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아모 쿠바 11. 쿠바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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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아모 쿠바 11. 쿠바의 교육

나오미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세 살부터 다시 배워야겠어! 

지인 YD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계란 거래를 한 C여사와 둘도 없는 베프가 되었다. C여사는 쿠바의 마스코트 '까라두라'였는데, 내성적인 성격의 YD와 궁합이 제법 잘 맞아 매일 함께 어울리다시피 했다. 간혹 YD를 찾기 위해 우리 집에 들르기도 했다. 옆에서 둘의 대화를 보면 C여사가 어찌나 직설적인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 날도 아침 일찍 C여사가 나의 집으로 찾아와 YD를 찾았다(까라두라답게 이른 아침부터 남의 집에 잘도 찾아 온다). YD는 때마침 내가 차려 준 간단한 아침식사를 즐기는 중이었다. YD는 식사를 할 때 입을 벌리고 쩝쩝 소리내며 먹는 습관이 있다. 성격도 급한 편이라, 식사 중 할 말이 생기면 입에 음식이 가득 있는 상태에서 말을 하곤 한다. 그가 식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C여사가 말했다.

C여사 : YD! 넌 어떻게 매번 먹을 때마다 입을 벌리고 쩝쩝거리니? 아주 잘못 배웠어! 그렇게 입을 벌리고 쩝쩝대는 건 돼지가 사료 먹을 때나 하는 거다.
YD : (입에 음식이 있는 상태로) 입을 이렇게 다물고 먹으라고? 답답해서 못 먹어! 숨은 어디로 쉬어.
C여사 : 노노노노노! YD!!! 입에 음식이 가득할 때 말하는 건 나쁜 습관이야! 너 세 살부터 다시 배워야겠다.

쿠바의 교육 시스템 

뻔뻔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C여사 입으로 가정교육을 말하다니, 실소를 자아내는 일화다. 하지만, 실제로 쿠바는 교육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국가다. 쿠바의 아이들은 말귀를 알아듣는 3세 무렵부터 가정교육을 철저히 받는다. 기본적 식사예절부터 정중한 표현에 관한 언어 교육, 그리고 윗사람에 대한 기본적 예의 등을 배운다. C여사가 YD에게 3살부터 다시 배워야겠다고 한 이유다. 

쿠바의 의무교육 과정은 4세부터 시작된다. 대략 우리나라의 어린이집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한 교사가 약 20명의 학생을 맡아 가정에서 받은 기본적 교육들을 반복하고 체계화한다. 5세부터는 국가에서 공책, 책, 펜을 제공한다. 쿠바의 초등학교는 에스꾸엘라 쁘리마리아(escuela primaria)라고 부른다. 8세부터 1학년이 시작되는 한국과 달리, 6세부터 시작해 총 7단계 교육과정이다. 

입학 후 첫 단계는 쁘레스꼴라르(prescolar)다. 1학년 직전, 유치원 정도의 단계로 이해하면 쉽다. 오전 8시~12시까지만 교육을 한다. 다음 학년이 쁘리메르 그라도(primer grado, 1학년)이다. 숫자, 동식물 구별, 글자 쓰기 등을 시작한다. 오전 8시~12시에 오전 수업을 마치고, 잠시 귀가했다가, 2시부터 오후 수업을 진행하고 마친다. 귀가 없이 오전, 오후 수업을 쭉 이어서 진행하는 학교도 종종 있는데, 이 경우에는 교실에서 귀여운 해먹을 펴고 낮잠 자는 시간까지 정해져 있다. 매달 셋째 주 금요일은 야외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날은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데, 선생님의 재량에 따라 근처 공원에서 수업을 할 수도 있고, 캠프를 떠나서 서바이벌 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사복을 입고 야외 수업을 받는 초등학생들

6학년을 끝으로 초등교육을 마치면 에스꾸엘라 세꾼다리아 바시까(escuela secundaria basica), 중학교에 진학한다. 한국과 같이 총 3년 과정이다. 중등과정이 끝나면 에스꾸엘라 쁘레우니베르시따리오(escuela preuniversitario)라고 부르는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이 역시 3년 과정이다.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은, 고등학교 때 본인의 전공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3학년 끝 무렵, 엑사멘 데 인그레소(examen de ingreso)라 부르는 시험을 본다. 수학, 역사, 스페인어, 세 가지 과목이다. 적어도 각 과목 85점 이상은 맞아야 대학 진학의 기회가 주어진다. 남자들은 18세에 군입대가 의무인데, 대부분 1~2년 간 복무한 후 대학 과정을 이어나간다. 전공에 따라 복무기간이 다르다.  

파란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

전공과 삶은 별개인 것인가

내 보석처럼 찬란한 O는 전직 경찰이다. 18세부터 경찰 양성 기관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졸업 후 곧장 현업에 투입되어 7년 간 경찰로 근무했다. 시골 출신인 그는 영특하여 그 동네의 보배로 여겨질 만큼 공부를 잘 했단다. 실제로 인그레소 시험 점수도 세 과목 모두 95점을 넘겼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허름한 목조 건물 하나만 남긴 채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의 어머니는 18년 동안 빵집에서 하루종일 선 채로 일했지만 월 수입은 13쿡 뿐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의 전공은 인포르마띠까(informática, 컴퓨터 공학)이었다. O는 본인의 전공에 흥미가 있었음에도, 결국 경찰이 되었다. 경찰이었을 때 그의 월급은 20쿡. 그 중 10쿡은 매 달 어머니에게 송금했고, 나머지 돈은 아바나에서 군인으로 근무 중인 남동생에게 옷이나 음식을 사서 주는 데 썼다. 본인은 신발 한 켤레 사는 것도 인색했다. 

청춘을 다 바쳐 7년 간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지만, 그의 통장엔 단돈 십원 한 장 저축되지 못했다. 오랜 교대 근무로 지독한 두통에 시달리던 O는 2015년 경찰을 그만두었다. 7년 간 봉사한 그에게 국가가 준 퇴직금은 단돈 40쿡이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경찰 근무를 하며 단 하루도 웃으며 출근한 적이 없어. 정말 하기 싫은데,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다녔을 뿐이니까." 

내 친구 Y는 키가 훤칠하고 잘생겼다. 처음 만났을 때, 다른 쿠바노와 달리 새침해가지고 내게 말도 잘 안걸었다. 그와 친해진 계기는, 내가 그의 비밀스런 직업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의 대외적 직업은 교사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역사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2013년 당시 월 18쿡 정도 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주 수입원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시가 암거래상'이었다. 쿠바에서 거리를 걷다 보면 낮은 목소리로 "시가?꼬히바?"라고 묻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꼬히바, 몬테끄리스또 등 고급 시가를 공장에서 뒤로 빼내어 거리에서 싸게 파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꼬히바를 파는 건지 바나나잎을 말아서 파는 건지 알 수 없기에 나는 절대 사지 않는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Y의 인맥 중에는 꼬히바 공장에서 시가를 마는 직원이 많았다. 미리 갖고 다니면 시가가 손상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주문이 들어올 때만 즉석에서 공장에 전화를 걸어 물건을 확보했다. 한 개피 당 가격이 어마어마한 시가는 구하기 힘들었지만, 중간 품질의 시가를 묶음으로 구매하기 좋았다. 정가로 판매하는 매장에 비해 3분의1 가격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꼼꼼한 성격을 살려 시가 케이스와 정품 홀로그램까지 잊지 않고 챙겨다 주었다. 시가 한박스 가격은 최소 20쿡 이상이었으므로, Y로서는 단 한 박스만 팔아도 한 달 교사 월급보다 훨씬 이득이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너무 좋지만, 월 18쿡으로 뭘 할 수 있겠어. 비공식적이지만 주 수입원은 이 일인 걸."

훤칠하고 잘생긴 Y는 작년부터 호텔리어로 직업을 바꿨다. 호텔에서 받는 급여가 교사보다 높을 뿐더러, 시가 팔 때와 달리 숨어서 눈치 보지 않아서 좋단다.

아바나 비에하의 유명한 까사 주인 O여사의 본업은 아바나대학교 철학과 교수다. 십년 전 백혈병으로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투잡을 이어갈 수 없었던 그는 현재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까사 운영에만 몰두하고 있다. 가르치는 데 능력이 있고 교편을 잡는 것이 행복한 그였지만, 월 수입 30쿡으로 세 아들을 부양하는 건 무리였기 때문이다. 

한국도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나부터도 간호학을 전공했지만 이렇게 한량스런 베짱이로 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쿠바와 다른 점은, 한국에는 '최저임금'이 존재하기에, 내가 노력만 하면 어떤 직업을 갖든 기초생활을 영위할 정도의 수입을 받아야 한다고 법에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쿠바는 어떤가. 말로는 "아이들은 세계의 희망이다(Los niños son la esperanza del mundo"라고 한다. 아이들을 매우 귀히 여기며, 어린 시절부터 호세마르띠, 안또니오 마쎄오, 체 게바라, 까밀로 씨엔푸에고스, 피델 까스트로 등 역사 속 독립운동가 및 혁명 영웅에 대해 철저히 교육한다. 심지어 쿠바의 체제에 많은 불만을 가진 쿠바노들도 쿠바의 교육제도는 훌륭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약 20년의 무상교육 이후, 성인이 된 그들에게 주어진 삶은 그다지 희망이 없다. 전공을 아무리 살려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먹고 살기 위해 20년의 배움과 무관한 직업을 선택하거나, 여행자에게 빌붙어 쉽게 돈을 버는 '꼼수'를 쓸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 훌륭한 교육제도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쿠바 정부가 국민들의 삶을 조금만 돌아봐주었으면 좋겠다. 내 입에 풀칠하고 살기도 야박한 요즘, 이런 주장은 되도 않는 참견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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