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긴 기다림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만 전투력을 상실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흥분한 P는 내 손목을 잡고 맨 앞 정가운데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가수들은 흥겹게 노래했다. 알 수 없는 랩도 열심히 했다. 정체불명 외국인이 정가운데서 박수를 치고 있으니 본인들의 인지도에 어깨가 으쓱한 것 같았다. 

그 때였다. P가 차가운 맥주 두 병을 사와 열창하는 가수들에게 맥주를 내밀었다. 그들은 P의 돌발행동에 당황했지만 무대 아래로 손을 뻗어 P가 건넨 맥주를 받았다. 맥주를 마시며 두어시간 열창한 가수들은 즉흥곡 같은 알 수 없는 노래 몇 곡을 앵콜곡으로 더 뽑은 뒤 무대를 마쳤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돌아서려는 때, 가수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원한다면, 우리와 사진을 찍어도 좋아.

내가 원하는 건 정체불명의 가수와의 기념사진이 아니라 포근하고 향기나는 D아저씨의 침대 속 꿀잠이었다. 하지만 야구아하이에서의 마지막 밤이었고, 야구아하이는 이 곳에 처음 온 외국 여자에게 잘해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동네 아니던가. 이 가수들 역시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나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노라 먼저 손을 내밀었으니, 응당 그에 맞는 대답을 해주어야 했다. 양손으로 브이를 펼쳐보이며 아직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가수 분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실력을 갈고 닦아서 매우 유명해질 수도 있으니 추억으로 잘 간직하기로 했다.

가수들과 나

야구아하이에서의 3박 4일은 평화로웠다.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도 없고, 나에게 목적을 갖고 다가오는 이도 없었다. 비록 전 남자친구 P와는 진절머리를 떨며 안 좋게 헤어졌지만, 언제든 우연이라도 D와 M을 다시 만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들이 베풀었던 조건 없는 친절에 감사하며,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들이 건강하고 평온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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